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500원 짜리 콩나물비빔밥.
이렇게 착한 밥값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 이유로 이 소박한 식당을 찾은 건 아니다. 나름의 풍미가 있어서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가격을 닮은 맛이라면 자연스레 꺼려지기 마련이니까.
점심 식사시간으로는 좀 이른 토요일 오전 11시 35분. 병원 진료를 마치고 사무실로 향하다가 불현듯 이곳 콩나물 내음에 이끌려 터벅터벅...
주말에도 일을 하는 직장인들인지 두세 명씩 어울려 조용히 식사 중인 게 보이고, 나처럼 혼밥을 시전(?)하는 외로운 군상들도 제법 눈에 띤다.
맛은 여전하다.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도 그대로이고 양념장은 밥맛을 돋우는 이 집 최고의 비밀병기다. 멸치 등으로 우려낸 국물의 칼칼한 맛도 상당하다. 비록 찬이 딸랑 직접 덜어 먹는 김치뿐이지만 이 집에서의 한 끼는 늘상 단란한 만족감을 준다.
2. 언젠가 한번은 두 딸을 데리고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호쾌한 투로 “오늘 아빠가 거하게 1만원 이내에서 거하게 쏜다.”며 점심을 같이 했던 것. 물론 아이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와의 식사가 이 허름한 식당에서라는 게 성에 차지 않았을 게 분명했겠지만, 막상 음식을 먹고 나서는 약간의 반전이 생겼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칼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콩나물비빔밥.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 쿨하게 맛있다며 후루루 면과 국물을 흡입하는 두 딸 모습이 앙증맞았다. 세 사람의 식사값 합계는 9,000원. 성찬과는 거리가 너무 아득한 한 끼였지만, 이 시간의 기억이 옅은 물감으로 칠한 투박한 수채화 같은 영상으로 오래 머물 것 같은 예감은 대체 무엇일까?
예정에 없던 혼밥을 하면서 그때를 잠시 떠올려본다.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4년 시차로 대한민국 대도시에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는 두 아이. 부모의 재정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아르바이트 달인이 되어서야 근근이 대도시의 청년으로 일어서려는 두 딸.
어쩌면 경제학을 배우기 이전에 이미 온몸으로 슬픈 경제를 배웠을 터이고 단사표음의 청빈한 삶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쭈글쭈글한 초로의 삶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터. 이런 생각에 빠져 가끔 소심해질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아찔한 곡예 같은 거라면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펼쳐보라.’며 한두 번쯤은 부모찬스를 쓸 그런 능력이 아예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면서.
하지만 이 얼마나 성가신 사랑이고 꼰대 꼴을 한 어리석은 미몽인가. 당당하고 환한 얼굴로 포근히 안아주지 못하는 게 어찌 진짜 아빠이겠는가? 누군가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건 이 세상이 만든 최고의 축복이다. 또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동전의 반대편에 힘겨움과 슬픈 자욱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이고.
어느 때부터인가 두 딸의 아빠로 살아간다는 게 큰 즐거움이 됐다. 딸들이 커가는 걸 지켜보면서 느끼는 뿌듯함과는 좀 다른 것이다. 뭐랄까? 어느새 불쑥 성숙해진, 또 그런 이유로 한편으로는 세파에 휩싸여 같은 걸 고민하며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게 된, 그러니까 같은 시대를 걷는 수평적 친구 사이에서 공유하는 편안함이 곁들여진 공감대라고 할까. 씨줄과 날줄의 올들이 겹쳐 짜이면서 만드는 가족의 서사가 늘 찬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오늘도 그 서사를 꿰고 있는 날이고 딸들이 그립다. 철의 심장을 가진 아빠가 아니기에 때로는 찌질한 상념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청춘이라고 전한다. 촘촘히 올들이 짜이며 우리 가족의 서사가 별빛같이 아름드리 수놓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지라고.
3. 망원역 쪽의 망원시장 입구에서 중앙통로로 100미터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 두 번째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2,500원에 비빔밥과 칼국수를 파는 <고향집>이다.
좀 궁색해 보이지만 이름 그대로 고향의 정취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서빙을 하시는 분과 주방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친절함이 훈훈하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착한 가격으로 제법 풍성한 식사를 제공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망원시장 일대가 핫한 지역으로 급부상하면서 서울 전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덩달아 임대료 등의 부대비용도 많이 올랐을 터인데 여전히 가격은 변함이 없다. 몇 년 전과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상업적 식당들이 위세를 떨치는 것과 사뭇 비교되기에 고마운 맘이 절로 일게 된다.
77년에 상경해 수십 년을 살았던 망원동이 내게는 고향 같은 곳. 그런 곳이기에 고향집이 이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서 있기를 희망한다.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따끈한 국물을 편히 마실 수 있도록. 또 언제가 두 딸을 데리고 9,000원 만찬에 함박웃음을 토하는 이쁜 영상 하나를 덧붙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보태며.
첫댓글 여기...저도 가본 곳 같네요
망원시장 먹거리 풍년 ㅎㅎㅎ
세상에 세상에... 2500원 식사는 정말 레어템이네요! 한턱 쏘겠다고 울아들 꼬드겨서 가봐야겠어요 👍
근데 가족끼리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은 정말 생각만해도 따듯하고 좋네요😍
사진만 봐도 군침이 도네요.
저는 콩나물 삶는 냄새와 밥 짓는 냄새를 좋아하는데....
혹시, 근처에 갈 일 있으면 고향집에서 딸기아빵님이 맛있게 드셨다는 콩나물비빔밥을 먹어봐야지.
다들 부르세요. 거(?)하고 쏠테니까요...ㅎㅎㅎ
그 맛이 사람사는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