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북서부 금강 하구부에 있는 군산시 |
|
[개요]
1899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미곡반출을 위한 항구도시로서 급성장했다가 해방 후 그 기능이 쇠퇴했다. 19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옥구군과 통합하여 도농통합형태의 새로운 군산시가 되었다. 금강과 만경강이 시의 북부와 남부를 흐르며 시내에는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호남평야의 주요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최근 군산항은 서해안시대를 맞아 공업생산활동을 갖춘 항구로 성장하고 있다. 옥구읍·옥산면·회현면·임피면·서수면·대야면·개정면·성산면·나포면·옥도면·옥서면·중앙로1가동·중앙로2가동·중앙로3가동·해망동·신흥동·금동·월명동·신창동·오룡동·금광동·신풍동·문화동·송풍동·삼학동·오식도동·비응도동·선양동·둔율동·창성동·명산동·송창동·개복동·내초동·영화동·장미동·영동·신영동·죽성동·평화동·대명동·장재동·산북동·미원동·중동·금암동·동흥남동·서흥남동·조촌동·경암동·구암동·경장동·내흥동·개정동·사정동·수송동·미장동·지곡동·개사동·신관동·나운동·미룡동·소룡동 등 1개읍 10개면 52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중앙로1가동이다. 면적 388.45㎢, 인구 269,865(2003), 인구밀도 713.6명/㎢(2003).
|
|
|
[연혁]
|
군산시 전경 | 지금의 군산시는 옛 옥구현과 옛 임피현이 합해 이루어진 곳으로 금강 하구의 군산진(郡山鎭)과 군산창(群山倉)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옥구현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막로국(莫盧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에 옥구현으로 개칭하여 임피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에 임피군의 속현이 되었다. 왜구의 창궐이 극심하던 1383년(고려 우왕 6)에 군산창이 위치한 진포(鎭浦)에서 최무선 등이 왜선 500여 척을 불태운 진포대첩의 승리를 거두는 등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에 들어 1397년에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 겸 판현사를 두었다. 1423년(세종 5) 첨절제사를 현감으로 고쳐 1895년까지 옥구현이 유지되었다. 1487년(성종 18)에 군산진(群山鎭) 옆에 조창인 군산창이 설치되어 전주 등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하는 전라도 조운(漕運)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별호는 옥산(玉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군이 되었으며, 1896년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일본과의 수호조약 체결 후 1899년에 군산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개항장과 옥구감리서가 설치되어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이로부터 이 지역은 인천·부산·마산·목포 등의 항구와 함께 급속히 성장했다.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고, 이어 이리로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전라도 평야지역의 농산물이 반출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에는 옥구군에서 분리되어 군산부로 승격되었고, 1949년 군산시로 승격했다. 한때 위축되었던 항만기능이 1989년 군산 외항의 건설로 회복되었고, 전주-군산 간 도시권 개발로 전라북도 제1의 상공업도시로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다. 1989년에는 옥구군 미성읍 일원과 옥도면 일부가 군산시로 편입되어 시역이 확장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옥구군과 군산시가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새로운 군산시가 되었다(→ 옥구군, 임피현) |
|
