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원 입법계품(57)
오늘 <화엄경>··· 지난 시간에 해당 비구(海幢 比丘) 이야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선지식(善知識) 따라서 내용이 많기도 하고 또 아주 짧기도 하고, 법문의 양이 일정하지가 않는데 해당 비구(海幢 比丘)는 조금 긴 편에 해당 되지요. 그래서 지난 시간에 해당 비구(海幢 比丘)의 온 몸에서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서. 나오는 모습을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삼매에 들어갔는데, 그 삼매의 힘으로 온갖 현상들이 일어난다. 결국은, 우리가 삼매가 제대로 이루어 졌을 때 선정의 힘이 제대로 이루어 졌을 때, 그건 뭐 예를 들어서, 관음기도를 하든지 지장기도를 하든지 기도를 하는 그런 마음이 일념이 타악 됐다, 24시간동안 잡념이 일어나지 않고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사경이면 사경, 주력이면 주력. 불교에서 뭐, 염불외우는 것, 주력하는 것, 사경하는 것, 화두 드는 것. 이런 등등, 몇 가지 수행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은 한결같이 우리 한 마음을 집중시키는데. 흩어져서 하룻동안에 수 천 가지, 수 만 가지의 그런 사량분별을 일으키죠, 생각을 일으키는데. 그것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그런 노력입니다, 사실은.
이제 각자 취향 따라서 화두를 드는 사람·염불 하는 사람·주력을 하는 사람··· 여러 가지, 그 사람의 인연 따라서 방법이 달라질 수가 있겠죠. 그래서 방편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문가입(門門可入)이라, 그런 말이 있는데. 방편의 문은 여러 가지고 8만 4천 문이라 해 가지고. 그 문마다 다~ 들어가는 길은 한결같이 잘, 다 열려 있다, 그래요. 그래서 무슨 방법을 택하든 간에 삼매가 완성되었을 때 그 때는 무한한 힘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력도, 생명도 끝이 없구요, 영원하구요, 결국은 우리의 능력도 상상도 못하는 그런 불가사의한 능력이 또, 우리들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가 있는 겁니다. 그건 이제, 특수한 분들은 그런 것을 나타내 보이죠. 불보살(佛菩薩)들은 어떤 신통을 보인다든지 뭐, 원효 스님 같은 분은 한 번 열반하는데 여덟 군데서 동시에 열반을 했다고 하는 그런 기록이 있거든요. 여덟 곳에서, 예를 들어서 여기저기서 곳곳에서 원효 스님이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한날한시. 장소는 다른 데죠. 그런 현상이라든지. 그런 것도 무한한 능력에 해당되겠죠.
그리고 또 틀림없이 죽었는데 분명히 또,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달마 대사라든지 또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이들, 뭐, 그런 도인(道人)들이 무한한 능력을 보이는, 그리고 그런 것은 생명이 영원하다고 하는 것을 보이는 것을 실지로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은 누구나 다, 우리의 생명은 무한한 거예요. 무한한 것이고 영원한 것인데. 그리고 또 누구나 잠재돼 있는 능력은 대단한 거예요. 우리가 만분의 일, 십만분의 일도 제대로 발휘를 못하고 사는데. 그걸 어떤 선정(禪定)의 힘을 통해서 어떤 정진(精進)의 힘을 통해서 그 능력을 개발하기로 하며는 누구나, 누구나 똑~같이 어떤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 마음 자세가.
그래서 불교는 통상 영원한 생명을 누구나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거죠. 무한한 능력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데 그 무한한 능력을 실지로 실증해 보이는 그런 힘을 갈고 닦는 것, 이게 이제 불교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죠. 역사적으로 그런 예들은 물론 많습니다. 이런 것은 본래 우리의 생명은 영원하고 능력이 무한하지 아니하면 그게, 개발이 될 수가 없어요. 그게 본래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본래의 모습이니까 그걸 이제 개발하면, 밖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육신이나 우리의 정신이나 영원하다는 건, 그건 여러 번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는 정신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그게 단절이 되죠. 금생(今生)과 전생(前生), 또 금생(今生)과 내생(來生), 그 간격이 단절이 돼 가지고 전생(前生)에 내가 누군지 모르고 또 내생(來生)에 내가 누가 될 것인지,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간혹 선천적인 능력이 있어서 증명해 보이는 그런 경우들도 요즘은 많이 있어요. 그런 것만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도 있고. 또 요즘 최면술이, 2~30년 전부터 최면술이 그런 쪽으로 발달을 해서 염력소급이니 염력법이니 그래요. 최면상에서 염력을 소급시키면 50살 먹은 사람을 10살로 소급시켜서 “너 10살 때 어디서 누구하고 뭘 했느냐?” 그런 걸, 최면 상에서 물으면 그걸 다 이야기 한다든지. 그 말을 음성으로 해요, 또. 그 말을 녹음을 전부 해서 증명을 해 보이고 실지로 또 확인도 하고. 그래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전생(前生)에 네가 누구였었는가? 그러면 누구였다고 하는 것을 전부 이야길 하는 거죠. 미국서 살았으면, 미국 어디서 살았다. 생판 가 보지도 않거든. 금생(今生)에서는 한 번도 가 본적도 없는데도 그 거리, 환~히 다 알고. 미국 사람이니까 영어로 이야기 다 하는 거지. 다 알고. 아버지 어머니 그런 것들도 생생하게, 실지로 현재 일같이 다 이야기 하는 거죠. 그래, 그런 걸 다 녹음 해 놨다가 가서 확인해 보는 거지. 예를 들어서 미국의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 가서 과거, 그런 사람이 살았느냐? 그런 거, 요즘 조사해 보면 다 나오니까. 그래서 그런 것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이 보통 사람은, 전생(前生)과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이 단절된 것 같이 그렇게 기억이 안 나지마는. 사실은 깊은 정신세계 속에서는 그게 하나로 연결 돼 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요즘 뭐, 다 지나간 이야기죠. 너무 흔한 이야기죠. 사실로 확연히 드러난 이야기고, 그렇습니다.
