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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사입니다. 영산강 생명평화 미사를 다녀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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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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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물의 날’ 아침, 우리 식구는 오창 성당 버스에 탔다. 목적지는 영산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산강 승천보 공사현장이다. 거기에 가는 이유는 4대강 사업저지 천주교 연대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영산강 생명평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날 다른 모임 약속이 있어 못 갈 뻔 했는데 마침 그 모임이 연기되는 바람에 함께 갈 수 있었다. 7살 아들과 함께 가니 미사를 제대로 참석하긴 어렵겠지만 그 자리에 마음을 모아 함께 있는 것만도 뜻이 있을 것 같고, 말로만 듣던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는 신부님의 사회로 버스에 탄 한 사람 한 사람이 물에 대한 생각, 강에 대한 생각 그리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다. 강에 버들치 피라미가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미호천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이제는 못 짓게 한다. 이유를 모르겠다.... 물은 흘러야 한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두어야 한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일상을 돌아봐야 한다.... 진심어린 소리에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치다보니 어느덧 영산강 승천보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에는 전국 여기저기에서 모여온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는 장소인 커다란 비닐하우스로 가고 있었다. 나는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승천보 공사현장을 보기위해 영산강 둑으로 향했다. 저만치 앞에서는 여럿이 모여서 현수막을 들고 야외용 마이크를 들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지역에 있는 몇몇 단체가 현수막을 들고 빨리 4대강 사업을 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래야 강도 살고 주민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필 오늘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계획된 일이겠지 싶어 마음에 휑한 바람이 불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둑 위로 올라섰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영산강은 뚝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정사각형 모양으로 깊은 구덩이를 파놓았고 포크레인 등 중장비 기계들이 보였다. 기초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이 승천보는 9미터 높이로 쌓고 그 안에 물을 가둔다고 들었다. 사진을 좀 찍으려 하니 공사현장 관련자가 찍지 말란다. 이게 무슨 국가 기밀이란 말인가, 왜 찍지 말라는 것인지, 찍으려면 못 찍겠나 싶어 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나는 4대강에 대해 깊이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국민으로서 납득 못할 부분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이 옳다면 많은 시간이 걸려도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어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일단 추진하면서 국민을 이해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다 시행착오가 생기면 거기서 허비한 예산과 에너지를 어디서 회복할 것이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어제는 장인어른이 조그만 책상을 하나 만들자 하셔서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장인어른과 상의하고 난 뒤, 목재상에 가서 나무를 사서 자로 재고 톱으로 자르고 무공해 목공 본드를 바르고 마지막으로 나사못을 박아서 네댓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책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상을 보며 생각한다. 자그마한 책상 하나를 만들더라도 밑그림을 그리고 상의를 하고 만드는 순서를 정하고 그 순서에 따라 일을 해야 빨리 끝나고 정확히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음도 상하기 쉽고 힘은 힘대로 더 들며 책상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 그런데 국가가 주도하는 4대강 사업을 이렇게 막 밀어붙여도 되는 것인가. 또 하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이름이다. 4대강 사업만 해도 지금은 이름을 바꿔서 쓰고 있다. 영산강 승천보 현장에는 이렇게 써서 세워 놓았다. ‘영 산 강 살 리 기 6 공 구(서창지구) 사 업’ 그리고 그 밑에는 ‘살아 있는 우리의 강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어는 그 사물이나 사업에 걸맞게 써야 한다. 그래야 존재가 분명히 드러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도 되고 발전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름을 명확히 쓰지 않으면 혼란스러워 좌충우돌 아무 것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누군가의 전화벨이 울린다. 어디냐고 묻는지 4대강 살리기 저지위한 미사 다녀온다고 하는 것 같다. 너무 웃긴 말 아닌가. 국민들한테 지금 하는 정부의 사업이 4대강 '살리기'인 것만은 확실히 새겨 놓았는가보다 싶어 마음이 씁쓸하다. 만약 4대강 사업이 정말 강을 살릴 수 있는 강 살리기 사업이라면 분명하게 그 설계도를 가지고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을 납득시키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쉽고 평범한 말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름만 그럴싸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가더라도 국민과 함께 가야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고 국민은 정부에 진정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사를 다녀와서 가방을 정리하다 영산강 생명평화 미사 순서지에 새겨진 성서 말씀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에제 47,9) 홍승표 (목사, 길벗교회, 청주에서 아내와 함께 천연비누 만드는 공방을 하면서 작은도서관 '지혜의 등대> 지킴이를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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