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싸워?
"For What are you fighting?" in 4 acts
유치진 作
때- 1919년 을미년 독립 만세 사건이 터지기 몇 해전. 어느 해 여름.
곳- 도화동이라고 일컫는 어떤 농촌.
장면.
제 1 막. 한길에 면한 최와 정의 집. 어느 날 오후.
제 2 막. 전막과 같은 무대. 같은 날 저녁.
제 3 막. 원두막이 있는 정의 밭. 수일 후 아침나절.
제 4 막. 제 1 막과 같은 무대. 같은 날 저녁
인물
최세영(육십 세 쯤 되는 홀애비 농부. 별명 올뱀이)
동욱(그의 외아들. 이십 세 되는 농촌 청년)
정태근(최세영과 동년배. 역시 소작농. 별명 똥돼지)
남씨(정의 아내.)
유희(정의 외딸. 묘령의 시골 처녀)
박주사(이름이 명돌이. 일본군수?대 통역으로 치부한 지주)
기손(그의 아들. 서울 어느 고등 보통 학교 중퇴생인 십 육 세 소년. 하모니카와 시와 유희를 사랑함)
양선달(군내의 최고령자)
돌밭집 할멈(육십 여세의 입이 건 노인)
쇠돌 아범(극빈한 농군)
명이(동욱의 절친한 친구로써 동리 야학 선생. 절름발이)
간난이(유희의 동무)
숙이(유희의 동무)
동리 아이 A B.
하인(박주사 집)
이웃 사람 A B.
일순사.
기타 동리 사람들 아이들 장총 든 일순사들 다수.
[막] 1막
(여름. 저녁나절. 울타리를 살피로 나란히 사는 두 농가. 좌측에는 최세영의 집. 그리고 우측에는 정태근의 집. 이 두 집 사이에 늙은 대추나무 한 그루 섰다. 대추가 진두물처럼 열렸다. 이 두 집의 지붕에는 박 넝쿨이 덮었고 해바라기, 맨드라미, 복숭아, 분꽃, 나팔꽃 등이 울밑에 피었다. 특히 정의 집에 화초가 많음은 그의 딸 유희의 정성인 듯 싶다. 이 두 집 앞에는 무대를 횡단하는 한길. 집 뒤에는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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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열리면 최의 집은 비었고 정의 집에는 유희 어머니 남씨. 마당에서 키질을 하고 있다. 멀리서 동리 아이들의 창가소리 들린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할 일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가?
-이 노랫소리 차츰 가까워 오더니, 동리 아이들을 데리고 명이 언덕길에서 돌아 나온다. 이때에 아이A, 그 동무 아이B와 같이 대추나무에서 터져 나오는 매미 소리를 듣고, 전신을 ?장시켜 대추나무 아래로 접근한다.)
[남씨] (키질을 하다 말고 벽력같은 소리로) 이놈의 새끼! 왜 남의 집 대추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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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A] 이크! (하고 깜짝 놀랬다가 오해받은 게 억울하여 싸움이나 할 듯이) 시- 대추를 따긴 누가 따? 이거요. 이거! (매미채를 뵌다.)
[남씨] (열 적은 듯 웃음을 지으며) 음 난 또 우리 집 대추를 딴다구.
[아이A, B] (성이 나서) 괜히 매미만 한 마리 놓쳤네.
(다른 아이들과 명이 고소하다는 듯이 웃는다 유희 어머니 키질을 다해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이 A B다른 아이들과 같이 명이를 따르고) 장. 멀리서 그들의 창가 소리. 올뱀이같이 생긴 최세영 우편에서 등장. 들에서 일하다가 오는 모양이다. 마당에 들어서려다가 울타리를 보고 주춤한다.)
[최] 아니, 이런 놈의 인사가 어딧담메. 내 일나간 새 또 이걸 내막아 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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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그래. 참 눈 없으믄 코 떼어먹을 세상이군! (허리춤에서 낫을 빼어 울타리를 헐터니 대추나무를 자기 집 안으로 들어서게 내어막아 놓고) 어느 놈이고 이걸 건디렸단 봐라. 다리 망댕이를 분질러 놓을 테니까! (들어보라는 듯이 정의 집을 향해 이렇게 악을 쓰고는 자기 집 헛간으로 들어간다)
(유희 좌편에서 나타난다. 바구니를 이고-)
[유희] 어머니!
[남씨] (부엌에서 나오며) 벌써 대 맸니 밭?
[유희] 암. 참 아버진 모깃불 놓을 풀을 좀 비어 가지고 있다 오신 댔어. (고추, 호박, 가지 등을 바구니에서 내놓으며) 이것 밭에서 따 왔다우. 저녁 반찬야. 그리고 이게 하나 남았겠지. 아주 단 냄새가 물신해. (참외를 남씨의 코에다가 갖다 대준다)
[남씨] (맡아 보구) 아이구 단내야. 정말 아주 잘 익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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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레한 쇠돌아범 우편에서 등장. 어깨가 축 쳐졌다.)
[쇠돌아범] 얘. 너 벌서 들일을 걷어 치었니?
[유희] 야학에 갈려고요.
(이때 바람결에 창가 소리 분명히 들린다.)
[쇠돌아범] 음. 저걸 배우러?
[유희] 예
[쇠돌아범] (따라 부르며) 이 풍진 세상을---
[유희] 호 호 호--- 그건 노랫가락 안요?
[쇠돌아범] 글세. 가만있어. (하고 목을 가다듬어 다시 부른다. 그러나 역시 틀린다.)
[남씨] 호 호 호--- 쇠돌 아버지 그만 두우! 그건 양산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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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돌아범] 그렇게 안되? (다시 기를 쓰고 계속한다. 그러나 죽도 밥도 아니다)
[유희, 남씨] (손을 내저으며) 호호호---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아파! (아랫배를 움켜쥐고 웃는다.)
(이때 일순사 언덕길에 나타난다)
[유희] (따라 웃다가 별안간) 쉬!
[쇠돌아범] 응?
[유희] 저것! (하고 언덕 위로 지나가는 일순사를 가리킨다) .
[쇠돌아범] 정말 저 귀신이 뭣 하러?
[남씨] 얘, 유희야 숨어라! 얼른! (달을 방안에 밀어 넣는다)
[일순사] (한길로 나온다) 다들 잘 있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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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바로 치어다보지 못하고 허리만 굽실 어색한 인사다)
[일순사] (인사를 받으며) 음. 이 나라 아주 공고시(좋은) 나라 되었는데. 이 풍진 세상이 뭐야? 누가 그런 노래 불러 했소?
[일동] (죽은 듯이 섰다)
[일순사] 한번만 더 불러 하문 그때는 콩바브(콩밥) --- 알아 있소까?
[일동]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야.
[일순사] 오늘으 나는 호구조사 나왔소. (최의 집을 기웃거리며) 이거 당신 집이오? (하고 카지고온 대장을 내본다)
[최] 예.
[일순사] 식구논?
[최] 아들하고 단 둘입니다.
[일순사] 아들으 어디 갔소?
[남씨] 일하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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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사] 음. (정의 집으로 건너가서) 이것은?
[남씨] 우리집에유? (방문을 막아선다)
[일순사] 저리 비켜.
[남씨] (하는 수 없이 방문 앞에서 비켜선다)
[일순사] 방문으 열어.
[남씨] (시키는 대로한다)
[일순사]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아이구. 공고시 계집으 아이! 이리 나와 했소.
[유희] (무서워 떨며 나온다)
[일순사] 참마루 공고시! 공고시!
[남씨] (울듯이) 안돼요! 안돼! (유희를 얼른 낚아 자기 치마 뒤에 감춘다.)
[일순사]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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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대장을 들여다보고 연필로 표시하면서 좌편으로 퇴장. 긴장하였던 일동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깊은 한숨을 쉰다.)
[쇠돌아범] (순경의 나가는 쪽을 바라보며) 어쩌자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 잡듯이 챙길까?
[유희] 우리를 숨도 못 쉬게 잔득 붙들어 매둘려구 그러지 뭐유.
[남씨] 에이 악착스런 것들!
(박주사 등장)
[박주사] 무슨 꿍꿍이 수작들인가?
[일동] 아이구. 지줏님. 어서 오십슈.
[박주사] 일인보고 욕한 건 아니겠지?
[일동] 천만에유. 무슨 일로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박주사] 세영이 좀 보러 왔는데-
[최] (나서며) 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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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사] 자네네 모짜리가 그게 뭐야? 그따위로 농사 질려거든 논 내놔. 붙일 사람은 얼마라도 있어---
[최] 이런 주릴할! 또 어떤 놈이 우리 모짜리 물꼬를 돌려 갔나 보군! (급히 삽을 찾아 들고 퇴장)
[박주사] (최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원 저런 천치!
[쇠돌아범 기타] 또 뵙지우 지주님. (뿔뿔히 헤진다)
[박주사] 음.
(아까부터 언덕길에서 하모니카 소리 나더니 기손이 하모니카를 신이 나게 불며 등장.)
[박주사] (하모니카에 열중한 기손을 치어다보고 섰다가) 집에 들어 백혀 있지 않구 대낮에 왜 그놈의 씽씽이는 불구 다녀? 구렝이 나오게-
[기손] 아버지 절 서울로 도로 보내 주세요.
[박주사] 싫다고 학굘 그만 둔 녀석이 또 서울 올라가서 뭘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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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학교 그만 두었으면 제가 공부를 아주 집어치운 줄 아세요?
[박주사] 학교두 안 가구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냐?
[기손] 나는 시인이 될 테예요.
[박주사] 시인?
[기손] 시인은 학교 안 가두 돼요. 이 잡지책에 그렇게 썼던테 뭐. (하며 끼고 있던 잡지책을 뵌다.)
[박주사] 개살구 지레 터지구 이두 안난 개 뼉다귀 추념한다더니. 그짝이구나. 이놈아 학교 안 가두 괜찮을량이문 제집 두구 서울 가서 생 밥 사 먹어 가며 고생할게 뭐냐?
[기손]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 안 하셨어요? 망아지 새낀 낳거든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의 새낀--- 서 서울로 보내랬다구.
[박주사] (혀를 차며) 내게 깊은 공부가 없기에 이 자식놈이나 좀 가르칠가 했더러니 이놈의 새끼 천생 틀렸다. 사람 구실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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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뒤통수를 긁으며 슬슬 집 뒤로 피한다)
[박주사] 헤이참-. (퇴장)
[기손] (언덕에서 유희의 집을 내려다보고) 유희 어머니-.
[남씨] (삼 삼던 손을 멈추고 언덕을 치어다 보며) 에그 새 기와집 학생 데련님 이시군.
[기손] 삼 삼으시우? (유희의 집으로 내려온다.)
[남씨] 서울 있다가 이런 두메에 갇혀서 얼마나 심심헐가?
[기손] 그래서 애꿎은 이거나 불죠. (하며 하모니카를 한 곡조 불어 뵌다)
[남씨] 하 하 하---
[기손] 유희야 이것 뵈주랴?
[유희] 뭔데?
[기손] 이거! (끼고 온 잡지책 틈에서 원고를 내 뵌다.)
[유희] 내가 보문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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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이게 내가 지은 시야. (하며 자랑스럽게 낭독해 들린다.) 발구락의 티눈은 보이기나 하지만 이 가슴의 사랑은 아프기만 해요 아! 티눈! 가슴의 티눈! 누르면 아프기만한 내 가슴의 티눈! 어때?
[유희] 그런게 시야?
[기손] 잘 지었지?
[남씨] 나는 시 시 허기에 무슨 먹는 건가 했더러니-
[기손] 하하하--- 그럼 시라니까 시루떡인줄 아셨구료? (일동 같이 웃는다)
[유희] 그걸 지어서 뭘 해?
[기손] 지어서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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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읽으문 뭘 해?
[기손] 읽으문 어떻게 된다더라? (고개를 갸웃등해 뵈며) --- 가만 있자.
[유희] 호호호--- 그것두 모르구 읽어?
[기손] 넌 이 세상엔 먹는 거나 입는 게 아니문 아무짝에도 못쓰는 줄 알지? 우리 아버지처럼-. 알구 보문 그렇잖은 거야. 인생이란 건-
[유희] 그럼 어떤 거야?
[기손] 인생이란 건 저- (또 맥혔다. 생각해 내려고 애쓴다) 저 - 뭐라더라? 책엔 다 씌였는데--- 가만있어 나 책가지고 오께. 집에 가서.
[남씨] 그까짓것 알문 뭘 해? 그만 두구 이거나 자시지. 우리 집 유희가 부친 호박전여야.
[기손] 유희가요? (싱그레 웃으며 유희와 호박전여를 비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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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괜히 놀려.
[기손] 히히히---
(유희 어머니도 따라 웃는다. 이때에 눈꼽이 꼬제제 끼인 돌밭집 할멈(육십 여세 종종걸음으로 등장)
[돌밭집] 유희네 체 좀 빌려다구 에그 새기와집 데련님두 그런 것 자시나?
[기손] (자랑스럽게) 유희가 부친거래.
[돌밭집] 예. 유희가요? (하며 뜻이 있는 듯이 유희와 기손이를 견주어 보고는 웃는다)
[유희] (돌밭집의 시선을 피하며) 아이, 보기 싫여!
[남씨] 돌밭집 할머니 이리 오오. 체 빌려주께. (돌밭집 할멈을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기손] (유희에게 가까이 가서) 유희야 저어--- 너 언제 산에 도라지 캐러 가니? 나두 같이 따라 갈래. (유희 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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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답을 안해? 그럼 안 데리구 갈 테야 날?
(동욱이 지게를 지고 들어와서 자기 집 마당에다 짐을 부린다.)
[유희] (짐 부리는 소리를 듣고) 누구야?
[동욱] (유희의 소린 줄을 알고 빙그레 웃으며) 부우꾹! 부우꾹!
[유희] (만면에 희색이 터지며) 응. 동욱이? (어머니의 눈을 피하며 동욱의 집으로 가서) 어마나. 어디서 이렇게 많이 비었어? 참 그악스럽기도 해라.
[동욱] 누구. 찾아온 사람 없었어?
[유희]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응응. 허지만 우리 어머니 몰래 너의 집 봐 주노라고 난 퍽 애썼단다. 얘.
[동욱] 너 공치사 허는구나. 자아.
[유희] (받아보고) 발꽈리?
[동욱] 집 봐준 값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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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한 알 깨물어 보며) 아이 달아!
[기손] (행길로 나와 두 사람의 하는 양을 바라보고 섰다가 이때에 약이 올라서) 행!
[동욱] 더 맛있는 것 주랴?
[유희] 뭔데?
[동욱] 눈감고 입 벌리문!
[유희] 괜히.
[동욱] 정말 아주 맛있는 거야. 자. 얼른!
[유희] 그럼 꼭 줘야 돼.
[동욱] 암!
[유희] (입을 벌리고 눈을 감는다. 동욱 얼른 그의 입에다가 뭔지 넣어 준다. 깨문다. 질색을 하며) 아이 숭해! 퇴! 퇴! (하고 배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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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화가 나서) 저런!
[유희] 아이 빌어먹을! 아이 빌어먹을! (주먹을 둘러메고 동욱을 쫓는다. 동욱은 고수한 듯이 크게 웃으며 피해 달아난다.)
[기손] (약이 올라서 유희의 집을 향하여 악을 쓴다.) 유희 어머니!
[남씨] (부엌에서 돌밭집 할멈과 체를 가지고 나오다가) 응?
[동욱] 이크! (유희와 같이 절구통 뒤에 숨는다)
[기손] 저것 봐요.
[남씨] (집안을 둘러보더니) 얘가 참 어디 갔누? (부른다) 유희야!
[유희] (시치미를 떼며) 응. (하고 상반신을 나타낸다)
[남씨] (날카롭게) 요년 왜 그 집에 가서 그래?
[유희] (기손 더러) 인제 두구 봐!
[기손] 헹. 누가 무서워할 줄 알구!
[동욱] 에키 요 어린 녀석! (지게 짝대기를 들고 때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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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용 용 죽겠지! (하고 도망)
[남씨] (자기 집으로 오는 딸을 보고) 이년야. 그 집에서 뭘 했지? (대답이 없으니까 더욱 언성을 높여) 뭘 했느냐 말야?
[유희] (퉁명스럽게) 도 동욱이가 떨분 도톨이를 막 멕였다우.
[남씨] 듣기 싫다! 눈 깜짝할 새 없이 왜 저놈의 집엔 가서 너더럭 장단이냐? 애비 에미가 그렇게 일러두-
[동욱] (울타리 사이로 엿보고 있다가 밭에서 따온 수박을 한 덩어리 안고 유희네 집으로 가서) 아주머니 이거 우리 집 밭에서 따온거라우. 맛 좀 보세유.
[남씨] 누굴 약을 올리는 거냐? (하고 동욱을 쏘아본다.)
[동욱] (유희 어머니의 매서운 시선을 피할 길이 없어 어쩔 줄 모른다) 아이. 아. 아. 주머니.
[돌밭집] (수박을 동욱에게서 받으며) 잘 익었는데 받아먹지 뭘 그래? (유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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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다 놓는다)
[유희] 할머니 손대지 말우. 그 안에 뭣이 들었는지 누가 알우?
[동욱] 유희한테 인제 신용 단단히 잃었는걸.
[유희] 시! (어머니의 눈을 피해 입을 삐쭉해 보인다)
[남씨] 이것 치어라! 보기 싫다!
[돌밭집] 그럼 나나 갖다 먹을 가? (수박을 얼른 안는다)
[남씨] 앗다! 그만두오 누군 입이 없답니까? (수박을 빼앗는다)
[돌밭집] 남 주긴 아깝고. 제 먹긴 거북하고- 호호호---
[동욱] (따라 웃는다) 하하하!
(명이 동욱의 집 앞에 나타난다 책을 몇권 안었다.)
[명이] 동욱아.
[동욱] 명이냐?
[명이] 벌써 일 다 마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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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유희 어머니에게) 아주머니. 갑니다. (자기 집으로 물러 나온다)
[명이] 아니. 놈들이 무슨 행패를 부리는 줄도 모르고 그 집에서 노닥거리기만 하문 제일이야?
[동욱] 닷다가 무슨 소린가?
[명이] 큰일 났다.
[동욱] 싱거운 자식! 대명 천지 밝은 날에 큰일은 무슨 큰일야?
[명이] 막 뒤져 갔어. 금방 일 순사 한 녀석이 야학에 와서 우리가 가르키는 교재며 내가 읽던 책 할 것 없이 다 싸갖이고 갔다니까. 그리고 우리한테 배우러 다니는 아이들의 명단이며 어디서 돈이 나서 이 야학을 경영하느냐는 둥 별에 별 것을 파고 물어.
