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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크랩 중국 하남성 정주기행(1/3) 숭산
현림 추천 0 조회 28 13.09.05 07: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국 하남성 정주기행(1/3) 숭산(崇山)

@숭산은 낙양에서 약 50km 버스로는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으며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서북쪽에 위치한다.

동으로는 정주(鄭州), 서로는 낙양(洛陽)을 접하고 있다.

 

(소림사에서 숭산케이블카역으로 가는 길)

 

하남성 인구는 1억인데 정주에만 1천만이 넘는다고 한다.

3500년 전 상(商)나라 수도를 거쳐 수(隋)나라의 수도였고,

삼국지에서 위 촉 오 삼국이 차지하려고 쟁탈을 부렸던 요충지인 중원이 바로 지금의 정주다.

중원을 차지해야만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주의 날씨는 황사현상이 잦고 늘 안개 낀 날씨처럼 흐리다고 한다. 

가는 날도 역시 황사가 낀 그런 날씨였다. 

황하강으로 인한 넓은 퇴적평야 덕분에 중국의 최대 곡창지가 된 정주는

전국 농산물 생산량의 30%를 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황하가 범람하면 중국의 곡물시장의 가격이 요동친다고 한다.

 

 

 

중국의 오악(五岳)이라는, 동쪽에 위치한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1524),

남쪽 호남성(湖南省)의 형산(衡山1290), 북쪽 하북성(河北省)의 항산(恒山:2017),

그리고 서쪽에 위치한 화산(華山:1997)과 더불어 중국의 5악(岳)의 하나인 숭산은 중악(中岳)에 해당한다.

동서 길이 60km에 달하며 태실산(太室山)과 소실산(少室山)을 합쳐 숭산이라 하는데

각봉마다 36개의 봉오리가 있어 72개 봉오리가 솟아있다.

동으로는 태실산이 중간에는 준극봉(峻極峰)이,

서쪽으로는 소실산이 솟아있고 최고봉은 어채산(御寨山)으로 해발 1512m이다.

 

(위의 영상은 케이블카로 오르면서 찍은 숭산의 모습)

 

숭산은 시대에 따라 그 이름이 달랐는데. 요순시대에는 방산(方山), 하상시대에는 숭상,

춘추전국시대에는 숭고, 혹은 악산(岳山)이라 했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 때는 평왕이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숭산을 중악이라고 했다.

한무제가 태실산에서 제를 지낼 때 만세 소리가 들렸다 하여 만세산이라고 했으며,

당나라 때는 여황제 무측천이 이곳 숭산에서 봉선의식을 가지면서 숭산을 신악(神岳)이라 불렀다.

북송이후로는 중악 숭산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숭산은 우리들에게는 소실산 자락에 위치한 소림사의 유명세로 불교사원이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고

크고 작은 도교사원, 사당들이 즐비한 산이다.

 

 

 

 

 

 

 

여기서부터 숭산의 하이라이트인 삼황잔도(三皇棧道)가 시작된다.

삼황잔도는 태고의 시간에 형성된 단층이 수직으로 형성되어 가파른 암벽을 이루고

그 형상은 옆으로 보면 마치 파도와 같고 바로 보면 기암들이 돌기둥처럼 솟아

중국인들은 그들의 시조신으로 모시는 신화 속의 인물인 태호복희(太昊伏犧),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皇帝軒轅)들과 같은 신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라 여겨 붙여진 이름이다.

암석의 성분은 회색빛의 석영이며 거대한 주상절리(柱狀節理)를 이루고 있다.

삼황잔도의 길이는 3km에 달하면 고강도 강철로 받침대를 사용하여 안전한 길이라고 자부한다.

 

 

 

 

 

 

 

 

 

 

 

 

 

 

 

 

중국명산에는 천문산의 귀곡잔도를 비롯하여 삼청산의 잔도등 유명한 잔도가 수없이 많다.

케이블카로 오른 다음 잔도로 오르게 되어 있다.

영리적인 목적도 있지만 정말 대단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잔도(棧道) 하면 초한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항우에게 패한 유방이 촉으로 숨어들어갈 때 장량의 권고에 따라 잔도를 붙태워버렸다.

당시 중원(지금의 정주)에서 촉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곤륜산맥, 대파산맥, 대설산, 봉산산맥으로 사방이 막혀 촉으로 가는 길은 두 길 밖에 없었다.

하나는 강을 이용한 것으로 장강을 거슬려 올라가는 길인데 급류가 심했다,

둘은 사냥꾼들이 다니는 좁은 잔도를 통해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잔도가 불타 버리자 촉에 유방을 갇두었다 생각한 항우는 이에 방심하게 되고

후일 명장 한신을 고용한 유방은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진창도로 군대를 보내 항우를 멸하게 된다는 이야기.

실타래같은 중국역사만큼 잔도의 역사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유명산에는 언제가 약삭빠른 장사꾼이 있게 마련이다.

숭산은 도교의 산지라서 그런지

정망대를 배경으로 도사복으로 인증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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