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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종경당 원문보기 글쓴이: 자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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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 행할 불사 를 미리 닦는 것을 말하며 사부대중이 이 몸이 무상한 줄 알고 부지런히 닦아 보살도를 행하며, 등을 켜고 번을 달아 스님들을 청하여 복업을 짓도록 하는 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수(逆修)라고도 한다. 생전예수재의 기원은 당나라 때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십이생상속(十二生相屬)에 관한 것을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이것이 당나라와 우리나라에 전해져 전통의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금은전을 만들고 각 단(壇)을 만들어 장엄하게 꾸미고, 신중작법, 주향공양(呪香供養), 소청(召請) 등 고성염불과 바라춤, 나비춤 등 불교의식이 진행되며 봉송(奉送)으로 이어져 예수제를 마치 게 된다. 49재는 죽은 이를 위한 재이나 예수재는 살아 있는 이가 자신의 사후를 위해 미리 준비함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서원드리는 아름다운 의례이다. 예수재에 대한 전거(典據)는 『地藏經』의 「이익존망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지장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남자나 여인이 살아서 착한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많은 죄를 짓고 임종하면, 그의 가깝고 먼 친척들이 훌륭한 공덕을 지어 복되게 하더라도 7분의 1만 죽은 사람이 얻게 되고 나머지 공덕은 산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현재와 미래의 선남자 선여인이 잘 듣고 스스로 닦으면 그 공덕의 전부를 얻을 수 있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망자를 위해서 아무리 정성을 다한다고 해도 망자는 그 공덕의 7분의 1밖에 얻지 못하므로 살아 있을 때 미리 재를 지낼 필요가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생전예수재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참회의 공덕으로 엄장을 소멸하고 지계와 보시로써 스스로 내생의 복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전을 독송하여 해탈과 열반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것이며, 불보살님과 명부시왕을 비롯한 많은 성현들에게 공양을 올려 은혜를 갚고자 원력을 세우고 다지는 의식을 일컫는다. 제불보살님과 호법신중의 가피력 아래 스스로의 참된 수행과 공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닦아나가는 의례인 예수재는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불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생전 예수재(生前 豫修齋)
* 생전예수재의 바른 이해 그러나 예수재가 담고 있는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행사를 통해 공덕을 쌓는 정도로만 이해하거나, 내생의 복락을 누리려는 개인적 기복으로만 이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도 있습니다. 재를 지냄으로서 개인의 모든 환난과 고통을 소멸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중생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전예수재에는 이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 첫번째 뜻은, 오늘은 언제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야 하며,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에 충실한 것처럼 불시에 닥쳐오는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하여 내생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생을 대비하는 길은 오로지 선한 공덕을 쌓는 길밖에 없습니다. ◉ 두번째 뜻은, 참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엇을 참회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할수록 참회를 해야만 합니다. 모든 중생의 삶은 다른 중생의 생명과 봉사로 인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자만할 수 있으며 선업(善業)쌓기를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백번 양보하여 그의 삶이 극히 선량하다 하여도 그것은 단지 현생(現生)만의 일이요, 기억조차 못하는 헤아릴수 없는 전생에, 털끝만한 죄 하나도 없다는 것은 당치도 않을 것입니다. 결국 무상에 대한 깊은 인식과 교만과 죄업에 대한 뼈저린 참회야말로 예수재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천안 각원사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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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생전예수재를 모시는 공덕에 대해 “봄에 뿌린 한알의 씨앗이 가을에 천만개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재를 지내는 공덕도 이와같으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