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법의 이익
또한 법문을 들으면 배움이 많아지는bahussuta 등의 여러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법문을 들으면 어떠한 이익, 어떠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Sussutā sutavaddhanī, sutraṁ paññāya vaddhanaṁ;
Paññāya atthaṁ jānanti, ñāto attho sukhāvaho. (Thg.249)
잘 배우는 이는 배움을 키운다.
그리고 배움은 통찰지를 증장시킨다.
통찰지를 통해서 의미를 안다.
알게 된 의미는 행복을 가져온다.
법문을 듣고 경청하는 것에 의해 배움이 많아집니다. 법문을 많이 들을수록, 경전을 많이 읽을수록 배움이 넓어집니다. 배움이 많고 넓어질수록 지혜도 커집니다. 지혜가 커질수록 원인과 결과를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 이익이 있는지, 어떠한 것이 이익이 없는지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배움이 넓고 지혜의 힘이 좋을수록 바르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보고 들은 것도 적고 지혜도 작으면 세간적인 여러 가지 문제, 세간적인 여러 가지 결정 사항에 있어서 잘 결정하지 못합니다. 의심만 늘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보고 듣는 것, 배움이 많을수록, 지혜의 힘이 좋을수록 바르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없는 것을 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있는 것만 따라서 실천하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 천상의 행복, 열반의 행복이라는 세 가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세간적인 재산과 출세간적인 재산 모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알라와까 야차
이것과 관련하여 알라와까Āḷāvaka라는 야차가 부처님께 질문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알라와까 야차의 가문에는 문답 하나가 가보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가보는 깟사빠 부처님 당시, 알라와까 야차의 선조가 깟사빠 부처님과 문답을 나누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대로 전해지다가 알라와까 야차에 이르러서는 질문만 기억하고 대답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부처님께서 알라와까 야차의 궁전을 방문하셨습니다. 알라와까 야차는 처음에는 여러 가지 무기로 부처님과 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싸워서 이길 수 없자 ‘어려운 질문을 해서 힘들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서 부처님께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들 중에 제일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Kathaṁ su labhate paññaṁ, kathaṁ su vindate dhanaṁ;
Kathaṁ su kittiṁ pappoti, kathaṁ mittāni ganthati.(Sn.187)
어떻게 해서 지혜를 얻고
어떻게 해서 재산을 모읍니까?
어떻게 해서 유명하게 되고
어떻게 해서 친구를 사귑니까?
알라와까 야차의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즉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Sussūsaṁ labhate paññaṁ, appamatto vicakkhaṇo.
Patirūpakārī dhuravā, uṭṭhātā vindate dhanaṁ;
Saccena kittiṁ pappoti, dadaṁ mittāni ganthati.(Sn.188, 9 일부)
법을 경청하고 방일하지 않는 이,
성찰하는 이가 통찰지를 얻는다네.
적절하게 행하고 확고한 이,
분투하는 이가 재산을 얻는다네.
진실로써 명성이 자자하게 되고
보시하는 이가 친구를 가진다네.
첫 번째로 법을 잘 듣는 것이 지혜를 얻게 합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마지막에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노력하는 이가 재산을 얻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재산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게으르다’라는 소리는 듣기에는 좋지 않지만 몸은 편안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마음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돈을 많이 못 가져옵니다. 돈을 많이 못 가져오면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결국 구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진실의 말로 명성을 얻습니다.
네 번째로 보시하는 것으로 친구들을 얻습니다.
이 네 가지 중에 제일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대답은 ‘많이 들어야 한다’입니다. 이 문답에서도 나타나듯이 지혜가 큰 것의 원인은 법문을 많이 듣는 것입니다.
