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멋드러진 노래 하나 나눠주는 도반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싱그러운 축복인가. 홀로 여행을 떠나는 어떤 이들에게 있어 음악은 출발과 도착 사이의 쓸쓸한 웅덩이를 메워주는 다사로운 길동무다. 작은 여행 가방에 칫솔과 치약, 여비와 알사탕만 넣는 것은 관광버스를 타고 고난도의 관광버스춤을 준비한 시골동네 경로당 노인네들의 1박 2일 투어에서나 있을 일이다. 여행 가방에는 모름지기 노중에 들을만한 음반 한 장, 시디 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정말 여행 중에 들을만한 음반 한 장 제대로 고른다면, 여행 기분은 시디 수록곡 1번부터 업(UP)된다. 이를 두고 금상첨화라 하는가.
그만그만하고 흔하디 흔한 컴필레이션 음반들이 다량 대량 무한정 쏟아지고 있다. 유명배우의 회고록만 같은 스탠다드 노래들을 담은, 범람하는 컴필레이션 음반 홍수 속에서 생각 있는 사람들, 진정한 월드 음악을 사랑하는 진정한 월드 음악 애호가들이 들을만한 음반, 손에 쥘 만한 음반을 찾기란 간단치가 않은 노릇이다. 게다가 음악과는 한길 건너편인 방송 스타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어 청취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게 한다. 영혼을 어루만지고 신명을 돋우는 음악이 자본시장의 오역스러운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 경우가 아닐까.
<여행자의 노래>는 기존의 검필레이션 음반과 아주 먼 거리를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컴필레이션의 격을 한차원 높인 수작이라고 감히 자인하고 싶다. 먼저 이 음반은 전남 강진 바닷가 들판의 언덕배기 외딴집에 살고 있는, 시인이며 수필가(저서 참꽃 피는 마을, 종소리, 예수 등)인 임의진이 직접 그의 방 한켠을 도배하고 있는 수천장의 음반꽂이에서 고르고 골라 내놓은 노래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는 백창우, 김현성, 재즈 색소폰 이정식, 이원재, 김두수, 범능 스님 등이 매달 출연하는 작은음악회 사회자(무등산 풍경소리 음악회, 11회째를 준비하고 있다)이기도 하니 음악과 별개의 삶을 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수도 아니고 대중연예인 스타도 아닌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청취자로서 이번 음반을 내놓게 된 것이다. 임의진은 진보성향의 교회로 널리 알려진 남녘교회의 담임목사다. 그는 이미 자기종교의 울타리에 갇혀 허우적거리지 않고 일체가 다 찬미라고 말하며 가리지 않고 음악을 섭렵하는 자유인이다. 또한 그는 전세계 여행가, 음악 및 영화평론가(월간 오디오파일 등에 연재) 등 다양한 슬로건(?)을 지닌 인생을 살고 있다. <여행자의 노래>는 그런 자유인 임의진이 요즘 듣고 여행 때 챙겨 가는 음반들 가운데서 고른 노래들을 수록하고 있다.
임의진을 닮아 이 음반 여행자의 노래 또한 장르에 편협하지 않은 월드 뮤직으로 길을 터주고 있다. 앞서 거론하였듯이 이 음반은 무엇보다도 음악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 그쳤던 한 개인의 청취자에 의해 마련된 음반으로서 단지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가볍게 처우되어서는 안될, 뚜렷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유의 컴필레이션 음반은 아마도 지상의 첫 작품일 것이다.
임의진은 이번 컴필레이션 음반에 선물 두 개를 얹고 있다. 그가 산책 중에 평소 흥얼거리는 노래 방황하는 영혼을 허밍으로 담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이고, 친분이 깊은 음악형제 김두수, 2002년 10년만의 재기음반 <자유혼>으로 은둔자의 위대한 음악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 그 사람 김두수가 부르는 <대니 보이>가 두 번째 선물이다. 둘의 우정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귀한 노래선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노래에는 덤이 많다. 현각 스님의 <만행>, 법정스님의 <인도기행>, 정찬주의 <암자로 가는 길> 등에서 속내 깊으면서도 감각적인 사진세계를 보여줘왔던 사진작가 김홍희의 작품이 표지와 가사집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임의진과 신뢰할만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김홍희는,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임의진의 일상을 처음으로(그 동안 여러 권의 책을 낸바 있는 임의진은 결벽증처럼 사진작업을 기피해왔었다, 심지어 자신의 저서에도 얼굴을 싣지 않는...) 필름에 담아낼 수 있었다.
끝으로 이 음반의 기획부터 사진작업을 돕고 제작까지를 맡은 이재수는 김두수 <자유혼>을 세상에 내놓은 명기획자다. 그는 이번 음반에서 임의진과 함께 다른 방향의, 그러니까 컴필레이션 쪽으로 제2의 자유혼을 모색하고 있다. (c)폴리폰
첫댓글 덕분에 앨범을 구해서 잘 듣고 있습니다. 너무나 고맙다는 말 밖에 더 드릴 것이 없네요...그렇죠?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내 가끔의 난독증은 (c)필로폰으로 읽게 하네요. 하하, 드디어 낼 주문 들어갑니다- 두근두근 기뻐요^^ 이번에 사는 앨범들은 모두 기다리고 기다리던 거라 더욱 기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