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Contra Costa Times 2010-4-4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신년 퍼레이드에 빠져든 미국 롱비치
Long Beach turns out for Cambodian New Year parade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하는 혼합문화적 축제가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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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신년 퍼레이드에 참여한 "캄보디아 문화예술 보존협회"(Cambodian Culture & Art Preservation Association) 회원들이, 기수의 바로 뒤에서 전통음악과 춤을 선보이며 지나가고 있다. (사진: Stephen Carr) |
기사작성 : Greg Mellen
(롱비치) — 캄보디아 전통설날인 "쪼울 츠남 트마이"(크메르신년)을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일요일(4.4) 아침부터 캘리포니아 롱비치(Long Beach)의 "애너하임"(Anaheim) 거리에서 대규모 축하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그 제6년차 연례행사를 진행했다.
퍼레이드 행사 참가자는 2년째 감소추세를 보여줬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경제상황의 영향도 있고, 또 부활절과 행사날짜가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유로 일부 기독교인들과 라틴계 주민들, 그리고 종교간 대화 단체들(interfaith organizations)이 이 퍼레이드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경을 나온 인파들은 최소로 잡아도 예년보다 많았고, 열기 역시 매우 들뜬 분위기였다. 또한 이제는 매년 이 행사의 징크스처럼 된 찌푸린 구름 역시 행렬이 주니페로 아베뉴(Junipero Avenue)를 출발하던 오전 10시 14분경에는 말끔하게 개였다.
행렬에는 내빈으로 초대된 헴 헹(Hem Heng) 주미 캄보디아 대사도 참여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롱비치 방문은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 헴 헹 대사는 "캄보디아인으로서 이 행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롱비치에 거주하는 캄보디아계 미국인 사회의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 행사를 통해 여타 민족들이 캄보디아인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 퍼레이드와 같이 전미인들이 참여하는 캄보디아인들의 무대가 있다는 것이 아직 캄보디아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이러한 행사가 [타문화와의] 문화적 융합과 상호교류에 적절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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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신년 퍼레이드"를 보러나온 시민들이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변에서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 Stephen Carr) |
이 퍼레이드에는 매년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 사회단체 및 클럽(동호회)들과 여타 단체들이 동참한다. 이러한 단체들에는 다양한 크메르계 청소년 단체와 예술단체들에서부터, 몽족(Hmong) 단체들과 경찰, 정치인, 시민단체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행렬 중에는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주름치마를 입은 청년들 2명도 보였다. 그 중 한 명인 피터 조셉(Peter Joseph)은 "연합 캄보디아인 공동체"를 애너하임으로 이송하는 일을 담당하는 "빅 레드 버스"(Big Red Bus)의 공동 소유주이다. 그에게 옷차림에 대해 물어보자, "우리는 어디를 가든 이 복장으로 간다. 그냥 우리가 선택한 복장일뿐"이라 답했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전 구간에는 온종일 혼합문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왔다. 보석상인 "므꼿 삣"(Mkott Pich)에는 캄보디아 국기와 미국 국기가 나란히 장식되어 있다. 대열의 선두에는 먼저 캄보디아인 스님들과 기독교의 흑인 목사님들이 함께 축복을 하며 지나갔다. 과거 주미 캄보디아 대사를 역임한 시짠 시우(Sichan Siv) 씨는 이 퍼레이드를 축하하는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의 친서를 낭독했다.
트럭의 화물칸을 개조한 무대에는 "세레이 랍"(Serey Raph) 공연예술단이 "캄보디아 전통 극예술"인 <라콘 바싹>(Lakhon Bassac: 결코 승리하지 못한 거인[The Giant Never Wins])을 연출하며 지나갔다. "캄보디아 재향군인 연합"(Cambodian Veterans Association)을 태운 지프 승용차는 전면에 캄보디아 국기를 게양하고, 후미에 부착한 스페어 타이어 커버에는 프로야구 구단인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의 로고를 부착하고 있었다.