여기 <화염경>에 이런 내용을 보며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나? 선정(禪定)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의 배에서 몸에서 머리에서 이마에서 어깨에서 별의별것이 다 나타난다. 이렇게 되며는, 정말 현상이 이렇다며는 정말 곤란한 일이죠. 그러나. 이제 그런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가며는 그런 무한한 능력이 부분 부분에서. 염주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에서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 그걸 해당 비구(海幢 比丘)가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또 그것을 선재 동자(善財 童子)는 또 실지로 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것으로서 경전의 이야기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은 경전에서는 더 말할 수가 없죠. 인간의 능력을 개발만 하며는 무한한 능력이 거기서 표현된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은 바른 선정(禪定)의 힘, 삼매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해를 하며는 크게 무리 없는 내용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7) 肩出夜叉(견출야차)
지난 시간에는 등에서 이승(二乘)들이 나오고 가슴에서 아수라들이 나오고. 그래서 오늘은 견출야차(肩出夜叉)라. 어깨에서 야차(夜叉), 야차(夜叉)나 나찰이나. 아수라·가루라, 이런 거는 다, 일반적으로는 불교에서 무슨 귀신이나 악한 역할을 하는 그런 걸로 보지마는. <화엄경>에서는 그렇게 보질 않고 그것을 전부 마음을 돌려서 수호신(守護神)으로, 선신(善神)으로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은 그런 일은 있을 수밖에 없는··· 안 될 일도, 부정적인 일도, 우리 마음에는 없었으면 좋겠지마는, 그 없을 수 없는. 크게 보며는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야차·건달바··· 이런 것들은 악신(惡神)으로,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돼 있지마는 <화엄경>에서는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데. 이, 좋은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 의도가 어딨는고 하며는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벼를 심어서 요즘 추수할 철이 됐는데. 키도 얼마 크지 않고 거기에 주먹만한 벼가, 잔뜩, 잎도 필요 없고, 그 열매만, 그것도 깎을 필요 없이 쌀만, 아예 뭐, 도정할 필요도 없이 쌀만 잔뜩 열렸으면 좋겠죠. 그렇지만 그게 안 되잖습니까? 어느 과정이 필요하고 껍질이 필요하고 김이 필요하고 잎이 필요하고 거기서 또 쌀을 싸고 있는 껍질이 필요하고··· 그런 것들이 필요 없지만, 쌀을 취하는 데는 필요 없는 것이지만, 쌀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게 또 다 필요하다고요. 그거 하나 없으며는, 하나하나 없으면 쌀이 존재할 수 없는 거야.
그렇듯이. 여기서 안 좋은 거, 부정적인 부분, 세상에 부정적인 부분, 마후라가·야차·건달바·아수라··· 이 뭐, 이제 악신(惡神)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것도 적으로 보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있어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거죠. “있어야 할 존재.” 그렇다면 이것도 하나의 진리의 한 모습이다, 이거지. <화엄경>에서는 그리 봅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도 배제하는 건 없어요, <화엄경>에서는. 크게 보니까 배제할 게 아무 것도 없더라는 거지. 쌀 한 톨을 위해서는 그, 성장하는 그런 과정, 그 과정이 없으면 좋겠죠. 그냥, 오늘 심으면 내일 거두면 좀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란 말이야. 그, 필요한 과정이니까 있는 거라. 그리고 또, 쌀을, 말하자면 하나의 완전한 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벼 싹이 필요하고 벼 잎이 필요하고 벼 기둥이 필요하고 또 거기서 쌀을 에워싸고 있는 껍질이 필요하고··· 그런 거라고요. 그래, 나중에 그런 거, 처리하기 아주 곤란해. ‘아이구, 이런 거 좀 없었으면···’ 싶을 때가 있지,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건 뭐, 불필요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지. 있어야 되는 거죠.
