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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산악회 백두대간 미시령~진부령 종주기
1. 일시 : 2010년 11월 26(금)~27일(토)
2. 산행구간 : 미시령(04:40)~상봉(05:45)~화암재(06:40)~신선봉(07:30)~ 아침식사~
대간령(큰 새이령)(09:40)~ 점심식사~병풍바위(12:30))~ 마산봉(13:00)~
눈물고개(14:10)~진부령(15:30)
3. 산행거리 및 산행시간 : 16.5km, 11시간 30분
4. 참가자 : 채형석 유한수 김천수 묘적령 만수 해랑 한상훈 청향 임병수 (9명)
오늘은 백두대간 졸업산행을 하는 날이다.
학교를 마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졸업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3년 동안 백두대간 종주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결코 학교에 다니는 것 못지않은 공을 들였다.
무박 산행을 가는 날은 잠을 푹 자둬야 하는데 오히려 일찍 잠이 깨는 것은
소풍 가는 날 같은 흥분과 크고 작은 염려가 늘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졸업이라는 의미와 큰 걱정거리가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일찍 일어났나 보다.
큰 걱정거리란 다름 아닌 미시령 감시초소 통과문제다.
백두대간의 모든 구간 중에서 통제가 가장 엄격하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갈 것이다.
새벽 네 시부터 산행을 시작할 예정인데
오늘따라 차량 소통이 원활하여 한계령 삼거리 휴게소에 너무 일찍 도착하여
버스 안에서 잠을 자려니 창밖의 불빛이 너무 밝아 잠을 잘 수 없어
용대리 12 선녀탕 입구 주차장으로 가니 아주 넓고 한적하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어 버스 안은 따뜻하지만, 밖의 날씨는 무척 춥다.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은 더디게 흘러 구워 온 고구마와 잘 숙성된 백초효소를 먹어보지만
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사실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감시초소를 피해 미시령 정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들어가야 안전하지만
오늘은 목동산악회의 백두대간 졸업산행이라 옆으로 돌아가지 않고 특별히 정상적인 길을 가고 싶고
백두대간의 모든 고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필체로 쓴 미시령 표지석 앞에 꼭 서고 싶어 과감히 이곳에 선다.
적발의 위험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미시령 휴게소엔 아무도 없고 엄청난 바람만이 우리를 맞이하지만
을씨년스런 감시초소의 위력은 미시령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를 급하게 밀어낸다.
미리 준비한 사다리를 타고 철책을 넘는데 그 동작이 웬만한 군인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고
연평도 포격으로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데 휴전선 같은 철책을 넘으니 우리가 지금 최전방에 싸우러 온 것 같다.
철책을 넘는 것은 마치 공성전을 벌이는 것 같고 등에 멘 스틱은 총처럼 보인다.
이렇게 추운 새벽에 밤을 새워가며 도전하다니 아무튼 무척 용감한 대원들이다.
한 시간이나 어렵사리 올라왔는데 되돌아가라고요?
위험지대에 로프가 없다고요?
그럴까 봐 밧줄은 가져왔습니다.
자연보호를 위한다고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자연을 해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솔직히 자연을 해치는 것은 항상 힘있는 정부와 거대 개발자본들이 무자비하게 자연을 해치지 않습니까?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자연입니다.
땅은 지구의 살갗입니다.
제발 땅을 그만 파헤치세요.
정말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렇게 마구 파헤치다가는 자연의 역습을 받을 겁니다.
제발 지구의 멸망을 앞당기려고 애쓰지 말란 말입니다.!!!
오늘이 음력 시월 스무 이튿날인데 달이 참 밝다.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워 헤드랜턴도 켜지 않고 달빛을 벗 삼아 가는 길은 차라리 낭만적이다.
헤드랜턴을 켜지 않은 채 한 시간이 넘도록 부지런히 걸어왔지만
뒤돌아 볼 때마다 불빛이 코앞에 다가와 있어
이른바 국공파들이 뒤쫓아 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깜짝깜짝 놀란다.
