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는 죽음 극복의 역사, 제사는 죽은 조상과의 대화” “후손통해 다시 태어난다”… 효·발복 위해 풍수에 집착
한국 사람들은 명절이 닥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행렬이 너무 길어서 고속도로·국도·지방도가 모두 막히는 일대 진풍경이 벌어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왜 명절 때만 되면 한국 사람들은 고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인가?
‘귀성행렬’이라고 할 때 ‘귀성(歸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돌아가서 부모를 뵙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부모의 개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살아있는 육신을 가진 부모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조상이다. 죽은 조상을 뵙는 의식이 바로 제사이다. 살아있는 부모님이야 언제든지 뵐 수 있지만, 죽은 조상은 돌아가신 제삿날 아니면 명절 때 제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귀성행렬의 속 깊은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조상에 대한 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제사가 그렇게도 중요했던 이유는 ‘죽음의 극복’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죽지 않고 영생하고 싶어하였다. 단지 문명권에 따라 그 영생의 방법이 각기 다를 뿐이다. 이집트 문명이 추구한 영생 방법은 부활이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미라로 보존해 놓은 이유도 사자(死者)가 언젠가는 다시 이 세상에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발생한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내세’이다.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인도 문명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윤회였다. 죽은 후에 다른 인생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 인도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비관하지 않고 인생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배경에는 다시 태어난다고 확신하는 윤회의 사생관이 작용하고 있다.
● 기독교적 내세관과 ‘문명의 충돌’
한국인들은 어떤가. 동이(東夷)족의 사생관은 자식을 통한 해결이었다. 대를 이음으로써 죽음을 극복한다고 보았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죽은 조상이 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4개 문명권의 사생관은 거시적인 틀로 보면 모두 맥락이 같지만,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각각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인도의 윤회는 다시 태어난다고 보는 측면에서는 동이족과 비슷하지만, 윤회가 다른 집안에서도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설정하는 데 반해 동이족은 그 집안 내의 후손으로 다시 온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다르다. 동이족의 영험한 샤먼(Shaman)들에 의하면 통상 증조부나 고조부의 항렬에 있는 조상신들이 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왕대 밭에 왕대 나고 쑥대 밭에 쑥대 난다’는 항간의 속담은 이를 반영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 사람들의 사생관은 조상과 후손간에 밀접한 연결고리를 상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조상과 후손간의 연결을 통해서 죽음을 극복한다고 보았을 때 그 연결고리를 담당하는 중요한 의례가 바로 제사이다.
옛날 어른들은 제사 일주일 전부터 음식을 정갈하게 먹고 몸가짐을 조심하면서 준비하였다. 심신을 정화하여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꿈에 조상이 현몽하기 때문이다. 제사 전후 조상이 꿈에 나타나지 않으면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성하였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제사라는 조상과 후손의 공식적인 미팅을 통해서 조상이 내 안에 살아있다는 확인을 하였던 것이다.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적인 사생관은 기독교의 내세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 충돌의 근본적인 성격은 사생관의 충돌이다. 사생관의 충돌은 곧 문명의 충돌과 직결된다.
한국인의 족보도 제사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조상과 후손의 만남을 위한 의례가 제사라면 족보는 그 만남을 확인시켜 주는 기록이다. 중요한 만남에는 반드시 기록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래야 후대로 전승될 것 아닌가.
족보의 볼륨이 두꺼울수록 그 집안의 영생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비약한다면 족보는 죽음 극복의 역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처럼 족보가 발달된 나라도 세계에서 드물다. 족보학자 송준호 선생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족보가 등장하는 시점은 15세기 중반 무렵이고 대규모의 ‘대동보(大同譜)’가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후반부터라고 한다.
지금은 부계중심이지만 17세기 이전까지는 외손들도 족보에 모두 실렸다는 점도 흥미롭다. 족보를 편찬할 때 충당되는 비용을 외손들에게도 통지하여 동등하게 걷었고 그 명단을 공평하게 실었다.
모계가 제외된 부계중심의 족보편찬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을 전후하여 족보는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족보학자들 사이에서 1910년 이전의 족보는 청보(淸譜)라고 불리고, 이후는 탁보(濁譜)라고 불린다. 탁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전까지 성씨가 없이 살던 노비들에게 일제가 임의로 성씨를 부여했기 때문에 1910년 이후의 우리나라 족보는 혼탁해졌다는 뜻이다.
일제는 호적을 만들고 호세(戶稅)를 징수하기 위한 행정 편의를 위해서 노비들에게도 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뒤집어보면 탁보의 출현은 계급없는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였다.
● 17세기 이전엔 외손도 족보에 포함
성씨(姓氏)는 족보의 키워드이다. 족보의 분류 기준은 다름 아닌 성씨이다. 한국 사람은 성씨를 유난히 중요시한다. 어떤 맹세를 할 때 ‘성(姓)을 갈겠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우리와 성에 대한 개념이 아주 다르다. 일본인들은 ‘성을 가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여차하면 성을 간다. 예를 들면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에도 성을 달리할 수 있다.
60년대 친형제간에 교대로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岸)와 사토(佐藤)가 그러한 예이다. 기시가 형이고 사토는 동생이다. 그렇지만 기시와 사토로 성을 달리 사용하였다. 일본에서는 아들이 유명해지면 아버지 성을 쓰지 않고 자기가 별도로 성씨를 창립할 수 있다. 기시와 사토 형제가 그런 케이스이다.
일본어로 훌륭하다는 뜻이 ‘리빠(立派)’이다. 파벌을 하나 세운다는 의미이다. 새롭게 성씨를 하나 세운다는 것은 훌륭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도 원래는 키노시타(木下)였다. 통일을 한 후에 도요토미(豊臣)로 바뀌었다. 그런가 하면 친가가 아닌 외가 성씨를 계승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성씨의 총 숫자는 2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300개 이내인 한국의 성씨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한국이 혈통과 성씨가 일치하는 노선이었다면 일본은 혈통과 성씨가 따로 노는 노선이었다고나 할까. 한국의 성씨는 중국의 관습과도 다르다. 본관(本貫)제도에서 다르다.
한국은 한번 전주 이씨이면 영원히 전주 이씨이다. 한번 경주 김씨이면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수백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경주 김씨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의 출신지나 성장지를 무시하고 전주 또는 경주라는 본관이 영원히 따라 다닌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바뀐다. 예를 들어 원래는 밀양 박씨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본적지가 청주면 청주 박씨라고 본관을 바꾼다. 이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다르다.
한국이 이처럼 족보와 성씨에 있어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그 기원(起源)과 원조(元祖)를 유난히 강조하는 배경에는 후손을 통한 죽음의 극복이라는 특유의 사생관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 일본은 ‘창씨’ 자유로워
한국의 족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 자리의 좌향(坐向)이 기록되어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좌(子坐) 오향(午向), 갑좌(甲坐) 경향(庚向)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묘 자리의 좌향은 대단히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는 곧 풍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상의 뼈를 어떤 곳에 묻었는가하는 문제는 세 가지 차원과 관련된다. 첫째는 효이다. 명당에 조상의 뼈를 묻으면 효도라고 여겼다. 둘째는 발복이다. 명당에 묻으면 그 효험으로 인해서 살아있는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셋째는 죽음의 극복이다. 죽은 후에 명당에 들어간다는 믿음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기제였다.
추석 귀성행렬 자동차가 한국의 고속도로를 모두 메우는 이유는 죽음, 족보, 성씨, 명당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생관 때문이다.
(조용헌 원광대 교수) 주간조선 2002.09.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