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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단 사단들, 한 끼 150g 미만
강원도 김화군 1군단 46사단과 47사단은 현재 한 끼에 150g 미만의 옥수수를 배급하고 있다. 46사단의 한 군관에 따르면, 작년 11월 중국에서 원산항을 통해 들어온 식량을 각 부대에 나눠줬는데 올해 2월까지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인민무력부에서는 정량대로 공급했다고 했지만, 부대에서 실제로 받은 양은 정량에 한참 못 미치는 양이었다. 각 부대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운송비 등으로 상당량이 유실된 데다 사단에서 여단, 대대, 중대, 소대 등으로 내려갈 때마다 각 군관들이 자신들의 식량을 우선 챙겨갔기 때문이다. 끼니 당 150g이라고 하지만, 각 부대에서는 가공도 하지 않은 겉곡 째로 옥수수를 넘겨주었다. 식량이 부족하다보니 훈련은커녕 변변한 부업일 조차 버거운 형편이다. 민가가 적고 군부대가 밀집해있는 강원도의 특성상 “강원도는 백성보다 군인들이 더 많아 도적질을 해먹자 해도 먹을 게 없다. 군대도둑들이 하도 많다보니 백성들의 집도 일 년에 서너 번씩 털리는 게 기본이다. 더 털어보려고 해도 나오는 게 없는 정도”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한 중대의 사병건강기록 자료를 보면 보병 100명 중 허약자가 약 30%에 달한다. 대부분의 질병이 영양실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 군의관은 영양실조로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병사의 수가 100명 중 38명이었다며, 이러다가는 영양실조자가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3군단 산하 훈련소들, 하루 300g 못 줄 때도 있어
평양시를 비롯한 수도방어 임무를 맡고 있는 3군단 산하 사단들의 식량 사정도 악화된 가운데, 몇몇 훈련소들은 하루치 옥수수 300g도 못 줄 때가 있다. 하루 평균 400-500g의 옥수수를 받는다고 해도 영양상태가 불균형하다보니 영양실조를 피할 수는 없다. 황해북도 서흥군, 신계군 등지에 있는 4.25 훈련소를 비롯해 9.1훈련소들에서는 영양실조자가 속출하자 동계훈련을 중단하기도 했다. 식량 사정이 약간 나아지면 훈련을 재개하기도 하지만, 상부에 보고를 위한 요식행위에 그친다. 황해북도와 강원도 주둔 군관들에 따르면, 군대 식량상황이 전반적으로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어려워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비교할 수 있는 통계는 없으나, 적어도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흥군에서 복무하는 한 군관은 “남조선과의 대치 국면에서 군부대 식량 사정도 빈익빈 부익부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지적해 실제 국방에 관여하는 부대와 그렇지 않은 부대 사이에 군량미 수급 불균형이 상당함을 암시했다.
일반 사병들의 하루 정량, 어떻게 변해왔나?
그렇다면 도대체 일반 사병들의 하루 정량은 얼마일까? 특전부대나 특수부대는 논외로 하고, 일반 정규군의 경우 정량은 백미로 하루 700-800g이다. 2000년대 들어 식량사정이 좋을 때는 그래도 1년에 4-5개월은 수입쌀이나 정미하지 않은 쌀을 받고, 나머지 5-6개월 정도만 옥수수로 받았다. 60kg짜리 벼 한 가마니를 정미하면 쌀은 70%인 45kg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5대 5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백미는 점차 옥수수로 바뀌고, 최소 20% 이상 감량된 500-600g 정도가 지급돼왔다. 보통 옥수수쌀로 주기도 했지만 점차 통옥수수로 주는 게 관례화됐다. 통옥수수로 받으면 직접 정미소에서 분쇄를 해서 옥수수쌀이나 옥수수 국수로 바꿔 먹어야 한다. 2006년 수해 등으로 식량사정이 악화돼 2007년 2호미(전쟁비축미)를 일부 주민들에게 풀면서 군량미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하루 세끼를 먹어도 배를 곯으며 영양실조에 허덕이던 군인들은 하루 2끼도 채 못 먹을 때가 많았다. 옥수수밥을 먹으면 잘 먹는 날이고, 2끼 중 한 끼는 옥수수국수로, 정 먹을 게 없을 때는 옥수수 1-2개나 감자 몇 알로 때워야 했다.