끈질기게 쫓아오는 헤드랜턴 같은 저 불빛은 미시령 정상의 감시초소 앞에 켜 놓은 불인데
전등 갓도 없는 것이 어찌나 밝은지 개미 새끼 한 마리까지 식별될 정도이고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24시간 감시할 수 있으며
들머리와 날머리 양쪽엔 엄청난 철망이 쳐 있어 대간 꾼들을 저절로 움츠러들게 하고
번쩍번쩍 돌아가는 빨간 불은 실로 삼엄한 분위기를 유감없이 발산한다.
하여간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소름이 끼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첫 번째 만나는 너덜지대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가니 낭만의 달빛산행이 빛이 바랜다.
상봉 바로 밑의 헬기장에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군에서 만든 참호에서 견착사격을 하는 품새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드디어 상봉에 도착한다.
이곳의 경치가 아름다워 환할 때 와야 하는데
어쩔 수 없어 새벽을 틈타서 와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상봉에서 내려다보는 속초시내의 야경이 바람에 흔들려 더욱 황홀하다.
이른 새벽에 올라왔기에 이렇게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전의 원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 자책한다.
새삼 삼라만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간 길은 급전직하 떨어진다.
자일을 가지고 왔기에 망정이지 자일이 없다면 무척 곤란했을 법하다.
물론 자일이 없어도 어떻게든 내려갈 수야 있겠지만 만약을 몰라 무겁지만, 자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절벽은 길이가 짧지만, 앞으로 내려가자니 배낭이 몸을 밀어내고
뒤로 내려가자니 디딜 데와 잡을 데가 마땅치 않아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곳이다.
만만히 보고 내려가다가 사고 나기 딱 좋은 곳이다.
이런 길에 대간 꾼들이 설치한 밧줄을 끊어버리다니 사고 나면 어쩌라고....
아무리 금지구간이라지만 다시 야속한 생각이 든다.
화암재에서 잠시 쉬어간다.
설악산 국립공원의 경계가 대간령(큰 새이령)이지만 여기까지가 사실상 설악산의 범주이고 이후부터는 금강산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화암재 아래쪽에 있는 사찰의 이름이 금강산 화암사다.
신선봉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날이 밝아오고
눈이 내릴 것을 예고라도 하는 듯 한 방울의 눈이 보인다.
용대리 쪽의 골짜기들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세찬 바람이 나무를 쇠사슬처럼 만들어 놓은 것일까?
깊은 산중에 갑자기 군사 시설물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비상식량을 비축해 놓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신선봉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신선봉은 너덜지대로 올라간다.
신선봉 정상에 올라 환호하는 대원들.
신선봉이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에 첫 번째 봉우리라더니 과연 아름답다.
늦게 일어난 것이 미안한 듯 아침 해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도원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멋지다.
이렇게 아름다운 헬기장이 있다니
이곳에서 야영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대의 지형이 평평해서 그런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보석 같은 바위 너머로 눈 구름이 몰려온다.
성벽 같은 바위 무더기도 신기하다.
아침을 먹는 이곳은 그래도 안온하지만
저 바위 모퉁이 뒤에는 엄청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눈보라가 기습한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전진하는 너덜 길이 위태롭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분다.
눈 덮인 참호는 우리가 지금 잠시 휴전을 하고 있을 뿐이지 전쟁 중임을 실감케 한다.
짙은 구름이 백두대간을 넘으며 눈을 뿌리고 있다.
대간령이라는 이름은 신선봉과 마산 사이에 있다 해서 사이령이던 것이 새이령이 되었고
다시 한자로 큰 새이령은 대간령으로 작은 새이령은 소간령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해발 641m의 대간령은 인제군과 고성군을 잇는 동서 교통의 주요 통로였으나
진부령과 미시령이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급격히 줄었고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 되었다.
