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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인천광역시 생활체육 어르신 탁구대회 심판 모집을 2주전에 보고 심판을 신청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심판을 본 후기를 쓴 이유는 이 후기를 통해 많은 생활체육 탁구인 동호인들이 심판의 대한 봉사를 생각해보고 많은 분들이 봉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기를 의미로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2년 7월 9일 이린다 탁구클럽에서 대한탁구연맹에서 진행된 심판 연수를 받고 3급 심판자격증을 발급 받고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처음으로 심판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생활체육 하면 심판하면 왠지 여자분들의 영역인거 같아 감히 명함을 내밀지도 못했으며 범접하기 어렵겠다는 편견이 있었기에 사실 이번 심판 신청도 조심스러운게 사실이었습니다. 선착순 20명 모집인데 17명 이 가운데 남자 5명 여자 12명이었습니다. 결국 20명을 다 채우지 못한체 마감이 되었습니다. 대회 당일 이른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심판을 본다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눈을 일찍 뜨게 만들었다. 나는 늦지 않으려 아침을 먹지도 않고 남구청 스포츠센터로 향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벌써 어르신들께서 일찍부터 몸을 풀고 계셨다. 진행석에 올라가니 벌써 진행석이 분주했다. 항상 대회장에서는 빠짐없이 보는 정미선 진행요원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선옥 총무님께도 인사를 하니 심판의 상징인 빨간 마이를 건네주셨다. 빨간 마이를 입으니 더욱 더 심판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언제나 봐도 반가운 얼굴 안명순님, 김미숙님도 보였고 나와 같이 처음으로 심판을 보시려는 남자분들도 서너분 보였다. 처음 심판을 보신다는 한 남자분은 단상에 걸려있는 현수막쪽으로 셀카를 찍으시길래 내가 얼른 "사진 찍어 드릴까요" 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념 사진을 남겼다.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나는 초자요' 라는 티를 내고 있었다. ^^; 현명국 회장님과 박병춘 심판 위원장님께서 심판들을 불러 모아 심판 유의사항을 들려주셨다. 대회 시작을 알리며 각 테이블 전담 심판석으로 자리를 했다. 그동안 탁구장에서 또는 대회장에서 게임에 참가하며 돌아가며 심판을 보았지만 아주 편안한 자세로 별로 생각 없이 잘못되면 다시 수정하고 아무 생각없이 심판을 보았다. 그런데 그 빨간 마이를 입고 심판을 보려니 벌써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결정적으로 어르신들의 게임 핸디 방식은 복잡하기 이를대가 없었다. 부수 기본 핸디에 연령핸디에 성별핸디까지 무슨 연령별, 부수별, 성별별 조건표까지.. 이런 내용을 처음 심판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미리 메일이나 하루 전 모여서 자세하게 설명을 주고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게임에 들어가니 우리 어르신들 참 편한 복장에 대회에 나오신분들도 있으셨다. 면바지에, 정장바지에 게임을 하러 오신 어르신들,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으신 어르신들..정말 어르신 다워 보이셨다.
내가 동영상이나 방송에서 중계를 해주는 국제대회나 직접 현장에서 코리아 오픈 탁구를 보면 심판들이 군인과 같이 절도있고 웃음을 보이지 않고 절대 치아를 보이지 않으며 눈빛이 살아있으며 아주 단호한 심판을 보는걸 평소 봐 왔던바 나름 그런 자세와 그런 마음으로 심판을 보려고 했으나 어르신들이라 그렇게 할수가 없었던 것은 일단 많은 분들이 주먹서브 내지는 16센티를 띄우시는 분들이 많아 보이지 않아 상대방쪽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한 서브에 관한한 관대하게 봐주었다. 그런데 가끔 서브에 대해 브레이크를 거시는 어르신도 계셔서 그럴때 상대 선수에게 주의를 주었다. 결정적으로 60대부터 80대 연령들이시라 서브가 상대방 서브인지 자기 서브인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런 부분에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연령대, 부수별, 성별별 핸디 부분은 그분들이 더 잘 아셨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이 지면을 통해 밝히면 심판으로 절대로 하면 안되는 크나큰 실수를 범했다. 사실 그 경기가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오전 개인전 경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도시락차에서 심판 막내(?)