[동욱] 방 하나 얻어 가지고 우리끼리 하는 야학인데 돈은 무슨 돈야?
[명이] 글세 말야.
[동욱] 아니.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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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날더러 곧 주재소로 나오래.
[동욱] 널?
[명이] 이 책을 좀 맡아 두어. (가지고 온 책들을 짚뎀이 밑에 숨킨다)
[동욱] 널 가둬 두자는 수작은 아니겠지?
[명이] 모르지. 하여튼 상전의 명령이니까--- (가려 한다)
[동욱] 나도 같이 가볼래.
[명이] 안야. 야학은 내 혼자 하는 양으로 말해 두었다. 자네까지 문틈에 손을 들어 밀건 없어. 뜻하지 아니한 일이 생기면 네가 남아 있어 뒷일을 봐야 할게 안야?
[동욱] (좀 생각더니) 그건 그래. 하지만 주재소 문안으로 들어가는걸 먼발체로라도 내가 봐야 해. 돌밭집 할머니!
[돌밭집] (유희 어머니하고 수박을 먹다가) 왜 그래.
[동욱] 우리 아버지 옷 어떻게 됐수? 좀 지어 달라구 맥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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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참 다 됐단다
[동욱] 얼른 갖다 두슈.
[돌밭집] 음. 그래.
(동욱과 명이 급히 퇴장)
[돌밭집] 옆집 최첨지의 고 채신없는 올뱀이 눈깔에 어떻게 저런 자식이 생겼는지. 씩씩하고 늠늠한게 사내자식이 됐어. (유희더러) 얘야 너 동욱이한테 시집 안 갈래?
[유희] 그게 야학에 드나든다구 얼마나 뽐내는데-
[돌밭집] 그럼 넌 싫지는 않은 거구나?
[유희] 할머니두 원!
[돌밭집] 호호호--- 그게 뭣이 부끄러우냐?
[남씨] 주책없는 소리 작작 허우. 시집을 못 보내 처녀 귀신이 된대두 내 딸을 저놈의 집에는 안 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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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그만 두게 인력으로 못하는 건 처녀 총각의 정분이라데. 해해해--- 이거 곧 갖다 주께.
[남씨] 예.
(돌밭집 할멈. 체를 들고 퇴장. 정태근 들일을 마치고 등장. 그의 얼굴은 도야지의 쌍판 그대로다. 들어오다가 언덕에서 "후어 후어"하고 닭을 쫓는다.
[남씨] 오늘은 일을 꽤 빨리 마쳤구려.
[정] (지고 온 풀을 부리며) 유희가 거들어 주어서 빨리 해치었지. 유희야 저 닭우 새끼 좀 쫓아라. 가을 김장 부쳐 놓은 것 다 파먹겠다.
[유희] 예. (뒷길에서 "후어"하고 유희의 닭 쫓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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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금년은 시절이 아주 좋은걸 어떻게 시렴을 잘하는지 수수 이삭 조 이삭이 벌써 한호큼식야. 해마다 이렇게만 되주셨으문 좋으련만- (지고 온 풀을 헷간에 부리고 나오다가 울타리를 보더니) 아니 저 울타리는 언제 저렇게 됐누? (찍어 놓은 눈으로 쏘는 듯이 그의 아내를 본다.)
[남씨] 참! (뒤꼍에서 나타나는 그의 딸을 본다)
[정] (화가 나서) 아니 집에 있으면서 뭣들 했누? 울타리 돌려놓은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남씨] 정녕코 내가 아까 돌려 놨었는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정] 인제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해두 좋으니까 이 울타리나 똑똑히 지키고들 있어.
[남씨] 예. (하며 울타리를 돌려 막는다)
[정] 유희야. 벼루 가지고 온 이놈의 세상은 코 없으면 눈 빼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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눔의 세상이니까 이런걸 붙여 놔야지. (종이에다 「소유자 정태근」이라고 써서 대추나무에 붙인다.)
(이때. 돌밭집 할멈 옷을 싸가지고 최의 집으로 등장.)
[돌밭집] (둘러보고) 이걸 어디다 두나? 옳지. (가지고 온 옷을 방문 안에 넣고 나가려다가 대추나무를 우르러 보며) 에그. 수태 열렸구나. (대추를 하나 따먹으려 한다)
[정] 누구야?
[돌밭집] 나유.
[정] 나라니?
[돌밭집] 돌밭집 할멈유.
[정] 왜. 남의 대추를 제 맘대루 따는 거야?
[돌밭집] 남의 핼 댁에서 아는 체 할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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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아는 체 한다니?
[돌밭집] 난 이 동욱이넷건 줄 아는데.
[정] 이런 도무지 원! 왜 그눔의 집 해란 말야?
[돌밭집] 내가 알기만 해두 작년에는 이 동욱이네 집에서 따지 않었나베?
[정] 그럼 재작년엔?
[돌밭집] 댁에서 땄지.
[정] 그러니까-
[돌밭집] (휙 소꾸쳐 대추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으며) 앗다. 울 너머로 넘어온 것 하나쯤 따먹었다구 포도청 신세 질가?
[정] 울너머로 넘어간 거문 그래 맘대루 해두 좋단 말야? 그럼 할멈 이 팔은 누구의 팔인가? (하며 울 너머로 자기 팔을 내 뻗는다) 이게 누 팔이냐 말야?!
[돌밭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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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할멈의 팔인가?
[돌밭집] 천만에! 분결같은 내 팔은 예 있는데 왜 이 숭악헌게 내해란 말야? 유희 아버지 팔이지.
[정] 그것 봐. 팔은 울 너머로 넘어가두 팔 임자는 여기 있거든. 인제 알았지? 아무리 밖으로 뻗힌거라두 물건이란 제 임자가 각각 있는 거야.
[돌밭집] 제-기. 데눔의 인심보다 더 숭악하군. 저눔의 늙은이 허구 인제 들에서 만나두 누가 아는 체나 해주나 봐라. 에이 테! (더럽다는 듯이 침을 배앝고 퇴장)
[정] 제까짓게 아는 체 안하문 누가 무서워 할라구. (대추나무를 만져 보며) 참 잘 열렸다. 낭구나 사람이나 늙으문 힘을 못쓰는 법이지만 이 낭구는 무슨 놈의 조환지 늙어 갈수록 힘을 쓴단 말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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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논일을 마치고 등장. 대추나무에다가 정이 써 붙여 놓은 쪽지를 눈여겨본다.)
[최] (읽는다) 소유자 정--- (놀랜 올뱀이 눈이 더 커진다.) 아니. 이런 눔의 경우가 어딨남--- (달려들어 쪽지를 떼어 팡강쳐 버리고는 방에서 벼루와 종이를 가지고 나오더니 「소유자 최세영」이라고 주먹 같은 글자를 재빠르게 쓴다.) (정은 자기의 쪽지를 도로 주어다가 붙이려 한다. 최 대든다. 정은 최를 보기 좋게 떠밀어낸다.)
[최] 안 비킬 테냐?
[정] 내핼 내가 막아섰는데 뭣 때문에 내가 비킨단 말이냐!
[최] 이런 멀쩡한! 왜 이게 네눔의 해란 말이냐? 이건 우리해야!
[정] 아니야. 내해야.
[최] 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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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내해야.
[남씨] 이렇게 악들을 쓰다간 필경 큰 시비 나겠네. 유희야 이일을 어떻게 하니?
[기손] (조금 전에 등장하여 바라보고 있다가) 일순사를 부르지요.
[정부?] 그래. 참.
[유희] 아이 창피스럽게 왜놈은 왜 내세워?
[기손] 엥이. 가만있어. (하며 빨리 퇴장)
[최] 히히히--- 인제 숭금이 오면 흑백이 들어나겠군 그래.
[정] 암. 그래서 여태까지 네놈이 몇 해를 두고 따먹은 대추를 모조리 받아내고야 말걸.
[최] 이놈의 똥돼지야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정] 주전없는 소리 말어. 이놈의 올뱀아!
[쇠돌아범] (등장하며) 이 웬 일이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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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에그 쇠돌아버지 마침 잘 오셨수. 밤낮 이눔의 대추나물래 이런다우.
[쇠돌아범] 원--- 한 이웃에서 무슨 꼴이람?
[정]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안다구 인제 숭금나우리가 올 테니까 법에다 걸어보문 알 일야.
[쇠돌아범] 아니. 일 순사를 부르셨수?
[최] 그렇다누.
[정] 흥. 겁이 나는 모양이구나. 똥을 쌀여석!
(주재소 일 순사를 데리고 기손이 등장. 구경꾼이 따른다)
[최와 정] (앞을 다투어) 나으리 재판을 좀 해주십시오. 이 대추나무가 이 집 햅니까? 저 집 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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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사] (대추나무와 두 집을 한참 견주워 보더니 결국) 모르겠는걸---
[정] 원, 나으리가 모른대서야 되겠어유? 애초에는 우리 집 경계가 이만큼 이 대추나무 바깥이었어유.
[최] 천만에유. 정말 경계는 이렇게 됐지우. 이 대추나무 바깥에 그러니까 여깁니다 그려. 옛날 여기에 뽕나무가 한 그루 섰었는데 그게 바로 경계였더랍니다. 허니까. 이 대추나무는 우리해가 분명합쥬.
[정] 아닙니다. 우리 해가 분명해유.
[최] 길을 막고 물어 보슈. 이 동네에서 어느 집을 대추나무집이라나-
[정] 틀림없이 우리 집을 대추나무 집이라쥬.
[최] 천만에유. 옛날부터 우리 집을 대추나무집이라고 해유.
[정] 나우리. (최를 가리키며) 이자가 얼마나 고집쟁인지 여지껏 이 상투 안 깎은걸 보슈. 이만하면 알쪼가 아뉴?
[최] 내 상투가 이 시비에 무슨 상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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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사] 한 이웃에서 요까짓 대추나무 한다치 가지고 싸울게 뭐 있소까?
[최] 요까짓 대추나무라뉴? 요즘. 대추 시세가 어떤 줄 알구 그런 말씀을 함부루---
[일순사] 그럼. 이 대추나무 한복판을 경계로 삼고 두 집에서 대추를 반씩 따두룩 해. 가지가 이쪽으로 넘어온 것은 이 집에서 그리고 저쪽으로 넘어간 것은 저 집에서- 그러문 공평하고 공고시 아니오?
[정] 공평은 무슨 공평유? 내핼 반이나 남한테 빼앗기는 게 그게 공평유?
[최] 헹. 그건 바로 내가 할 말야. 이 대추나무를 경계로 삼는다문 한 평(坪) 각수나 내 지단을 잃게 돼.
[정] 나으리 안됩니다. 여북 못난 눔이 제조상이 물러준 땅을 앓는단 말유?
[최] 누가 할 소리야! 한 뼘두 잃구두 난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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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사] 에이. 바사기(나쁘다는 뜻) -
[유희] 마침 저기에 양선달이.
(쇠돌아범은 동네에서 제일 고령자인 백 삼 세의 양선달을 부축해 가지고 등장. 양선달은 무엇을 씹는지 중얼거리는지 노상 아래턱을 털꺼거리며 체머리를 흔든다.)
[쇠돌아범] 보기가 하도 딱해서 이 노인장을 모시구 나왔어유. 여쭤보문 알까 해서-
[일순사] 그 참 공고시 생각이오. 나이 많기로 본군에서는 첫 손구락이 꼽아 하는 이 아니오.
[쇠돌아범] 그럼유.
[일순사] 이리 좀 가까이.
[쇠돌아범] (노인을 중앙에 대추나무 밑에 앉히며) 여기 앉이세유.
[일순사] (노인에게) 양선달으 알아 있소까? 이 나무가 누집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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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달]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다 빠진 잇몸을 내놓고 빙그레 웃어 뵌다.)
[쇠돌아범] 이게 누구 햅니까?
[양선달 ] --- 응?
[쇠돌아범] (귀에다 대고) 이 낭구가 어느 집 소윱니까?
[양선달] 금년 농사야 풍년이지.
[일순사] 허- 아주 절벽이군 그래. (쇠돌아범더러) 물어 봐 햅소.
[쇠돌아범] (귀에다 대고 또박또박) 이 대 추 나 무 말 이 여 유.
[양선달] 대추?
[여럿이] (좋아서) 음 인제 알아 들어셨군.
[양선달] 대추야. 약에 쓰구. 제사에 쓰구. 그리구. 페박에두 쓰구 인간 대사에 아니 쓰이는데는 없지.
[몇이] (딱해서) 에그. 참! (귀에다 대고 큰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이 대 추-나무- 경계- 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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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달] (그제서야) 경계?
[여럿이] 예. 이 경계가 어떻게 됐나유?
[양선달] 가만있자 이 경계가---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고) 이전엔 여기가 밭이었었더래.
[몇이] 이 낭구가 누구 소윱니까?
[양선달] 그건 모르겠는걸---
[여럿이] (기가 맥혀) 몰라유?
[양선달] 요즘 세상 인심이 하도 야박해지니까 이런걸 가지구 내해 네해 허구 싸우지만 이전에야 어디 그랬나? 동네에 배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밤나무가 많지만 모두 오가는 사람들이 제 맘대로 따먹구 살았지.
[여럿이] 에이 참!
[일순사] (쇠돌아범에게) 그만 데리구 갓소! (할 일없다는 듯이 최와 장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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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여보 이 두 집 중에 어느 집을 먼저 지었소?
[최] 내 선친이 그러시는데 한날 한시에 같이 지었대유.
[일순사] 그렇소?
[정] 예-
[최] 그러니까 제4대조 (대조) 되시는 어른이 이 집을 지으셨는데 이 대추나무는 바로 그때에 심으셨대유.
[일순사] 사대조가?
[정] 그까짓 사대조? 어림없다. 이건 바로 우리 팔대조께서 심으셨어. 그 어른이 어느 흉년든 해 엽전 여덟 닙을 주고 이 밭을 사셨는데 그때 이 밭머리에다가 이 나무를 심으셨대요. 나으리 내 말이 그짓말이문 벼락을 맞겠쇠다.
[일순사] 팔 대조면 이 백 한 오십 년쯤 되겠군.
[기손] 아니쥬. 삼 백 년도 더 되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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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처] 암 그렇쥬.
[일순사] (대추나무를 치어다 보며) 요까짓게 삼 백 년이나 됐을라구?
[정] 온 나으리두! 대추나무란 원체 비비 꾀서 잘 안 자라는 낭군 덥슈.
[일순사] 양선달으 집에도 대추나무가 있지? 그게 아마 이 낭구만하지?
[여럿이] 암 그렇죠. 이것만하죠.
[쇠돌아범] (양선달의 귀에다 대구 큰소리로) 몇 해나 됐어요? 댁의 대추나무 심은 지가-
[양선달] 그건 바로 내가 서당에 다니면서 하늘 천자 (천자) 배울 때 지금 저 안산에 묻혀 계신 내 맏형님이 심으셨어. 그때 난 참. 이만했군 그래. 히히히---
[일순사] 그러면 양선달이 지금 백세 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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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돌아범] (큰소리로) 거진 백년은 됐겠군유?
[양선달] 그렇지 백년은 됐지. 그러구보니까 나두 꽤 오래 살았군 그래. 히히히히히---
[일순사] (최를 가리키며) 이 집에선 사대조가 심었다니까 사대조면 백 이십 년. 그리구 양선달으 나무하구 거진 같으니까 사대조가 심었다는게 근사한 말이군 그래. (최더러) 여보 이건 당신의 물건이 분명해.
[최] (좋아서) 나으리 고맙습니다. (정 앞에서 땅을 치며) 이놈의 똥돼지야. 이것 봐라. 지성이면 감천이다.
[정] 나으리. 아니 그게 무슨 말유? 안돼유!
[일순사] (최더러) 이봐 내 보는데서 울타리를 내 막아.
[최] 예! (하고 낫으로 울타리를 헌다)
[정] 천하에 이런 개똥같은 놈의 법의 어디 있담? 나는 내 육십 평생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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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대추를 따서 여태 조상의 봉제사를 해 왔어. 어디 할대로 해봐라. 난 죽어두 안내놓을테니까. (울타리를 고쳐 막으려는 최를 밀어 제친다.)
[남씨] 암. 안내놓구말구! (대추나무 밑에 남편과 같이 퍼질러 앉는다)
[일순사] (추상같이) 이게 무슨 떼야? 이리 못나와? 이리 나와! (일순사는 정의 부처를 낚아낸다. 최는 신이 나서 울타리를 고쳐 막는다. 정부부는 분해서 땅을 치고 운다. 양선달은 싱글거리고만 있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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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막
(전막과 같은 무대. 별이 총총히 돋은 밤. 두 집 사이에는 높고 튼튼한 새 울타리가 막혔다. 대추나무는 인제 최세영의 집 마당 안으로 완전히 들어섰다. 정태근의 집에는 유희와 그 어머니인 남씨 물레를 돌리고 있고 최세영은 부자 마주 앉아서 다리미질을 하고 있다. 언덕 위에선 기손이가 부는 하모니까 소리 들린다)
[최] (다리미 불에 부채질을 하다 말고 대추나무를 바라보며) 참 좋다 저 나무가 저렇게 우리 집 마당 한 가운데에 썩 들어서고 보니까 앞뒤가 척 어울리는게 온 집안이 다 훤해지는 것 같구나.
[동욱] 아버지두 참--- 오늘 낮에 주재소로 불려간 명이는 아직도 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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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지 않었어요.
[최] 그게 우리 대추나무 허구 무슨 상관이람.
[동욱] 이 나라를 통틀어 남의 입에 넣어 놓고서 그래 대추나무 한 낭구가 그렇게 대단하세요?
[최] 옛날부터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라 했느니라. 집안 일을 제대로 다루어야만 나라의 일도 바로서는 법야.
[동욱] 아버지 사람 나고 대추 났지 대추 나고 사람 났어요? 저건 유희네 집에 그만 주어 버리고 우린 새 대추나무 한 그루 심기로 합시다. 제가 잘 가꿔서 저 낭구보다 대추 더 잘 열게 하께요.
[최] 이런 주책없는 놈 보아라 이 몇 해를 두고 싸우다가 겨우 찾아 놓은걸. 그래 도루 내줘?
[동욱] 저까짓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선조 대대로 추마를 마조대고 살던 한 이웃끼리 원수가 돼서야 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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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 녀석아 도대체 요새 대추 금세가 얼마나 고등하다구 이런 소릴 함부로 하냐? 저 낭구에서 저래뵈두 하불과 네댓 말은 딴다 그러구 보문 저 한 낭구에서 나는 소출이 남의 논 한두 마직이쯤 부치는 폭은 넉근히 돼 천하에 이런 누어 떠먹기가 어딧단 말이냐?
