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1부.
족구이야기
<4장>
진화하는 족구①
-열정도 능력이다. 족구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성취도 없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은 찬란하게 시작되었다.
초가을 아침 해는 일찍 떠올랐는지 성구가 잠에서 깨어나자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휴일에는 늦잠을 자는 것이 직장인의 습성이건만 운동을 할 수 있는 날이어서 오히려 일찍 잠자리에서 깨어나게 된다.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 점이었다. 지난밤에 그 뜨거운 경기를 하고서도 일찍 일어나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대한다. 한 마디로, 일요일 아침을 늦잠으로 만끽하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 집안을 설치고 다닌다는 거였다.
‘설치고 다니지는 않았지.’
성구는 그때마다 생각한다.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냉장고 문을 여닫고 조용히 물을 마시는 정도인데 아내는 잠에서 깨는 모양이다. 그건 설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공주같이 신경이 예민하기 때문일 거라고 성구는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밤에 아내에게 만족한 경기를 해주었다는 자족감으로 미안한 생각은 별반 없다.
성구는 간단히 우유 한 컵을 마시고 아침운동을 하기 위해 채비를 한다. 아내의 요구대로 최대한 집안 소음을 일으키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주는 것이 그녀에 대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족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한 사내가 있었으니.
성구는 족구화를 신고 손때 묻은 족구공을 하나 들고 아파트를 나선다. 밖은 이미 해가 눈부시게 비치고 있다. 아침 공기가 성구의 마음만큼이나 신선하다. 그는 족구장으로 다가갔다. 운동장에는 아직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햇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운동장이 금빛으로 혼자 빛나고 있다.
들고 간 공을 내려놓고 족구화 끈을 조이는데, 저 앞 테니스장에서 사람들의 외침과 라켓에 맞는 테니스공의 파열음이 팡, 팡 들린다. 아, 저들은 더 부지런하네. 성구는 자기만 부지런한 새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하긴, 주위에는 조기축구 하는 사람들도 아침 일찍부터 학교운동장에 모여 축구를 하지. 이 시각에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고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일찍 등산을 가는 사람도 있을 거였다.
취미가 잠자는 사람도 있고 등산인 사람도 있고 낚시인 사람도 있고 운동인 사람도 있지. 운동 중에서도 족구를 하는 사람, 축구를 하는 사람, 테니스를 하는 사람, 등산을 하는 사람, 골프를 하는 사람 등이 있을 거였다.
그 중에서 족구는 주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재미가 있기 때문에 중장년층에서 좋아하는 것일 터였다. 배구나 야구나 농구 등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성구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천천히 스트레칭을 한다. 주위에 늘어선 나뭇잎을 몇 번 차면서 타격연습도 해 본다. 그리고 운동장을 돌기 시작한다. 농구장을 가로지르고 테니스장 울타리를 지나고 족구코트를 지나고 놀이터 옆을 지나고 아파트 옆면을 지나며 운동장 한 바퀴가 끝난다.
성구는 몇 바퀴를 가볍게 돌고 공을 잡는다. 공으로 제기차기도 하고 물탱크 벽면에 벽치기도 하고 서브연습도 하고 타격연습도 한다. 어느새 아이들 몇 명이 축구공을 가지고 나와 서툰 공놀이를 하며 저희들끼리 희희낙락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침 공기만큼이나 신선하고 천진스럽다. 성구의 발끝에서 튀겨나가는 족구공의 탄력과 파열음도 천진난만하다. 아침 공기가 만들어주는 효과일 것이다.
어느새 성구의 몸에서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성구는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운동하고 발길을 돌린다. 오후에 회원들이 나와 운동을 할 코트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운동장을 벗어나고 있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방금 일어났는지 거실로 나오며 성구를 반긴다. 잠옷을 입은 채로 다가와 성구를 껴안는다. 애교가 넘치는 아내. 그녀의 몸짓에서 지난밤의 기꺼움을 느낀다. 잠시의 포옹에서 풀려난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오후에 족구 한다면서 아침부터 운동한 거예요?”
아내가 그 열성 부럽다는 듯이 투정을 부린다.
“어, 당근이지.”
성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으쓱 한다.
“참 체력도 좋으시네요. 벌써부터 행복하시겠어요.”
한 마디 놓치지 않는 아내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어린왕자에 나오는 스토리처럼 벌써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남편임을 아내는 동물적인 육감으로 느끼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 일찍부터 ‘기다림의 행복’을 느끼다가 성구는 가족과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서둘러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시간이 30분전인데도 동재와 만규가 벌써 나와 있다. 그들도 성구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좋은 날입니다.”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해는 벌써 남쪽으로 기울고 있다. 아파트 건물 때문에 한쪽 운동장이 그늘로 채워지고 족구 코트 한쪽만 햇볕이 보자기처럼 펼쳐져 있다.
“와, 네트가 새것이라 좋은데요.”
성구가 가지고 나간 네트를 풀어보며 동재가 한 마디 거든다. 아닌 게 아니라 새것을 보니 마음까지 서늘해지는 것 같다. 네트 상단의 짙은 녹색을 보니 나뭇잎처럼 푸르고 싱싱하다.
그들은 한쪽에 치워져 있던 지주봉 두 개를 끌어다놓고 네트를 치기 시작한다. 그것은 폐타이어 속에 페인트를 붓고 철봉을 박아 만든 것으로 짧은 거리 정도는 거뜬히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효용성이 좋았다.
그들은 양쪽 지주봉에 네트 상단을 묶고 아래 보조 끈을 묶는다. 하지만 지주봉을 지지해주는 V자형 보조 끈이 없어 네트를 최대한 팽팽하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것도 보완할 문제이다.
그들이 네트를 치고 몸을 풀고 있는 사이에 회원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기 시작한다.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모임 시각인 오후 2시 경이 되자, 회원 대부분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잠시 그늘 막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덕담을 나누다가 새로 온 회원들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새로 온 회원은 공격수 조원경과 세터를 주로 보는 전찬호라는 사람이다.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이봉걸 감독이 한 마디 꺼낸다.
“아, 신입회원 준수사항이 있습니다. 회비는 정확한 날짜에 신속하게 납부하고, 회원은 장모님 생신에도 제끼고 나와야 하고, 근무시간에도 호출하면 2시간 이내로 출동할 수 있는 열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하하.”
회원들이 모두 웃는다.
“네, 모두 족구에 죽고 족구에 사는 ‘족생족사’가 됩시다!”
성구도 한 마디 거들며 좌중을 웃긴다.
“족생족사? 그런 말도 있었나? ‘폼생폼사’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한 회원이 생경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성구가 가방 속에서 새로 구입한 족구공을 2개 꺼내자 회원들이 탄성을 지른다.
“와, 때깔 한번 죽여준다!”
회원들이 공을 바라보며 만져 보며 호기심 있는 눈길을 준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용품들로 인하여 회원들이 들뜨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자, 코트로 나갑시다.”
족구 덕담이 끝나고 성구가 먼저 코트로 다가가자 회원들이 따라나선다.
회원들은 코트 옆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랠리 연습도 하고 게임 채비를 한다. 편을 갈라 양편에 포진한다.
“한 게임 당 천 원씩 하죠? 막걸리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럽시다.”
분위기가 그 방향으로 몰린다.
곧 게임이 시작된다. 인원도 많지 않으니 15점 3세트로 진행한다.
회원들의 즐거운 웃음 속에 게임이 진행된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슬그머니 기울었는지 햇볕이 들었던 코트가 그늘이 되고, 그늘이 졌던 코트에 다시 햇볕이 찾아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가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붉은 얼굴을 내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성구는 공격수로 나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