그렇듯이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좋지 아니한 일들. 좋지 아니한 사람·좋지 아니한 사건·좋지 아니한 일들. 나에게 돌아오는 불행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도 어쩌면 삶의 전 과정을 볼 때 꼭 필요한 말인지 몰라, 어쩌면. 꼭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인지도 몰라요.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며는 우리가 그걸, 잘 받아들여야 돼,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요. 그래, <화엄경>에서는 무어 하나도 배제하는 게 없습니다.
여기서는 야차(夜叉)라고, 어깨에서 야차(夜叉)가 나온다, 그런 표현을 쓰고 있어요. 이것도 선정(禪定)의 힘에서 무한한 능력이 나온다, 그렇게 보고. 근데 왜 하필이면, 야차(夜叉), 나찰, 이런 것들이냐? 그건 악귀신(惡鬼神)으로 소문난 건데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악귀신(惡鬼神)만이 아니다. 쌀을 취하려며는 쌀이 되기까지의 전 과정. 시간도 필요하고 거름도 필요하고 비료도 필요하고 온갖 폭우도 필요하고··· 별별, 쌀 한 톨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모든 조건과, 거기에 딸린, 지푸라기까지도 다~, 함께, 우리는 쌀과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을 <화엄경>에서는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화엄경> 안목(眼目)은 최소한도로 그래요.
우리 좁은 소견의 중생 마음에는 그게 용납이 안 되겠지마는, 그러나 <화엄경>의 안목(眼目)으로, 진리를 제대로 깨달은 안목(眼目)으로 볼 때는 그것이 다~, 하나의 진리의 삶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從其兩肩하야 出無數百千億諸夜叉羅刹王하니
종기양견 출무수백천억제야차나찰왕
두 어깨로부터. 그 두 어깨로부터 무수백천억 야차(夜叉)·나찰(羅刹). 야차(夜叉)가 다르고 나찰(羅刹)이 달라요. 야차(夜叉)와 나찰(羅刹) 왕들을 내놓는다. 출생을 한다, 이거야. 막 나오니.
種種形貌와 種種色相이 或長或短하야
종종형모 종종색상 혹장혹단
그 가지가지 얼굴이라. 형모(形貌)가 가지가지라. 빛깔도. 종종색상(種種色相). 색상(色相)도 가지가지야. 야차(夜叉)와 나찰(羅刹)도 키도 긴 나찰(羅刹)도 있고, 또 짧은 것도 있고.
皆可怖畏어든 無量眷屬이 而自圍遶하야
개가포외 무량권속 이자위요
여기 두려운 모습이라, 그러죠. 또 평소에는 아주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돼 있어요, 야차(夜叉)와 나찰(羅刹)이. 나찰(羅刹)은 피 빨아먹는 귀신 아닙니까? 옛날에 설산 동자한테 나타났던, 험상궂은 얼굴을 한, 그래서 “나는 피를, 사람의 피를, 그것도 사람의 뜨거운 피를 먹는 귀신이로다.”라고 이렇게 설산 동자에게, 부처님의 전신(前身)인 설산 동자에게 그렇게 위협을 가했던 그 귀신이 바로 나찰(羅刹)이죠. 그래서 개가포외(皆可怖畏)라. 모두가 아주 두려운 모습이다. 그리고 저 혼자만 나온 것이 아니고. 무량권속(無量眷屬)이야. 한량없는 권속(眷屬)들이 또, 뒤에 따르고 있다, 이거야. 한 나찰(羅刹), 나찰(羅刹)마다 많은 나찰(羅刹) 권속(眷屬)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守護一切行善衆生과 幷諸賢聖菩薩衆會와
수호일체행선중생 병제현성보살중회
수호(守護)한다. 일체 행선(一切行善). 선(善)을 행하는 중생. 착한 일 하는 모든 중생들을 수호(守護)해. 그리고 아울러 여러 현인(賢人)들, 성인(聖人)들, 그리고 보살중회(菩薩衆會). 보살들과 보살들의 모임을 또 수호(守護)하고.
若向正住와 及正住者하며
약향정주 급정주자
약(若). “또는” 이런 말입니다. 향정주자(向正住者). 급정주자(及正住者). 정주자(正住)를 향하는 사람, 그리고 정주(正住)하는 사람. 정주(正住)라고 하는 것은 ‘바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바른 삶을 살겠다’고 생각, ‘향[向]’자(字)는 아직은 바른 삶을 사는 게 아니예요. ‘바른 삶, 좀 바르게 살았으면···’ 하고 그런 마음을 향(向)하고 있는 사람. 정주(正住)에 향하는 사람과 또 이미 정주(正住)하고 있는 사람. 그 다음에 바르게 살고 있는 사람, 이런 이들을 수호(守護)하며. ‘수호(守護)’가 다 막, 먹혀요.
행선중생(行善衆生). 현성보살중회(賢聖菩薩衆會). 그리고 향정주(向正住). 또 정주자(正住者).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람들을 전~부 수호(守護)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뭐, 잘 사는 사람을 수호(守護)하는 거는 말할 것도 없고. 잘 살려고 지금은 못 살지마는 잘 살려고 마음먹고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을 까지도 다 수호(守護)하는 거지. 그 뭐, 영원히 잘못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여기 들어 있지 않아요. 지금은 잘못 살아도 ‘앞으론 잘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하나만 있으면 이, 야차(夜叉)와 나찰(羅刹)들은 수호(守護)해 준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 이 범주에서 빠질 사람, 누가 있겠어요? 다 해당되지.
