팔용산 정상에서 바라본 봉암수원지. 수원지 둘레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성민건기자/
저수지 안 봉수정
가파른 오르막길 중간중간에 설치된 나무 데크를 서너 개 지나면 팔용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봉암수원지 산책로 처음과 끝이 만나는 구간. 오른쪽이 수문이다.
거북선을 닮은 돌탑.
산책로 주변 곳곳에 시비를 세워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 쌓아 놓은 돌탑.
직장과 학교가 가까이 있고 교통이 좋으며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도심에 둥지를 트는 이유다. 도심 속 방 한 칸 가지고자 고군분투해 온 날들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가끔 이곳을 영영 떠났으면 하고 꿈을 꾼다. 홀로 사모해 오던 이를 보쌈하듯 데리고서, 별자리를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이 가슴께까지 차오르는 날엔 강은 아니지만 강 같고 바다는 아니지만 바다 같고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첩첩산중인 곳, 마산 봉암수원지로 가보자.
팔용산 서쪽 양덕동에 거주하는 이삼용씨와 2명의 주민들이 1987년부터 먼등골이라 불리는 팔용산 산자락 일대에 약수터와 등산로를 개설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 특히 이삼용씨는 1993년부터 산사태가 난 계곡 주변에 등산로 정비와 함께 통일을 염원하며 돌탑을 쌓기 시작, 지금까지 크고 작은 1000여 기의 돌탑군을 조성했다. 무학산, 의림사 계곡, 저도연륙교 등과 함께 마산의 9경(景) 중 하나에 속하는 장관으로 매년 봄 이곳에서 돌탑축제행사도 열린다. 지난 5월에는 수십개가 무너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는 돌탑을 등산객이 발견해 신고하면서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도시로부터 절연된 호수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88번지. 이것이 오늘 걸어볼 길의 주소지다. 어느 평범한 사람의 집주소같이 소박한 이름이지만, 사실 이 일대는 도시의 흐름으로부터 절연된 듯 한적하고 고요한 호반 풍경 일색이다. 물 위로 부는 적막한 바람이나 잎이 다 떨어진 은회색 나무 틈에 몸을 숨기면 누구도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 같이 은밀하고 내밀한 곳. 도시를 떠나고플 때 봉암수원지를 찾으라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전기회로판같이 복잡하고 빡빡한 도심의 일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온갖 소음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 불가피한 일들이 이곳에선 화톳불이 사그라들 듯 서서히 잦아들기 때문이다.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 싼 팔용산이, 호수에 가라앉은 낙엽이 쌓인 밑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귓전에서 저음으로 회오리치는 산바람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 준다.
수원지 입구를 찾아가자
수원지 제방이 보이는 곳까지 1.4㎞ 거리의 진입로를 걸어야 한다. 오목하게 파 놓은 굴 속에 들어앉은 비밀의 화원을 찾아가려면 좁고 긴 통로를 지나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산 아래 입구서부터 양편에 우뚝 솟은 팔용산이 진입로를 굽어보고, 왼쪽으로는 수원지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물이 제법 널따란 계곡을 만들었다. 30대 초중반의 성인이 된 이들이 가재나 민물고기를 잡으러 열두어 살 먹었던 날 친구들과 한 번쯤은 와 본 기억이 있는 곳일 것이다. 계곡 초입은 안쪽에 큰 수원지가 있다고는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가 없는 형상이다. 그저 328m짜리 야산인 팔용산을 오르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 중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팔용산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남쪽으로 입구는 좁고 속은 넓고 긴 계곡이 있는 지형을 가진 덕에 계곡 상류에 댐을 막아 수원지를 만들 수 있었다. 도회지의 변두리답게 푸른색 지붕을 얹은 제조 공장들도 몇 보인다. 고개를 들면 여덟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녹아 있는 산답게 강건하고 기운찬 팔용산 줄기가 거칠게 뻗어 있다. 제방 쪽으로 가까이 가면 양옆으로 거대한 바위 절벽이 녹청색이 감도는 얼굴을 서서히 드러내는데, 그 일대가 1966년부터 1979년까지 해병대 유격 훈련을 한 벽암지 교육대라고 한다. 암벽 높이가 10m 안팎이고 폭이 40m가량 된다. 지금도 줄타기 훈련장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해병대 전우회에서 세운 푯말이 그 사실을 자랑스레 알려준다.
두 갈래 길
이 적요한 길 위에서는 계절을 넘나들며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바로 스산한 겨울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잎맥을 고이 간직한 채 몸을 잔뜩 웅크려 봄날을 기다리는 맥문동, 아이비, 털머위, 팔손이 같은 작고 가녀린 식물들이다. 연분홍빛으로 피어난 동백꽃과 한껏 핏빛을 토해내고 있는 단풍나무도 아름답다. 제방에 다다르기 300m 전에는 둘레길과 계단길,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계단길은 편편한 자갈 위를 걷다가 조금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제방에 도달하는 코스이고, 둘레길은 산 등성이에 군집한 침엽수들과 면한, 걷기 좋은 등산로이다. 수원지로 올라갈 때는 계단길을, 내려올 때는 둘레길을 택해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자마자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듯 거대한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계단길이, 겨드랑이에 살짝 배어 나온 땀을 골바람에 찬찬히 식히기에는 둘레길이 알맞다.
