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다가 천문학자를 꿈꾼 사람이 많다. 누구나 우주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이명현 박사는 말한다. 별은 우리 인간의 발원지라고. 금성을 보며 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우고, 아폴로 11호의 우주인을 보며 천문학자의 꿈을 품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꿈을 확신한 그가 말하는 우주 그리고 외계 생명체 이야기.
편집부가 독자에게 ...
‘별에서 온 그대’를 만나고 싶다면 일곱 살 소년은 땅거미 지는 골목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다가, 서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과 친구가 됐습니다. 그 별의 존재를 탐구하다가 ‘금성’ ‘Venus’ 란 글자를 알았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 찍은 사진 한 장에 반해 우주를 동경합니다. 고 1 때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으며 천문학자를 꿈꿉니다. 그 꿈을 향해 천문기상학과에 진학했고, 전파천문학을 전공하며, 지적 외계 생명체를 찾는 세티(SETI) 프로젝트에 가담하죠. ‘테마 인터뷰’에서 만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가 현실에서 가능한지, 외계 생명체가 정말 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보세요.
_박헤나 리포터 |
금성과 친구가 되다 “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69년 제 나이 일곱 살 때예요. 서울 답십리의 좁은 골목에서 친구들과 딱지치기나 소꿉장난을 했는데, 해 질 무렵이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늘 홀로 남았죠.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골목에 앉아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데, 초저녁부터 하늘에 뜨는 별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금성이죠.”
천문학자가 된 이유를 묻자, 이명현(53) 박사는 금성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둠이 내려앉기도 전에 모습을 드러낸 뒤 유독 밝게 빛나던 별에 매료되어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가 되었다고. 호기심은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초저녁에 떴다가 새벽녘 자취를 감추는 별에 관해 부모님께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입학 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사건을 접하고 세상이 진동하는 충격을 느꼈어요. 천문학자인지 우주학자인지 모른 채, 그저 나도 하고 싶다는 꿈을 좇아가다 보니 과학자가 되었어요.”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할 때 찍힌 발자국 사진이 표지에 나온 국어 공책을 산 뒤, 빨리 공책을 다 써서 표지를 뜯어 갖겠다는 일념으로 밤새워 글씨 쓰기 연습을 한 일도 있다. 팔이 아파 울고 또 울다 보니, 아침엔 눈이 퉁퉁 부었다고.
외박하는 초등생, 아마추어 천문가로 시간만 나면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과 달을 관찰했고, 때론 선생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시험을 봤는데, 카시오페이아자리가 어떤 모양인지 묻는 문제가 나왔다. 가을 저녁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카시오페이아자리를 관찰한 경험이 있던 그는, 자신 있게 ‘3’ 혹은 ‘M’ 모양이라고 답을 썼다. 하지만 정답은 ‘W’ 모양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그림까지 그려 설명했지만, 교과서에 그렇게 나온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한번은 교과서에 실린 달의 모습이 잘못됐다고 말했다가 혼나기도 했어요. 망원경으로 보는 달은 한번 반사되니 상하좌우가 뒤집히거든요. 4학년 담임선생님께는 별자리 지도를 구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죠.”
그는 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헌책방에서 충족했다. 일본 잡지 <천문 가이드>와 <천문과 기상>, 미국 잡지 <아스트로노미>와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를 구해 보았다.
그러던 중 월간 <학생과학>을 통해 아마추어 천문가 모임에 대해 알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입회했으니 최연소 회원이었다. 모여서 망원경 정보도 나누고 관측회를 하는 건 물론, 가끔은 천문학자를 초대해 강연을 들었다. 밤하늘을 관측하다 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외박하기 일쑤였고, 고등학생 때는 관측하다가 군인들에게 포위되기도 했다.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언급한 천문 용어를 군인들이 암호로 오인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토성 관측의 경이로움 천문학자 하면 으레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천문학의 관측 장비는 물론 망원경이다. 그런데 무엇을 관측하느냐에 따라 망원경의 종류가 나뉜다. 눈으로 보는 건 광학 망원경, 자외선을 보는 건 자외선 망원경, 전파를 보는 건 전파망원경이란 말씀. 이 박사는 전파 천문학자다. 우주의 전파 신호를 데이터로 변환해서 연구하는 분야다.