或時現作執金剛神하야
혹시현작집금강신
이 야차(夜叉)와 나찰(羅刹)들이 집금강신(執金剛神)을 현작(現作)한다. 집금강신(執金剛神)을 나타내 짓는다, 이거야. 그러니까, 저가 야차(夜叉)몸 나찰(羅刹)몸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집금강신(執金剛神)의 모양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이거야.
그 우리 법당, 신중단(神衆壇)에 거의 집금강신(執金剛神)입니다. 거기 뭐, 야차(夜叉)도 보이고 나찰(羅刹)도 보이는데 대개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있는’, 그런 뜻이죠. 집금강신(執金剛神)이니까. 금강저를 잡고 있는 신(神). 그, 신중단(神衆壇)에서 제일 대장이 집금강신(執金剛神)이예요.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있죠. 금강저(金剛杵)라고 하는 것은 천태종(天台宗)의 종(宗) 마크를 금강저(金剛杵), 그걸 마크로 하고 있더라구요. 그게 집금강신(執金剛神)이 가지고 있는 금강접니다. 금강저(金剛杵)는 뭐라고 할까. ‘저[杵]’자(字)는 몽둥이, 이런 뜻인데. 그런 거를 잡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우리 법당에 신중단(神衆壇), 하는 것은 화엄신중(華嚴神衆)이예요. 또 거기에 기도할 때 “화엄성중(華嚴聖衆)”“화엄성중(華嚴聖衆)”하는 게··· 그래, 우리가 공부하는 <화엄경>에 나타나는 모든 신중(神衆)들. 야차(夜叉)·나찰(羅刹)·집금강신(執金剛神)아수라·가루라·마후라가·야차··· 이런 것들이 전부 신중단(神衆壇)에 주~욱 나열돼 있어요. 신중단(神衆壇)에 보면 그 숫자가 한정돼 있지 않아요. 그건 화가가 그리는 대로 얼마든지 그 신중(神衆)을 많이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제 대개 법당이 한정돼 있으며는 한정된 안에, 그릴 수 있는 것 만치 그려서 그렇지. 사실은 거기에 한량없는 신들의 모습이 거기에 다 포함돼 있죠.
그래서 우리 한국 불교는 특히, 신라 때 불교 사상의 토대를 왕성했기 때문에 대개 <화엄경 사상>이 한국 불교의 기본 정신으로 기본 사상으로 밑에 깔려 있어요. 그래서 꼭 예불 끝에 신중단(神衆壇)을 향해서, 화엄신중(華嚴神衆)을 향해서 <반야심경>을 읽어 주고. 그리고 또 스님들은 그 쪽을 향해서 큰 절을 안 하거든요? 그, 안 하는 이유가 화엄신중(華嚴神衆)들은 스님들께는 우리가 절을 못 받겠다. 우리는 스님들과, 불법승(佛法僧) 3보(三寶)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절을 받느냐? 그래, 꼭 원력이 부처님이 공양 드시고 물린 거, 그것만 내가 먹지, 절대로 새 음식은 먹지 않겠다. 이런 기록이 있어요. 그래서 꼭 상단(上壇)에서 중단(中壇)으로 물리는 거죠. 그래, 중단(中壇)이라 그래요, 중단(中壇). 하단(下壇)은, 혹시 아세요? 상단(上壇) 중단(中壇) 하단(下壇). 영단(靈壇)을 하단(下壇)이라 그래요. 상(上) 중(中) 하단(下壇), 그거는 잘 알아야 돼요, 우리 불자(佛子)님들은. 그래서 영단(靈壇)에도 사실은 부처님께서 올렸던 것을, 물린 것을 올리는 그게 바른 길이예요. 그렇습니다, 훨씬. 새로 올리는 거, 그게 좋은 게 아니예요. 부처님께 올렸던, 상단(上壇)에 올렸던··· 그 신중(神衆)들은 조건으로, 내가 보호할 테니, 제발 부처님 자셨던 것을 물리면 내가 먹겠다, 그렇지 않으면 난 못 하겠다,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신중(神衆)으로 자처를 한 걸로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단(靈壇)에도 새로 올리기 보다는 상단(上壇)에서 내려 가지고 영단(靈壇)에 차리는 것이 훨씬, 그게 의미가 있습니다. 왕이 자시던 것을 물려 먹으면 더 좋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새 밥을 혼자 지어 먹는 것 보다는 훨씬 영광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법당에도 화엄사상이, 그렇게 곁들어져 있습니다. 또 이런 것을 우리가 <화엄경>을 이렇게 우리가 대하면서 정말 경전 중에서는 최상의 경전인데. 깊은 이치를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고 이, 한 자(字), 한 자(字) 이렇게 짚어 가면서 읽는, 그런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 거, 맺는다고 하는 거, 이것만으로도 사실은 큰~ 다행이에요. 