차령산맥과 노령산맥의 말단부로서 낮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했으나 대체로 저평한 지역으로 평야가 많다. 시내의 곳곳에는 오성산(五聖山:228m)·망해산(望海山:230m)·고봉산(高峰山:153m) 등이 솟아 있다. 금강과 만경강이 북부와 남부 시계를 이루고 서해로 흘러들며, 동쪽에서 남서방향으로 흐르는 탑천(塔川)이 대야면에서 만경강에 합류한다. 서쪽은 서해에 면해 있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선유도·비안도·신시도·야미도·무녀도 등의 고군산열도의 여러 섬을 포함하여 유인도 17개, 무인도 50개가 있다. 서부 해안 일대와 남부 만경강 연안에 옥봉평야·수산이곡평야·임옥평야 등이 있으며, 1910~30년대 농업개발로 제방을 축조하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옥구저수지의 물을 끌어들여서 금강·만경강의 간석지를 간척해 얻은 해안평야가 있다. 통합시 이전의 군산시에 해당하는 시가지의 대부분은 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에 따른 금강의 토사 퇴적과 해안 연안류에 의해 오랫동안 쌓여진 충적지를 이룬다. 또한 매립된 간석지에 부두와 시가지를 건설했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대단위 공장 건설, 시가지의 건물 신축과 하수처리시설의 설치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장항 사이의 금강 하구에는 토사가 퇴적되어 썰물 때는 대형선박의 출입이 어려워 대안도수제(對岸導水堤) 축조, 뜬다리 설치, 준설작업 등을 하고 있으나 충분하지 못해 1980년 군산외항을 건설했다. 시가지내의 하천으로는 경포천(京浦川)이 시내의 중동부를 남북으로 흐르며, 구암천(龜巖川)도 구암동을 동서로 흐르다가 금강으로 모두 유입된다. 경포천의 금강과 합류하는 입구에는 수문이 설치되어 강물의 역류를 막고, 홍수 때는 배수구의 역할도 한다. 시의 남동부에 발달한 개정들은 옥구평야와 연속되며, 서부 산북동·내초동 일대는 미성평야가 펼쳐져 있다. 해안에 접해 있어 바다의 영향으로 겨울기온은 내륙지방에 비해 비교적 높고, 여름기온은 비교적 낮다. 통합 전 군산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2.5℃ 내외, 1월평균기온은 -0.7℃ 내외, 8월평균기온은 24.7℃ 내외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190㎜ 정도이다. 한편 통합 전 옥구군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2.8℃ 내외, 1월평균기온은 0.2℃ 내외, 8월평균기온은 25.4℃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230㎜ 정도이다. 서해의 습기를 직접 받으므로 내륙에 비해 겨울강수량이 약간 많고 해안에는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식생은 주로 온대낙엽수림과 상록활엽수림의 혼합림을 이룬다.
|
|
군산부로 승격된 1914년에는 인구가 8,266명이었으나, 군산항의 발전과 더불어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여 1932년에는 3만 5,575명, 1940년에는 4만 553명으로 늘어났다. 그뒤 군산항의 기능쇠퇴, 대도시로의 인구유출 등으로 인구증가가 저조하여 1960년에는 9만 481명으로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1980년에는 16만 5,318명으로 1970년의 11만 2,453명에 비해 47%가 증가했으며, 1990년에는 21만 8,216명으로 1980년에 비해 32%가 증가하여 인구 증가폭이 큰 편이다. 반면에 1995년 통합 이전 옥구군 지역은 전반적으로 인구유출현상이 지속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인구의 증가현상을 보였으나 그후에는 감소추세를 나타냈다. 1965년 15만 722명, 1970년 14만 244명, 1975년 11만 4,592명, 1980년 10만 5,883명, 1985년 9만 5,259명, 1991년 6만 8,456명으로 1965~91년에 약 54.6%의 감소율을 보였다. 1970년대 이후의 인구감소는 전주·익산 등 인근도시로의 이동과 서울 등 대도시로의 직접이동으로 인한 이촌향도현상 때문이었다. 가구수는 1970년 2만 4,832가구, 1980년 2만 1,363가구, 1991년 1만 7,294가구로 감소했다. 통합 이후 군산시의 인구는 1995년 27만 1,771명, 1996년 27만 5,709명으로 증가했다. 시 전체인구의 77%인 21만 2,400명이 통합시 이전의 군산시 지역에 거주하며, 나머지 33%인 6만 3,309명이 읍·면지역에 거주한다. 농촌지역인 읍·면지역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조촌동(1만 6,765명)·경암동(1만 2,294명)·나운1·2동(5만 9,094명)·구암동(7,654명)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인구 분포가 적은 지역은 미원동(2,518명)이다.