한 때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주막까지 있었다지만, 지금은 무성한 넝쿨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무럭무럭 김이 나는 국밥을 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사이로 주안상을 들고 나오는 주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쪽에 여물을 먹고 있는 마소들도 보이는 듯하다.
신선봉에서 한참을 내려왔으니 마산봉에 가려면 또 한참 올라가야 한다.
이곳의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나무들이 말해준다.
엄청나게 부는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대원들.
자연의 멋을 살린 케언(cairn)이다.
자연을 보호하려면 이마저 하지 말아야겠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맨몸으로 찬 바람을 맞고 있는 나목들이 참 예쁘다.
백두대간은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백두대간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백두대간은 담백한 수묵화를 그리며 깊은 겨울 속으로 빠져든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사람이 날아갈 지경이다.
강한 바람에 강제로 팔이 벌어져 날아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병풍바위를 향하는 오름길의 온화한 곳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대간령을 지나 지루하게 올라오던 대간 길은
이곳 병풍바위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꺾어지며 내려간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마산봉이다.
이제 더는 오를 곳이 없다.
알프스 스키리조트로 내려가는 길가에 예쁜 설화가 피었다.
내 인생의 행로를 크게 바꿔놓은 알프스 스키장에 서니 남다른 감회가 서린다.
이곳에서 스키에 입문해 스키복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으며
스키 친구들을 만났고 눈에 반해 미친 듯이 산을 돌아다녔는데
옛 영화가 한낱 꿈인 듯 이렇게 황량하게 변하다니 가는 세월이 무상하다.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을 지나서
둠벙 옆을 지나기도 하지만
대간 길은 저 앞에 보이는 군대의 막사 뒤쪽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군부대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에둘러 간다.
동네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온 종주대는 이 집 뒤쪽으로 이어지는 원래의 대간 길로 다시 들어선다.
대간 길은 한동안 임도를 따라간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농장을 지나
황금색 낙엽이 쌓인 길을 지나면
백두대간 완주 기념비들이 즐비한 곳에 다다른다.
당당하게 완주한 기념사진을 찍는다.
드디어 진부령이 보이는데
졸업식장에 들어서는 것 같은 기분이다.
백두대간을 마치는 이곳에 오면 무척 흥분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차분히 가라앉는 것은
진부령이 끝이 아니라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통일되는 그날 백두산까지 가는 꿈을 꾸어본다.
백두대간 완주를 축하라도 하는 듯 눈폭탄이 터진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추억이 되살아난다.
3년 전 지리산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처음 시작하는 날 폭설로 후퇴했고
속리산 문장대에서 밤티재까지의 험난한 바윗길을 지나왔으며
수십 미터나 되는 대야산 직벽을 겁도 없이 내려온 일이며
비가 내리는 추운 새벽에 갈등을 이기고 강행한 은티마을도 생각나고
건의령~댓재 구간에서 평생 처음 보는 멋진 상고대를 만나 환호했으며
댓재에서 백복령을 가다가 깊은 눈 때문에 눈썰매를 타며 무릉계곡으로 탈출했고
노인봉에서 단속에 걸려 두 시간 넘게 승강이를 하다가 스티커를 발부받은 일
폭우 속에 무리한 진행을 하다가 조침령~한계령 구간에서 길을 잃고 사투를 벌이다 21시간 25분 만에 살아 돌아온 일
미끄러운 황철봉 너덜 길을 내려와 한밤중에 삼엄한 미시령 철조망을 통과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동안 함께 했던 회원님들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시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채형석 고문님 그동안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또한, 한 번이라도 산행에 참여하셨던 모든 분과
졸업산행까지 함께해 주신 김천수님 해랑님 유한수님 한상훈님 묘적령님 만수님도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운 시간은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저를 믿고 성원해준 저의 동반자 청향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산행 중 있었던 크고 작은 실수와 미비한 일들은 모두 제가 부덕한 까닭이니
혹시 섭섭하셨더라도 다 잊어버리시고 부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
내년 1월부터 시작하는 뜻깊은 낙동정맥 종주에 많은 참가와 협조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