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이전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주요 극장으로는 시민극장, 동성극장, 중앙극장, 여수극장 등이 있었다.
1. 시민극장
시민극장은 1928년에 설립된 여수극장이 그 전신이다. 여수극장은 일제강점기에 수탈물품을 보관하던 여수시 교동 소재 고뢰농장(高瀨農場)[일본인 고뢰의 이름을 딴 것]을 개조하여 개관하였던 것으로 여순사건으로 소실되었으나 1953년 당시 여수산축조합을 경영하던 장기(張起)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시민극장으로 재개관되었다.
시민극장은 정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영화 상영 및 연극 공연은 물론 각종 강연 및 집회 장소로 제공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는 임방덕과 강대혁 두 사람이 공동으로 운영하였으나 1970년대 초부터는 황승주가 인수하여 1996년까지 운영하였다. 1996년 이후로는 황승주의 아들이 재건축 및 확장하고 그랑프리극장으로 극장 명을 변경하여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곧 폐관되었다.
2. 동성극장
동성극장은 이덕조가 1953년 여수시 중앙동 221번지에서 개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3년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축하게 되면서 태평극장으로 극장 명이 변경되었고, 그 이후에는 다시 덕일극장으로 변경되어 운영되어 왔으나 1990년대에 폐관되었다고 전한다.
3. 중앙극장
중앙극장은 1950년대 말 여수시 교동 497번지에 여수에서는 세 번째로 세워진 극장으로 처음 1년간은 홍정식·임방덕·강대혁 3인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었으나 1년 이후로는 홍정식에 의해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다. 홍정식은 그 후에도 동성극장을 인수한데 이어 여수시 공화동에 동보극장까지 설립함으로써 세 개의 극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중앙극장은 1977년 같은 자리에 재건축되어 계속 운영되어 왔으나 2004년 10월에「우리 형」이란 제목의 영화 상영을 마지막으로 폐관되었다 그러나 아직 극장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
4. 여수극장
여수극장은 동성극장의 설립자인 이덕조에 의해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 건축·설립되어 2년간 운영되다 김수동에게 매각되었다. 김수동이 작고한 1971년 이후로는 그의 아들들인 김광현과 김종익에 의해 1986년까지 여수시 관문동 1040번지에서 운영되었다. 여수극장은 여수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2편 동시 상영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운영함으로써 서민 관객들의 발을 성공적으로 끌어 모았다고 한다.
첫댓글 와! 옛날 기억이 새롭네요,대구에도 중앙로에 한일극장이 있었는데 핸드폰이 없던시절엔 극장앞이 약속장소였는데
지금도 있으려나 떠난지 20년이 지났네, 그 시절엔 동시상영 두편식 보곤했는데
그때를 아십니까? 2편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촌넘이라서 봄 가실로 가설극장만 봤어라우ㅋㅋㅋㅋ
흑백사진처럼 ,빛바랜 기억속의 슬프고 힘들었던 시절,학업을포기하고,꿈을찾아서울로 가 온갖고생하다,설레며찾아와 짐보따리를풀며,친구와 가족과 함께갔던 추억의 영화관,여수의 애환이 스크린에 투영되어서였을까, 옛적 울 오빠 언니들은 몰래 눈물도 주머니에 넣곤했었다. 거기서 난 또 합창도 했었고,-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백합필적에~~~~~~~~
어린시절 명절때나 가보던 극장. 객지에 살던 일가 친척이 주는 몇푼의 돈으로 10리길 걸어 30리길 합승으로 1시간 나와서 보던 영화. 그것도 봉 뽑것다고 한번 봤으면 됐지 화장실에 숨었다고 기어이 두번 봤던 이소룡 영화. 그때가 참 잼졌는디.......
초딩5학년부터 가설극장 영화선전을 했었지, 끝빨 날렸지, 울식구덜 무조건 꽁자입장였지ㅎㅎㅎㅎ
여로, 꼬마신랑, 풍사만의 노도 등등,,,,
초딩때 꽁짜표 얻을려고 담벼락에 풀칠하려 다닌 기억도 있습니다.
동성극장, 태평극장도 있었던것으로 압니다
태평극장은 고3때 막걸리 먹으려 다니면서 그 골목이 꽤 유명 했으니까 1970년 중반이후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