[동욱] 그까짓것 모아서 기와집 사겠어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최] 너 유희란 년이 좋아서 그따위 소릴 하지? 그래서 굳이 대추나무를 돌려주자는 심보지?
[동욱] 그래서가 안여요.
[최] 네가 아무리 그 계집앨 좋아해도 쓸데없다 저 대추나무 사단에 어떻게 속을 썩였던지 나는 저 정가놈의 집엣 것이라면 저 집 개 돼지 심지어 새벽마다 홰를 외는 닭우 새끼 소리만 들어도 머리끝이 바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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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도대체 아버진 창피하지 않으세요?
[최] 뭐가?
[동욱] 왜놈이란 도「게다」짝 꺼는 소리만 들어두 몸이 웃슥한데 왜 일순사는 내세워 가지고---
[최] 그걸 내가 불렀단 말이냐?
[동욱] 누가 불렀건 아버진 그 세력으로 저 대추나무를 빼앗지 않으셨어요? 이것이 우리 동포로써 할 노릇이우?
[최] 이런, 육실할 자식! 꿰다 꿰다 안되니까 급기야는 애비를 역적으로 몰아 붙여?
[동욱] 저 대추나무를 안 내놓는 한 아버지 역시 저 새기와집 박명돌이와 다를 게 없어요. 왜놈 끼고 글쟁이질한-
[최] 그럼 날더러 친일파란 말이냐? 이런 육실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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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안 내놓는다. 이왕 역적이 된 바에야 죽어도 난 안 내놓아! 암 안 내놓고 말고 (다리던 빨래를 내던지며 고함친다 돌밭집 할멈 등장 술병을 들었다)
[돌밭집] 아니 두 홀아비 부자 무슨 싱갱유? 궁상 맛게 빨레 대리다 말고 (허트러진 빨래를 주섬주섬 주어서 차곡차곡 개껴 주며) 이런 일은 이 할멈에게나 맥겨 달랫는데 품값이 아까워 못 내놓으슈? 최생원 일이라문 인제 삭전 안 받을래.
[최] (담배만 뻐끔 뻐끔 피우고 앉았다)
[돌밭집] 최생원 별안간 돌밭집 할멈을 몰라 보슈?
[최] 할멈 들어보게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담! 이놈의 새끼가 저 대추나무를 내주라는 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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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아니 이걸 왜!
[최] 왜놈을 끼구 빼아섯다나
[돌밭집] 이건 어디 빼앗은 건가? 이게 제 쥔을 도로 찾아 온 거지 얘야 내 처녈 때 난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다. 이 대추나무가 꼭 이렇게 이 집 안마당에 들어서 있은 걸
[최] 정말?
[돌밭집] 거짓말이면 내 눈깔을 내놓지
[최] 그럼 요담에라두 말성이 나걸랑---
[돌밭집] 암 경찰서구 재판소구 어디든 내가 증인으로 나서지
[최] (통쾌하게 웃으며) 하하하--- 이것 봐라 이 자식아 애비 허는 일에 털끝만치나 그릇된 데가 있냐?
[돌밭집] 남의 일이라두 오늘 일이 어떻게 신통한지 방에 가만 들어 빽혔을 수가 있어 야지 그래 이걸 한 병--- (하며 들고 온 술병을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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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보인다)
[최] (좋아서) 어마나 술까지?
[돌밭집] 이웃이란 이래서 좋다는 게 아니우? (술을 쳐준다)
[최] 할멈 제법이야 하하하--- (하며 마신다)
[돌밭집] 아이 구역나 저눔의 집 고 늙은 것의 총구녕같은 돼지 눈깔만 봐두 난---
[최] (통쾌해서) 하하하--- 총구멍 같은 돼지 눈깔이라!
[돌밭집] 암. 그게 돼지 눈깔이지 사람의 눈이람? 누가 지은 별명인지 똥돼지란 참 잘 갖다 붙였거든!
[최] 하하하--- 정말 잘 붙였지
[돌밭집] 난 최생원이 좋아 더구나 이 눈이 세상 물건을 다 집어넣어도 남을 만한 이 허덩그러한 눈! 사람의 눈이 이렇게 훤해야지 눈깔이 적으면 마음 구석두 좁아서 사람으로서 넉넉한 구석이란 털끝만치두 없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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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밉구 빽빽허구 잉색하구 뺀뺀스럽구---
[최] 하하하--- 할멈이 천하 제일이야. 난 옛날부터 할멈이 좋았어. (자기의 올뱀이 눈을 더 크게 그리고 득의연하게 흡뜬다)
[돌밭집] 이것봐 최생원 저녁을 먹구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바라보면서 마루 끝에 누웠노라니 소시쩍 생각이 눈앞에 암암거려서---
[최] 그래 이 올뱀이 눈이 생각 낫단 말이지?
[돌밭집] 이 대추나무를 큰방 앞에다가 턱 들여 세워 놓고 둘이서 이렇게 바라보니까 얼마나 어울려 (소녀같이 최의 무릎에 비기여 최의 얼굴을 만지작 어린다)
[최] (마침내 취흥이 도도하여 제절로 소리가 터진다)
말은 가자 울고
님은 잡고 아니 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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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최의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받는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서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최세영은 마당에 내려서서 해죽 해죽 춤을 춘다)
[남씨] (그의 딸과 더불어 마루 끝에서 물레질을 하고 있다가 최의 노랫소리에 울화가 났다. 활활 부채질을 하며) 어휴! 울화통이야! 우릴 이런 지옥에다가 쳐 넣어 놓고 이이는 어딜 혼자 쏘다닌담!
(이때에 정태근 부채를 들고 힘없이 등장)
[유희] (남씨를 꾹 찌르며) 어머니 저기에 아버지가-
[남씨] 여보 당신은 우리를 어쩌자고 여기에 쳐박아 놓고 저 돼지 멱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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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게 허우? 저건 사람을 조롱하는 거지 뭐유?
[유희] 아버진 아직 저녁두 안 잡수셨을 텐데-
[남씨] 이년아--- 저녁 한끼가 대수냐? 저런 지랄 까는 소릴 듣고 살 바엔 차라리 난 빼빼시 굶어죽는게 낫겠다.
[정] (눈을 한동안 지긋이 감고 뭣을 생각하더니 조용히) 유희야
[유희] (오히려 불안하여) 예?
[정] 이리 온.
[유희] (별안간 웬 일이냐는 듯 그의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며 아버지에게로 간다)
[정]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너 몇 살이지?
[유희] (냉큼 대답을 못하고 어머니를 다시 치어다 본다)
[남씨] 닷다가 그 애 나이는 왜?
[정] 내가 지금 저 어두운 논길을 시름없이 거닐다가 문득---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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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을 떠나 볼까---
[남씨] (반가워 기절이나 할 듯이) 당신이?!
[정] 왜 잘못 ?수?
(최세영 이때에 또한 곡조 노랫가락을 뺀다)
[정] 저런 육실할---
[남씨] 저 꼴을 안본 다문 캄캄한 땅속에라도 좋으니 훨훨 떨어버리고 얼른 떠납시다 더구나 울타리가 저렇게 높으니까 하늘에 별인들 맘대로 볼 수 있을까? 바람인들 쏘일 수 있을까? 이건 마치 감옥살이지 뭐유?
[정] 유희야 정말 너도 떠났으면 하냐?
[유희] 이렇게 밤낮 으르렁대고 살 바엔 차라리 주 죽었버렸으문---
[정] 그럼 넌 앞으로 동욱이놈허구 만나지 않어도 괜찮겠니? 너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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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야.
(유희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른다)
[정] 음. 역시 너도 응 대답을 못하는구나 내가 걱정한대루---
[유희] 한 이웃에 같이 안사는게 오히려---
[정] 정말?
[유희] 예
[남씨] 그 동욱이 녀석이 아니문 얘 처녀 귀신 되겠수? 별이란 어느 하늘에나 있듯이 사람의 짝이란 아무데구 있답니다.
[정] 헌고리에두 짝이 있듯이? 옳아--- 그러문 떠보지
[남씨 유희] 아이 좋아---
[정] 나 좀 다녀와야겠어
[남씨] 어디로?
[정] 누가 그러는데 쇠돌 아범이 간도로---
[남씨] 우리두 그리구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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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어때?
[남씨] 개살구두 맛 드릴 탓이라는데 어딘들 못 가 살겠수? 얼른 쇠돌아범을 만나구 오슈
[최] (조울다 말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끽하며 노랫가락의 초두를 또 터트린다)
[돌밭집] (마루 끝에서 코를 골다가 깜짝 놀랜다)
[정] 저런 빌어먹을! 이놈의 올뱀아! 그 대추나무나 안고 그대로 꺽우러져라---
(정태근. 최의 집을 향해 호통을 하고 급히 퇴장. 최는 들은 척 만척 소리를 질러 노랫가락만 계속)
[돌밭집] (눈을 비비며) 제에기할 술 받아다가 일껀 쳐멕여 놔두 아무 실속이 없으니 이런 놈의 인사가 어딧담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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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툴거리며 최를 흘겨본다)
[최] 미안하이 할멈 인제 자네 술값을 할 테니 가만있게 가지 말구 (하며 돌밭집을 붙들어 앉힌다 이때에 동리 아이 A 등장)
[아이A] (들어서며) 아저씨 엄마가 술값 받아 오래유.
[최] 술값이라니?
[아이A] (마루 끝에서 술병을 발견하고) 옳지 우리 집 술병 옛네--- (하며 손에 든다)
[최] 그건 이 돌밭 집이 한턱 한 거다
[아이A] 아저씨 이름으로 받아 갔다던 데유.
[최] 내 이름으로? (하고 놀랜 눈으로 돌밭 집을 치어다 본다)
[돌밭집] 이런 멀쩡한--- 대관절 저 값진 대추나무를 혼자 집어 셀 생각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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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 집을 제쳐놓고---
[최] 자네가 누군데?
[돌밭집] 백죄 날 못 가게 치맛자락을 잡아 댕겨놓구 잡아떼셔
[최] (당황하며) 그 그건---
[돌밭집] 그리구 아까 춤출 때 엄벙뗑허구 내 앞가슴을 만진 작자는 또 누군데? 수절하는 과부의 몸둥아리가 그렇게 값싼 줄 아남? 호호호---
[최] 아이구 이 여우한테 또 물렸구나- 내가- (돌밭집 할멈 득의연하게 노랫가락을 흥흥거리며 퇴장)
[아이A] (소리를 지른다) 아저씨 술값유!
[최] 달아 놓으라구 그래라.
[아이A] 또 외상이야. (술병을 들고 불편한 듯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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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말 눈 없으면 코 떼어먹을 세상인걸--- 에이참 동욱아- 얘 동욱아! (하고 부른다)
[동욱] (부루퉁한 얼굴로 뒤꼍에서 나타난다 아버지의 추태가 보기 싫어 피해 있었던 것이다)
[최] 얘야 산때 계있을게다 (선반을 치어다 본다)
[동욱] (산때를 찾아들고) 이건 가지구 뭘 해요?
[최] 저 정가놈의 집으로 뻗힌 가지에 대추가 도합 얼마나 열렸는지 헤아려 두어라 그래야 일년 소출도 짐작할 것이고 그리고 도둑도 막을 수 있을 게 아냐? 알겠지?
[동욱] ---
[최] 정말 무서운 놈의 세상이다 잠간 수었다가 나올 테니 그때까지 죄 맑혀 놔라 (하품을 하며 방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힌다)
[동욱] 그 안달하시는 꼴 정말 보기 싫여 죽겠네! (산때를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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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던지다)
[유희] (일하다 말고 주섬주섬 치우며) 어머니 나 간난이한테 갔다 올래 손에 봉숭아들일 백반 좀 얻으러---
[남씨] 노다거리지 말고 곧 다녀와서 자라 너의 아버지두 이내 돌아오실것니---
[유희] 음. (하고 행길로 나온다)
[동욱] (유희의 오는 기척을 알고 길가에 나서서) 유희야! (유희에게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나야
[유희] (동욱을 못본체 하고 지내가려 한다)
[기손] (언덕 위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가 이때에 내려와 유희의 뒤를 따르려다가) 왜들 모르는 채 할까?
[유희] 누가 너더러 걱정 하랬어? (쌀쌀히 동욱의 앞을 지내 친다)
[동욱] 저걸 그만--- (기손을 때리려 한다)
[기손] 이키 무서운데! 히히히--- (동욱을 조롱이나 하듯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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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의 뒤를 밟아 나간다)
[동욱] (유희의 나간 쪽을 바라보며 분한 듯이) 대추나무 한구루 때문에 모두가 아주 변해 버렸는걸 허지만 유희의 마음마저 어떻게 저렇게두 앵 돌아선담--- (견디지 못해 마당을 헤매다가 자기의 마음을 달래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마루에 들어 눕는다.) (맹꽁이 우는소리 우울하게 들린다) (명이 수심에 잠겨 힘없이 나타난다)
[명이] 동욱이
[동욱] 주재소에서 인제 나오는 길이야?
[명이] 음
[동욱] 좀 더 기다렸다가 중시 안나오면 내가 바로 주재소를 찾아가서 따져 볼까 했었어 글 모르는 동리 아이들에게 한자라도 깨쳐 주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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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나쁘냐고
[명이] 말 말게 우리는 두 손 딱 놓고 있어야지 우리가 하는 짓은 뭐든 죈가 보네 도대체 누구의 허가로 아이들을 모았느냐는 거야
[동욱] 동리에 이로운 일을 하는데 허가는 무슨-
[명이] 그리고는 야학을 시작한 후로 오늘까지 아이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려줬으며 뭘 가르켰는지 세세히 외 바치라겠지.
[동욱] 저런 땀 날 일봐.
[명이] 그렇게 사람의 기름을 빼더니 결국 허가를 얻은 연후에 공부를 시키데. 수비대통변이던 박명돌이를 책임자로 앉히래
[동욱] 죄인을 감시하듯 우리를 지키는 개로 갖다 두라는 거야.
[동욱] 굴러 온 돌이 본 돌 찬다구 「게다」짝을 끌고 들어온 쪽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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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이 우리의 수족조차 못 놀리게 한다? 명이 이 눔의 세상이 어떻게 돼 먹었기에 이따위야? 정말 이 세상이 이렇게 밖에 안 될꺼라면 우리---
[명이] 동욱이 우리두 그만
[동욱] 뭐?
[명이] 그만 두어
[동욱] 말을 껄어냇다가 이 무슨 짓야? 우리두 어쩌자는 거냐?
[명이] 나는 해외로 뛸걸 생각해 봤었네
[동욱] 해외라니?
[명이] 상해나 간도로 가면 거긴 우리 세상이라지 않어? 우리를 속박할 놈이란 아무 개미 새끼도 없고 더구나 그런덴 한일합방을 반대하다가 쫓겨난 우리의 애국지사가 수없이 모였다는 거야 그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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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간도에다가 요즘 우리의 군관 학교를 세워 놓고 장차 나라를 도로 찾을 군인을 양성한대. 이 선생에게 그런 연락이 왔다는 거야 국내의 젊은이들이 좀 추천해 보내라구 허지만 나는 틀렸어 (불구의 몸을 비관하듯 절름거리며 어두운 데로 피해 앉는다) 나 같은건 아무짝에두 못써.
[동욱] 자넨 지금 몸이 튼튼한 사람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구 이래 아무리 독립군이 강해져두 우리 백성이 무식해봐 나라꼴이 뭐가 되나 낙심 말구 넌 여기서 야학을 계속해 난 그 군관 학교로---
[명이] 자네가?
[동욱] 아니 이 선생이 나 같은 것두 추천해 주실까? 그 학교에
[명이] 추천해 주시다 뿐야. 너같이 몸이 튼튼하고 기상이 좋은 청년이 어딧다구.
[동욱]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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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정말!! (하며 동욱의 손을 잡는다)
[동욱] 가만 (좀 생각는다) 명이 홀아버지를 예다 남겨 놓고 나 혼자 떠날 수 있을까? 길이나 가까우면 몰라두 수천리 타국에 한번 가문 다신---
[명이] (힘없이) 허긴 그래 홀아버지에 외아들인 자네 처지로는---
[동욱] 에이 빌어먹을! (몸둥아리를 내던지다시피 평상 위에 쓰러진다) (맹꽁이 우는 소리)
[명이] (쓴 입맛을 다시며) 한 번 더 두고 생각해 보세
[동욱] (휙 일어나며) 나두 좀 거닐 테야. 바람이나 좀 쏘일 겸
[명이] 참 아까 그 책
(동욱은 묻어 두었던 책들을 껄어 내준다. 명이 그 책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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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과 같이 힘없이 퇴장. 이때에 정의 노랫소리 들린다 유희 어머니인 남씨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발길을 멈춘다. 정 비틀거리며 등장 쇠돌 아범에게 부축 당하여- 술이 취했다)
[정] --- 자 가자! 북간도로 서간도고 아무 데고 가자 간도란 데가 도시 사람 못살 지옥 이래도 좋다 저 최가 놈의 꼴만 안본다면야 어딜 가도 내겐 극락이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쇠돌아범] 그만 허슈 그만 해유
[남씨] 여보 (걱정스럽게 내려와 붙든다)
[정] 마누라 인제 걱정 말우 쇠돌 아범하고 같이 가기로 했어
[쇠돌아범] 난 여기선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어야쥬 그래 진작부터 떤다 떤다 하면서두 동행이 없어 휙 나르지 못하구 있던 판이랬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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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에서두 간다니까 우리 마누라가 여간 좋아하지 않어유 인제 마음 떡 놓구 있는 세간 다 팔구 떠날 차비를 차리지유
[정] 다 팔게 팔아 탕탕 팔아 가지고 가세! 이놈 올뱀아--- 누가 잘사나 어디 두고봐라
[쇠돌아범] 약주를 여간 자신게 안유 방으로 모슈
[남씨] 여보! (남편을 부축하여 방으로 들어간다)
[쇠돌아범] 내일 봅시다
[남씨] (방에서) 예.
(유희는 그의 동무 간난이와 숙이를 데리고 등장 기손이는 여전히 그의 뒤에 따랐다)
[유희] (방을 향하여) 어머니 간나이석건 놀러 왔다우 (대답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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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주무시나?
[간난이] (화단의 꽃을 보고) 아이 이뻐! 많이두 피었구나 열손구락에 다 드릴 테야 난-
[유희] 까불지 말구 얼른 이거나 찧어 (봉숭아를 따 가지고 찧는다)
[간난이, 숙이] (같이 찧으면서 떠들썩하게 노래한다 기손이는 하모니카로 화한다)
낮이면은 햇발 받고 밤이면은 이슬 받아
송이송이 봉사 꽃이 뜰에 함빡 피었구나
겉잎일랑 제쳐놓고 속잎만을 떼어 내어
꽃노래를 흥어리며 고이고이 찧어 내세
분결같은 이 손길에 단단히 매어 두어
하로 밤만 자고 나면 손끝마다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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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애그 그만 떠들어 우리 어머니 주무신다
[간난이] 노랫소리에 못 주무시문 저 맹꽁이 소리엔 어떻거누?