|
|
|
군산항, 전북 군산시 금강 하구에 있는 항구 |
|
군산시 성산면과 충남 서천군 화양면 사이를 잇는 금강 ... | 일제강점기에 쌀 수출항으로 성장한 군산시는 총경지면적 176.47㎢ 가운데 논이 158.73㎢, 밭이 17.74㎢로 논농사가 활발하다(1995). 경지율이 매우 높은 편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를 비롯하여 배추·마늘·고추·토마토·상추 등이다. 구망동·개정동 일대의 밭에서는 근교농업이 활발하다. 한우·젖소·산양·꿩 등의 사육도 활발하며, 나포면과 성산면에서는 왕골을 이용한 옥구숫골돗자리가 생산된다. 옥구숫골돗자리는 200년 전부터 강화도의 화문석과 함께 왕실에 올리는 진상품이었으며, 주문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근해에서는 조기·새우·홍어 등이 잡히며, 일부 해안간석지와 도서지방에서 조개류·김·미역 등의 양식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산물 가공업도 활발하고, 부안군과 함께 서해안 어업의 중심지를 이룬다. 옥구읍·회현면·옥서면의 해안지대에서는 대규모 염전을 개발하여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주)세풍을 비롯한 제지공업과 자동차·1차비금속 공업이 이루어지고 338개의 공장이 있다(1995). 소룡동과 장산로 사이에 조성된 제1공업단지는 1995년 현재 47개 업체가 들어와 가동중이며, 군장산업기지라고 하는 제2공단에는 대우그룹이 5.29㎢ 부지에 자동차생산단지를 설립해 1995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개항 이전의 상업활동은 금강의 수운을 이용한 경포시장과 경장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때는 쌀무역으로 번창했으나 해방 후 중국과의 무역단절, 부산·인천항의 급속한 성장, 항만조건의 불리 등으로 그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익산공단·전주공단·군산임해공단의 상품과 원료의 수출입을 위한 군산외항의 축조 이후 항구기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군산항). 또한 한·중 교역증대 전망과 서해안시대의 개막에 따른 광역산업기지 조성, 군장신항 건설, 서해안고속도로 건설 등으로 상공업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군장신항은 연간 하역능력 2,200만t 규모로 계획하고 있어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미동에 자리한 군산내항에는 선유도·장자도 등의 고군산군도와 비안도·장항과의 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호남선·전라선의 개통 이후 철도교통이 편리해졌으나 도로교통의 발달로 점차 쇠퇴하고 있으며, 호남선에서 갈라진 군산선이 이 지역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고, 군산역에서 분기한 옥구선이 이 지역의 서부를 남서방향으로 통과한다. 익산-군산 간의 국도가 시의 북동부를 지나며, 전주-군산 간의 국도가 시의 중심부를 거쳐 소룡동에서 분기하여 북서부 해안지대와 남서부 평야지대를 지난다. 호남고속도로의 건설과 전주-군산 간 도로의 확장으로 서울-전주 간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으며, 전주·군산·익산을 연결하는 직행버스가 수시로 운행되어, 이들 지역은 동일생활권을 이룬다. 또한 인천-순천 간 서해안고속도로의 중간지점에 놓여 있어 더욱 교통이 편리해질 것이다. 서해의 여러 섬들과는 군산항에서 연락선으로 연결되며, 금강하구둑의 완공으로 충청남도 서천군과 육로로 연결되었다. 도로총길이 492km, 도로포장률 82.1%이다(1995).
