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못 봤으면 입 다물라?
알 권리 '실종', 표현의 자유 '위축'
[진단] 의혹 제기하면 무조건 '유언비어'... 언론은 정부발표 받아쓰기 급급
10.05.27 11:09 ㅣ최종 업데이트 10.05.27 12:54 장윤선(sunnijang)
▲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해온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 20일 오전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가운데 합조단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별을 몇 개씩 단 군인들이 줄줄이 나와서 안보를 말하는데 이견이 있거나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도, 그게 되겠나. 그 자체로 국론분열이요, 정부불신 조장이다. 못 봤으면 입 다물라는 거 아니냐. 그래도 용감하게 제기하면 유언비어로 재갈 물린다. 누가 나서겠나?"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말이다. 많은 의혹이 제기됐던 천안함 사고 조사결과를 신뢰한다는 여론이 상당히 우세한 까닭이 무엇인 것 같냐? 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지난 22일과 23일 잇따라 발표된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70%는 정부의 천안함 사고 조사결과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만 정부조사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고 직후 인터넷을 후끈 달구던 의혹 여론은 모두 사라진 것일까? 이태호 처장은 "정부가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합리적 추론조차 아주 불친절한 방법으로 억누르는 상황에서 너무 당연한 결과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보통제만의 문제일까. 강상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술 더 보탰다. 군 당국의 극심한 정보통제에다 이를 받아쓰기만 하는 기성언론들이 정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이트키핑을 하다 보니 국민들은 그저 앙상한 정보만 접하게 됐고, 그 결과 이 같은 여론조사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상현 교수는 "무엇보다 보수적인 신문과 방송들이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를 보도하면서 외국인 전문가들을 계속 화면에 잡아줘서 국민들은 군 당국의 조사결과에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믿을 수밖에 없는 쪽으로 기울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군 당국만의 조사결과라면 믿지 않을 국민들도 미국과 호주, 영국, 스웨덴, 캐나다 등 5개국에서 날아온 24명의 전문가들이 내린 조사결과라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있느냐는 것이다. 강상현 교수는 이를 '포장의 기술'로 설명했다.
그는 "천안함 사고 보도에서 우리 언론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파헤치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탐사저널리즘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했다"며 "미디어의 엄격하고 냉정한 보도가 필요했는데 결과적으로 자기 역할을 잘 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보통제의 덫
▲ 5월 20일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방부는 지난 19일 오후 3시 10분경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내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인양된 천안함을 30분 동안 공개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포토라인을 치고 절단면 내부모습을 가림막으로 가린채 안쪽으로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극심한 정보통제. 군 당국은 천안함 사고 직후 언론의 근접취재를 막았다. 극도로 정제된 정보를 찔끔찔끔 흘릴 뿐 사건의 총체적 진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 생존자들을 접근해 취재할 기회도 봉쇄했다.
문제제기나 의혹을 제기하면 '유언비어'로 형사 고소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 사고 의혹을 제기한 박선원 미 부르킹스연구소 연구원(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 비서관)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합동참모본부 정보분석처 소속 대령 4명과 정보작전처 소속 대령 3명 등 7명의 현역 영관 장교들은 이정희 민노당 의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정희 의원이 "합동참모본부 정보분석처에 소속된 A 대령 등 군 관계자들이 천안함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장면을 담은 TOD(열상감시장비) 동영상을 봤다"고 밝혀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대표인 신상철씨는 '천안함 좌초설 의혹'을 제기해 해군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민군합동조사단의 민주당측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신씨는 사고 다음날인 3월 27일 <아시아경제>에 실린 '작전지도' 사진 등을 증거로 천안함이 좌초했다고 주장했었다. 고소인들은 신씨의 이 같은 주장이 '허위 사실'이며 이로 인해 해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신씨는 물론 이 의원 등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신개념 공안사범'들이 된 셈이다.
이처럼 천안함 사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족족 군 당국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고 있다. 이 같은 소송 행렬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6일 검찰과 경찰이 천안함 유언비어에 대해 대대적인 사이버 단속에 돌입한 것과 관련 '수사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려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견서에는 '국가나 공무원이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고 검경이 수사에 나서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이 보고서가 완성되는 대로 전원위원회에 제출한 뒤 의결을 통해 의견서 제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전체 11명의 전원위원 중 보수 성향 위원들이 6명이기 때문에 표결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인권위가 전원위에 이 같은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할만하다.