[기손] 요담에 나 서울 가문 분 한 통 사다주께 손끝에 물을 드리문 얼굴엔 분을 발라야 하잖어?
[유희] 괜찮아! (꽃을 가리키며) 이 분꽃이 피문 해얀 분이 얼마라두 생긴다누 그렇지?
[숙이, 간난이] 암!
[기손] 작년에 어느 군에선지 농촌 야학교에서 서울 공진회 구경 왔겠지 그래 우리 도화동에서두 너희들이 왔겠지 허구 난 퍽 찾았단다 날마다 정거장에두 나가 봤지
[숙이] 정말?!
[간난이] 얘두! 우릴래 그랬나 뭐? 유흴 기달려 그랬지 그렇지 기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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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물론 유희두 기다렸지 허지만 너희들두 기다렸어
[숙이] 우릴?
[간난이] 그만 둬! 헷물 켜지 말구 그렇지 유희야?
[유희] 몰라
[숙이] (찧은 봉숭아를 손끝에 처매면서) 왜 이리 어두워
[유희] 이 울타릴래 달빛이 안 들어와서 그렇단다
[간난이] (울타리를 우를어 보며) 참 높으기도 허다.
[유희] 아이 저것이 언제 없어지누?
[간난이] 네가 이 옆집의 며느리가 되문 저절로 없어질 것 안야?
[숙이] 호호호--- 정말
[유희] 아이 망할 계집애들 같으니! (간난이와 숙이를 꼬집는다)
[숙이, 간난이] 아야야 누가 없는 말했나?
[기손] (유희의 손목을 턱 붙잡으며 정색하여) 유희야 너 정말 요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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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이허구 좋아하니?
[유희] 천만에! 저 울타릴 봐
[기손] 안 좋아한단 말이지?
[유희] 아까 너두 보지 않었어? 피차에 본체 만체 허는걸
[기손] 그럼 그렇지 유희야 이 울타리 더 높게 막아 주랴?
[유희] 이걸 더 높이?
[기손] 그럼 속이 시원허잖어? 아주 안보구-
[유희] 그래 저 하늘과 땅이 영영 두 쪽으로 딱 갈라서게 막아다구
[기손] 걱정마아 내 손으로 단박에 막아 놓으게 저 하늘에 닿게끔-. 에이 소뿔은 단박에 빼야 한다 우리 집에 가서 일꾼 데려올 테니까 자지 말구 꼭 기다리구 있어 (달음박질 쳐서 자기집 있는 편으로 퇴장한다)
[유희] (행길로 쫓아 나가며) 기손아 그만 둬! 기손아! (소리친다 그러나 기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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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어떻거문 좋아! (간난이와 숙이 유희의 당황해 하는 꼴을 보고 자즈라지게 웃는다)
[간난이] 아이 우스워 기손이가 널 여간 좋아하질 않는 모양야
[숙이] 그게 시속 연애라는 것 안야? 호호호--- (간난이와 같이 웃는다)
[유희] 아이 망칙스러라 그런 소릴 허문 때려줄 테야
[간난이, 숙이] (놀리며) 용용 죽겠지!
[유희] 뭐 어째 요년들! (하며 쫓는다. 간난이와 숙이 쫓겨서 도망) 얘들아 도망 가문 난 싫어 이리 와! 여기 있다가 이 울타리 올려 막지 못하게 좀 말려다구 응? 숙아--- 간난아--- (그들의 뒤를 쫓아서 퇴장)
[최] (방에서 마루로 나와 담배를 빨며) 얘가 아직두 심을 하고 있나 보군. 원체 수태 열렸으니까 꽤 품이 걸릴 꺼야. (그러나 아무 기척이 없으니까 고개를 빼어 행길 쪽 대추나무 아래를 더듬으며 부드럽게) 얘야 동욱아 동욱아 이 자식이 어디 놀러간게 아니야 (거친 소리로) 동욱아! 이놈 동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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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없다 마당 허드러진 산때를 발견하고)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에이 주릴할 새끼! 어디 집구석에 들어왔단 봐라--- (화가 나서 씨근거리며 산때를 줍는다)
(이때에 동욱이 행길에 힘없이 나타난다)
[동욱] (입구에서 주춤 서서) 부르셨어요?
[최] (조용히) 몇 개나 되디?
[동욱] (못 알아들은 듯) 예?
[최] 대추가 얼마나 열렸더냐 말이다
[동욱] 아버지 진두물처럼 달려 있는 대추를 어떻게 일일이 더구나 가지의 반은 남의 집으로 뻗혔는데-
[최] 그 집 마당에 들어가서 세면 될 게 아니냐?
[동욱] 그 집은 우리의 원수라면서 어떻게 발거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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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세어 둬야 하지 안니?
[동욱] 아버지 제발 그 안달 그만 부리세요
[최] 안달? 그래서 애비가 시킨 일을 귓전으로 듣고 산때를 마당에다가 내팽개쳤구나 에이 육실할 놈의 자식 대뜸 내 집에서 나가거라!!
[동욱] (간절히) 아버지가 정 나가라면 언제든지 나가겠지만 전 아버지 없이는 못살고 아버지 역시 절 잃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 전 마음을 썩이고 있는 거예요 제발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슬하를 떠나지 않고 아버지만 모시고 살수 있게 맘을 넓게 잡사 주세요 소원입니다 (눈에는 눈물이 매친다)
[최] 넌 날 마땅치 않게 생각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모두가 네놈하고 같이 살려고 하는 거다 이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끼니나 어기지 않구 두 부자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야 네가 애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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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말 한집에서 살려거든 애비의 마음을 받들어 애비 시키는 대로해라 지금 한번 더 조용히 이르겠다 자아 저 집에 가서 저쪽으로 뻗힌 가지에 대추가 몇 알이나 열렸는지 얼른 헤아려 오너라
[동욱] 아버진 끝내 저 집 하구 화해할 수 없으세요?
[최] 저놈의 집에서 우리 해를 넘겨다보지만 안는다면야---
[동욱] 진심으로 여쭙는 겁니다 제발 아버지부텀 이 낭구에 욕심을 부리지 마세요
[최] 내해를 내가 다루는데 누구더러 욕심을 부린다는 거냐? 빨랑 가서 몇 개 열렸는지 세어 와
[동욱] 못합니다.
[최] 못해?! 이 주릴 할!! 나가!! 나가거라!! 썩 나가!! (사립문 밖으로 동욱의 덜미를 몰아낸다 동욱이 행길에 쓰러진다) 엥이 망할 새끼 같으니라구! 사람의 새끼로 원수 놈의 역성을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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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런 쓸개빠진 놈이 어딨단 말야 저런 놈의 새끼는 없어지는 게 외려 편해 (산때를 들고 정의 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에헴!
[남씨] (아까부터 방문을 열어 놓고 술 취한 정의 머리를 물수건으로 식히고 있다가) 그 누구유?
[최] (열적은 소리로) 나--- 나요
[남씨] 나라니?
[최] (퉁명스럽게) 알 필요도 없어 (쏘아 부치고는 정의 집 마당에서 대추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대추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스물에 마흔이오 예순에 여든이라
[정] (방안에서 기어 나오며) 이놈의 새끼 잘 만났다 네놈이 바로 올뱀이 놈이로구나 우리 대추나물 빼앗어 가더니 뭣이 부족해 야반에 남의 집엘 또 기어들었냐? 이 도둑놈의 새끼야 (하며 멱살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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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놈의 똥돼지 네눔 같이 내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인 줄 아냐? (하고 대든다)
[정] 뭣이?
(정과 최 마침내 차고 때린다)
[남씨] (사방을 향해 소리소리 지른다) 도둑이야!! 불이야!! 불이야!! 도둑이야!! (동리 사람들 여기 저기서 모여든다 그들은 가까스로 싸우는 두 사람을 떼어놓는다 격렬한 싸움에 두 사람 다 부상했다 피투성이가 되었다 동리 사람들 흐르는 피를 씻어 주며 정과 최를 각각 자기의 방 마루에다 뉘여 놓는다)
[이웃 사람A] (남씨에게) 큰일 날 뻔 했오 방안으로 데리고 가슈
[남씨] (호들갑스럽게 울며) 이런 분할 데가--- 이놈의 원수를 어떻게 다 갚어 (앓는 정씨를 부축하여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최] (신음하며) 이 정가 놈의 새끼! 이제 두고 봐라! 날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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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주재소에 고소를 해서 단박에 콩밥을 멕이고 말테니까
[이웃 사람B] 들어가 주무슈 제발 최생원 (가까스로 방안으로 인도해 넣고 방문을 닫아 주며) 으이 좋은 쌍둥이같이 구수하게 지내 오던 이웃끼리 대체 이게 무슨 눔의 짝이람메!
[이웃 사람A] 더 두고 보슈 인제 피를 흘리기 시작했으니까 앞으로 더 처참한 꼴이 될 테니---
[이웃 사람들] 가세
(이웃 사람들 모다 뿔뿔이 헤어진다 ??님가비여. 물을 뿌린 듯이 조용해지자 추마 밑 어두운 곳에 쭈그리고 앉았던 동욱이 평상으로 나와 걸터앉는다 머리를 두 손으로 싼다. 맹꽁이 우는소리 우울하게- 한동안 동욱이 휙 알어서 거닌다 번거로운 심기를 가다듬으려고 애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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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다. 그러다가 다시 평상에 와서 들어 눕는다 동무들을 쫓은 유희 혼자만 종종 걸음으로 나타난다 동욱 휙 일어난다 동욱의 시선 유희와 마주친다 유희는 입을 비쭉하고 동욱의 집 앞을 지나가려 한다)
[동욱] 유희야
[유희] (싸움이나 할 듯이) 왜 불러?
[동욱] 성났구나 너두?
[유희] 웬 걱정야! (톡 쏘고 그대로 지내 간다)
[동욱] (따르며) 저- 이것 봐
[유희] 그만 둬 (자기 집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동욱] (할 일 없이 대추나무 밑에까지 가서 우둑허니 섰다 원망스러운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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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만 바라본다)
[유희] (본체만체하고 흐트러진 마루를 치운다)
[동욱] (가까이 가며) 유희야 우리네 부모가 싸우는 것도 못 견딜 일인데 우리꺼정 이럴 게 뭐야?
[유희] 당연한 이치지 뭐!
[동욱] 한 이웃끼리 싸우고 지내는 게 당연하단 말야?
[유희] 그게 싫으문 왜 저 대추나무를 안 내놓는 거야? (별안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저 대추나무가 본시 누구의 소유 건간에 지금 너의 집엔 너의 아버지하고 너하고 손이 맞아 거센 일이라도 잘해 내지만 우리 집엔 늙은 우리 아버지 혼자서 사내 자식두 없이 살아가느라고 여간 애를 쓰지 않지 않어? 한 이웃에서 그런 사정두 모르구 저 대추나무마저 빼앗아 가버려? 인정 사정도 없이-
[동욱] 걱정 마아 유희야 금년이 아니면 내년이 아니면 후 내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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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라도 너의 집 뜰 안으로 저 나무를 돌려 세어 주마
[유희] 누가 돌려 달랬어? 허는 수작들이 괘씸해서 그렇지
[동욱] 정말 이렇게 안야 우리 아버지께서 고집을 부리시지만 나야 어디 그래? 내가 아버지 몰래 해마다 너의 집 제사며 그밖에 가용에도 넉넉히 쓸 만큼 대추를 따 돌려주마 그러문 괜찮지 않어?
[유희] 싫어 네 소원대로 너 혼자서 다 따먹어 저까짓것 없어두 우린 죽지 않어
[동욱] 유희야! 유희야!
[유희] 보기 싫어! 저리가! 욕심쟁이! 도칙이! 도둑! (분해서 업디어 운다)
[동욱] 너까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난 몰랐다 이일은 이렇게 서로 미워만 해서 끝장이 날 일이 아닌데---
[유희] 이런 일을 안 미워하면 이 세상에서 뭘 미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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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원수지만을 대서 그럼 영영 나까지 안볼 작정야?
[유희] (당연히) 안볼 테야
[동욱] (역시 단호히) 그럼 좋아 나두 널 다시 안볼 테니까- 그러문 되려 내 마음도 편앖다 얘 (자기 집으로 가려 한다)
[유희] (고개를 들어) 도 동욱아
[동욱] (발을 멈춘다)
[유희] --- (말이 없다)
[동욱] 왜 불러?
[유희] 정말 어떻허문 좋아
[동욱] 앞으로 우리 살림살이의 근본 문제만 제대로 되믄 이 따위건 제절로 다 해결되고 말 거야
[유희] 근본 문제라니? 그게 뭐야?
[동욱] 말해도 유희는 못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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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흥 괜히 사람을 농칠려구?
[동욱] 그래서가 아니야 너무 중대한 문제가 되서 함부로 짓거려서 안될 일이기 때문야
[유희] (입을 비쭉하며) 씨! 남을 속이려는 게 아니라면 왜 시원스럽게 말을 못해?
[동욱] 네가 그렇게 오해하니까 할 수 없다 토설하지 이건 유희 혼자만 들어 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아
[유희] 뭔데?
[동욱] 거지가 저희들끼리 제 쪽박 깬다는 소리 들었지? 우리가 지금 저까짓 대추나물래 으르렁 거리는건 마치 그 짝이야 그러나 만일 우 우리 나라를 찾으면- 이 강산의 주 주인이 다시 되면- 그러면 이 세상의 것이 모두 우리 해가 도로 될게 안야? 그렇게 된다면 그때 무엇 때문에 요까짓 낭구 한 거루를 가지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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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우이 좋게 살아오던 한 이웃끼리 피를 흘려 가며 싸우겠냐 말야 우린 모든 것 다 덮어 놓구 무엇보다 먼저 나라를 찾아야 돼 남의 종의 신세를 면해야 한단 말야 유희 그땐 만사 해결이야
[유희] 그런 꿈같은 소리 마아 놈들한테 꽁꽁이 붙들려 매여 손발도 못 움직이는 꼴에 어떻게 이 강산을 도로---
[동욱] 생시에 먹은 마음이 꿈에 보이듯이 꿈으로 상승하는 일이 실현 못되란 법은 없잖아?
[유희] 쑥스런 소리두-
[동욱] 네게만 말이지만 난 간도로 뛸 결심을 했어
[유희] 뭘? 간도로?
[동욱] 응
[유희] 너의 아버지두 같이?
[동욱] (고개를 가로 흔들며) 으응 나 혼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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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뭣 하러?
[동욱] 그건 묻지 말아 주어
[유희] 마침 잘 됐군? 우리두 가기로 했는데-
[동욱] 역시 간도로?
[유희] 암
[동욱] 유희! 그럼 우린 그 넓은 간도 땅에서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되는 게 안야?
[유희] 호호호--- 정말 이게 웬 호박야!
[동욱] 유희 우리의 꿈은 어느새 이렇게 한 골수로 합쳐 있었는데 괜히 우리 서로 미워만 했지?
[유희] 정말! (하며 동욱의 목에 매달린다)
(기손 등장 긴 싸리 가지를 한아름 안은 하인을 데리고 기손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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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에 들어서자 유희와 동욱의 서로 껴안은 것을 보고 자기의 눈을 의심하듯 주춤하더니 화가 나서 들고 있던 낫과 하인이 들고 온 싸리 가지를 받아 땅바닥에 내던진다)
[유희, 동욱] 아이 깜짝이야!
[기손] (일군을 잡아 제치며) 저리 비켜! (부리나케 돌멩이를 찾는다)
[동욱] (당황하며) 저 녀석이 돌멩이를 줍네
[기손] 에이 뒈져라! (있는 힘을 다해서 동욱에게 돌멩이를 던진다)
[유희, 동욱] 에크머니! (유희는 몸을 동욱이 한테로 피한다 양인의 머리 위를 스친 돌멩이 방문에 부디 친다 구멍 하나 풍 뚫린다 닭둥어리의 닭들이 놀래서 요란스럽게 깩깩거린다 야반의 정막은 깨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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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아이 저걸 어떻게 해?
[기손] (하인더러) 가자! (화가 나서 퇴장)
[남씨] (자다 말고 날아 들어온 돌맹이를 들고 방에서 나온다)
(동욱과 유희 마당에 딱 엎딘다)
[남씨] 아니 웬 녀석이 돌멩이질이냐? 오 동네 아이 녀석들이 또 우리 대추를 따 먹으려나 보군 (소리를 질러) 얘 이 몹쓸 놈의 새끼들아 왜 남의 대추를 따?!
[최] (방문을 열고 겨우 고개만 내놓으며) 뭐 대추를 따?
[정] (방안에서 소리만) 그놈의 대추 싫건 따먹게 내버려 두우
[남씨] 참 우리께 아니랬지 (더 큰 소리로 얘 이놈들아 이왕이믄 그놈의 대추나무 송두리채 빼 가거라!! (유희모는 최에게 대한 분풀이로 이렇게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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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밑에 숨은 채 꽉 껴안아 하나가 된 동욱과 유희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터지는 웃음을 씹는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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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막
아침나절 산골 정태근의 밭 주변에는 잡목이 우거진 산. 밭 한구석에는 원두막. 그 반대편에 허수아비 긴 새끼에 깡통을 달아 검줄을 쳐 놓았다. 새를 쫓기 위해서다. 빈 무대 어디선지 초동들의 노랫소리와 간혹 새 쫓는 계집아이들의 "후어" "후어"하는 소리 가까이 혹은 멀리 들린다 그와 동시에 덩거렁 거리는 깡통 소리도 이윽고 유희는 간난이 숙이와 더불어 등장 제각기 바구니를 하나씩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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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아니 그게 정말야?
[간난이] 암 정말이고 말고 아무리 구슬러도 기손이는 도무지 손가락을 안든대 그 좋아하는 씽씽이도 안 불고 그렇지 숙아?
[숙이] 암 돌밭집 할멈도 그러던데 뭐
[간난이] 기손이 아버지도 보기가 하도 딱해서 "너 요즘 왜 그 씽씽이 안부냐? 부러라 구렝이 나와도 좋다" 그래도 안 분대
[유희] 그러다가 죽기나 하문 말성이지?
[간난이] 말성은 무슨 말성이냐? 지금이라도 너만 시치미 딱 떼고 "기손아 너한테 나 시집갈게"--- 그러면 그까짓 병 언제 봤더냐는 듯이 단박에 낫지
[숙이] 암 그렇지 호호호---
[유희] (입을 삐죽해 뵈며) 시! 누가 그까짓거 한테---
[간난이] 그러면 너 신랑은 굳이 동욱이래야 맛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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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주먹을 둘러메며) 망할 계집애들도!