법문 중에서도 어떠한 법문을 많이 들어야 할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제일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높고 거룩한 생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의 공덕 여섯 가지 중에 첫 번째는 ‘잘 설해진svākkhāto 가르침’입니다. ‘잘 설해진 가르침’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지 그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 번뇌의 뜨거움을 사라지게 하고, 가르침을 따라서 실천하면 몸과 마음의 행복을 누리게 하고, 완벽하게 실천하여 법을 증득하면 열반의 행복까지 누리게 하기 때문에 잘 설해졌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지 듣는 것만으로 뜨거움을 사라지게 할 정도로 위력이 큽니다. 단지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 뜨거움이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뜨거움’이란 바라고 기대하는 탐욕의 뜨거움, 싫어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성냄의 뜨거움, 어리석음의 뜨거움, 자만의 뜨거움, 질투와 인색의 뜨거움 등 열 가지 번뇌의 뜨거움을 말합니다. 이러한 열 가지 뜨거움이 법문을 듣고 있는 동안 고요하게 잠재워집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법문을 듣는 중에 탐욕이 일어납니까? 성냄이 일어납니까? 질투와 인색이 일어납니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법문만 잘 듣고 있다면 탐욕과 성냄 등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일시적으로 번뇌를 가라앉히기 때문에 아직 수행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법문은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 번뇌가 잠재워져 높고 거룩한 생을 얻게 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개구리 천신
한때 부처님께서는 각가라Gaggarā라는 연못 근처에서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개구리 한 마리가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서 연못에서 나와 부처님의 음성을 매우 좋아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동물이기 때문에 그 법문의 의미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음성은 매우 깨끗하고 청아합니다. 분명합니다. 듣기에 좋습니다. 비록 의미를 잘 이해하는 지혜가 없어 뜻은 알지 못했지만 개구리는 부처님의 음성에 아주 집중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이때 법회가 열린 곳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소치기가 사람들이 모여 법을 듣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법문을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법회가 열리는 곳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대중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소를 모는 막대기를 땅에 세우고 막대기 위에 두 손바닥을 얹고는 아래턱을 괴고 서서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치기가 세워 놓은 막대기가 우연히 법문 듣던 개구리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소치기가 누르는 힘이 점차 가중되자 아래에 깔린 개구리는 결국 머리가 눌려서 죽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 부처님의 음성을 공경하는 믿음pasāda saddhā이 있었습니다. 사실 공경하는 믿음은 단지 믿는 정도인 약한 믿음입니다. 지혜와 결합한 신뢰하는 믿음okappana saddhā 정도로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법문을 듣고 공경하는 믿음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그 개구리는 도리천에 만두까 데와뿟따maṇḍūka devaputta라는 이름의 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개구리는 축생임에도 불구하고 법문을 듣는 동안 마음속에서 탐욕이 일시적으로 잠재워졌습니다. 성냄도 일시적으로 잠재워졌습니다. 이렇게 법문을 들으면서 그 음성을 대상으로 해서 죽었기 때문에 도리천에 개구리 천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지 듣는 것만으로 뜨거움을 깨끗하게 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개구리 천신은 천상에 태어나자마자 ‘내가 어떠한 선업으로 이렇게 천상에 태어났는가? 어떠한 특별한 선업을 행했는가?’라고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각가라 연못 근처에서 법문을 설하실 때 그 법회에서 법문을 들었기 때문에,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부처님의 음성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났구나. 부처님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시구나’라고 하면서 인간세상으로 즉시 왔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천인들은 보통 존재들과는 다릅니다. 천인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놓고 올 때는 아주 환한 빛으로 온 숲을 밝히면서 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 개구리 천인이 온 것을 아시고는 대중들에게 그 사실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 “ko me vandati pādāni 지금 자신의 빛을 비추며 나 여래에게 예경을 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라고 물으셨습니다. 개구리 천신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개구리 천신입니다, 부처님. 저는 이전 생에 개구리였는데 이 법회가 열리고 있을 때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있다가 소치기의 막대기에 머리가 눌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법문을 들으면서 죽어 도리천 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이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개구리 천신에게 보시, 지계, 천상, 감각욕망의 허물, 출리의 공덕 등을 차례로 설법하셨습니다. 법문이 끝났을 때 8만4천의 중생들이 윤회에서 벗어났고, 개구리 천신도 수다원이 되었습니다. 수다원이 된 후에 부처님께 예경을 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천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법문 듣는 것의 이익입니다. 이렇게 좋은 결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법문은 사실 듣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출현하셔야만 법문을 듣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지 않으면 법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법회가 없으면 법문을 들을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더라도 자신이 사악처의 존재이거나 변방에 태어나는 등 허물 있는 여덟 곳에 있는 상태라면 또한 법문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kicchaṁ saddhammassavanaṁ 바른 법을 듣는 것이 매우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처: 우 소다나 사야도 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옮김, 불방일, 『어려운 것 네 가지』 pp.21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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