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블 FPD·100㎞ 무선통신기·고성능 박막 전지
대기업도 포기한 꿈의 신기술 완성단계
날밤 샌 집념 “올해가 신화의 해 될것”
부산항에서 50㎞쯤 떨어진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 안. 아침 선실 안 탁자 위에 놓인 ‘전자 신문’을 집어든다. 종이신문과는 달리 거의 투명하다. 신문을 펼치면 그날 한국 조간(朝刊) 신문의 기사와 사진들이 뜨고 때론 음성과 동영상이 서비스된다.
동아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송정근(宋政根·47), 경성대 멀티미디어공학과 신천우(申千雨·42), 경상대 응용화학공학부 안주현(安柱炫·45) 교수는 마치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 장면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송 교수는 종이처럼 접거나 둘둘 말 수도 있을 정도로 유연성이 뛰어난 화면인 ‘플렉시블 평판 디스플레이(Flexible Flat Panel Display)’를 개발 중이다. 앞의 요트 안에 있던 접혀 있는 4면짜리 신문형 화면이 이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재료는 유기 반도체로, 실리콘 등 무기물을 소재로 한 기존 ‘무기 반도체’와 달리 진공이 아닌 대기·상온 상태에서 제작할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든다.
육지에서 50㎞나 떨어진 요트로 정보가 서비스되는 것은 신 교수의 기술이 토대다. 현재 국내 무선통신은 중계 장치에서 1㎞만 벗어나도 무용지물. 영남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신 교수는 그 거리를 100㎞까지 늘려 초고속 무선통신을 가능케 하는 ‘광대역 무선 통신기’의 상용화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아주대 화공학과 출신인 안 교수는 오래가고 충전도 할 수 있는 ‘고성능 박막형 2차 전지’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신문처럼 얇지만 강력한 파워를 지닌 고출력·고용량의 2차 건전지가 있다면 노트북, 휴대전화 등의 크기가 작아지고 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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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난해 10월 또 다른 개가를 올렸다. SK텔레콤·KT·KTF·삼성OLED 등 통신 정보 대기업들로부터 모두 328억원을 지원받아 ‘미디어 디바이스 연구센터’를 설립한 것. 사업에 밝은 대기업들이 이들의 아이디어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인정한 셈이다. 한때 대기업은 회로의 안정성을 이유로 송 교수와 같은 기술의 개발을 포기했었다.
연구센터의 2009년 매출목표는 11억달러. 플렉시블 FPD 4억달러, 고성능 2차 전지 3억9000만달러, 광대역 무선통신기 3억달러다. 1만2500명의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신 교수는 1998년 퀴퀴한 냄새가 나는 5평짜리 지하 벤처창업센터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잠도 하루 2~3시간. 그 생활 1년에 담석증에 걸려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 2000년쯤 초기 개발에 성공했을 때는 전문지에서까지 신 교수의 기술을 허황되다고 했다. “그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2002년 일본 소프트뱅크사 등이 신 교수의 기술에 주목하면서 활로가 열렸다.
안 교수는 연구 초기인 1999년 학교의 장비가 열악해 몸으로 때웠다. 처음 1년간은 일주일에 2~3일을 실험실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코피를 쏟고 입술이 부르텄지만 하루 2~3개씩의 전지를 만들었다 부수는 실험을 되풀이했다.
송 교수 역시 3년 전 연구를 본격화할 때부턴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3년간 1000차례가 넘는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7개 공정을 만들었다. 몸무게가 2~3㎏씩 빠지고 몸이 약해져 겨울엔 감기·몸살을 달고 살았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송 교수는 두루마리 평판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더 늘리고, 유연한 플라스틱 박막 위에 새겨지는 유기물 반도체 회로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안 교수는 300회 가량 사용한 2차 전지의 충전량을 처음의 60~70%로 끌어올리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신 교수 역시 무선통신 광대역을 20㎞에서 100㎞로 확대하는 방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이들은 “올해를, 우리의 신화를 현실로 일구는 원년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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