[간난이, 숙이] 호호호--- 정말이지 뭐냐 용용 죽겠지 (하며 도망간다)
(유희 간난이와 숙이를 쫓아 나간다 반대편에서 돌밭집 할멈 등장)
[돌밭집] (밭을 휘- 둘러보더니) 정가가 여기도 없는데---
[유희] (소리만) 얘들아 고만 달아나!
[간난이, 숙이] (역시 소리만) 우린 산에 도라지 캐러 간단다
[유희] (소리만) 그럼 얼른 다녀 와아
[간난이, 숙이] (소리만) 으음
[돌밭집] (이때 나타나는 유희더러) 유희야
[유희] 돌밭집 할머니 웬 일 이유?
[돌밭집] 너의 아버지 안 나왔냐?
[유희] 아직
[돌밭집] 웬일이냐? 집에선 아침두 안먹구 나갔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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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아마 논에 물대고 계실걸요
[돌밭집] 논이 어디지?
[유희] 저 개바우 밑에 있는 질마 뱀요
[돌밭집] 글로 가봐야 겠군 (돌밭집 할멈 급히 퇴장)
[유희] (혼자말로) 왜 아침 첫꼭대기부터 아버진 찾아다닐까? 재수 없게--- (호박을 찾으며 호박잎을 헤친다 이때 멀리서 동욱의 노랫소리 들린다 일어서서 귀를 기울리더니 금방 ?안이 되며) 음 동욱이 소리군! (숨을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리더니) 옳지! (하며 얼른 원두막 위로 기어올라간다)
(동욱 등장 풀을 한 짐 지고 노래를 부르며 지내가려 한다)
[유희] (원두막 위에 엎디어) 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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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주춤 발을 멈추고 두루 살핀다)
[유희] (숨은 채) 버-꾹! 버-꾹!
[동욱] (깡통 달린 새끼를 잡아당겨 덜그렁 소리를 내본다 반응이 없으니까) 부-꾹
[유희] 버-꾹!
[동욱] (발을 도꾸어 원두막 위를 본다 치맛자락이 뵌다 치맛자락을 끄으다)
[유희] (깜짝 놀라 자즈라지게) 애그머니!
[동욱] 하하하--- 이리 나와 유희 그러문 모를 줄 알구?
[유희] 호호호--- 웬 풀을 아침부터 그렇게 많이 비었누?
[동욱] 벌써 열 짐 째야
[유희] (눈이 둥글 해지며) 뭐?
[동욱] 내가 없어지더래도 우리 아버지 혼자서 몇 핼 두구 넉넉히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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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잡수실 만큼 퇴비를 장만해 놓으려고 그래
[유희] 애그 기특해라 정말 효자문 서겠네
[동욱] (때릴 듯이) 요것이!
[유희] (주먹을 피하며) 호호호---
[동욱] 안야 안 때려 이거야
[유희] 뭔데?
[동욱] 받으렴 깨물어 보문 알지 (무언지 휙 던져둔다)
[유희] (원두막 위에서 야무지게 받아) 오 머루군 그래 (입에 넣어서 깨물어 보고) 아이 잘두 익었네 산에서 땄어?
[동욱] 음
[유희] 그래서 아침 이슬에 옷이 저렇게 젖었군 그래.
[동욱] 무슨 걱정야 한나절이문 제절로 말을걸 뭐
[유희] 아이 저건 또 뭐야? 저 모자 쓴게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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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머리에 얹힌 퇴색된 스트로킛을 만지작거리며) 뭣이 어떻게 됐다구 그래?
[유희] 가만있어 서양 사람의 의관이란 그렇게 쓰는 법이 아니래 (하면서 원두막에서 기어 내리려 한다)
[동욱] (팔을 뻗혀 붙들어 주려고 하며) 자아!
[유희] (이성에게 안기는 것이 부끄러운 듯 기겁을 하여) 아이 싫어! 저리 비켜! 빨랑!
[동욱] 떨어져두 난 몰라
[유희] (사닥다리에서 뛰어 나릴 자세를 강조하며) 요까짓델?
[동욱] (호령을 해준다) 하나! 둘! 셋!
[유희] (그 호령에 마쳐 휙 뛰어내린다 그러나 발목을 뒤쳤는지 후들갑 스럽게) 애그 아야야---
[동욱] (얼른 부축을 하여 주며) 그것 봐 엎더러진다고 그랬지 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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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았어?
[유희] (고개를 가로 흔들며) 으응 괜찮어 자아 이리와 그 모자 좀 봐
[동욱] (머리를 유희에게 맡기며) 세간들 좀 팔렸어?
[유희] (모자를 만져 주며) 더러는 팔았지만 아직도 멀었어 동욱인?
[동욱] 하루라도 빨리 떠날려구 집안 일이구 뭐구 막 몰아대구 있어 주재소 명령대로 야학 책임자론 박명돌이를 올려 앉히구---
[유희] 나도 바빠 허지만 가기로 작정해 놓으니까 하로가 무척 길지
[동욱] 그래 참---
[유희] (모자를 고쳐 씌워 주고는) 자 이러면 됐어 얼마나 멋져 자아 들여다 봐 (하며 거울 대신으로 자기의 손바닥을 들어댄다)
[동욱] (유희의 손바닥에서 자기 얼굴을 찾으며) 어디 빛혀?
[유희] 자세히 디려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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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약이 올라) 사람을 막 놀리네
[유희] 호호호--- 멍텅구리--- (하며 피해 간다)
[동욱] 이런 거짓부랑 (붙들어 앉힌다)
[유희] 너의 아버진 아직도 눈치채지 앉으셨지 너 떠나는 것 말야
[동욱] 알면 우리의 계획이 휙 뒤집혀 버리게
[유희] 동욱이 가는걸 나도 비밀히 하고 있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까지
[동욱] 물론 그래야지 거기다가 우리 짐을 부릴 때 까진-
[유희] 아아 얼른 얼른 날이 새고 해가 져서 하루속히 간도 땅에 닿었으문---
[동욱] (취한 듯이) 난 요즘 저녁마다 꿈이야 유희하고 둘이서 간도 땅에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유희] 나도야 나도 간도 땅에서 동욱이와 함께 뛰노는 꿈이야
[동욱] 거긴 땅이 너무 넓어 어떻게 묵어 잡바졌는지 옥토 같은 논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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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가 없고 그저 말뚝만 치면 그게 제해가 된대
[유희] 여기서 모양으로 한 뼘 살피로 싸울 필요두 없구?
[동욱] 물론이지
[유희] 그런데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동욱] 거짓말 같지? 허지만 참말이야
[유희] 헌데 어젯밤 꿈엔 참 우스워서- (해 놓고는 혼자 뭘 생각했는지) 흐흐흐---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동욱] 무슨 꿈야?
[유희] 웬 일인지 동욱이가 간도에서 독립당엔지 어딘지 들었다나 어깨에다가 별을 세 개나 붙인 아주 훌륭한 장수가 되었어 그리고 나는 동욱일 따라 다니는 별도 없는 하졸이었구-
[동욱] 유희가 내 하졸?
[유희] 음 그런데-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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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그래서 어찌됐어?
[유희] 그만 둘 테야 (하며 휙 일어서 버린다)
[동욱] 싱겁게 왜 말을 하다 말고 (유희의 손을 끌며) 자아 앉아서 끝을 마쳐
[유희] 챙피스러워
[동욱] 우리 둘뿐이데 창피스러울게 뭐야?
[유희] 그래두 (하며 피해 도망간다)
[동욱] 유희! (하며 쫓는다)
[유희] 애그그--- (도망가다가 잘못해서 언덕에서 딩굴어 졌다)
[동욱] (붙들려다가 같이 딩굴어 지며) 사람들 감질만 내놓고 정말 안할테야 마저 계속하지 않으면 제-기 목을 그만 눌려줄걸 (유희를 걸 타고 목을 졸르려 한다)
[유희] 애그 간지러워! 하께 해요 해 (하며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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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놔주문 또 도망칠려고?
[유희] 정말야 할 테야
[동욱] (놔주며) 어서 해봐
[유희] 웃지 마아 저어 내가 호호호--- 동욱이와--- 새색시가 됐었어
[동욱] 유희가 나의?
[유희] 음.
[동욱] 어느새?!
[유희] 글쎄 말야 그러니까 창피스럽지 뭐야?
[동욱] 그래서?
[유희] 그때가 바로 왜놈들을 내쫓고 우리 나라를 도로 찾는 때라나 그래 팔도강산이 뒤짚혀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사람 빠지지 않구 모두 들구 일어 나잖어? 동욱이두 칼을 빼어 들고 말을 타구 앞장섰었어 그래 가지곤 나팔을 띠따 띠따 불고 적군을 헤치고 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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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떨어지지 않으려구 머리카락을 날리며 기를 쓰구 채쭉질을 하구-
[동욱] 그리고?
[유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 도화동으로 마악 쳐들어 왔지 그러니까 왜놈들은 똥을 싸곤 게다짝을 들고 쥐구멍을 찾고 허리가 꼬부라진 양선달이며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운 어린애까지도 들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 만세를 부르고 위아래 동네마다 하늘 높이 태극기를 휘날리고-
[동욱] (손을 내저으며) 그만 그만해 유희 (하고는 고개를 한구석으로 돌려 흐느낀다 벅찬 감격을 억제 못하는 것이다)
[유희] 왜? (동욱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니 동욱이 동욱인 울고 있는 게 아냐?
[동욱]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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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울지마 내 어디 잘 못된 데가 있어서 그래?
[동욱] 안야 유희가 꾼 꿈은 모두 평소에 내가 꾸는 꿈 그대로야
[유희] 동욱인 그럼 그런 꿈만 꾸고 있어?
[동욱] 왜 안돼?
[유희] 안될 거야 없지만 너무도 엄청나서-
[동욱] 이 나라 젊은 사내라면 누구나 꿀 수 있는 꿈 안야?
[유희] 그런 꿈을 내가 먼저 꾸어서 샘이 났군 그래?
[동욱] 유희 고마워 유희마저 나와 똑 같은 꿈을 꾸어 주어서-
[유희] 동욱이의 꿈이 나한테까지 옮은 걸 꺼야
[동욱] 우리 간도에 가걸랑 금방 얘기한 그대로의 꿈을 한번 실현 시켜봐
[유희] 동욱이가 하자는 일이라면 뭐든지
[동욱]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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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정말이란 밖에!
[동욱] (유희의 손을 꽉 쥐며) 아 고마워 이렇게 되고 보니 대추나무 싸움의 덕을 우리가 단단히 보게 되었군 그래
[유희] 왜?
[동욱] 그 싸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런 꿈을 함께 꿀 수 없었을 것 안야?
[유희] 정말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싸움이면 하루에 몇 번이고 있어도 좋았겠지?
[동욱] (좋아서) 하하하 이런 게 호와 전화위복이란 것 안야? (유희를 얼사 안는다)
(정태근 빈 지게에 낫을 꽂아 가지고 등장. 머리를 싸맸다. 일전의 최세영과의 싸움에서 얻어터진 것이다. 들어서자 언덕에서 조밭을 향해 후어이! 후어이! 하고 새를 쫓는다
[유희] (정의 소리에 깜짝 놀래) 애그 우리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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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천연덕스럽게 얼른 피해 선다)
[정] (양인의 당황해 하는 꼴을 보고) 유희야 너 지금 저 녀석하고 여기서 뭘 했니?
[유희] 하긴 뭘 해요? 제가 저 호박 넝쿨 뒤에서 호박을 따고 있으려니까 부스럭! 소리가 나겠지 그래 보니까 (동욱을 힐끗 바라보며) 어떤 총각이 지게를 받쳐 놓고는 지게꼬리를 붙들어매기에 어씨자하고 이 구석으로 피해온 걸요?
[정] (동욱을 가리키며) 그래서 저 자식이 저기 우두커니 서 있는 거로구나.
[유희] --- 예?
[동욱] (모자를 벗고 절을 꿉벅하여) 나오셨어요 아저씨!
[정] (지게 작대기를 번쩍 쳐들고 때릴 듯이) 에이키 부랑당 녀석 같으니!
[동욱] 에그머니! (비명을 올리며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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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동욱의 미쳐 가지고 가지 못한 지게를 가리키며) 이게 저 녀석 해라지? 망할 것 무엇이 이쁘다고 하필 내 밭머리에다가 이걸 받혀둔담 (쓰러트려 버리고는) 유희야 이 애비에게 언약한게 있으니까 물론 너는 그 녀석에게 구린입도 안 떼고 그 녀석을 치어다 보지도 않았겠지? 그렇지?
[유희] --- 예
[정] 음 착해 그래 밭엔 뭣 하러 나왔니?
[유희] 어머니가 밭에 있는 건 다 걷어 가지고 오랬어요
[정] 인제 떠날 테니까? 그래야지 나도 한 대 피어 물고 저 조니 수수니 할 것 없이 다 비어 치워야겠다 (정 담배를 피어 물며 조밭으로 사라진다 유희는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호박을 따기 시작 돌밭집 할머니 종종걸음으로 등장)
[돌밭집] (들어오며 귀찮은 듯) 애그 이 망할 눔의 똥돼지가 어디 갔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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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일하는 정을 발견하고) 이크 큰일 날 뻔했네! 욕지거릴 해서--- (일부로 큰소리로 존경어를 쓰며) 아니 이 정생원님을 좀 뵈야겠는데 댁엘 가면 여길 나오셨다 여길 나오면 댁엘 돌아가셨다 정말 이거 미칠 노릇인걸 (콧노래 소리 나는 데를 들여다보며) 거기 있는 게 유희 안야?
[유희] 예 나요
[돌밭집] 이팔청춘이란 정말 좋구나 콧노래가 절로 나니- 그래 너의 아버지는
[유희] 저어기--- (턱으로 조밭 쪽을 가르킨다)
[돌밭집] (처음 발견한 듯이 호들갑스럽게) 애그 바로 내 가까이 계신걸 몰랐구먼 그래 정생원님 돌밭집 할멈 예 있소
[정] (이때 나타난다 좃단을 비어 들고-)
[돌밭집] 아이구 얼굴에 이 상처--- 고 놀랜 올빔이 눈깔을 하고 있는 그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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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작자가 그예 생사람을 이렇게 잡아 놨지 난 한 이웃엔 살지만 그 올뱀이의 쌍판만 봐도 구역이 나! 글세 꿈에 볼까 무섭다니까 아이 이 땀 흘리시는 것 봐 (씻어 준다) 정생원님도 안방에 않아서 해다 올리는 진지상이나 받아야 할 나인데 가엽게도 여태 일을 못 놓으니 이게 모슨 꼴이람! 허지만 착한 사람에겐 반드시 때가 있는거고 그 때란 올 때는 반드시 오는 거니까 조금도 낙심 맙쇼
[정] 아니 무슨 일로 찾아왔기에 이렇게 안개를 피이나?
[돌밭집] 자 암말 말구 이거나 받아 두슈 (신문지에 싼 것을 정의 앞에 내 놓는다)
[정] 이게 뭐야?
[돌밭집] 그저 받아 넣으시구려 이 할멈이 시키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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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아니 뭔데 그래?
[돌밭집] 앗다 봐야 맛인가? 흐흐흐--- (종이를 뜯어 알맹이를 내놓으며) 자 장슈연 안유?
[정] 그걸 어쩌라는 거야? 어둔 밤에 홍두깨도 유만부득이지 대관절 어디서 났어?
[돌밭집] 출처를 대면 단박에 까무러 칠려구? 그럼 대리다 놀래지 마슈? 정생원의 지주댁 되는 새기와 집에서 보내셨다우
[정] (의아하여) 박명돌이 한 테서?
[돌밭집] 왜? 허구 헌날 갖다 바치구만 살다가 까꾸로 그 댁에서 한번 받아 보니까 가슴이 어리벙벙허수? 호호호--- 정생원은 수났쇠다 인제 그 「때」가 왔단 말유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긴 담뱃대 입에 물고 가래침 퇴퇴 배앝을 때가 왔쇠다
[정] 그 무슨 소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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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백죄 다 아시면서 아니 그래두 몰루?
[정] 정신 빠지네 너무 흐들루지 말게
[돌밭집] (소리를 낮혀서) 다른게 아니라 그 댁에서 따님을 며느리로 달라는 거야
[정] 유희를? 그 정말야?
[돌밭집] 에그 좋아서! 흐흐흐--- 정말 생원님 땡 잡았쇠다. 서울로 공부 갔다온 그 댁 외아드님이 알고 보니까 유희한테 홀딱 반했구먼! 요즘 학생 데련님이란 참 우습습디다 세상에서 상사병 상사병 해도 말만 들었지 어디 겪어야 봤나요? 헌데 그 데련님은 정말 상사병에 걸렸구먼! 앗다 그 상승을 하던 씽씽이두 안 분다니까 그래
[정] 허-참
[돌밭집] 정생원 이런 깨판이 어딨겠수? 으래 혼인하길 합죠?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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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
[정] ---
[돌밭집] 아니 이게 뭐 생각하구 있을게유? 얼른 응허구 사주단자 보내슈 내 말 안 듣다간 큰 후회하리라
[정] (내놓은 담배를 도로 주며) 이것 가지구 가우
[돌밭집] (의아해서) 이 무슨 짓유? 언젠고 내가 대추 때문에 욕지거릴 했더니 그게 아직 안 풀려서 이러슈?
[정] ---
[돌밭집] 아니 그럼 생원님도 하나뿐인 딸자식을 동욱인한테 아주 따 멕히구 말테유?
[정] 누가 그 원수 놈의 집에다가 내 딸을 준대?
[돌밭집] 그렇쟎다문야 이 복상을 박찰게 뭐유?
[남씨] (아침밥을 이고 조금 전부터 등장하여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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섰다가 이때 남편에게) 여보 정말 동네가 창피해 못살겠소 동욱이란 녀석하고 우리집 유희가 원두막에서 늦게까지 놀았느니 산으로 머루 따먹으려들 다녔느니- 이런 해괴망칙스런 소문만 도니 이 일을 어떻거문 좋소? 옛말에두 물이 아니문 건너질 말구 인정이 아니문 사괴질 말랬는데 그놈의 원수놈이 집 자식허구 정이나 깊어지문 어떻거우? 괜히 우물쭈물하다가 다 키워놓은 딸자식의 몸에 험집만 내리다
[정] 아니 왜 이러우? 임자까지 덩달아---
[남씨] 그러문 당신은 과년한 딸자식을 어떻걸 작정이우?