|
|
|
발산리5층석탑(고려), 보물 제276호, 높이 640cm, 전북 군산시 개정면 ... |
|
월명공원 내 수시탑, 전북 군산시 해망동 | 군산시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2),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4, 무형문화재 3, 기념물 3, 민속자료 1), 문화재자료 3점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돌칼·토기 등이 출토된 금강하구 내흥동의 사옥조개무지(전라북도 기념물 제45호) 외에 선유도·무녀도 등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가 있으며, 산성으로는 노인성(老人城)·어래산성(御來山城)·관원산성(官元山城)·고진성(古鎭城) 등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운의 중심지로 안흥창(安興倉)·진성창(鎭城倉)의 조세미를 서울의 경창으로 운반하는 중요한 요충지로, 이를 약탈하려는 왜적선 500여 척을 최무선이 격퇴시킨 진포대첩지가 있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창건했다는 천방사(千房寺)를 비롯하여 은적사(隱寂寺)·동국사(東國寺)·흥천사(興天寺) 등이 있으며, 불교문화재로는 개정면의 옥구발산리석등(沃溝鉢山里石燈:보물 제234호)과 발산리5층석탑(鉢山里五層石塔:보물 제276호)이 대표적이다. 이중 옥구발산리석등은 사방에 천왕상이 새겨져 있고, 그 받침돌은 팔각형으로 아래에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밖에 불지사대웅전(佛智寺大雄殿: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상주사대웅전(上柱寺大雄殿: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김유신의 사당인 천방산의 설림사(雪林祠)를 비롯해 옥구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6호)·임피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 등이 남아 있다. 그밖에도 조선조 12대 열성의 친필을 담은 열성어필첩(列聖御筆帖)이 있다. 군산시의 주요관광자원으로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은파유원지와 신라 진평왕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미룡동의 은적사가 있다. 은파유원지는 은파호를 이용한 수영장·보트장 등 오락시설을 갖추고 있어 시민의 휴식처를 제공해준다. 또한 월명공원은 군산항과 함께 서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은적사에 이르는 숲속길도 유명한 곳이다. 관광지로는 군산항에서 여객선으로 2시간쯤 걸리는 곳으로 칠선바다의 중심에 있으며 해안경관이 일품인 고군산군도와 군산시의 상징인 오성산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선유도는 아름다운 경치와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금강 하류 유원지개발계획의 수립과 서해안고속도로의 건설로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앞으로 부여의 백제유적지와 연계되는 관광지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
|
|
전통 교육기관으로 옥구향교·임피향교·봉암서원·염의서원 등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3년에 설립된 영명학교와 금호학교가 있었으며, 그뒤 군산공립보통학교·군산공립실업학교·군산여자중학교가 설립되었다. 1959년 설립된 군산종합고등학교는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와 군산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1995년 현재 유치원 58개소, 초등학교 56개교, 중학교 18개교, 고등학교 11개교, 국립종합대학인 군산대학교를 비롯하여 전북산업대학·개정간호전문대학·군장공업전문대학 등이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더위팔기·다리밟기 외에 회현지방의 기(旗)맞이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농기를 새로 만드는 마을이 있을 경우 정월 15일과 2월 사이에 날을 잡아 행했다. 대표적인 동제(洞祭)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나포면 나포리에서 행해지는 영신당제(靈神堂祭)가 있다. 설화로는 효자·명당·건달에 관한 설화 외에 금강 하류 용담포에 관한 전설과 〈중바위전설〉, 그리고 경주최씨의 시조이며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인 최치원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최치원은 이곳 출신이라고 전해지는데 내초도의 금돼지굴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이 전설을 뒷받침하듯 옥구읍 상평리에 최치원이 독서를 하며 지냈다는 자천대가 있다. 이밖에 천방사 건축의 사연에 관한 〈천방사 연기설화〉와 〈호랑이와 팥죽전설〉·〈장재미섬과 빗겡이섬전설〉등이 구전되고 있다. 민요로는 〈뱃노래〉·〈고기잡이노래〉·〈들노래〉가 전하며, 그밖에 〈상여소리〉·〈물레소리〉·〈시집살이노래〉·〈지신밟기노래〉등이 있으나 노동요보다는 유희요가 구전되고 있다. 문화예술단체로는 군산국악원,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군산지부가 있으며, 1970년부터 개최된 군산예술제가 있어 본격적인 문화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5년 현재 사회복지시설로는 장애인복지시설 2개소와 보육시설 2개소, 양로원 2개소 등이 있으며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4개소, 병원 2개소, 의원 86개소, 치과의원 36개소, 한의원 35개소가 있다. 종교기관은 개신교 교회 297개소, 천주교 교회 9개소, 불교 사찰 34개소, 원불교 교당 6개소 등이 있다. 군산시의 환경오염의 주원인은 임해지역에 있는 각종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와 하수를 통한 오물, 선박의 폐기물 등으로, 바닷물과 금강의 오염이 매우 심각하다.
金大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