봉암수원지의 내력
사실 봉암수원지는 도심에 물을 공급하는 기능이 정지된 수원지다. 그러므로 수원지가 아닌 저수지가 적절한 명칭이겠지만 봉암저수지는 여전히 명실상부한 마산의 터줏대감 수원지로 여겨진다. 지난 2005년에는 등록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원지는 일제 강점기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30년 건립된 후 증축을 거듭하며 적지 않은 세월을 마산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석재를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가공해 돌과 돌 사이에 모르타르를 채워 댐을 쌓았으며, 석재를 경사지게 쌓아 올라가다가 상부 2/3 정도 지점에서 수직으로 쌓아 구조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지역 대다수의 시민들이 우물물을 길어 먹던 상황에서 건립된 수원지이며, 당시의 댐 축조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길이 630m, 폭 100m 정도로 그 규모도 상당히 큰 축에 들지만, 사실 봉암수원지는 마산시의 발전과 그 궤를 달리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1928년 착공 당시에는 인구 9만명을 위한 저수용량 40t 규모로 준공됐다. 하지만 그 후 급격히 늘어난 마산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1953년 제방을 더 높이 쌓아 60t으로 저수용량을 늘렸다. 그럼에도 1970년을 지나오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마산시민들의 물 사용량을 따라갈 수 없어 마산권 지방상수도 확장사업이 완료된 1984년 12월 31일을 기해 완전히 폐쇄됐다. ☞13면에 계속됩니다
물가를 걸어보면
약 1.5㎞ 정도의 수원지를 빙 둘러서 길이 끊어진 곳과 질척한 뻘 같은 곳에는 데크로드가 마련돼 있다. 설해교, 월명교, 운호교, 수만교 4개의 다리와 봉수정이라는 정자형태의 목조건물도 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이 물에 잠겨 고스란히 박제가 된 듯 투명하고 청아한 빛으로 비치고, 갈수기임에도 방금 발에 닿을 듯 물이 차올라 찰박찰박 소리를 낸다. 물가엔 갈대와 오리나무들이 즐비해있고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과 기원을 품고 있을 여러 개의 돌탑도 조성돼 있다. 비스듬히 누워 손을 머리 위로 올리듯 가지를 뻗은 나무들, 물 속에 허리를 담근 채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워올린 나무들. 이 나무들이 석양에 비스듬히 걸쳐 수면에 반사된 풍광은 태고의 세월을 간직한 늪 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수원지를 도는 동안 도시의 소음에 길들여진 귀를 닫고 호수 주변 소리에 민감하게 감응하는 마음의 귀를 열어 보자. 솨솨솨솨, 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물결 위에 흩어지는 소리,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 갈대와 갈대 사이의 빈 공간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적요한 호수를 수놓는다. 과연 이런 소리를 이 복잡한 도심 가운데서 들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육중한 기계가 돌아가고 수백 대의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수천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싸우는 도심이 정말 몇 발짝 바깥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지 말이다.
수원지만 다녀가기가 아쉽다면
봉암수원지가 생겨날 때만 해도 팔용산은 마산 변두리에 있는 야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 마산과 구 창원 시가지에 빙빙 둘러 포위된, 마치 서울 남산과 비슷한 도심 속 친근한 산이 되었다. 서남쪽은 마산자유무역지역이고 서북쪽은 남해고속도로와 인접하고 있으며, 농청놀이와 두레농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시가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봉암수원지가 깊고 맑은 느낌을 주는 것도 팔용산이 사방을 둘러싸 도시와 공단의 소음을 차단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멈춘 듯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수원지만 다녀가기가 아쉽다면 창원공단과 마산자유무역지역, 시원하게 뻗은 남해고속도로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상사바위나 팔용산 정상을 다녀와도 좋다. 그리 높지 않은 데다 겨울날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약간의 땀이 배어 나오는 운동량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지 제방에서 상사바위까지, 정상까지가 각각 1㎞ 정도다. 상사바위는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직벽으로 암벽등반의 적지로 알려져 있다. 이맘때 해가 질 무렵인 네다섯 시에 상사바위에 오르면 침엽수가 울창한 산비탈에 노을이 내려앉아 붉게 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수원지에서 정상을 올랐다면 서쪽에 위치한 양덕동으로 길을 잡아 돌탑군을 구경하며 내려가도 좋고, 불암사를 거쳐 창신고등학교 쪽으로 길을 잡아도 좋다. 아니면 수원지 운호교를 기점으로 갈라지는 약수터를 지나 구암동이나 창신대학교로 내려가는 등산로나 1.2㎞가량의 산길을 올라 탑골이나 창신대학 쪽으로 길을 잡아도 좋다.
△팔용산 돌탑군 = 팔용산 서쪽 양덕동에 거주하는 이삼용씨와 2명의 주민들이 1987년부터 먼등골이라 불리는 팔용산 산자락 아래 일대에 약수터와 등산로를 개설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 특히 이삼용씨는 1993년부터 산사태가 난 계곡 주변에 등산로 정비와 함께 통일을 염원하며 돌탑을 쌓기 시작, 지금까지 크고 작은 1000여 기의 돌탑군을 조성했다. 무학산, 의림사 계곡, 저도연륙교 등과 함께 마산의 9경(景) 중 하나에 속하는 장관으로 매년 봄 이곳에서 돌탑축제행사도 열린다. 지난 5월에는 수십개가 무너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흔적이 남아있는 돌탑을 등산객이 발견해 신고하면서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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