“대학원 논문 주제가 암흑 물질에 관한 것이었는데, 네덜란드 흐로닝엔대학교의 전파 관측 자료를 참고하면서 자주 연락하다가 유학을 갔어요. 세계적으로 전파천문학 전통이 강한 곳이거든요. 자연스럽게 전파천문학을 했죠.”
과학자들은 경이로움을 느낀 경험을 일반인에게 전하고픈 욕구가 있단다. 전파천문학자로서 그의 첫 경험이 궁금했다.
“막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국내 최초로 대전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에 지름 14m 전파망원경이 설치됐어요. 처음으로 전파 관측 프로젝트에 참가했는데, 전파 그래프를 보며 과학자로서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이 박사가 잊지 못하는 경험은 토성 관측이다. 고등학생 시절 유리알로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관측했을 때는 안개에 싸인 듯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학 3학년 때, 미 공군 출신 회원이 가져온 세레스톤이라는 망원경으로 토성을 관측했는데, 고리가 제대로 보였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흥분돼요. 몰입의 경이로움을 처음 느꼈죠.”
어릴 때 별과 우주에 관심이 많다면 천문학자의 꿈을 꿔도 좋을까? 그는 천문학자의 자질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리를 찾는 게 천문학자예요. 물리학을 전공하든 천문학을 전공하든 상관없어요. 현상을 보고 ‘왜 고리가 있을까?’라는 물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유를 캐고 궁리하는 데 즐거움을 느끼면 천문학자로서 가능성이 있지요.”
지적 생물체 찾는 프로젝트, 세티:Search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이 박사는 외계 지적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전파 신호를 찾는 프로젝트인 세티(SETI) 연구소의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전파천문학자가 별에서 나오는 자연 전파를 연구하는 반면, 세티 과학자는 자연 전파를 잡음으로 처리하고 휴대폰 라디오 TV 등 그들이 개발한 문명 기계에서 나오는 인공 전파를 찾아요. EBS 다큐멘터리의 과학 자문을 맡아 미국의 세티 과학자를 모두 인터뷰했는데, 이를 계기로 2009년에 세티코리아를 만들었죠.”
일반인에게는 공상처럼 느껴지는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확신하는 걸까?
“2009년 케플러 우주 망원경을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렸어요. 이 관측 망원경의 임무는 3년 반 동안 백조자리 근처의 하늘을 모니터링하면서 행성을 찾는 거죠.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은하 안에만 500억 개 행성이 존재하며, 그중 5억 개 정도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행성이라고 추론하고요. 그 가운데 1/100이 생명체가 있고, 또 그중 1/100이 지적 생명체로 진화했어도 숫자가 엄청나죠.”
영국의 우주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외계 지적 생명체가 분명히 존재하며, 인류는 그들과 접촉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티 과학자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븐 호킹 박사는 호전적인 외계 지적 생명체가 인류의 존재를 알고 지구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세티 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존한 만큼 지혜로운 문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평화로운 태도를 갖췄을 거라 여기죠.”
칼 세이건, 코스모스 키드 ‘코스모스 키드’. 1980년대 초, 세계 60여 개국에서 방영된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수많은 청소년에게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의 꿈을 심어주었다. 이명현 박사는 고1 때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 세상을 보는 관점, 과학자의 태도, 삶의 방향을 알게 해준 책이라고 말한다. 천문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있는지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과학자나 천문학자를 꿈꾸는 학생에게 한 권을 추천한다면 <코스모스>를 권하고 싶어요.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는 도발적이고, 사이먼 싱의 <빅뱅 우주론>도 모범 교과서 같은 책이죠. 그런데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과학 책보다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마음의 근육, 생각하는 근육을 만들고 키우는 게 중요하니까요. 저는 어릴 적 도서관에 가서 이 책 저 책 꺼냈다 꽂았다 하면서 읽는 재미를 느꼈어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