행렬의 후미에는 먼저 크메르 고전무용단이 지나갔고, 롱비치 출신의 11세 크메르계 소년 랩퍼 쁘랏 리(Prach Ly)가 마이클 잭슨의 댄스를 공연하며 지나갔다.
공원에서는 한 캄보디아인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게 멕시코식 팔레타(paleta) 빙수를 사주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길에서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공원에서는 "아메리카나"를 상징하는 또다른 행사인 한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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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여 인원은 적어도 축제 분위기는 물씬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미국이 부럽네요.
그게 바로 미국의 주요한 파워 중 하나죠.. 동시에 크메르인 공동체들의 규모도 적지는 않은듯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말기부터 크메르루즈 시대에 .. 미국으로 떠난 베트남인 난민들의 수가 13만명으로 나오는데, 동 기간에 미국으로 간 캄보디아 난민들이 15만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해외 베트남인들이 500만명이라고 베트남 정부가 밝혔는데.. 아마도 여러 변수가 있을듯 합니다.. 가령 태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인들을 포함하면.. 캄보디아 정부가 발표할 수 있는 해외 캄보디아인들의 수도 얼추 한 100만 이상 되지 않을까도 싶은데.. 8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베트남에 비해, 1400만 정도의 캄보디아 인구를
고려한다면, 캄보디아의 해외 거류민 총 수도 그 인구에 비해서는 만만치 않을듯 합니다..
참고로! 정확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전 어디선가 본 내용인데요!
현재 베트남이 소유하고 있는 메콩델타지역을 캄보디아에서는 캄푸치아끄롬으로 부르는 이유가 이곳의 거주민들은 대부분이 크메르족으로
약 1,300만명이 된다는 내용이 기억납니다. 그렇다면 해외이주자(100만 추산)를 합한 크메르인들의 전체 숫자는 이제 3,000만명 가까이 된다는
결과가 되는데요, 어디서 이런 내용을 본 것인지 한번 더 확인해 보아야 겠습니다. 운영자님들도 한번 확인해 주세요!
의견 감사합니다.. <민족/종교/관습> 게시판에 보시면 "캄보디아 소수민족: 크메르 끄롬"이란 게시물이 있습니다.. 비교적 상세한 내용이 나와 있고요.. 카페 내 검색에서 "크메르 끄롬"을 입력해 보시면.. 우리 카페에 관련 게시물이 상당히 더 존재함을 아실 수 있습니다.. 크메르 끄롬은 약 105만명쯤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100년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베트남 남부의 다수 민족이었으나, 이제는 소수 인구로 전락되어.. 이곳 저곳에 고립된 마을을 이루면서 분포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식민지 당시에 크메르 끄롬인들이 캄보디아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초기 민족주의자인 손웟탄 같은 이들이 그들이고.. 독립 후에도 정계에 굵직한 인물들을 다소 배출한 것으로 나옵니다.. 태국에 있는 "크메르수린"들과 달리.. 베트남의 "크메르끄롬"(직역하면 하-크메르족) 사람들은 상당히 크메르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하고.. 지금도 독립운동 단체인 "캄푸치아 크메르끄롬 연합"이란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훈센 정부로서는 이 크메르끄롬인들이 일종의 정치적 지뢰처럼 감춰진 것이라.. 상당히 조심스레 다루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일단 정치 사회적 관점에서 볼때, 태국에 영주하는 크메르수린(약 120만명)과 베트남 남부의 크메르끄롬(약 105만명)은 .. 당장 캄보디아의 해외 이주민으로 보기 어려울듯 합니다.. 그러나 태국에 들어가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인들이 크메르수린 외에 별도로 수십만명 정도가 있으니.. 그런 숫자를 포함하면 대략 100만명 선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즉 미국 20-25만명, 프랑스 5-10만명, 호주/뉴질랜드 3만명선.. 그리고 태국에 약 50만명, 기타 국가들 2만 정도 잡으면.. 얼추 한 100만명의 해외교포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