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하와이 이민역사 기억하라
하와이 노동이민 114주년이 됐다. 어제가 바로 인천에서 한국 최초의 공식 이민이 시작된 날이다.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에서 하와이를 향해 121명이 이민선에 올랐다. 하와이 이민단은 인천출신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인천이 한국 이민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법 크다.제물포항을 출발한 지 20일 후,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최종 102명(통역관 2명 제외)의 이민 중 제물포 출신이 67명(65%)으로 압도적이었다.
부평 10명, 강화 9명 등을 합치면 인천 출신이 86명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그 만큼 인천은 하와이와 숙명적인 인연을 맺고 있으나 이제 하와이 이민을 기억하는 지역 활동은 거의 없다. 이를 보더라도 인천이 가치재창조를 내세우고 주권시대를 선언했지만 300만 도시 성장을 견인할 세심한 정책추진에 있어서는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와이 이민은 중구 내동 내리교회 존스 목사의 설득과 권유에 따라 교인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1954년에 설립된 인하대는 인천과 하와이 첫 음을 따서 교명을 지었다. 대학 설립자금에는 우남 이승만이 1918년부터 운영한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과 정부지원금, 그리고 시민 성금이 포함됐다. 지난 2008년 6월에는 월미도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개관해 한민족공동체의 실제적인 귀환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와이 호놀룰루 소재 한국독립문화원이 지난 7월, 145만 달러에 일본인 계열에 매각됐다. 하와이 한인 독립운동의 상징이며 대한국인의 자존감이었던 이 건물이 몰래 매각됨으로써 하와이 교민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또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인하대 코너를 리모델링하겠다고 나섰던 인하대는 이 계획마저 흐지부지하고 말았다.하와이는 한일합방의 굴욕 속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재정을 지원한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으며, 민족 교육운동의 성지였다. 대한민국 디아스포라를 가능하게 한 하와이 이민 출발일을 맞아 하와이 이민 정신은 인천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져야 한다. 개항의 도시에서 세계화 도시로 도약하는 인천은 하와이 이민 관련 역사문화 자산을 계승해 도시의 특성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