다행으로 아는 사람은 아주 큰 다행이고. 또 다행으로 모르는 사람은 할 수없지마는. 지금 스님들 보며는 <화엄경>에 한철, 아니라 1년을 공부해야 되는데 반도 채 공부를 못하고 쪼~끔, 그저 흉내만 내고, 그 흉내마저도 못 내고 요즘 사람들은 깝깝증이 나가지고 4년을 제대로 못 채워. 3년만 좀 지나면 그만, 얼른 어떻게 졸업할라고 자꾸만 그래 쌓는데 그래서 이 <화엄경>을 마친 걸로는 돼 있는데 사실은 <화엄경>과 인연을 못 맺네요. 그런 걸로 보며는 여기 신도님들은 보통 인연이 아니고 보통 다행이 아니예요. 그걸 정말 가슴으로 눈물 흘리면서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할, 그런 인연이라고요. 제가 가만 생각하니까 이거 참 희유한 인연이다,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님들은 사실, 특~별히 원력 세운 사람 아니며는 크게 인연 못 낸다고요. 법당에는 모셔 놓기만 하고, 주로 그랬지. 한 자(字), 한 자(字) 이렇게. 무슨 뜻인지 알고 모르고 보다도, 그저 한 자(字), 한 자(字) 이렇게 놓치지 않고 짚어 가면서 읽는다고 하는 거, 이게 중요하고. 또 곳곳에서 화엄산림(華嚴山林)을 하는데 제가 화엄산림(華嚴山林)하는데 제가 늘 아쉬워하는 것은. 화엄산림(華嚴山林)하는 데마다 거의 제가 가서 하루씩, 이틀씩 하는데 전~부 건성이죠, 뭐. 한 달간 하든. 백일을 하든간에 제대로 한 구절 뭐, 어떻게 음미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어요. 거의 뭐, 가서 자기가 평소에 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들 하지, <화엄경> 하고는 거리가 멀고. 한다 하더라도 양이 많아서 제대로는 물론, 할 순 없죠. 그렇더라도 하여튼 한 구절이라도 <화엄경> 이야기를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쉽지가 않은 가 봐요. 그래서 이런 인연을, 평생을 통해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큰 복이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른지 그게 참 문제는 문젠데··· (웃음) 그게 스스로 느낄 일이지 누가 “그렇다,”라고 일러 줘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 스스로 느낄 일이예요, 그거는.
집금강신(執金剛神)을 나타내 짓기도 한다.
守護諸佛과 及佛住處하며
수호제불 급불주처
그래서 뭘 했냐? 제불(諸佛)과 불주처(佛住處). 부처님이 머무신 곳을 수호한다. 지켜서 보호한다. 그러니까 신장단(神將壇)이, 큰 법당 옆에는 당연히 신장단(神將壇)이 있어야 돼요. 신중(神衆)들이, 그거는 뭐, 아주 필연입니다. 틀림없이 있어요. 왜 있어야 되느냐? 이 보십시오. 부처님과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수호해야 하니까. 그런 의무가 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큰 법당에는 옆에, 딴 데 있어서는 안 돼요. 바로 그 법당 안에, 옆에 있어야 돼. 그렇게 수호하며
或徧守護一切世間하야 有怖畏者는 令得安隱하고
혹변수호일체세간 유포외자 영득안은
부처님과 부처님이 계신 곳만을 그러는 게 아니고 일체세간을 모두 수호해. 중생들이 사는 세상도 두루두루 수호를 해 가지고 두려움 있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해 준다, 이거야. 그러니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러니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고. 이렇게 해 주고.
有疾病者는 令得除差하고
유질병자 영득제차
질병이 있는 사람은 영득제차(令得除差)야. 이게 ‘나을 차[差]’자(字)예요. ‘병 나을 차[差]’자(字)로 보는데. 병이 제거되고 또 낫도록 그렇게 해 준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거의, 신중단(神衆壇)에다가 기도를 하잖아요. 두려움이 있고 병이 있고.
有煩惱者는 令得免離하고
유번뇌자 영득면리
또 고뇌가 있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고뇌가 있는 사람은 그 고뇌를 면하고 떠나도록, 그렇게 하고
有過惡者는 令其厭悔하고
유과악자 영기염회
허물과 어떤 나쁜 짓을 한 것이 있는 사람들은 그걸, 이제 앞으로는 악을 짓는 일을 싫어하게 해. 말하자면 뉘우치게 한다.
