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수 계곡길을 따라 야생화 향기에 젖다
같은 이름을 가진 백마산은 전국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경남 밀양, 경기 광주, 충북 괴산 등 여러 지역에 있지만 충남 금산의 백마산도 다른 지역의 백마산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산세가 뛰어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골짝을 휘감고 내려오는 청정한 계곡물이나 산이 품고 있는 전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부터 수려한 산은 전설 하나쯤은 내려오는 법. 금산의 백마산은 웬만한 사람들은 초문일 정도로 낮고 볼품없는 산 같지만 산 속에 전설 한 토막이 숨어있는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명산 대접 정도는 받았을 만하다.
옛날 부수바위 마을에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그 아기장수는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마침 때를 맞춰 백마산 국사봉 아래 용마굴에서는 그 아기장수가 탈 백마도 나왔다. 그러자 아기의 어머니는 근심이 깊어갔다. 혹시라도 이 아기가 역적으로 몰려 죽을 것이 두려워 그만 아기의 겨드랑이에 난 날개를 없애고 다듬이돌로 아기를 눌러 죽이고 후환을 없애 버렸다.
그런 애절한 전설을 간직한 백마산은 주변에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신랑바위, 각시바위, 용마굴, 병풍바위 등 요상한 바위들이 많고 풍광도 뛰어나 예부터 많은 산객들의 눈길을 끌어 모았다.
계곡길을 따라 오르다 만난 외딴집, 그안에는 물레방아와 과실수, 야생화가 어우러져 있다
까치수영
물레나물
백마산 국사봉 자락이 품고 있는 청강수 계곡은 문명에 때 묻지 않는 청정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오염되지 않는 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리는 계곡은 아름드리 녹음으로 뒤덮여 하늘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깥은 등짝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지만 짙은 그늘을 드리운 계곡은 하루 종일 앉아 탁족을 즐기며 놀아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더없이 좋은 장소다.
지난 일요일 야생화 회원들과 청강수 계곡을 찾아가는 길, 대전에서 금산으로 향하는 지방도를 달리다가 부수마을에서 꺾어져 한참 들어간 산길은 마치 오지로 들어가는 길처럼 좁고 험했다. 차 한대 들며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한 길은 비포장이라 차가 천천히 달리는데도 뽀얗게 먼지가 일었다. 폭이 좁은 산길이 계곡을 따라 꾸불거리며 이어졌지만 차를 멈춘 곳은 풀들이 한질높이로 자란 공터였고 그 공터 아래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청강수 계곡이다.
차에서 내리자 후끈 피어오르는 풀냄새와 함께 맨 먼저 매미들이 시끄럽게 일행을 반겼다. 산속의 매미들이 모두 한군데 모여 목청을 열어젖힌 듯 한꺼번에 우는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매미소리를 귀에 담으며 발을 디딘 계곡은 아름드리 나무로 덮힌 녹음이 일품이었다.
연분홍 꽃물로 계곡을 뒤덮은 자귀나무꽃이 꽃구름처럼 아름답다
일행들이 뚝딱 차려놓은 자연의 밥상
점심때가 되자 일행들은 밥상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각자 집에서 싸들고 온 도시락을 푸짐하게 풀어놓고 시장에서 산 찬거리로 맛난 밥상을 준비했다. 가스렌지에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끓으며 노릿하게 익어가고 오이와 고추, 상추 같은 싱싱한 야채들이 대령했다. 그 옆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은 양동이속에서 삼계탕이 끓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허기를 못 참아 된장에 쿡 눌러 찍어 맛본 고추 맛, 독하게 매운 고추 맛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더 맛깔난 식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삼겹살을 싸 먹을 산나물들을 꺾어올 올 참이다.