[돌밭집] 그저 얼른 치어 버려야 돼 된장은 묵일수록 맛이 나지만 계집애란 때를 넘기문 못 씁넨다
[정] 그 집엔 안되 아무래두-
[돌밭집] 허기야 그 사둔 되실 새기와 집인 지주 양반은 어려서부터 왜놈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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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고용살이 하다가 그 뒤엔 와선 일본 수비대 통역군 노릇까지 했구 세부 측량대 그 살림을 다 긁어 모운 거라지만 그까짓 게 무슨 험이람! 요즘 세상에 돈만 많았으문 그만이지. 새 기와집 땅이 안백힌 구석이 어딧나-
[정] (화를 벌컥 내여) 개가 사람 껍질 써도 금마구리만 하면 그만이란 말이구려 에키 천하에---
[돌밭집] 앗다 도고하기도 구네! 여보 정생원 그 댁엔들 하고 싶은 혼인을 헐려는 줄 아슈? 똥구멍이 열댓 발이나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인하고 뭣이 답답해서 얼르겠느냐고 그 댁에선 딱 질색을 허는걸 그 학생 도련님이 상사병이 들었느니 어쩌니 하고 내가 나서서 동네방네 소문을 터트리고 뒤집고 흔들고 우기고 해서 그나마 여기까지 밀고 온 혼담야 앗다 유희 엄마는 왜 가만히 섰어 같이 좀 밀어 주지 않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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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이 이는 한번 안하다하문 막무가내는 성미가 돼서-
[돌밭집] 그렇게 고집 세지 말고 여보 정생원---
[정] 아무리 흔들어도 응 대답은 안 할 테니까요---
[돌밭집] 정말 응 소리 못하겠소!? 정말 못해? (팔을 걷고 대들어 정의 멱살을 비틀려고 한다)
[정] 찰거머리 같이 왜 이래?! 엥이 내가 피해야겠군! (퇴장)
[돌밭집] (정의 뒷덜미에다가 마구 퍼붓는다) 복인지 똥인지 분간도 못하는 이런 벽창호! 똥되지! 아무리 총구멍 같은 눈깔이기로 저렇게 앞을 내다보지 못해? 두고 봐 그 지줏댁 홀대했다간 좋지 못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테니---
[남씨] 돌밭집 할멈 땅 밖에 파먹을 줄 모르는 농사꾼이 돼서 그러니 지주 댁엔 아예 나쁘게 말하지 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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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엥이 참! (돌밭집 화가 나서 퇴장)
[남씨] 여보! 여보! (하고 남편을 부른다)
[정] (나타나며) 엥이 지긋지긋 해라 다시 만날 가 무섭다
[남씨] 애그 어떻거우? 그물코가 열이면 안 걸릴 날이 없다구 그 박주사댁 청을 안 들었으니 앞으로 무슨 화를 입을지 알겠수? 고집 그만 세우고 유희를 그 집에 주어 버립시다 사돈집이 마음에 안 들면 어때요? 딸의 덕에 부원군도 한다고 그 댁 덕으로 그 대추나무나 도로 찾으면 그만 안유?
[정] (정진이 번쩍 돌아오는 듯) 뭐? 대추나물?
[남씨] 그 댁 세도로 지금 세상에 못하는 게 뭐유?
[정] 아 안야 (하고 유혹을 물리치며) 유희는 우리에겐 둘도 없는 외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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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에그 난 모르겠소 아침이나 자슈 (이고 왔던 함지박을 내놓는다)
[정] (밥을 먹기 시작)
[남씨] (새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아니 조밭에 웬 새가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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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 두우 이왕지사 떠나는 마당에 새들이나 싫건 배를 채우게-
[남씨] 후어이! 후어이! (새를 쫓는다) (쇠돌 아범 등장 화가 잔뜩 났다)
[쇠돌아범] 에이 고약한 인심 같으니! 고향을 떤다니까 질질 끌기만 하면 그냥 내버리구 갈 줄 알구
[남씨] 왜 이렇게 화가 났수?
[쇠돌아범] 저 윗마을 양서방이 함을 한짝 사겠다기에 내 주었더니 이 망할 놈의 인사 보슈 여태 끝전을 안 치르고 끄습니다 그려 그래 한바탕 싸우구 가까스로---
[정] 여보게 쇠돌아범 우린 내일이라도 그만 떠나세
[쇠돌아범] (의아한 듯이) 왜유?
[정] 여기 있으니까 시시한 일만 생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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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돌아범] 그래도 일생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델 가는데 앞뒷일을 환히 맑혀 놓고 가야쥬
[정] 그러면 언제쯤 떠나게 되겠나?
[쇠돌아범] 타합을 해 보쥬
[정] 타합이라니?
[쇠돌아범] 소식 못 들었던 가유?
[정] (좋아서) 아아 다른 동행이 또 생겼어? 누구야?
[쇠돌아범] 덮어 달랬는데 이 고쟁을 아주 벗어날 때 까진
[정] 걱정마아 입에야 낫살 더 먹은 내가 더 무거울 테니까.
[쇠돌아범] 다른 사람이 아니구 동욱이두---
[정] 그 새끼가 우리와 같이?
[쇠돌아범] 참 잘 됐쥬?
[정] 그눔의 애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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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돌아범] 아니유 혼자서유
[정] 혼자? (생각더니) 난 그만 두겠네
[쇠돌아범] 그 애하고 같이 가다가 무슨 누를 입으실까봐?
[정] 누고 뭐고 난 싫으이
[쇠돌아범] 걱정 마슈. 주재소의 의심받을 혐의는 조금두 없으니까. 그 애두 우리와 마찬가지로 넓은 천지에 가서 싫건 농사나 지어먹겠다 그거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거든유 밖으로 말을 내지 말라는 건 즈의 아버지가 알까봐 그러는 게예유
[정] (아내에게) 여보 세산 팔려고 내놓은 것 도로 걷어 드려요 그리고 이미 판 것은 돈 도로 주고 물르구-
[쇠돌아범] 같이 가서 살자구 철석같이 언약해 놓구 지금 와서 이 무슨 짓유?
[정] 자넨 그 애하고 같이 가문 그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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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돌아범] 이 아주머니가 안 가문 우리 예편네도 안가겠다는 걸유 타판에서 말동무가 없으문 외로워 못산다구
[정] 날 잡아 죽이게-
[쇠돌아범] 우린 세간두 거진 다 팔았어유?
[정] 손해 배상을 청구하게
[쇠돌아범]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세유? 대관절 왜 못 가겠다는 거유?
[정] 이유도 없다네
[쇠돌아범] (화가 나서) 잇다 그만 두슈 임자 아니문 갈데 못 갈까봐?!
[정] 제발 동욱이란놈 데리고 훨훨 날라 가란 밖에
(쇠돌아범 퇴장)
[페이지] 120
[남씨] 글쎄 세간까지 거진 다 팔게해 놓구 이게 될 말유?
[정] 하는 수 없지
[남씨] 안되다 유희야 너 가서 쇠돌아범 도로 불러와 얼른---
[유희] 예 (하고 쇠돌 아범의 되를 쏜살같이 쫓아나간다)
[정] (벼락같은 소리로) 안돼! (유희 주춤 선다) 이년 유희야 이리 오너라 아까 애비가 여기 나왔을 적에 그 동욱이 녀석하고 정말 구린입도 안 떼었니?
[남씨] 어머나--- 그 녀석이 여길?
[정] 요 대답 못 하는걸 봐요--- 네가 아무리 시치미를 떼두 애비는 못 속인다 그 녀석하고 같이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그랬지? (유희 무언. 더 큰소리로) 왜 대답을 못해?!
[유희]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동욱일 다신 안 만나겠다고 맹세한 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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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요. 허지만 맹세를 하던 그 순간에도 실상은 제 가슴의 한구석에는 어딘지 눌르면 아른 종기 모양으로 동욱이의 생각이---
[남씨] 그럼 넌 동욱일 영영 못 잊겠단 말이냐? 왜 말을 못해---
[유희] --- (울어 버린다)
[남씨] 어마나---
[정] 허는 수 없다 여보 이년을 기손이 놈에게 주어 버려
[유희] 아버지!
[정] 이년 보기 싫다!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어라 (유희 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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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년을 데리고 집으로 가요 나는 이 길로 돌밭집 할멈한털 갈 테니까
[유희] 아버지! (하고 매달린다 그러나 정은 뿌리치고 퇴장 유희는 쓰러져 운다)
[남씨] 에그 요년아 이 에미 시키는 대로 진작 기손이한테 시집만 갔던들 이런 곡경은 안 치렀을 것을 그 동욱이 녀석하고 밤낮 뿌-국 뻐-국 하다가 그만 이 지경이지
[유희] (울음을 걷우며) 어머니 기손이헌테 정말 가야 허우?
[남씨] 너의 아버지의 그 쇠고집을 누가 막니?
[유희] (느낀다)
[남씨] 애그 그만 해라! 저 산에서 누가 내려다보겠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엔 해괴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함지를 들며) 자 이것 여라 집으로 가게!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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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어머니는 남편의 지게를 지고 퇴장 훌적어리는 유희를 앞세우고--- 동욱이 유유히 노래를 부르며 토끼를 넣은 바구니를 끼고 뛰어 들어온다)
[동욱] (주춤 서서 사방을 두루 살핀다 그러나 유희가 안보이니까 뿌우꾹! (귀를 기우리다. 유희의 대답 소리가 없다 목을 길게 빼어 더 큰 소리로) 뿌우국! 뿌우국! (그래도 아무 반향이 없다) 웬 일일까? 벌써 일을 걷어 치었나? (사람 오는 기척 바라본다 좋아서) 오오 유희가 저기에- (유희 다시 등장 동욱 숨는다)
[유희] --- 숭늉 주전자가 여기 있었을 텐데--- (하고 찾다가) 아 옛군! (굽우려 주전자를 잡으려 한다)
[동욱] (나비 걸음으로 삽분 삽분 접근하여 유희의 눈을 누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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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우구?
[유희] 아이! (동욱의 손만 떼어 내려 한다)
[동욱] 알으키문 나 주우지
[유희] 아이 참! (더 앨써 동욱의 손을 떼치려 한다)
[동욱] (유희의 몸을 휙 돌려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와! 이래두 날 몰라?
[유희] (주전자를 도로 주어 들고 본체만체 나가려 한다)
[동욱] 유희야 나야 동욱일 몰라? (하며 앞을 가로막으며 유희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유희] (침통한 얼굴로 그러나 날카롭게) 저리 비켜!
[동욱] 하하하--- 성났구나 눈이 아파 그래? 내가 너무 눌려서 (유희의 눈을 만져주려 하며) 어디?
[유희]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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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참 이걸 보문 담박에 나을 거야 이게 뭔데? 이거? (바구니에서 토끼를 꺼내 보인다) 산토끼 새끼! 하하하--- 금방 이리 오는 길에 저 뒷산에서 잡았어 이것 봐 간도는 추우니까 이걸 키워 가지구 이 털을 옷에 받쳐입거든! 자 여기 두 마리 있어 이 눈이 똥그랗구 이쁜 놈은 유희 주께 새끼를 자주 치니까 올 겨울까진 제법 여러 마리 될걸 유희 우린 간도 가서 똑 같이 토끼 옷 입겠네 그렇지 하하하---
[유희] (울먹울먹하여) 아이 왜 이렇게 수선이야?
[동욱] 별안간 뭣에 틀렸어? 말을 해봐
[유희] (아무리 참으려 해도 입술만 자꾸 삐쭉으려질 뿐이다)
[동욱] 아니 유희 울고 있는 게 안야?
[유희] (견디지 못해 동욱의 품에 쓰러지며 큰 소리로 운다)
[동욱] 왜 이래? 유희 왜 우는 거야? 응? 말을 해야지 그래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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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유희] 아까 우리 둘이서 꾸던 꿈은 이 세상에선 다시 그려볼 수 없는 정말 꿈에 지나지 않게 되 버렸어
[동욱] 그게 무슨 소리야? 별안간? 청천벽력도 유만부득이지
[유희] 난 못 가게 됐어
[동욱] 왜?
[유희] 동욱이가 같이 가는 줄 알구 우리 아버진-
[동욱] 안 가시겠다는 거로군!
[유희] 음
[동욱] 엥이 빌어먹을! 그 대추나무 싸움을 우리한테까지 껄어 붙일게 뭐람!! (하며 화가 나서 바구니를 찬다 바구니 뒹굴어 그 안에 들었던 토끼 기어 나와 숲 사이로 내 뺀다)
[유희] 저 토끼 잡아요 (토끼의 뒤를 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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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유희 유희가 안 가문 나도 안 가마 나두 안 가구 여기서 살 테야 너하고 같이-
[유희] 안돼 그건 안돼! 동욱인 우리나 쇠돌아범처럼 못살아 고향을 떠나는 도망군이가 아니구 큰 뜻을 품고 그걸 살리기 위해서 가려는 게 안야?
[동욱] 내가 이번에 못 떠난다구 내 큰 뜻을 내동댕이 치는 것두 아니구 그리고 그 뜻이 살아지는 것두 안야 너를 예다 두고 나만 떠나문 넌 어찌 돼? 넌 갈 데 없이 남의 해가 되구 말지 않어? 그러면 우린? 안돼 안돼 어 무슨 꾀를 쓰더래도 나두 같이 남아 있어 그걸 막을 테야 그래야 돼 (유희 모 남씨 도로 나타난다)
[남씨] (들어오면서) 아니 주전자를 어디 두었기에 여태 못 찾누 (그제야 동욱이를 발견하고) 아이구 저 녀석이 또---
[동욱] 아주머니 유희허구 잠깐 얘기할 일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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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동욱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이년아 아직도 애비 에미 말이 귀에 안 들어갔냐? 미친 짓 작작하고 이리 나와! 빨랑
[유희] 어머니 먼저 가세요
[남씨] (껄며) 여기서 망신하지 말고 어서! (여자들의 노래 소리 산에서 들린다) 에그 저기 동리 계집애들이 오나부다!
[동욱] 유희 어머니 모시고 그만 가 모든 일을 나한테 맥기고 조금도 맘 썩이지 말구 낙심도 하지 마아
(간난이와 숙이 산나물을 캐가지고 등장)
[간난이, 숙이] 아이 아주머니두 나오셨구료?
[남씨]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으음---
[간난이] 유희가 울고 있는 게 안야? 유희야
[유희] 아이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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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싸고 먼저 내뺀다. 동욱이는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간난이, 숙이] (의아하여) 쟤가 왜 저래요? 아까는 이 세상의 모든게 저 때문에 생긴 것 같이 좋아하더니---
[남씨] 사람이란 혹 그 그렇게 되는 수도 있지--- 저어 너희들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냐?
[간난이, 숙이] 예
[남씨] 그럼 가자
(일동 퇴장)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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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4막
(제 1 막과 같은 무대 전막과 같은 날. 그러나 벌레 소리 유별히 낭자한 밤.
동욱과 유희는 각각 자기 집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동욱은 불안 초조에 빠져 있고 유희는 수심에 잠겨 있다 그러나 최만은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행복에 젖어 부지런히 작대기로 대추를 따고 있다. 그의 머리에는 고약이 붙었다. 정과의 싸움에서 얻어터진 상처다. 놀랜 올뱀이 같은 그의 눈은 더욱 핼숙하다.
[최] (땅에 떨어진 대추를 주어 바구니에 담으며) 얘 동욱아 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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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한 알 깨물어 보렴. 제법 맛이 들었구나
[동욱] 아버지 쇠돌아범 집에 왜 안 가보세요.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항아리를 판다던데 꽤 좋은거래요.
[최] 싫다 이놈아--- 집이 비문 또 저 원수눔이 계집애하고 시시덕 거릴려구. 나 대신 너나 갔다 오너라
[동욱] 내가 가서 무슨 소용예요. 아버지가 가셔야 사고 안 사고 결정을 할게 안예요? 정말 참 이븐 항아리래요.
[최] 그럼 이 대추나 주어 담아라. (동욱에게 바구니를 맷기며) 저눔의 집 계집애하고 말을 건넜단 봐라!
(최세영 동욱을 흘겨보고는 퇴장)
[동욱] (그의 아버지의 사라짐을 기다려 울타리 틈으로 옆집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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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혼자 마루 끝에 앉았다. 소리를 죽여 조심성스럽게) 부우꾹!
[유희] (정신이 바짝 드는 모양이다. 발소리를 죽여 동욱을 찾아 울타리 쪽으로 접근하려 한다)
[남씨] (부엌에서 일하다 나와 보고 벽력같은 소리로) 이년아!
[유희] (깜짝 놀래 못 백힌 듯이 그 자리에 섰다)
[남씨] 이리 못 오겠냐?
[유희] 내가 사람이 아니구 개 짐승이우? 왜 꼼짝 달삭두 못하게 허슈?
[남씨] 저게 수일 안으로 성례를 해야 할 계집애로서 헐 소리냐? 이년아 에미 죽는 꼴 못 봐서 이러냐?
[유희] --- (할 수 없이 물러난다)
[남씨] 냉큼 못 들어가겠냐? 방구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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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방으로 들어간다)
[남씨] (성이 나서 방문을 메다꽂는다)
[동욱] 저렇게 기를 꺽으니 어떻게 살아?
(이때 돌밭집 할멈 바쁘게 등장)
[돌밭집] 아이구 유희네---
[남씨] 돌밭집 할멈 어서 오슈. 대관절 어떻게 됐우?
[돌밭집] 갈데 있나. 내가 쪼이는 대로 탁방이 나구야 말았지 뭐
[남씨] 정말 수고 했쇠다 할멈
[돌밭집] 사또 덕에 나팔 분다구 앞으로 내 고생한걸 잊지나 말아야 해 하여튼 등불 내달구 떡솥에 불이나 짚이게나 빨랑
[남씨]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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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식구들은?
[남씨] 유희는 방안에 있구 애 아버지는 할멈을 기다리다 못해 밖으로 마중 나갔지. (초롱에 불을 켜 추마 끝에 내걸다가) 바로 저기에
[돌밭집] 정말
(정태근 등장)
[남씨] 여보 좀 빨랑 와요.
[돌밭집] 정생원 오늘 저녁에 사주단자하고 혼수를 한꺼번에 가지고 오기로 했쇠다. 어떻소?
[정] 오늘 저녁에?
[돌밭집] 정생원이 빠르문 빠를수록 좋다! 그렇지 않었우? 앗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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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됐지 뭐
[정] 빠른 건 좋기는 하지만 우리 집에 무슨 준비가 됐어야지.
[돌밭집] 아까 내가 유희네한테 똥겨 주었더니 벌써 떡 한 시루를 앉혀 놓았다는구먼. 그것이문 됐지. 벌게 있습디까?