有灾橫者는 令其息滅하야
유재횡자 영기식멸
또 횡액이 있는 사람들. 재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식멸(息滅). 쉬고 소멸하도록, 횡액이 소멸하게 해서
如是利益一切衆生하야 皆悉令其捨生死輪하고 轉正法輪하니라
여시이익일체중생 개실령기사생사륜 전정법륜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해서 생사(生死)의 수레바퀴를, 생사윤회(生死輪回)를 전부 버리고 정법륜(正法輪). 정법(正法)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한다. 그러니까 생사(生死)의 수레바퀴를, 생사윤회(生死輪回)를 버린다는 게 달리 뭐, 오물에 쓰레기 버리듯이 그렇게 버리는 게 아니고. 생사(生死)의 삶을 쫓아 가며는 그건 생사(生死)의 윤회(輪回)를 따라가는 것이고. 정법(正法)만 공부하는 사람은, 정법(正法)만 공부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생사(生死)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이 아니고 정법(正法)의 바퀴를 굴리는 사람이니까 이제 생사(生死) 바퀴하고는 관계없는 거야. 생사(生死)야 지가 있든 말든, 이젠 나하고는 관계없는 거야. 그래서 사생사륜(捨生死輪). 생사윤회(生死輪回)를 버리고. 정법(正法)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우리가 부처님 경전을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정법(正法)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시간이라, 어쨌든. 그러니까 생사(生死)하고는 관계없는 거예요. 그럼, 생사윤회(生死輪回)는 이 순간, 우리는 떠나 있는 게 되죠.
(8) 腹出緊那羅(복출긴나라)
그 다음은 복출긴나라(腹出緊那羅). 배에서 긴나라들이 나온다, 그랬어요.
從其腹하야 出無數百千億緊那羅王하니
종기복 출무수백천억긴나라왕
그 배를 통해서 무수한 백천억 긴나라왕들이 나오니. 긴나라왕. 야차왕. 나찰왕. 이거 다 전부 신(神)들이예요. 흔히 악신(惡神), 악신(惡神), 하는데 수호신(守護神), 이렇게 보며는 선신(善神)이 되겠죠, 결국은. 선(善)이니 악(惡)이니 하는 것도 그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예요, 또.
各有無數緊那羅女하야 前後圍遶하며
각유무수긴나라녀 전후위요
또 각각 무수 긴나라 여자가 있어. 긴나라 여자가 있어서 앞뒤로 쫘악 에워싸고.
又出無數百千億乾闥婆王하니
출무수백천억건달바왕
그러니까 여기서는, 배애서 긴나라왕들만 나오는 게 아니고 건달바왕도 나와. 건달바왕은 또 음악을 좋아한다, 그랬어요. 특기가 음악이야. 절[寺]에서 그런다고 해요. 춤이나 노래를 좋아하면 “건달바신이 들렸나?” 이래요. 크게 밉게 생각하지를 않고 ‘건달바신이 들렸는가 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 건달바는 본래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는 그런 귀신. 음악의 신이다, 그리 보는 거죠.
各有無數乾闥婆女가 前後圍遶하며
각유무수건달바녀 전후위요
긴나라도 긴나라 여자가 있어야 되고. 건달바도 건달바 여자가 있어 가지고서 앞뒤로 에워싸고 있다.
各奏無數百千天樂하야
각주무수백천천악
그래서 백 가지나 천 가지나 되는 하늘의 음악을 연주해.
歌詠讚歎諸法實性하며
가영찬탄제법실성
그래서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노래 부르고 찬탄하는 거야. 여기 잘 보며는 찬불가(讚佛歌)야. 찬불가(讚佛歌)에 무슨 관세음보살을 찬탄하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보현행을 찬탄하고··· 또 무슨··· 별의별걸 찬탄하는 형식으로 돼 있죠. 그렇듯이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무엇을? 제법(諸法)의 실다운 성품을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노래 부르고 찬탄한다.
歌詠讚歎一切諸佛하며
가영찬탄일체제불
또 일체제불(一切諸佛)을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이게 찬불가죠, 찬불가. ‘찬[讚]’자(字)하고 ‘불[佛]’자(字)하고 하면 찬불가(讚佛歌)라. 가영찬탄(歌詠讚歎). 모든 부처님을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歌詠讚歎發菩提心하며
가영찬탄발보리심
또 보리심을 발하는 것에 대해서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歌詠讚歎修菩薩行하며
가영찬탄수보살행
또 보살행 닦는 데 대해서 가영찬탄(歌詠讚歎)한다. 우리, 찬불가(讚佛歌)에 이런 거 다 있죠? 보리심에 대해서. 보살행에 대해서
歌詠讚歎一切諸佛成正覺門하며
가영찬탄일체제불성정각문
또 일체제불(一切諸佛)의 성정각문(成正覺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를 한 문제에 대해서. 그런 데에 대해서 또 가영찬탄(歌詠讚歎)하고. 노래 부르고 찬탄한다.