일행들이 뚝딱 차려놓은 자연의 밥상이 푸짐하다
짚신나물
몇명의 회원들과 산속으로 이어진 계곡길을 훑으면서 산나물을 찾았다, 그러나 산나물은 생각만큼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뽕잎, 칡잎, 고들빼기 등 닥치는데로 뜯어 모은 먹거리들이 금세 한 봉지를 가득 채웠다. 이것이 바로 웰빙 먹거리들이다. 채소에 농약을 치지 않았다고 입이 마르게 떠들어대는 농사꾼이 있다고 하더라도 산에서 나는 이런 나물들에 비하겠는가. 바람과 햇살, 비에 들볶이면서 저절로 살을 채워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어주는 먹거리야 말로 진정 흠잡을 데 없는 것들이다. 산ㄴ마물을 뜯어 자리로 돌아오자 맛깔난 점심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딸기를 따는 회원
금방 산에서 따온 것들을 펼쳐놓고 시식을 해 보았다. 맛이 제각각이다. 씁쓰레한 고들빼기나 약간 억세지만 씹을수록 맛이 나는 뽕잎이나 입안이 미끄럽지만 밥과 삼겹살에 섞이면 더욱 더 제 맛을 내는 칡잎은 혀를 자극할 정도로 자꾸만 입맛을 당기게 했다. 점심을 해 치우고 나서 시작된 장기자랑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삼행시나 개인기를 펼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웃고 떠드는 산속은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함께 여름을 더욱 더 싱그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잠시 야생화의 향연에 빠져들다
일행들이 쉬는 동안에 회원 몇 명과 함께 산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선을 보인 야생화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흔한 꿀풀이나 까치수영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랏빛꽃을 매단 맥문동이 산길 옆으로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연한 보랏빛인 맥문동은 관심을 갖고 보지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울정도로 아주 키가 작다. 맥문동 군락이 눈길을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이번엔 연하고 긴꽃대에 연분홍 꽃을 매단 타래난초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희랍어의 `speira(나선상으로 꼬인)`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나선형으로 꽃대를 돌며 꽃을 피운다해서 이름이 붙었다. 산길을 올라갈수록 더욱 화려한야생화들의 향연이 계속되었다. 야생화 뿐이 아니다. 풀숲이나 나무 아래 숨어 빨갛게 얼굴을 내민 산딸기도 한몫을 했다. 처녀의 유두처럼 오돌토돌 돋아난 산딸기는 산을 타면서 심심할 때 한번씩 따 먹는 열매로 단연 인기를 끌었다.
짙은 녹음으로 뒤덮인 계곡은 물이 오염되지 않아 비취빛처럼 맑다
보기만 해도 달콤한 맛이 스며나오는 산딸기
산딸기를 한주먹 따서 입에 집어 넣으면 달콤한 맛이 향이 되어 입안을 촉촉이 적셨다. 복분자도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띄었다. 모양은 산딸기와 비슷했지만 빨갛게 익는 산딸기와는 달리 까맣게 익는 그 빛깔이 산딸기와는 달랐다. 계곡길을 따라 깊이 들어갈수록 주변엔 임자 없는 밭들이 펼쳐졌다. 한질로 자라난 풀들이 서로 뒤엉켜 그 아까운 밭들을 장막처럼 뒤덮고 있었다. 야생화도 제법 눈에 많이 뛰었다. 초입부터 고개를 숙이고 산객들을 맞았던 까치수영은 여전히 사라지지않고 산길에 가득 늘어서 있었다. 자잘한 꽃들이 끄트머리에 하얗게 붙어 고개를 숙인 모습이 꼭 꼬부라진 개꼬리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개꼬리풀, 낭미화라고도 한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일행이 되었던 청죽님은 옆 샛길로 빠져 맑은 계곡물에 몸을 담갔고 곡괭이를 단단히 움켜쥐고 올라왔던 백당님도 종적이 묘연했다. 끝까지 남은 사람은 오늘 처음 입회한 회원 한명, 그러나 둘이 주고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오르는 산길은 지겹지가 않아 좋았다. 그 놈의 까치수영은 왜 그리 많은지 눈길 닿는 곳마다 고개속인 까치수영의 행렬이 계속되었고 하늘말나리들이 산자락을 드문드문 빨갛게 물들여 주었다.