로 심판들과 진행요원 도시락을 챙기려고 줄을 서고 있었는데 같이 줄을 서신 여자 심판 분들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남자 심판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씀들을 하셨다. 도시락을 먹는데 오전에 한 실수가 마음에 걸려 그런지 않아도 차디찬 도시락에 목이 메일 정도였다. 그리고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개회식에서는 각 내빈 인사와 표창장, 최고 연령 참가상, 선수 선서에 이어 개회식 선언과 축사에 이어 경품추첨까지.. 늘 각 시, 대회에 선수로 출전을 하다가 내빈석과 심판석 사이에 자리를 하게되었다. 또한 경품 추첨때는 늘 대회에 출전할때면 라바나 가방 등 추첨이 되기를 기대하고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바라기만 하다가 내가 직접 추첨을 해 서구복지에 박영희 어르신에게 경품의 행운을 안겨 주기도 했다. 개회식이 끝나고 단체전이 시작되었다. 단체전은 개인전과 달리 더욱 신경이 많이 쓰였다. 정말이지 이때부터 경기운영에 심판 역활이 보통 큰것이 아니였다. 그리고 개인전때와는 달리 단체전은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전으로 펼쳐지면서 경기를 하시는 어르신이나 심판을 보는 심판들에게나 힘이 들었다. 나는 점점 경기가 오래 되면서 개인전때와는 달리 단체전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럴쯤 성미옥님이 경기의 관리를 맡으시며 잘 넘어갔다. 리그전이 끝나며 점점 경기는 과열양상이 되가며 약간의 약주에 취하신 어르신이 응원을 하시며 경기장 안으로 자꾸 들어오시려는 어르신들이 있는가 하면 준준결승에서는 한 경기를 기나긴 인터벌로 3경기에 가까운 게임을 하시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아예 준결승에서는 경기장 안에 심판석에 앉아 보시는 분들도 계셨다. 나는 너무나 인터벌이 긴 어르신과 심판석으로 구경하시는 어르신들에게 약간의 주의를 주려 했다가 되려 핀잔을 듣기도 했다. 사실 이것도 김무찬 심판처럼 항상 웃어가며 대응을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너무 심판 ver 의 모습으로 하다보니 역효과가 나타난거 같다.
단체전의 기나긴 리그전과 토너먼트가 끝나고 모든 입상자들을 가리고 대회를 마친 시간이 8시였다. 대회를 진행한 진행요원 및 심판들은 자리를 옮겨 대회에 대한 뒷풀이를 가졌다. 현명국 회장님의 빠삐용 건배를 통해 우리의 대회 뒷풀이는 무르익어갔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빠삐용이라는 내용을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대회장의 심판 자리는 빠지지 말고 조금의 섭섭함에 삐지지말고 조금의 잘못에 용서를 하는 정말 의미있고 뜻이 깊은 있는 것을.. 우리 생활체육 탁구 동호인들이 동호회 생활하는데 꼭 깊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인거 같다. 이번 어르신 대회 심판을 맡으며 비록 하루였지만 많은 것을 배운거 같았다. 심판이 갖춰야 할 자격, 자질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또 한가지 알게된 사실은 앞으로 내가 시, 구대회에 출전하며 별로 생각하지 못했던 선수로서, 동호회 회원의 경기를 응원을 하는 사람의 자세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깨달고 느끼게 해준거 같아 보람된 하루였던거 같다. 사실 잘하면 본전인 심판 힘들기고 하지만 보람도 있어서 어르신 탁구대회 미숙하고 부족했던 심판을 만회하려 아니 어르신 탁구대회에서 보고 배우고 공부한 내용으로 이번 11월 9일-10일 양일간 열리는 제8회 국민생활체육 인천광역시장기 탁구대회 심판을 신청했다. 11월 9일은 토요일 근무라 11월 10일 하루 신청을 했다. 그리고 감히 한마디 한다면 탁구를 치며 생활체육 탁구 동호인이라면 반드시 정말 심판으로 봉사 활동을 한번쯤 해보라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특히 남자 탁구 동호인들이 더욱 더 심판 봉사 참여를 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선착순 20명 모집에 50명 이상이 모여 심판도 경쟁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보면서 나의 부족한 후기를 마치려 한다. 마지막으로 어르신 탁구대회를 위해 수고하시 현명국 회장님 이하 진행요원, 심판을 맡은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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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정식 홍보이사님 카리스마가 넘 치내요 멎져부러요 수고 많이 했어요~~^^
많은 아쉬움이 남아 11월 9일 10일 양일간 펼쳐지는 인천시장기배 심판 신청했습니다. ^^
고생했네요
고생은요. 알고보니 그동안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고 계셨드라고요. 제가 대회 출전만 하다보니 이런 봉사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