歌詠讚歎一切諸佛轉法輪門하며
가영찬탄일체제불전법륜문
또 일체제불(一切諸佛)이 법륜을 굴리는 거. 법륜을 굴리는 거에 대해서, 이건 뭐 청법가(請法歌)라고나 할까요? 그것을 가영찬탄(歌詠讚歎)하며
歌詠讚歎一切諸佛現神變門하며
가영찬탄일체제불현신변문
모든 부처님이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거기에 대해서 노래 부르고 찬탄하며
開示演說一切諸佛般涅槃門하며
개시연설일체제불반열반문
또 개시연설(開示演說)도 한다. 열어 보이기도 하고 또 설명도 한다. 무엇을 하는 고 하니. 일체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문제. 부처님의 열반이라고 하는 거기에 대해서, 연설을 하는 거야. 설명을 하는 거야. 부처님의 열반은 말하자면 육신의 열반이고 또 육신의 열반이라 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하는 것을 또 보여줬죠.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해서. 가섭 존자. 제일 큰 제자가 늦게 도착했는데 관 안에 넣은 뒤에 들어 왔어요. 그래 이제, 속가(俗家)에도 그러죠. 맏아들이 올 때까지 저걸 안 하죠? 얼굴 안 싸죠? 예를 들어서 부처님 같은 경우에는 맏아들이 도착을 안했어도 곽 안에다 집어넣었다고요. 그래, 늦게 오니까 ‘내가 죽은 줄 아느냐?’ 하면서 부처님이 곽 밖으로 두 발을 이렇게 내 보였다. 영원한 생명을 보였다. 그래 49재 지낼 때, 그 대목을 딱 첫 머리에 한다고요. 부처님은 곽시쌍부(槨示雙趺)라. 그런 말을 탁 해요, 보면. 그 다음에 총령도중(蔥嶺途中) 수휴척리(手携隻履). 달마 대사는 돌아가신 뒤 짚신 한 짝을 메고 걸어가는 것을 또 말하자면 영원한 생명이 또, 이렇게 살아 움직인다고 하는 것을 또 보여주는 것이고. 그럴 도리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최면술로다가 염력소급해 가지고 전생(前生)에 누구였다. 전생(前生)에 누구던 사람이 말하자면, 금생(今生)에 누구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 생명은 안 죽었죠. 육신은 죽어도 생명은 안 죽었다하는 것을 그런 식으로, 요즘 과학에서는 그렇게 최면술로 보여 주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한 때 그런 책, 많~이 출판됐었죠. 심령학에 관한 거, 그런 문제. 최초의 그런 책이 나온 게 브레디 머피 찾아서. <사자(死者)의 대화>, 그 책인데 죽은 사람과의 대화, 그런 책인데. 브레디 머피라고 그런 여자라. 그 여자가 전생(前生)에 브레디 머피야. 그런데 금생(今生)에 말하자면 염력소급하니까 과거에 자기는 브레디 머피라고 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누구하고 어느 나라에서, 이태리에서 어떻게 살았는데 우리 집은 어떻고어떻고 하는 것을 전부 최면을 시켜서 녹음을 다 했는데. 그걸 가지고 기자들이 들고 가 가지고 샅샅이 찾아보니까 너무나도 정확한 거야. 한 번도 이 여자는 거기 간 적이 없는데. 전생(前生)일 이니까. 틀림없이 그대로거든. 자기가 말하는 동네들도 다 있고. 동네들이 다 있는 거야.
조사(祖師) 스님들의 경우는. 이건 뭐, 스님들의 이야기니까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일반적으로 그런 것들은 너무나도 많이 활용이 돼요. 그래서 부처님과 달마 대사 같이 그런 도(道)를 이룬 이들은. 발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발을 통해 보여주고. 그렇지 못한 중생은 그런 어떤 비상한 수단을 통해서 보여주고··· 혹 이제 <전생(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이란 책 있죠? 그런 거 보면, 세계적으로 간혹, 전생(前生)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도 이제 크게 나이가 들어 버리면 매해져 버리고. 한, 3살, 4살, 5살, 그 때까지는 아주 전생(前生)에 대한 기억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있어요. 그래 5살에서 6살·7살이 되며는 그만, 세상에 물들어 버리니까 기억이 희미해져 버리고 결국은 전생(前生) 기억이 사라져 버려요. 그런데 3살, 4살, 5살, 그 때는 너무 또록또록하게 기억하는 그런 예들이 많아요. 그래 가지고 전생(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쫓아 가 가지고 어디에 살았다, 그러면 거기 함 가 보자, 해 가지고 눈을 싸 매고 차를 태워 가지고 가는데 어느 도시에 들어 서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가느냐? 하니까 뭐, 몇 미터쯤 가다가 오른 쪽으로 돌아 가지고 뭐, 어떻게 한참 오른쪽으로 가다가 무슨 길이 나타나면 거기서 왼쪽으로 가고··· 이걸, 눈을 싸매고 가는데 정확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야. 일부러 태워 가는 사람이, 딴 길로 가는데 아, 그 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그 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지시를 하고. 그래서 과수원쪽을 향해서 어디로 가면 우리 집이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자기 살았을 때 사람들도 보고는 그냥 다 알고. 그 사람들은 모르죠. 어린 아이가 뭐, 니 뭐, 하고 니 아직도 있구나, 하고 이래 쌓는데 그거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근데 저는 훤히 아는 거야.