[정] 그집은 우리 보다 처지가 나으니까 보는 게 앉지 않겠소?
[돌밭집] 저쪽에서 색시를 싸 가지고 가는 판인데. 아무러면 무슨 숭 잽힐게 있겠우.
(이때에 하모니까 소리 언덕 위에서 들린다)
[남씨] 신랑이 오는 게 안유?
[돌밭집] (언덕 위에 나타난 기손을 가리키며) 정말! 저것 보오 저 씽씽이를 불며 좋아서 우쭐거리는걸
[정] 하하하--- 좋기는 무던히 좋은 모양이군.
[돌밭집] (부른다) 새신랑님 이리 내려와서 막걸리나 사시우. 얼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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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까--- 인제 곧 이 댁이 처갓집이 될텐데 뭣이 부끄러워 저러셔?
[기손] 정말 괜찮우? (싱글거리며 유희 집 마당에 들어선다)
[돌밭집] 애그 학생 데련님이란 음흉스럽기두 허지. 침식을 딱 끊구 고롱게루 이 할멈 속을 썩이더니 이것 봐 지금은 오뉴월 장마에 구름 베껴지듯 언제 소낙비가 왔더냐 하잖어? 히히히--- 인제 아프신데 없나유?
[기손] 하낫!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전결했다는 표시로 뢰디오 체조를 해 보인다. 돌밭집 할멈과 유희 어머니는 물론이요 정태근까지도 아랫배를 움켜쥐고 웃는다)
[돌밭집] 자아 도련님 그만하문 신랑감으론 훌륭한 줄 알았으니 올라 앉으슈.
(남씨가 채려 가지고 온 술상을 받아 놓는다)
[기손] 유희는? 방에 있지? (하며 방문을 연다)
(유희, 방안에서 방문을 탁 닿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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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왜이래?
[남씨] (막으며) 아이, 성미두 급허셔. 대례를 치르기 전에 함부로 신부를 보는 법이 아니라네.
[기손] 우린 피차에 연애 결혼인데두?
[남씨] 법은 법이지
[돌밭집] (술을 따르며) 하여튼 댁엔 인제 소원성취 했쇠다. 이 돈 많구 세도 많은 새 기와집 데련님의 처가댁이 됐으니 동리에서 다르게 볼 건 두말 할 것 없구 저 안달뱅이 올뱀이두 인제 못 백여 날 테니까.
[정] 그럴까?
[돌밭집] 그럴까가 뭐유? 박주사께선 주재소를 마치 자기 집 문턱 드나들 듯 하시는데--- 그렇잖소. 도련님?
[기손] 우리 아버지가 일본말로 고레 요로시 아레 나뿐」하고 한마디만 삐쳐 봐. 단박야. 저 대추나무두 찾아내죠. 아버지한텐 내가 여쭐 테니 인제 마음 턱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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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시우 아저씨.
[돌밭집] 아저씨가 뭐야 장인 영감이지.
[기손] 참 장인 영감
[정] 하하하--- 영악해 보기완 딴판야
[기손] 도대체 접때 일순사의 그 판결이 틀려먹었었어.
[남씨]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나?
[기손] 옆에서 보고 있자니 분이 나서 참! 저쪽에서 사대조랄 때 우리는 팔대조라지 않었어요? 그렇다면 하루라도 먼저 심은 편이 저 낭구를 차지해야죠. 그래야 경우가 옳지 않아요?
[정] (무릎을 치며) 암 그렇구 말구--- 그래서 나는 이사는 팔! 팔대조랬거든
[돌밭집] (막걸리를 한잔 켜고) 사대조구 팔대조구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내가 처녈적에 저 대추나무가 바로 이 정생원 댁 앞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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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서 있는걸 이 눈으로 봤는걸.
[정부처] (눈알에서 광채가 번뜻하며) 그 정말유, 할멈?
[돌밭집] 바른 입으로 왜 삐뚜로 주린을 부러요?
[정] 그게 사실이라문 다시 내가 고발을 헐 테야
[돌밭집] 해요 해! 그땐 증인으로 나서. 내가!
[정] 정말?
[돌밭집] 누구의 일이라고 내가 안 나선담-. 경찰서구 재판소구 어디든지 가서 큰 소리로 말하지 이 낭구는 정태근씨 소유라구
[정] (통쾌하게 웃으며) 하하하--- 새 사돈의 세도가 뒷받힘을 하는데다가 게다가 또 증인까지 생겼다? (남씨에게 술을 주며) 여보 한잔해요 저 나무는 인제 영락없이 우리해야 우리가 도로 찾게 됐어.
[기손] 그뿐인가요 동욱이 녀석 마저 이 동리에서 내쫓아 버리고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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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왜?
[기손] 그자하고 한 동리에 살문 첫째 기분이 나뻐.
[돌밭집] 그 옳은 말유 유힐 지꾸 넘겨다 볼 테니까.
[기손] 하하하--- 대추나문 빼았기구. 아들 없어지문 저 안달뱅인들 별수 있나 보따리 싸는 수밖엔. 그땐 헐값으로 저 집 마저 사드리께. 그렇걸랑 저 울타리 쳐 없애구 한집으로 맨들어 버리슈.
[정부부] 이게 꿈이 안야?! (서로 얼굴을 치어다 본다. 황홀하여)
[기손] 그게 어려운 일요?
[돌밭집] 호호호--- 덕분에 이제야 우리 동리 사람들도 잠 좀 자게 됐군.
[정] (술에 상기된 흥분을 여직할 길이 없어. 소리 질러 노래 부른다. 최더러 들어보라는 듯이) 걸렸구나 걸렸구나 빤빤스런 올뱀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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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스런 그 날갯죽지 내 솜씨엔 못 견딜걸.
(이때에 최세영 항아리를 끼고 나타나다가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우리더니-
[최] 저 똥돼지가 나를 두고 저런 소릴 하는 게 안야? 틀림없구나. (안 지겠다고 노래로 응수한다) 남의 해를 못 먹어서 부비 대고 발버둥치는 꼴 못 보겠군 꿀꿀꿀 똥돼지야 총구멍 눈깔 똥돼지야
[정] (계속해서) 이눔아 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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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넓은 땅에
남의 해를 생짜로 먹구
제대로 새기는 놈을
[최] (목소리를 도꾸어) 똥돼애지 더런 짐승
남의 해가 탐이 나서
꿀 꿀 꿀 꿀 꿀 꿀
동리 망신 그만하고
구구로 잡바저라
[동욱] 아버지. 또 왜 이러세유?
[정] (안질려고 더욱 기를 써서) 안달뱅이 놀랜 눈깔
낮 눈 어둔 올뱀이 눈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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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천벌 너 아느냐?
새바람에 바들바들!
[유희] (방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아버지!! 그 소리 좀 못 그치시겠어요?! (하고 악을 쓰고는 쓸어져 운다)
[기손] (여태 정을 응원하여 그에게 자꾸 불을 지르다가 이때야 비로소) 아저씨 그만 허세요. 유희가---
[최] (노래 계속)
천벌이면 네가 받지
나같이 바른 사람
이 세상에 또 있더냐?
똥돼지 더런 놈아.
[정] 내가 저눔한테 져? 저리 비켜! (또 노래 시작한다) 이놈 올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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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손] (손으로 정의 입을 막으며) 아저씨---
[동욱] 아버지 그만 두세요. 이러다간 또 피 흘려요.
[최] 날더러 지라는 거냐?
[동욱] 대추나무를 빼았었는데 지긴 누가 져요.
[최] 참 내가 이겼지. (아들에게 밀려 방안으로 들어간다)
[기손] (우는 유희를 보고) 유희는 아직두 동욱이네 편을 들고 있는 게 안야?
[돌밭집] 그럴 리가. 동리가 창피스러워 그런 거지 더구나 오늘과 같이 경사스러운 날에. 되련님, 도련님은 그만 들어가시지. 인제 장가 드시문 할 얘기가 모자랄 만큼 허구 헌날 이 댁에서 사시게 될 테니까.
[기손] 그럼. 돌밭집 할멈만 믿구 난 가우. 안녕히들 주무세요. 유희야 간다. (경쾌한 멜로디를 하모니카로 뚱차거려 동욱의 집을 조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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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며 퇴장)
[남씨] 유희야 방으로 들어가라. 그만 울고--- (하며 부축하려 한다)
[유희] 놔요. (화가 나서 뿌리쳐 버리고는 마루 한구석으로 간다)
[남씨] 쟤가 저렇게 안 풀리니 어떻게 해요?
[돌밭집] (유희에게 안 들리게 가만히) 걱정 마아. 이 동리에서 내 손을 거치지 않은 혼인이 별로 없것만 어느 집 규수치고 애초엔 이렇게 속을 안 썩인 데가 없었어. 허지만 억지로라도 한방에 잡아넣고 문만 잠가 놓으문 제절로 정분이 나는 법야. 마치 봄바람이 산들거리면 죽은 가지에서 엄이 틀 듯이. 이게 음양의 도리거든. 호호호--- 난 가서 선채함을 지어 가지고 와야겠어! 곧 올 테니 기다리슈. 두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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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할멈 바쁜 듯이 퇴장.)
[정] 나두 참 왜 진작 그 새부잣집에 내 딸 줄 생각을 못했던구?
[남씨] 그러니까 당신더러 맥혔다는 것 안유?
[정] 인제 곧 선채함이 들어온다. 아아 속이 다 후련해지는구나. (환상에 사로잡혀) 여보. 임자의 평생 소원이 뭐랬지? 뭐든지 다 해주께. 돈과 세도로 되는 일이라면---
[남씨] 난 아무 것도 소용없소. 저 올뱀이눔의 집구석이 거덜이 나서 쫓겨 나가는 걸 보는 것밖엔---
[정] 이놈. 올뱀아 왜 그렇게 내 문전에서 떨고 섰느냐? 뭐? 밥한 술 달라구? 이애. 부엌 아가! 저 거러지 과연 불상쿠나. 식은 밥이라도 한 덩어리 주어 보내려무나. (백만장자가 된 자기 집 내전에 걸인 최세영이가 나타난 것처럼 다룬다)
[남씨] 호호호--- . 애그 당신두--- 벌써 높다란 소슬 대문 집에 들어앉으신 것 같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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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래서 자식이 좋다는 거로군. 얘 유희야 이리 온!
[유희] 싫어요--- 싫어요! (볼 수 없다는 듯이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정] 저런 놈의 새끼!
[남씨] 차츰 바로 잽힐테니까. 모른 체 해두슈.
[동욱] (바구니를 들고 정의 집의 마당엔 나타나서) 저어--- 아저씨---
[정] 아니 저기에 나타난 것이 작은 올뱀이 안야?
[남씨] 그렇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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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뭘 비럭질하러 왔냐?
[동욱]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정부부] 뭔데?
[동욱] 그동안에 따 말린 대춥니다. 앞으로두 더 따드릴테니 그 동안에 싸인 감정은 제발 물로 흘려 버리시구 옛날 그대로 구수하게 지내 주세요. 남을 미워하는 맘이란 붙는 불 같애서 안 끄면 자꾸 번지기만 합니다.
[정] 하하하--- 이 자식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걸 죄 엿들었구먼 그래.
[남씨] 그래. 거지 쪽박을 차기 전에 살려달라는 거죠.
[정] 하하하--- (아내와 같이 통쾌하게 웃는다)
[동욱] 결단코 그래서가 아닙니다. 아저씨.
[정] 예키 죽일놈! 저 대추나무를 송두리채 빼앗길 상 싶으니까 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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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몇 되를 가지고 사람을 농칠려구? 이놈아 내가 누군 줄 알구 그따위 수단을 쓰느냐? 이 여우같은 놈!
[동욱] 그래서가 아닙니다. 제발 오해 마시고 제 진심을---
[정] 굳이 날 없운 여길 테냐? 이 새끼! (벽력같은 소리를 지른다)
[동욱] 아저씨하고 우리 아버진 처마를 나란히 이 두 집에서 각각 나서 갓난 애길 때엔 같이 손길 잡고 걸음마를 배우고 자라선 종종 머리 땋고 같이 소멕이러 다니고 여름이면 저 아랫 개울에서 빨가벗은 알몸뚱이로 멱도 같이 감고 겨울이면 서당에서 글도 같이 배웠다구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한 형제 부럽잖게 그렇게 으이 좋게 자르신 두 분이 나라가 어수선해져서 살기가 어려워졌다구 여태 문제도 삼지 않던 저 대추나물래 철천지 원수가 돼서야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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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저 미련한 게 저렇게 구슬리문 옛다 하고 유흴 내 놓을 줄 알구 저래요.
[동욱] 내가 말하고저 하는 건 우리가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하나가 돼야지 이렇게 엇발이 나다간 갈수록 더 못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줍시사는 겁니다.
[유희] (조금 전에 방에서 나와 동욱의 말을 듣고 있다가 간절히) 동욱이 아무리 말해두 소용없어. 머리끝부터 발뒤꿈치까지 욕심밖에 차 있지 않는걸. 어떻게 앞을 내다보는 동욱이의 그 뜻깊은 말이 바로 들어가겠어?
[동욱] 도대체 유희 그러면 어떻게 해 우린?
[유희]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 내려오며) 우선 우린 우릴 살려야 해. 우리의 재주껏-
[동욱] 그만 내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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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 (단연히) 그래.
(동욱과 유희 손을 붙들고 내다르려 한다)
[정] 유희야!! (벽력같은 소리를 지른다)
(두 사람 주춤 선다)
[남씨] (어느새 달려들어 유희를 낚아 냈다) 네가 미쳤니?
[동욱] 아저씨 아주머니의 하시는 일은 이건 너무나 억지예요. 이따 후회하시지 말고 유흴 내 놓으세요. 유희와 저 사이는 뗄래야 뗄 수 없어요. 한집에서 자른 남매의 정을 떼어놓을 수는 있어두 우리는 못해요. 동리에서도 우리를 저 울타리를 살피로 자란 두 은행나무라고들 그러지 않아요. 제발 아저씨 아주머니 유흴 이리 주세요
[최] (바깥의 요란한 소리에 방에서 나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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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육시랄 새끼가 대추 바구니를 송두리째 가지고 가서--- (바구니를 안으며 기를 쓰고 부른다) 이주릴할 동욱아!!
[동욱] (급히 덤벼 유희를 빼앗으려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쩔 줄을 모른다)
[최] 이런 썩어 빠진! (아들의 덜미를 짚어 밀어 넣는다)
[동욱] (마루에 쓰러져 큰 소리로 느낀다)
[최] 마침 나와 봤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말려 놓은 대추 바구니채 주어버릴뻔 했지
[남씨] (마루 끝에 업더려 역시 울고 있는 유희더러) 계집애란 부모가 시키는 혼인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법인데 이건 제물에 바람이 나서 이웃을 요란케하니 이런 망칙스런 일이 조선 천지에 어디---
[정] 누가 본 사람이나 없을까? (걱정스러운 듯 행길 쪽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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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요것아 집안 망신 작작 시키고. 방으로 들어가라. 냉큼!
[최] 이게 사람의 새끼야 제 애비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런 게
[정] 왜 여기서 궁상이야?!
[남씨] 얼른! (유희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최] 한 번만 더 애비의 말을 우습게 알구 저 원수눔의 집에 발걸음을 했단 봐라. 그땐 너눔 죽구 나 죽구 그럴 테니까. (방으로 도로 들어간다)
[동욱] 에이 빌어먹을- (대추 바구니를 땅바닥에 동댕이친다. 마당 하나로 대추가 헝크러진다)
(명이 남의 눈을 피해 어둠을 타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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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소리를 죽여) 동욱아.
[동욱] (얼른 눈물을 씻는다)
[명이] 이것 잘 간수해 두어. (하고 편지를 한 장 내어 동욱에게 준다) 이 선생님이 써 주신 추천장이야. 너를 간도 군관 학교에 소개하는---
[동욱] 고마우이. (호주머니 속에 넣는다)
[명이] 헌데 동욱이 큰일 났어.
[동욱] ?
[명이] 이 선생이 놈들한테 또 붙들려 갔다는 거야. 금방 읍내에서 은밀히 그런 기별이 왔어
[동욱] 무슨 사건인데?
[명이] 이번엔 뭐가 심상치 않은 모양야.
[동욱]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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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이 선생을 붓들어가두 전자엔 한 두 놈밖엔 안 왔었는데 이번엔 셋이나 들어 닥쳤대. 그래 사모님두 꽤 걱정을 하고 계시다는 거야. 허지만 넌 운수가 좋았어. 미리 그 추천장을 받아서. 그렇잖었던들 이번엔 못 떠날 뻔 했지. 그래 행장은? (대답이 없으니까) 왜 이러구 있어? 쇠돌 아범은 내일 새벽엔 떠난다는데---
[동욱] (숨겨 왔던 가방을 하나 껄어 낸다)
[명이] 요즘 강능쪽으로 나가문 함경도로 가는 소금배가 더러 있대. 그러니 여길 떠나거든 바로 그 쪽으로 가. 그럼 큰 고생하잖구 목적지에 득달할테니까. 참 그러구 이건 내가 주는 기념품이야. 이게 뭔지 알겠어? (종이에 싼 것을 내어 뵌다) 자아 차돌이 한 개. 이건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비바람에 시달린 거야. 이 말없는 돌맹이가 뭘 의미하는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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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의 손에 잽혀 준다)
[동욱] 명이 난 모르겠어. 떠나야 하는지 그렇잖으면 여기 있어야 할른지?
[명이] 자네 심정을 내가 짐작 못 하는 바 아니야. 사내로써 제 좋아하는 색시를 잃는 것만 해두 못 견딜 노릇인데 그것두 다른데가 아니구 우리가 그중 미워하는 눔의 집에다 빼앗겨 버리게 되니 이런 분통이 터질 일이 어디 있겠냐 말이다. 허지만---
[동욱] 아이. 이런. 못난 눔이 살아서 뭘 해? (못견디 듯) 명이, 말해 줘. 어떻게 해야 유흴 살려?
[명이] 참혹한 소리지만 인젠 틀렸어. 돌밭집 할멈이 아랫사람들에게 함을 지어 가지고 지금 곧 일루 온데. 그러니 장은 이미 파장이지 뭐야?
[동욱] 왜 아까 내가 유흴 그대로 들쳐업고 달아나질 못했담!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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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못쓴다는 어려서 서당 구석에서 얻어들은 소리가 생각나서 손을 안 썼더니. 여우의 아가리에 유흴 영영 그만--- .
[명이] 자네 옷들은 어딨지? 내가 챙겨 주께
[동욱] (소리를 빽 지르며 괴로운 듯이) 몰라! 난 몰라!