전통적인 군량미 생산기지인 황해도 등 곡창지대는 2년 연속 홍수피해를 입어 휘청거렸고, 군량미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대외 사정도 급격히 나빠졌다. 남한은 정부가 바뀌면서 인도주의 지원을 중단했다. 국제곡물가격은 급상승하고, 중국에서는 식량 수출을 금지했다. 비축미를 제대로 채워 넣지 못한 상태에서, 2008년 3월에는 종자마저 군량미로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군부대마다 영양실조자가 급증했다. 2009년 들어서도 상황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황해북도 서흥군, 평산군, 신계군 등에 주둔하는 부대에서는 식량 분배가 지연되거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일부 군관들은 가족들 몫의 분배가 지급되지 않자,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로 보내야 했다. 춘궁기 시절에 사병들은 아침에는 옥수수밥 150g, 점심과 저녁에는 감자 10알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하루 500-600g이라는 수치는 의미가 없어졌다. 작년에는 수해가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북한 전역을 강타했다. 2011년 2월 현재, 황해남북도 일부 훈련소에서는 하루 300g의 배급도 주지 못하는 곳도 생겼다. 겨울에는 대개 식량을 보유하고 있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 겨울 유독 군량미 부족 소식들이 들리는 것이 다소 의아할 정도이다. 작년 식량 생산량이 군량미 확보 수준에도 못 미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옥수수밥은 ‘밥’이 아니다”
남한에서 밥 한 공기는 통상 200g 정도로 계산된다. 단순히 밥 무게만 비교해 하루 500-600g씩 먹는다면, 밥 3끼를 정상적으로 먹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밥 외에 다른 부식물이 없다. 배추 시래기 몇 가닥 띄운 소금국이 전부이다. 둘째, 곡식의 종류이다. 쌀밥, 쌀과 옥수수를 절반씩 섞은 5대5밥, 옥수수밥, 옥수수국수, 옥수수죽 등에 따라 열량 섭취가 현저히 다르다. 셋째, 옥수수밥에 대한 오해이다. 남한에는 옥수수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보릿고개에 보리밥 먹는 얘기는 있지만 옥수수밥 먹었다는 얘기는 없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현대에 잡곡을 넣어먹는 것이 백미보다 건강식이라는 생각이 퍼져있어, 옥수수밥을 먹으면 영양섭취에 도움이 될 거라고 오해하기 쉽다. 물론 풀죽 먹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옥수수를 잘게 쪼개 끓여먹는 것을 ‘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옥수수에는 비타민 B3인 나이아신(niacin)이 없어, 옥수수만 먹게 되면 피부염, 설사, 정신장애 등을 유발하는 펠라그라(pellagra)병에 걸리게 된다. 열량 면에서나 영양소 면에서나 쌀밥이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도 옥수수밥 한 그릇보다 쌀밥 한 숟가락 먹는 게 더 힘이 난다고 말한다. “옥수수밥은 ‘밥’이 아니다. 그러나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옥수수가 주식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옥수수 찐 것도 밥이라고, 실컷 배불리 먹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소원”이라는 주민들의 하소연은 고통스러운 식량난의 한 단면을 말해준다.
철원군 군인들, “추위는 견딜 수 있어도 배고픔은 못 견디겠다”
강원도 철원군에 주둔하고 있는 5군단 5사단 10련대 사병들은 “추위는 견딜 수 있어도 배고픔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말한다. 각 부대마다 부업 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배급 총량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7-8년 이상씩 장기 복무하면서 식량난에 이골이 난 부대원들도 힘든 판국에 입대한 지 1년도 안 된 신병들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집에서 그럭저럭 옥수수밥이라도 먹고 살다가 온 경우 굶주림의 고통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련이다. 여름이면 인근 농장에 내려가 남새(채소)나 과일이라도 훔쳐다가 굶주린 창자를 채워 보겠지만, 산과 들에 하얀 눈이 덮인 겨울에는 정말 힘들다. 군관들과 사관(하사관)들은 군사 복무를 오래 하다 보니 주변에 알고 지내는 농가들에 얼마간 식량을 융통하기라도 하지만, 일반 사병들은 별 대책이 없다. 도저히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으면 동료들의 솜옷(동복)을 도적질해 주민들에게 내주고 고구마나 옥수수밥을 바꿔먹으며 허기를 면하기도 한다. 10련대 2중대에서는 올해 입대한 사병이 보초를 서다가 근무 시간에 몰래 사택에 나가, 신고 있던 솜신발(동화)을 벗어주고 빵 5개와 바꿔먹는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상부에 알려져, 군관들에게 모진 매질을 당했다. 그러다 동기훈련(동계훈련) 들어간 지 며칠 안 돼 탈영했는데, 강원도 원산시 부근에서 체포됐다.
