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12박 13일간 히말라야를 걸었습니다.
지난 여행기지만 같이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좀 긴 글이지만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으시면
멋진 사진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총 9편인데 하루에 한편씩 연재할께요.
**************************************************************
"좋아, 네팔가자!"
남편 말을 듣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언제부터 가고 싶던 네팔 트레킹이었지만, 남편은 단호하게 NO~!였다.
지극히 도회적인 그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쪽이어서
언젠가 혼자 가야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차였다.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순순히 가겠다고 나서다니!
요즘 같이 시간 있을 때 마누라에게 점수나 따두자는 심사였을까.
아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떠나는 게 신상에 좋겠다는 계산에서 였을까.
아뭏튼 낯설고 물설고 무엇보다도 문명의 이기를 벗어난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남자가 갑자기 순순히 네팔을 가겠다니 혁명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데 혹시나 네팔에서 잘못되는 건 아닌지...??
불길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어찌됬든 자다가 떡을 얻어먹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봄신명이 스믈스믈 지펴 오른다.
아싸라비야~~!!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되지.
혹시라도 남편 맘이 변할까 싶어 비행기 예약부터 서둘러 해두었다.흐흐..이젠 빼도박도 못하겠지.
다음으로는 어디를 걸을까하는 느긋하고도 즐거운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트레킹코스로 랑탕, 코싸인쿤드로 결정했다.
길이 가장 원만하고 원시림이 아름답다는 말에 현혹되서.
사실 히말라야트레킹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는
초짜라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설산을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냥 설렌다.
산은 커녕 얕으막한 언덕도 없는 나라에서 훈련되지도 않은 몸으로,
장비도 제대로 없고 사전 지식도 충분하지 않은데..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지를 오를 수 있으려나.
고산병이나 안 오려나. .. 무엇보다 추위는 쥐약인데 산에서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 등등.
살짝 두렵기도 했지만 무대뽀, 대책없음이 내 주특기 아닌가.
무작정 떠나고 보는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침낭과 신발이라길레, 침낭과 등산화만 신경써서 준비하고
나머지는 대충 짐을 꾸려서 길을 떠났다. 남편과는 카투만두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우리 부부만의 오붓한 여행이 될 줄 알았더니만 결국 껌딱지 하나가 들러 붙는다.
딸아이가 자기도 가고 싶었다면서 나선다. 마침 부활절 방학이기도 하고...
으이그...오나가나 영감님 뾰두락지같은 녀석이라 영 뜨악하다.
가서 고추가루 노릇을 단 한번만이라도 하면
얄짤없이 히말라야에 묻어두고 오겠노라고 단단히 으름짱을 놓고 동행을 허락했다.
아무리 영감님 뾰두락지 같은 녀석이지만 오가는 길에 벗이라도 되겠지.
방학이지만 곧 중요한 시험이 있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들애만 두고서
우리는 훌쩍 네팔을 향해 날아갔다.
런던에서 네팔 가는 직항이 없어서 바레인에서 다시 갈아타고 카투만두까지--
비행시간만 12시간. 기다려서 갈아타는 시간 3, 4시간. 합하면 꼬박 15,6시간이다.
카투만두 공항에 내리니 매연과 커리냄새가 섞인 매캐하고도 야릇한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십여년 전 인도 땅에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인상이다.
카투만두 공항은 우리나라 지방 버스터미널 보다도 더 꾀죄죄하다.
입국비쟈를 받으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된다.
곧 불이 들어오긴 했지만 딸애는 이런 돌발상황이 어이없는지 깔깔거린다.
앞으로 네팔에서의 여정이 어떨지...암시라도 하는 것 같다.
입국비쟈를 주는 이가 내 패스포트를 요리조리 보더니만,
새로 갱신한 여권에 찍힌 사진이 십여년 전의 사진과 사뭇 다르다며 웃는다.
최근 사진이 더 맘에 든다나?
한가하기도 하셔라...남이사, 얼굴이 달라졌든 말든,
남의 나라 여자 얼굴이 자기 맘에 들든 아니들든 뭔 상관이람?...
비쟈나 얼른 내 줄 일이지....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농을 하는 공항직원의 태도에 한결 느긋해진다.
공항을 나오자 한국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두팔을 벌리며 우릴 반긴다.
월컴 투 네팔~~!! 자기가 이 땅의 주인 같네. 여기서 남편을 상봉하니 반갑다.
한국인 민박집으로 향했다. 도심의 거리는 차선도 신호등도 없이 사람과 릭샤와 자동차가 엉겨붙어 혼잡 그 자체다.
뛰뛰빵빵..., 지독한 매연과 소음,인파로 뒤섞인 아수라장이다. 그 속을 지나려니 정신이 어찔어찔한데
사람들은 이력이 난 듯, 무표정이고 자동차들은 그 혼돈 속을 참 용케도 빠져나간다.
아수라장을 벗어나 민박집에 도착하니 집안일을 돕는 네팔 아가씨 둘이 나와 짐을 받으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나마스떼"
그들은 한국말로, 우리는 네팔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무공해 같은 순진한 표정이다. 저녁상에 나온 쌈도 무공해다.
직접 농사를 지은 거라는 상추쌈과 배추쌈은 군데군데 벌레가 먹은 자국이 선명하다.
시골처녀 네팔 아가씨가 차려주는 무공해 쌈으로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내일 떠날 9박 10일간의 트레킹에 대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다.
고산병이 가장 큰 문제인데 천천히 걸을 것...!!, 트레킹 중 절대로 샤워를 하지 말것.
산에서 감기들면 큰일이므로 머리도 감지 말 것.. 등.
아니, 열흘동안 샤워도, 머리도 못 감는다고? 트레킹이 생각보다 빡쎌 것 같다.
가장 질색일 줄 알았던 딸내미가 의외로 싱글벙글이다. 씻는게 귀찮았는데 잘됬다나? 어쭈구리, 두고보자.
우리는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가져온 샴푸를 고스란히 민박집에 두고 가기로 했다.
내일 아침 이른 출발을 위해 가져 갈 짐들을 다시 챙겨두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9. 3.28.)
매연천국, 카투만두의 도심.
도심을 조금 벗어난 거리, 사람들.
코코넛과 수박을 파는 상인
첫댓글 저번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면서 부러움에 시샘이 났는데 지금 보니 다시 배 아프다..(아니 내가 이런말도 할줄 아네)울 옆지기도 어디 가자고 하면 죽는 소리가 태반이라 같이 가자고 못한다...나는 바깥으로 돌아 다니는 체질인데 울 랑은 안에만 있는 체질이라 여행에 관해서 항상 티걱태걱이다.제주도 타령 30년만에 지난번에 갔는데..내꿈이 세계일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했건만...이것도 하나님께 일러야 하나 웃겨는 나보다 수완이 좋은것 같네.새.부럽..
조금이라도 힘 있을때 나도 돌아 다니고 싶다...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고 알고 싶다.어디나 같다는건 결론이고..느끼고 싶다.
오!!! 너무 멋져요. 저도 작년말에 여행에 꽂혀셔 네팔사이트도 기웃기웃했었는데..근데 어디선가 거머리가 많다는 소릴듣고 단념했었던 기억이..ㅎㅎ
그 험난한 네팔여행을 감행한 웃겨와 더웃겨 껌딱지의 열정이 부럽다 . 여행은 건강, 시간 돈이 뒤따른다는데 그게 다 되니 얼마나 좋아? 참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언젠가는 나도? 난 네팔여행은 좀 무리일것 같아. 훨훨 날아서 볼것만 보고 오면 너무 얌체겠지? 앞으로의 연재가 기대가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