그런 거는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아주 박사야. 훤~히 꿰고 있어, 그런 데 대해서는. 너무너무 정확하게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 케닌 브로스라고 그런 것만 전문으로 연구해 가지고 보고서가 매달 나오는데. 그 보고서를 백련암에서는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다 보거든요. 그래 가지고 그 연구 보고서를 환히 읽고는. 또 취미가 있어요. 그래가지고 재밌다고 내, 그런 말씀을 법문(法門) 중에 많이 하셨어요. 그래, 성철 스님 책 보면 그런 게 많이 나오죠.
開示演說守護一切諸佛敎門하며
개시연설수호일체불교문
그 다음에 일체제불(一切諸佛)의 가르침의 문을 수호하는 데에 대해서 개시연설(開示演說)하며. ‘문[門]’자(字)는 별 의미가 없어요.
開示演說令一切衆生皆歡喜門하며
개시연설영일체중생개환희문
또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환희하게 하는, 그런 문을 개시(開示)해서 연설(演說)하고
開示演說嚴淨一切諸佛刹門하며
개시연설엄정일체제불찰문
또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엄정(嚴淨)하게. 청정하고 깨끗하게 꾸미는 그런 일에 대해서 개시연설(開示演說)하고
開示演說顯示一切微妙法門하며
개시연설현시일체미묘법문
또 일체 미묘법문(微妙法門)을 현시(顯示). 나타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개시연설(開示演說)하며
開示演說捨離一切諸障礙門하며
개시연설사리일체제장애문
또 일체 모든 장애를 사리(捨離). 떠나서 보내 버리는, 버려 버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개시연설(開示演說)하며
開示演說發生一切諸善根門하야
개시연설발생일체제선근문
또 여러 가지 선근(善根)을 발생시키는. “선근(善根)은 어떻게 해서 나올 수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개시연설(開示演說)해서
如是周徧十方法界하니라
여시주변시방법계
이와 같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두루하니라.
그러니까 배에서 긴나라들이 나와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 말하자면, 시방(十方)에 두루하다. 이제, 선정(禪定)의 힘에 의해서 무한한 작용이 펼쳐진다. 신체의 부위부위마다, 또 머리카락 하나하나마다 충~분히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작용이 가능하다, 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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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쌀을 취하는 데는 쌀 껍질이 필요치 않지만 쌀이 만들어지려면 쌀 껍질도 있어야 하듯이. 우리 삶의 좋지 아니한 일들, 사건, 사람은 우리 삶의 전 과정을 통해 볼 때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고 하시네요... 시방세계 모든 중생들이 좋지 아니한 일들을 딛고 그것을 돌려서 행복해 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_()()()_
모든 일어나는 일들의 인연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체면을 걸어서 알아볼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법륜을 굴리실 때 하신 말씀...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 꼬박꼬박 잊지 않고 올려주시니 고맙습니다. _()()()_
가슴 벅차게 고맙습니다 _()()()_
如是利益一切衆生하야 皆悉令其捨生死輪하고 轉正法輪하니라...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해서 生死의 수레바퀴를, 생사윤회를 전부 버리고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하니라....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_()()()_
가을햇살님! 감사히 공부하고 갑니다. _()()()_
벌써 57강이네요. 수고 많으십니다. 덕분에 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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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진리의 삶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것..._()()()_
捨生死輪 轉正法輪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생사의 수레바퀴를 버리고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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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가 완성되었을 때 그 때는 무한한 힘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력도, 생명도 끝이 없구요, 영원하구요, 결국은 우리의 능력도 상상도 못하는 그런 불가사의한 능력이 또, 우리들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가 있는 겁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한한 능력을 갈고 닦는 것이 불교다--해당 비구처럼 선정,삼매의 힘에 의해서
나에게 오는 좋지 않은 일,불행도 나에게 필요한 일일지 모르니 잘 받아 들여야 한다
-일체를 수용하는 화엄경의 가르침
-건달바,아수라,야차등 보통 일반적인 불교에서 배척되는 존재들도 화엄경에서는 신으로,필요한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두 어깨로부터 무수한 야차 나찰왕들이 나온다
;착한 일 하는 사람들,보살들의 모임,현재 올바르게 사는 사람,.앞으로 올바르게 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을 수호한다
;혹은 금강신의 모습을 나타내어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 계신 곳을 수호하며
;일체 세간을 두루 수호하여 두려워하는 사람을 안락케하고 병든 사람 병을 낫게 하며
;번뇌가 있는 사람의 번뇌를 없애며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뉘우치게 하며
;횡액을 당한 사람의 액난을 면하게 하며
--생사를 벗어나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한다'
배에서는 무수한 긴나라왕,건달바왕이 나온다
;제법 실성,일체 제불,발보리심,보살 수행,성정각문,전법륜,신통변화,열반을 노래로 찬탄하며
;일체 제불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문,일체 중생을 환희케 하는 문,모든 세계를 장엄하는 문,미묘법문을 나타내는 문,장애를 떠나는 문,일체 선근을 발생시키는 문들을 연설하기를 모든 세계에서 한다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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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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