사실상 국민은 기본적인 알 권리를 저당 잡힌 채 천안함 조사결과를 지켜봐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국방부는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모두 '군사기밀'이라며 쉬쉬했다"며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김태영 국방장관 등 군 핵심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판관 노릇을 하며 북한을 정조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사기밀'... 알 권리 '실종', 표현의 자유 '위축'
▲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천안함 참사 관련 정부의 정보통제와 언론보도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천안함 사건과 군 기밀주의의 사회적 비용'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 유성호
특히 이태호 처장은 "국방부가 천안함 침몰원인을 밝힐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항적, 교신일지와 기록,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 열상감시장비(TOD), 인양 직후 절단면 및 선체 바닥면 등)을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항적이나 교신일지 등은 국방부가 얼마든지 비문이 아닌 형태로 공개할 수 있는 것인데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최소한 사고 함정이었던 천안함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었고 또 어떤 속도로 어떤 항적을 보였는지 설명했어야 했는데 대충 뭉갰다는 게다. 사건 조사발표의 ABC인 6하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생존자들의 증언도 기자회견 형식으로 매우 통제된 분위기에서 제한적으로만 공개해서 스스로 의혹을 부풀리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 처장은 "모든 정보를 차단한 채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만 믿으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민군합동조사단과 그들의 조사결과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군 당국의 정보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민군합동조사단 가운데 민간영역 조사단의 명단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 것도 알권리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주체로 누가 참여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며 "박정이 합동참모본부 전력발전본부장(육군 중장)을 단장으로, 국방과학연구소, 국방부 조사본부의 해상무기와 폭약전문가, 선박계통 민간전문가 등 82명으로 구성돼 있다고만 알려졌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발표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국방장관은 명단이 공개되면 언론에 시달리게 될 것을 우려해 비공개 결정을 했다고 밝혔는데 조사단의 명단을 밝히는 것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일이 아닌데도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 처장은 "조사단이 내놓은 조사결과의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단의 명단, 조직체계, 활동 방향 등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알려지지 않은 해외조사단의 역할
▲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해온 民軍合同調査團이 지난 20일 오전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가운데 합조단에 참여한 외국군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천안함 사고조사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다국적 해외조사단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미국에서 15명을 비롯 4개국에서 24명의 전문가들이 민군합동조사단에 결합했지만 이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태호 처장은 "정부가 해외조사단을 포함한 합조단 구성에 대해 프로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영국 등 국가들이 파견한 전문가들의 역할과 분야에 대해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유는 정부가 공식적인 정보제공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조사결과 발표 자리에 동석한 토마스 에클스 미국 측 단장은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모두 동의한다."고만 밝혔을 뿐 사고조사 결과에 대한 그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이 처장은 "해외조사단이 단순 옵저버로 참여한 것인지 진상규명과 원인규명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어뢰에 의한 피격증거 확보나 북한 잠수정의 입출경로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분석과 정보를 제공한 것인지 설명이 없다."고 비판했다.
희생자 가족들의 참여를 배제한 것도 문제로 꼽았다. 이 처장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합조단 참여조건으로 신원증명서, 보안서약서, 휴대전화 사용금지, 가족관계 증명서 등의 서류를 요구했다."며 "희생자 가족들의 조사단 참여 요구는 정당한 것인데도 군 당국은 시간끌기와 어려운 절차, 참관자격만 주는 식으로 조사단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배제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처장은 "수많은 의혹에 대해 정부는 '입 다물라' 식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의혹규명에 나서야 한다."며 "퍼즐 맞추기식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가설을 뒤집는 민간을 향해 명예훼손 소송 같은 재갈을 물릴 게 아니라 스스로 투명하게 밝힘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 차원의 검증(심상정 경기지사 진보신당 후보)도 필요하고, 이 같은 절차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참여를 통해 조사의 정확성을 기하라는 제안(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나오는 이유다.
김태영 국방 장관이 26일 열린 국방・외교・통일 자문위원 대상 '천안함 설명회'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조사결과를 믿는 사람이 72%에 그쳤다."며 "국회에서도 안 믿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고 당황하기도 했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처장은 "정부라면 당연히 마흔여섯 젊은 군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에서 불거지는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규명하고 답할 의무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출처 : 국방부, 못 봤으면 입 다물라? 알 권리 '실종', 표현의 자유 '위축'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