솜옷 뺏긴 신병들, 추위와 배고픔 이중고통 더 심해
신병 훈련 후 배치된 군인들은 새로 받은 솜옷을 지니고 있기가 어렵다. 사관들이 낡은 제 옷과 강제로 바꿔 가기 때문이다. 옷이 너무 낡고 헤져 있어 심한 경우 여름옷을 입히는 경우도 발견된다. 얇은 여름옷을 입고 맨살에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차가운 전호에서 밤샘 근무를 하다 전신동상을 입어 군의소에 실려 가는 경우도 많다. 신병들이 동상 걸리는 것에 아랑곳없이 솜옷을 빼앗아간 사관들은 자기가 입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장이나 민가에 팔아넘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해마다 각 지역 위수경무부와 보안서에서는 합동으로 군용품 판매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시장에서 솜옷, 동복, 하족, 장갑, 하복, 동모 등 군용품으로 추정되는 물품들이 발견되면 바로 회수한다. 얇은 여름옷을 걸치고 사병들이 지나가면, 주민들이 보다 못해 자기가 입고 있던 솜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경우도 있다.
영양실조 군인, 영양보충하려다 사망
영양실조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된 병사들은 집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 거의 다 죽게 된 자식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귀한 자식을 군대에 보냈더니 다 죽여서 보냈다며, 데리고 온 지휘관들에게 험악한 욕설을 퍼붓는 부모들도 있고, 간혹 시당에 신소까지 하는 부모도 있다. 지난 2월 중순, 강원도 이천군에서 군복무하던 리명호(가명)씨는 상태가 너무 심각해 몸보신하러 집에 갔다가 갑작스런 폭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얼굴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삐쩍 말라 온 아들이 너무 안쓰러워 영양보충을 시킨다는 게 화근이었다. 신중하게 양을 조절하면서 영양섭취를 했어야 했는데, 기름진 음식을 입에 댔더니 갑자기 입맛이 당겨서 평소보다 많이 먹는 바람에 3일 내내 설사병으로 고생하다가 죽고 말았다. 너무 어이없이 자식을 떠나보낸 집에서는, 조사 나온 군사동원부 사람들이 “미안하게 됐다”고 유감을 표명하자, “부대에서 애를 다 죽여 보내놓고는 찾아와 보지도 않는다. 이러면 누가 장군님을 보위하라고 제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는가. 지금이 전쟁하는 시기도 아니고, 평화 시기에 군인이 죽은 것도 안 될 말인데, 그것도 먹지 못해서 죽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이래서야 어디 장군님의 군대라고 말할 수 있겠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평소 같으면 정치적 발언으로 간주해 당장 신소가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워낙 부모의 슬픔이 커서 다들 이해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한편, 군의소의 한 의사는 “너무 굶은 사람들은 탈수 증세를 보이면서 설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밥을 먹이면 안 된다. 식염수 또는 점적주사(링겔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래야 위장 기능이 회복된다. 점적주사(링겔)만 맞으면 살 수 있는데 군의소에 링겔이 없다. 설사병으로 죽었다면 그 때문일 것”이라며, 열악한 군부대 의료 현실을 지적했다.
