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학살자로 만든 것은 어리석음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https://youtu.be/ztZUMQUFX8o
1961년 4월, 이스라엘 어느 법정에서 낯선 이의 재판이 열렸습니다. 피고인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나치 정권 아래에서 유대인 문제를 담당한 군인이었죠. 독일 패망과 동시에 아르헨티나로 도망하여 잠적했지만,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재판에 관심을 갖고 그 과정과 진실을 담으려 노력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계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가 그 주인공이죠.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난 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이곳에서 아렌트는 자신을 가르치던 철학자 하이데거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데요. 하이데거가 나치에 적극 협력하는 모습을 본 뒤, 환멸을 느끼고 한동안 그를 떠나게 되죠. 이후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중세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입각한 사랑의 개념에 관한 내용이 그의 논문 주제였다고 하죠. 이 논문은 1929년에 출판되었지만, 4년 뒤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 취득을 금지당하게 됩니다.
아렌트는 이후 프랑스 파리로 피신합니다. 독일에서 유태인들의 정치적 활동을 돕던 도중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죠. 이곳에서도 그는 유대계 망명자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전쟁이 손길이 뻗쳐왔습니다. 나치 독일의 괴뢰정부인 비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만 것이죠. 결국 그는 필사의 탈출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아렌트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가 진실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고 알려집니다. 하지만 그 소문은 모두 사실이었죠.
미국에서 학자로서 명성을 쌓아가던 중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렌트는 예정되어 있던 대학 강의를 취소하고, '뉴요커'의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참관의 성과는 1963년 2월부터 다섯 차례로 나뉘어 기고되었습니다. 연재 기사의 제목은 ‘전반적인 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었죠. 그리고 이 글은 2년 뒤 후기와 함께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덧붙여져 도서로 발간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책의 부제에 담긴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우선 우리는 흔히 ‘선’과 ‘악’을 상호 대치되며, 서로 섞일 수 없는 개념으로 상정합니다. 이를테면 물과 기름 같은 거라고 여긴다는 이야기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악’의 관계입니다. 여기에 더해 ‘악’과 ‘평범’이라는 단어는 선과 악 보다 더 괴리되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요? 악이 평범하다니 말이죠. 이 말은 마치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이어왔던 나의 노력이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의 착취 영상을 만들고 유포한 비밀 채팅방의 운영자, 수 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범의 행동과 동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유대인 600만 명을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앞장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이 평범할 수 있다’는 명제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일면 지극히 평범한 성인 남성처럼 보였습니다. 이웃과 가족에게 친절했으며, 풍채 또한 상상과는 달리 왜소한 편이었죠. 정신이 이상한 건가 싶었지만 이마저도 멀쩡해 보였습니다. 재판 직전 그의 정신이상 여부를 검사한 한 의사가 ‘아이히만을 감정한 자신이 오히려 정신이상자가 될 정도로 그는 정상’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유대인을 학살하는 행위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의 최종책임자였으며, 해당 보직을 맡은 기간 내내 유럽 전역의 수용소와 학살 장소를 돌아다니며 최선을 다 해 ‘업무’를 이끌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상관이었던 하인리히 뮐러는 “만약 우리에게 50명의 아이히만이 있었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죠.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마주하며 악이 무언가 특이하거나 이상한 특정인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이히만의 학살 행위가 유태인에 대한 증오 혹은 파괴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단순한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업무를 지시한 상관에게 인정 받고, 이를 발판 삼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욕망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 말이죠. 그는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행위 또한 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악이란 특별히 악한 존재 혹은 악한 무언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무사유’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는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뉴스를 장식한 어느 범죄자의 이야기를 단지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것은 아닐까요? 혹시 누군가의 악이 된 채, 그 사실을 성실함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둘러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선한 인간도, 악마도 모두 될 수 있습니다다. 그리고 그중 무엇이 될 것인지는, 어쩌면 의심하고 비판하며 고민하는 우리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는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