기린초
타래난초
매끈한 꽃대에 빨간 꽃을 함초롬히 매단 하늘말나리는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속의 때가 전혀 묻지 않는 저 깔끔한 자태는 발랄하게 웃는 계집아이의 얼굴을 연상시켰다. 하늘을 향해 쳐든 꽃잎 사이로 뾰족이 내민 수술들, 담갈색 꽃가루들을 듬뿍 묻혀 떨어질 듯 달랑거리는 수술을 보면 금방이라도 떨어질까봐 조바심이 일었다. 산수국은 특이한 꽃이다. 토질의 변화에 따라 꽃잎의 색깔이 점차 변하는게 특징이다. 처음엔 흰색으로 피던 꽃이 청색으로 변하고 붉은 빛으로 감돌다가 자색으로 변하는 모습은 마치 변덕스런 여인의 성격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꽃말도 "변하는 마음"인가 보다. 그러나 더 특이한 것은 오밀조밀 붙어있는 꽃망울 주위에 붙어있는 꽃이다. 말하자면 꽃은 아닌데도 꽃 노릇을 하는 헛꽃이다. 진짜 꽃들이 너무 작아 곤충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곤충들을 휴혹해 수정을 시킬 목적으로 크고 화사한 가짜 꽃잎을 펼쳐 놓는 것이다. 아무생각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아도 그런 전략을 펼쳐 꽃을 피우는 산수국의 세계는 여간 신비한 것이 아니다.
바위틈에서 맘껏 자태를 뽐내는 기린초도 노란꽃들을 다복히 매달고 기린처럼 꽃대를 쭉 빼 올리고 있다. 키를 껑충 늘린 그 모습이 웬지 처연해 보였으나 화사한 빛깔이 아니어서 이목을 집중시키지는 못했다.
인적이 없는 외딴집, 쓸쓸하게 지는 꽃들
40분 정도 터덜터덜 오르자 턱하니 앞을 막아선 산 아래에 외딴집 셋채가 보였다. 그것도 한군데 오순도순 모여있는 게 아니라 몇 십 미터 거리를 두고 서로 외따로 떨어져 있다. 사람이라고는 전혀 들어와 살 수 없는 이 곳에도 사람냄새가 났다.
하늘말나리
원추천인국, 일명 루드베키아라고도 한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풀이 한질로 치솟은 밭가엔 호박넝쿨과 가지가 꽃을 피워 문채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지겹게 타올라 이제 끝물이 든 접시꽃에는 까만 씨앗들이 부풀어 올라 금방 터질 듯 오복히 매달려 있었다. 이왕 올라왔으니 맨 끝에 잇는 집을 둘러보고 내려갈 참이다. 그러나 맨 끝에 있는 집은 다른 집들과는 달리 온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집은 산뜻하게 잘 지어 놓았지만 마당은 사람키만한 풀들이 솟구쳐 마당을 뒤덮고 있었다.
산수국
그 사이사이로 얼굴을 내민 꽃들도 제 세상이었다. 마당을 전세 놓은 듯 넓게 퍼져있는 금계국도 그 비좁은 풀들틈에서 자리를 잡고 꽃대를 흔들거렸다. 그러나 꽃은 벌써 다지고 꽃대위에 둥그런 씨방만 얹혀 외딴집을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 집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먼지만 소복이 쌓여 흩어져 있는 신발들, 아무렇게나 내방치된 가구들, 지독한 고독을 즐기고 싶어 왔다가 지독한 고독을 못 이겨 도로 이곳을 뜬 것은 아니었을까. 마당에 꽃들이 다시 씨앗을 뿌려 새롭게 움이 트는 새봄에 돌아오려나, 텅 빈 집이 마치 내 마음 같아 쳐다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솟았다. 자꾸만 아득해졌다.
첫댓글 깊은 산속 계곡물이 흐르는 그곳에서 고기나 구워놓고 막걸리 한잔하고 싶네 ..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게 자연의 맛은 여기에서 나오나 보네 .. 잘보고 가네 .. 우리는 휴가가 7월 31일 (토요일)부터 3박4일인데 고향에 간다
내도 그날 상촌갈까 모르니 전화해라
자연을 벗삼아 여유롭게 활동하는 유작가 부럽구만~~ 더워지는 날씨 항상 건강조심하고 좋은글 즐감 땡큐~^*^~
감솨 친구
진택시인님~ 늘 어린왕자로 좋은 글 마이 들려주소~~~^^*
고마워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