길림성에서 대규모 탈북 브로커 조직 체포
지난 12월 6일, 중국 길림성에서 대규모 탈북자 브로커 조직이 체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길림성 변방총국에서는 동북 3성과 운남 등지와 연합작전을 벌여 직접 조직을 관리해온 조선족 12명을 체포하고 무기징역과 교화형을 선고했다. 또 한국인 3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탈북자 68명은 1월말까지 모두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이번 수색 작업은 1년 전부터 동북 3성에서 탈북을 도와주는 사람, 길을 안내하는 사람, 운전해주는 사람, 은신처를 마련해주는 사람, 태국에 가기 전까지 안내하는 사람 등 각종 역할을 맡고 있는 1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추적해온 끝에 일시에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내부 요원을 탈북자로 가장해 침투시켰고, 중국 공안에서도 요원을 브로커로 위장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붙잡힌 사람들 중에는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여권을 내서 들어간 북한 사람도 있었는데, 한국행 일행과 함께 붙잡혔다가 여권 덕분에 풀려났다. 그 외 탈북자들은 모두 교화행을 면할 수 없었다.
“장군님은 도강자들을 잘 먹이고 입히라고 하셨지만”
중국과의 전면무역을 앞두고 조선과 중국 양국에서 탈북자 문제를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연길, 룡정, 화룡, 도문 등지에서는 탈북자 수색과 강제송환이 강화됐다. 지난 1월 중순에는 중국 길림성 왕청현 백초구의 한 촌에서 시집 온 지 13년 된 조선 여성 한 명이 훈춘시 변방대 군인들에게 체포돼갔다. 남편과 가족들의 충격이 큰 것은 물론이고, 어린 젖먹이 아이가 엄마를 찾고 있어 같은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몇 번은 눈감아주던 산골마을에조차 변방대 군인들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에 숨어살고 있는 여성들은 언제 잡혀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슴 조이며 살고 있다. 무산에 사는 리명옥(가명)씨는 “장군님은 중국에 탈북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생활도 잘 보장해주라고 하셨다는데, 실제로는 중국 정부에 탈북자들을 잡아달라고 해서 변방대에서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도강자 자식이라 손가락질하더니 돈 생기자 대접 달라져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자고 떠난 도강자들의 생활도 비참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활도 비루하기 이를 데 없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중국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도강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가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싶더니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도강에 성공해 중국과 제3국 등지에서 어렵게 정착한 사람들도 많지만, 강제송환 돼 교화소에 갇힌 사람들도 많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간 것으로 확인된 탈북자의 가족들은 속속 산골로 추방되는 수난을 겪고 있고, 교화소에 갇힌 경우 가족들이 뒷바라지하느라 골이 빠지는 형편이다. 도강자를 둔 가족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는 멸시도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한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사는 리철(16세, 가명)군의 어머니는 전거리교화소에 복역중이다. 어머니와 누나가 도강했는데, 어머니가 붙잡혀 나왔다고 했다. 도강자의 자식이라며 학교에서나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해대는 통에 저도 모르게 천덕꾸러기가 됐다고 했다. 어머니가 청진, 온성 등지를 오가며 보따리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왔는데, 빚을 많이 지는 바람에 살고 있던 집마저 뺏기자 어떻게든 생활을 만회해보자고 누나와 중국에 몰래 건너간 것이 결국 도강자 딱지를 붙이고 말았다고 했다. 혼자 남은 리철은 회령에 있는 친척집을 돌아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선생님과 동무들의 비난에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친척집에서도 나와 결국 꽃제비 무리에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시장이나 철도 역 부근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주워 먹는 생활을 하는 중에도, 교화소에 있는 불쌍한 엄마를 생각해 꽃제비 동무들과 농장 옥수수를 몰래 훔쳐 펑펑이가루로 바꿔 면회를 가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리군의 옷차림이 하도 험악해서 면회도 잘 안 시켜줘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가을, 용케도 인편으로 중국에 사는 누나가 보낸 얼마간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누나가 준 돈으로 새 옷을 사 입고 학교에 돌아갔더니 도강자의 자식이라 놀리고 못살게 굴던 선생님과 아이들이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리군은 자기한테 아무리 도강자라고 욕해도 돈 냄새가 나니 사람들의 태도가 싹 바뀐 것 같다며, 더러운 세상이라고 냉소했다. 아무리 돈이 좀 생겼지만, 리군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전과자의 자식이라 농촌이나 탄광 오지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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