[명이] 이거 참 큰 일 났군. 이 선생이 잽혀간게 어떻게 확대될는지 모르는데---
[남씨] (부엌에서 들고 나온 떡시루를 마루에 놓으며) 떡은 다 됐는데 돌밭집 할멈한테선 왜 여태 소식이 안 올까? (하며 행길 쪽을 바라본다)
(때마침 박주사집 하인 등불을 켜 들고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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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아이 어서 오시게. 왜 이렇게 늦나 허구 여간 기다린 게 아니라네. (방안을 향해) 여보 이리 나오오. 얼른.
[정] (방에서 나오며 점잖게) 에헴, 수고들 허네 그려. 일루 앉게나 (아내 더러) 여보 술상 내오지.
[남씨] 예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욱] (정의 집으로 뛰어 가려 하며) 저승의 차사같이 유희의 목숨을 앗으려 온! 저눔을 그만
[명이] 여보게 참게. 여기서 소동을 피면 박명돌이의 솜씨에 자넨 단박 유치장 신세밖에 안 지게 돼. 그러면 갈려는 데도 못 가게 되구 망신만 하고 말아. 그러니 제발 참게. 참아. (동욱을 달래여 헛간 구석에다 끌어넣는다)
[정] 길목에 나서서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다가) 함 잽이는? 그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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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할멈은?
[하인] 저 혼자여유.
[정] 자네 혼자라구?
[남씨] (술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다가) 어쩐 일인가?
[하인] 사주 단자두 그렇구, 선채두 그렇구 다 못 오게 됐이유.
[정] 왜?
[명이] (울타리 가까이 나와서 옆집 동정을 살피다가) 동욱이 이리 와.
(동욱이 울타리에 접근한다)
[남씨] 그 이유를 말해야지
[하인] --- 호, 혼사 그만 두신다나 봐유
[정부처] 뭐?
[하인] 여태 까진 안에서 알아했었는데 사랑에서 들으시고 갑자기「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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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셨이유
[정부부] 박주사가?
[하인] 야.
[정] 저런.
[남씨] 그 경망한 돌밭집 할멈이 미처 바깥어른의 소리두 들어보기도 저에 우리더러 떡을 쑤어라! 어째라 하고 수선을 핀거군 그래?
[정] 대관절 그 박가 놈이 왜 그런대?
[하인] 옆에서 얻어듣자니까 이러더군유. 「--- 돈만 있으문 쩡쩡 울리는 서울 양반의 집 색시두 척척 골라잡을 수 있는 이 판국에 하필 두메 농사꾼의 딸년이 뭐냐. 망신살스럽게--- 」아마 서울 양반의 댁에서 갑자기 무슨 혼사 말이 있나봐유. 헹--- 새 기와집두 짓구 했으니까 인제 좀 높직하게 놀아 보자. 이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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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 아아, 이게 무슨 망신이람! (땅을 친다)
[동욱] (너무나 좋아서 명이를 꼭 껴안고) 명이, 하늘이 날 도우셨구나.
[최] (아까부터 방에서 기어 나와 불안한 듯 엿듣다가 이때에) 헤헤헤--- 지화자! 지화자! 이놈 똥돼지야 지성이면 감천이다. 남의 세도 믿고 애꿎은 사람 잡으려면 그 검은 뱃장 몇 발이나 간단 말이냐? 고맙쇠다. 고맙쇠다. 터줏님에 고맙쇠다. (춤을 덩실 춘다)
[명이] 쇠돌아범한테 가서 내일 새벽에 자네두 같이 떠난다는 소릴 일러놓구 오게.
[동욱] 제발! 난 예 있다가 틈을 봐서 유희허구두 짤테니까
[명이] 그래 (명이 급히 퇴장)
[하인] (술상을 물리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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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구 갑니다. (열 적은 듯이 웃으며 물러 나간다)
[최] (춤을 다 추고는 판을 친 씨름꾼을 모시듯 대추나무에 부채질을 해주며) 오오 우리 대추 나무님! 하마터면 저 경우 없는 똥돼지놈에게 넘어가서 큰 고생하실 뻔 했쇠다. 암 큰 고생허구 말굽쇼. 저놈이 얼마나 얌치 없다구요. 남의 걸 넘겨다보는 놈이니 더 말할 것 있습니까?
[정] (분통이 터져올라 씨근덕어리고만 있다가) 이놈 올뱀아 혼인쯤 깨어졌다구 그대로 물러 설 정태근인 줄 아냐? 어림없다. 정태근의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이상 그 대추나무는 찾아내고야 말 테니 두고 봐라!
[남씨] 자아. 가요 가서 체후 결단을 내요!
(정은 어떤 굳은 결의를 뵈듯 아내의 손을 잡고 황급히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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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헹--- 아주 굉장한 기세로구나 (하고 콧방구를 꾸기는 했으나 어쩌지 불안해져서) 아니 저 숭악한 것들이 또 무슨 패를 쓸려구 저럴까? (정의 부부가 나간 쪽으로 숨어서 따라 나가 본다) 그 틈에 동욱과 유희는 피차의 이름을 부르며 약속이나 해둔 듯이 쏜살같이 쫓아 나와 무대 중앙에서 꽉 껴안는다)
[동욱] (벅찬 애정을 억제치 못하여 유희의 얼굴에다 자기의 뺨을 부벼 대며) 유희, 잠시 동안이나마 얼마나 속을 썩이구 애를 태웠어?
[유희] 죽는 수밖엔 살길은 없는가 했었는데 하늘이 우릴 버리시지 않으셨어. (하며 흐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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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인제 걱정 말어. 누가 뭐래두 난 유희한테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설사 죽는 운수가 닥치더라두 이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 땅 속으로 들어 갈 테니까.
[유희] 나두 그럴 테야. 내 소원두 그것야. 정말 무슨 일이 있더라두--- (하며 동욱의 목에 꽉 매달린다)
[최] (다시 나타나 이 의외의 광경에 기겁을 하여) 제 예편네하고 이불 속에서나 남 몰래 허는 짓을 행길에서! 아니 저것들이 개 짐승이냐? 인두껍을 쓴 사람의 새끼들이냐?
[동욱] (유희를 안은 채 태연히) 아버지의 말씀이 아무리 지엄해두 인제 저희들의 사이를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까 부명을 저버리지 못해 유희를 놔주었다가 얼마나 후횔 했다구요. 두 번 다시 사람의 본심을 저버린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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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최] 에이. 삼강오륜두 모르구 체면두 모르는 천하에 배먹지 못한-
[동욱] (더욱 유희를 꽉 안으며) 무슨 꾸지람을 퍼 부으셔두 어림없어요.
[최] 행길 더러워진다 나가거라! 빨랑 나가!! 이 더러운--- 흘레개! (소리친다)
[동욱]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유희야 여기에 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가자고 끄은다)
[유희] 잠간만!
[동욱] 왜?
[유희] 짐이
[동욱] 지체할 수 없다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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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떼어 보내기 전에 뜨거운 키스를 유희의 입술에다 쏟아 준다.)
[최] 저런 뻔뻔스런--- 저런 게 어떻게 내 자식으로 태여 났담! 이게 꿈속이 아니라문 이 세상은 틀림없는 말세다! 말세야. (분한 듯이 그러나 넋 빠진 듯 제 손으로 제 가슴을 친다)
[동욱] 아버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릴 테니 들어주세요. 아버지의 잡수시는 생각은 뭐구 하나도 올바른 게 없으시다는 걸 나는 알았습니다. 아버진 조그만한 이해 관계로 수백 년 살던 이웃끼리 원수가 되는 것두 개의치 않으시면서 제 좋아하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것을 죄로 치부하십니다. 이런 고르지 못한 생각이 어딨어요?
[최] 이눔이 데려 애비를 훈계하는게 아니냐?
[동욱] 그렇지만 아버지. 아버지께 대한 자식으로서의 제 효심만은 변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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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아버지, 제가 어디서 지내구 어떻게 살더래두 절대루 아버질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제발 제 머리나마 한번 쓰다듬어 주세요. 그리고 부드러운 말씀이나 한마디 건네주세요. 전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입때 집에 들어, 한번두 그런 다정한 맛을 본적이 없습니다. (눈물이 꽉 매친 눈으로 최를 다정히 바라본다. 영원한 이별을 앞둔 그에게는 그 아버지가 새삼스럽게 측은하게도 여겨지는 것이다)
[최] (가시밭 같이 거칠어진 그의 가슴에도 약간의 감회가 궨구친 것이다. 그러나) 헹, 자식 알랑거리는 것 봐. 이 대추나물 내놓게 하량으로 네놈이 내게 사탕발림을 한다만 이 애넨 그런 소리에 넘어 갈 만한 애송인 아니야. 난 네가 무슨 소릴 해두 저 원수놈의 딸년을 내 며누리로 안삼겠지만 이 대추 나무두 안 내놓는다. 내가 죽어두 안고 죽을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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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동욱] 아버지 제 머리를 한번 안만져 주시렴니까!
[최] 저리 비켜라 귀찮다.
(이때에 정태근 부산하게 나타난다. 그가 데리고 오는 일순사 그의 뒤를 따르기에 바쁘다)
[정] (들어서면서 호령) 이놈 올뱀아! 꼼짝 말구 거 있거라! 네눔이 제아무리 천하 안달뱅이라도 이젠 갈데 없다. 안 내 놓곤 못 백일게다.
[최] (상대방의 너무나 당당한 기세에 기가 죽어) 이게 어찌 된거여? 일순사를 또 데리고 오니---
[정] (일순사에게) 나으리, 예 잠깐 곕슈, 아까 여쭙던 증인을 내 아내가 곧 데리고 옵니다. 이 증인이야말로 우리 도화동에서 생겨난 일이면 하나에서 열까지 몰으는게 없구 한가지를 알아두 똑 분지러지게 안답니다. 늙어 빠져 흐리 멍청한 양선달따위 하고는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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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다릅쥬. 암, 다르구 말구! 서당의 접장들이 글자가 맥히문 옥편을 들고나서듯이 누구건 이 고을 일에 미심한 구석이 생기기만 하면 이분을 드려 댄답니다. 바로 도화동 옥편이리니까유.
[일순사] 고런 공고시 지비키(옥편) 왜 진작 안 애 했소까? 빨리 그 「지비키」불러 왔오?
[최] 저 똥돼지가 누굴 두구 저러는 걸까?
[정] (행길 쪽에서 떠들썩한 여자의 소리가 나니까) 오 저기 뵈잖어요?
[일순사] 저 사람이?
[정] 예. (최더러) 이놈아 두고봐라 인제야 할 일없이 토해 내고야 말테니- (정의 아내인 남씨. 돌밭집 할멈의 등을 떠다밀며 들어온다.) (동욱 체념하듯 떠날 행장을 챙기려 자기집 뒤곁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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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 (들어서며) 마침 할멈을 바로 여기서 만났다우
[돌밭집] (들어오지 않으려고 떼를 쓰며) 아니 늙은 사람을 어쩌자는 거야?
[정] 한마디만! 제발 한마디만 나으리 앞에서-
[돌밭집] (일순사 앞으로 나서며) 나으리 중매라는 것두 이를테면 흥정이고 흥정엔 으레 거짓말이 따르게 마련이 아니유? 그래 내가 뻥을 좀 부렸지요. 그게 뭣이 잘못이라구- 늙은 것더러 오라 가라! 이런 천하에 자 헐려거든 해봐라 (노기 등등하여 되려 팔을 걷어부치고 덤빈다)
[정부부] 할멈, 혼사 얘기가 아니구. 할멈더러 증인이 좀 돼 달라는 거야.
[돌밭집] 증인?
[정] 할멈이 어려서 본 그대로 한마디만 말해 주게. 이 대추나무가 옛날엔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었지? (돌밭집 어물거린다) 왜 할멈이 그렇게 말하지 않었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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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집] --- 음. 참!
[최] (깜짝 놀래) 안야 내겐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서 있었다구 그랬잖어?
[돌밭집] 그랬던가?
[정] 이봐 할멈. 바로 아까 여기서 할멈이 바로 그 입으로 내게 그랬지? 할멈 처녈때에 이 낭구가 이 마당에 턱 버티구 있었다구.
[최] 무슨 소리야.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서 있는걸 저 할멈은 할멈 처녀적에 저 눈으로 분명히 봤다구 그랬어. 그래 그 일이믄 언제든지 증인으로 나서겠다구 그랬어. 그렇잖었어. 할멈?
[정] 그 말은 내게 했어. 경찰서구 재판소구 어디든 언제라도 증인으로 나선다구.
[최] 이런. 멀쩡한! 내게 한 소리를 엿듣고서 괜히---
[정] 이런! (정과 최 서로 멱살을 틀어잡는다)
(동욱이 자기의 집에서 먼길 떠날 행장을 챙겨 가지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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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사] (질팡 갈팡 하는 돌밭 집에게 고함친다) 오또고(빨리) 말으 했소! 나는 바빠! 바빠!
[돌밭집]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다가) 나으리 부 분명히 여쭙쥬. 이 대추나무는 저어 이렇게 됐었습니다. 어느 때 저 집 마당에 서 있었고 그리고 어떤 땐 이 집 마당에도 들어서 있었죠. 정말이예유
[정, 최] 그러믄 이 대추나무에 발이 달려 제 발로 왔다 갔다 했단 말야? 할멈, 그 무슨 소리야?
[돌밭집] (골을 벌컥 내며) 이런 못난 벽창호들 같으니라구! 막걸리 잔 얻어먹는 맛에 내가 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짓거렸기루 그게 이렇게 시비거리가 될게 뭐람! 요즘 시절에 거짓말 안하고 어떻게 살아--- 사내들이 저렇게 맥혔으니까 밤낮 싸우지 (하며 툴툴거리며 퇴장)
[일순사] (어이없는 듯 정을 보고) 파사기(쓰되잖은) 갔소! 갔소! (하고 정을 귀찮은 듯이 내 쫓는다)
[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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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아닙니다. 나으리. 나으리 앞이래서 기가 꺾여 그 늙은이가 헐 소릴 못해 그렇지 이 대추나무는 분명 우리 집 해랬댔어유. (하며 울타리를 헐어 버리려 한다.)
[최] 이런 정신 나간! 이게 무슨 짓야? (정을 떠다민다.)
[정] (다시 대들며) 이런 불한당!
[최] 뭣이!
[일순사] (큰 소리로) 가만있소! 가만있소!
[정 최] (싸움을 멈추며) 야?
[동욱] 아이 저런.
[일순사] (두리번거리며) 여기 최동욱이 있소이까? (모두 동욱을 치어다 본다. 그러나 불안한 표정이다.) 왜요?
[일순사] (동욱의 짐을 보고는) 어디 가?
[동욱] 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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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사] 무슨 일로?
[동욱] 대추 나물래 이웃끼리 이렇게 싸우는 꼴도 보기 싫구, 그리구 거긴 땅이 넓어, 농토가 째이지 않는다고들 해서 품파리라두 해볼까 허구---
[일순사] 품팔이?
[동욱] 예
[일순사] 고노 우소쓰키메--- (이 망할 거짓말쟁이! 하면서 대짜고짜로 동욱의 뺨을 후려 갈긴다)
[동욱] 앗! (하고 뺨을 만지려 할 때다. 어느새 일순사는 동욱의 팔을 비틀며 수갑을 채려 한다. 동욱은 일순사를 죽으라고 발길로 걷어찬다.)
[일순사]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명이] (조금 후에 나타나서 이 광경을 보고 가슴을 조리다가) 얼른!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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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자아 유희야1 (유희?의 팔을 끄은다)
(바로 동욱과 유희가 뛰어나가려 할 때다. 쓰러진 일순사가 일어설 새도 없이 호로래기를 꺼내 분다. 좌우 무대 뒤에서 난데없는 호로레기 소리를 쏟아지듯 호응한다. 그와 동시에 장총을 든 수많은 일순사들이 집 뒤 언덕 위엔 몰론이요. 양편 행길 몫에 번개 같이 쭉 늘어서 무대를 삼엄하게 완전 포위해 버린다.)
[명이] (어두운 구석에 숨어 서서) 이 일을 어째! (분해서 가슴을 짠다)
(동욱과 유희를 가운데 넣고 공간을 차츰 좁혀 드는 장총 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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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들! 긴장된 일순! 한 일순사가 마침내 덤벼들어 동욱과 격투! 한동안!)
[일순사들] (마침내 두 사람을 붙들어) 곤칙쇼메라! (이 개새끼들! 하고 수갑을 챈다)
[정, 최]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
[일순사] (꾸개진 휴지가 된 종이 조각을 호주머니에서 소중히 껄어내 정과 최에게) 이것 봐 했소. 읍내 이가라는「후떼이 센진」(불월양인) 한 놈 잡아 했더니 그놈한테서 이것이 나와 했소.
[정, 최] 뭔데유?
[일순사] 간도 군인 학교에 보내는 편지야. (가르치며) 최동욱, 정유희- 이것 저 두 년 놈의 이름 안야?
[남씨] 저 원수놈의 새끼 때문에 내 딸자식마저--- (땅을 치고 운다)
[명이] (혼자 말로) 추천장의 초잡아 놓은게 발각됐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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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순사들] (동욱과 유희를 발길로 걷어차며 일제히) 가자! (하고 밀어낸다)
[명이] 동욱이 호주머니 속엔 진짜 추천장이 들었는데--- 저걸 어떻게 해? 몸을 털면 그게 불거져 나올텐데---
[정, 최] (일순사들에게 자식들이 끌려나갈 때까지 멍청히 바라보고 섰다가 또다시 정신이 난 듯이) 그건 그렇구 우리 대추나무는? (하며 우르르 대추나무 밑으로 간다. 주춤 서서 서로의 얼굴을 노리며 악의에 찬 소리로) 아니 이 새끼가 왜 또 덤벼? 저리 비켜! 저리 물러나지 못하겠냐? 엥이 육실할!! (하며 대추나무를 사이에 두고 또 다시 격렬한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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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피를 쏟는 듯한 통분한 소리로 최와 정에게) 도대체 당신네들은 왜 싸워? 자식이 잽혀가고 나라가 꺼구러저두 끝내 싸움이요?!
[정 최] 같잖은 소리두!! (하며 힐끗 명이를 쏘아보고는) 이건 내해다. 이눔의 자식 내해야!! 뭐 어째, 이 개새끼!! (딩굴어져 서로 물어뜯으며) 아야야! 사람 죽인다! 아야야! 사람 살려라!
(일순사들에게 삼엄히 경계되어 끌려가는 동욱과 유희, 그리고 그 뒤에 울며 따르는 남씨. 언덕길로 돌아가는 게 보인다. 명이는 울분에 경련하는 입술을 깨물고 절룸거리며 멀직감치 따른다. 이 엄숙한 풍경 속에서 정과 최의 개싸움의 비명만 때를 만난 듯 더욱 높아지며-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