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머님!
어머님 당신께서 이승을 하직하시고 저희 곁을 떠나신 지도 어느새 해가 바뀌고 1년을 예정하였던 탈상의 시기가 가까워 올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매일, 매 순간 어머님을 기리며 이미 게설되어 운영중인 가족카페의 <어머님 추모의 방>을 노크해 보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으신 어머님을 한 없이 그리워하며 지나 보낸 지난 한 해가 왜 그리도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아 계실 때에도 제대로 뫼시지도 못 했던 불효자가 어머님께서 아니 계신 공간에서 뭐 그리도 애타게 굴 것이 있느냐시며 준엄한 나무람을 주실 것만 같은 어머님!
어느새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가고 있습니다.
어머님!
지난 해 제87주년 3.1절날, 사순절의 첫 날, 수요일에 소자가 어머님이 입원해 계시던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 간병 당번(?)이라며 찾아 뵙던 장면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저의 일기를 조금 전에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 날에는 어머님께서 평소와는 달리 소자가 찾아 왔는데도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으시며 욕창으로 힘이 드시어 마구 성화를 부리시기도 하시고, 자세를 이리 저리 교정시켜 드려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어 여간 답답하지가 않던 장면이 소상하게 적혀 있었던 것이 지요.
그리고 그 다음 날, 3월2일(목)에는 어머님께서 입원하신 지 50일이 되는 날로써 <간병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어머님을 가장 지근 거리에서 지켜 본 점을 저의 관점에서 기록해 둔 것을 재차 읽어 보기도 하였더랬습니다. 기록한 시각은 그 다음 날인 3월3일 03:29분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날에는 저녁 시간에 소자가 상경하려고 하자,
<"서울에 가려면 일찍 가거라."시든지, "수고했다. 어서 가거라."시며 아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짐작컨대, 분명히 상태가 좋아져 보이신다는 추측을 낳게 함.>이라는 저의 표현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3월3일 낮 시간. 봉성체를 영하러 가셨던 신부님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와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어머님께서 아침과 점심에 잡수신 모든 음식물들을 다 토해 내시는 비상사태가 벌어진 장면이,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어머님께서는 방금 신부님이 영해 주신 성체 마저 토해 낸 것이 아닌가 걱정하셨다는 대목도 언급이 되어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바로 그 다음 날, 3월4일 재의 예식 다음 첫 토요일, 그리도 화창하였던 봄날 성모님의 날에 어머님께서는 저희 곁을 홀연히 떠나 가셨습니다. 영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아주 멀리 멀리 하늘나라로 올라 가시고 말았던 것이 지요.
어머님께서 저희 곁을 떠나 가시고 처음으로 맞이하였던 부활절 새벽(2006.4.16.02:36~38 사이)에 소자는 제가 작성하였던 지난 날 어머님과 함께 하였던, 바로 어머님께서 돌아 가시기 이틀 전에 작성하였던 저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이런 꼬리글을 남긴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답니다.
"아! 이렇게 어머님을 간병한 지가 불과 얼마인데.....................................부활절 새벽에 다시 읽어보는 지난 3월 1일(수)의 대구 가톨릭대학병원에서의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 시간들.......................................새로운 의미로 닥아서고 있습니다.
어머님!
이렇게 망연히 불러만 보고 있습니다.
천상에서는 행복하시겠지요?
그 곳 천국에서는 욕창의 고통도, 육신의 아픔도, 사람들간의 갈등도, 분열도 없는 아마도 그런 곳이겠지요?
어머님!
이 땅에 살고 있는 저희 아홉 자녀들이 온 가족들과 함께 참 평화를 누리며, 우애를 나누어 가지며 그리 살아 갈 수 있도록 오늘 부활하신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천주님께 전구하여 주소서. 빌어 주소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행복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어머님을 가장 지근 거리에서 간병을 하고 서울로 올라 와 역시 그 날(2006.3.3.금.00:29분에 작성한 것)도 새벽녁이지만 <간병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하였던 어머님 선종하시기 하루 전에 작성하였던 일기를 다시 읽고 적은 꼬리글은 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어머님!
함께 하였던 시간, 너무도 감사합니다.
어머님 돌아 가시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부활절 새벽, 다시 읽어보는 그 날, 3월2일(목), 즉 어머님께서 이승을 하직하시기 이틀 전에 제가 겪은 간병 체험이.........................................어머님께서 지금까지 저희 곁에 계시다면 아마도 무용담(?)처럼 으시대며 야단을 떨었을 저 장면, 장면들.......................................어머님! 차라리 욕창의 고통이 좀 있으시더라도 더 오래도록 살아 계셨어야 했던 것인데, 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이 세상, 재미도 없고 쓸쓸하고 그저 싫기만 합니다.
어머님! 너무나도 뵙고 싶습니다. 살아 계시다면 틀림없이 아들 신부가 집전하는 부활 성야미사에 참례하셨을 우리 어머님.............................................이 부활절 새벽, 어머님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며, 깨달으며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립습니다.
어머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를 천국에서 마음껏 누리소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행복하시옵소서. 엎드려 청하옵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의 삶이 과연 어떠하였는지는 하늘나라에서 이를 굽어 보시어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요만, 참으로 허망한 심사를 가눌 길이 없어 정신적인 방황을 일삼아 오기도 하였더랬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가족 카페를 통해, <어머님 추모의 방>을 출입하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슬픔을 삭여 나아 갈 수가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사무실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는 것이 바로 "어머님 추모의 방"을 방문하는 일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소자의 일과의 시작이 되었고, 하루에도 시간이 허락할 때 마다 드나들며 형제 자매들이 올려 놓는 어머님을 향한 그 애톳한 마음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크게 위안을 느끼며 살아 올 수가 있었다는 것이 지요.
그리고 최근에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면면이 소담스레 찍혀 있는 아주 오래된 빛 바랜 사진들을 신부님께서 카페에 올려 놓아 주시어 이를 보며 다시금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묵상하게도 되었답니다.
또한 어머님께서 여러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생일이며 영명 축일 등을 기억하시면서 깨알같이 율필로 작성하신 각종 기도문이며 여러 메모 쪽지들도 신부님과 록이와 국이가 정리하여 올려 놓아 이를 바라보는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감동도 맛보고 있는 즈음이랍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8남매의 맏며느리이시며 구남매의 어머님이셨습니다.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일생이셨고, 참으로 고생 많이 하시고 살아 오셨습니다.
집안의 대소사며 아버님 형제 자매분들, 즉 저희의 숙부님과 고모님들의 뒷바라지도 뒷바라지였을 테지만, 아홉 자식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일거리는 또 얼마나 많으셨겠습니까?
젊으셔서는 일에 파묻혀 어디 한 번 잠시라도 휴식의 시간을 가지실 시간이 없으셨지만 아무런 불평 한 마디 하시지 않으시고 이 모두 주님께서 허락하신 어머님의 숭고한 사명이려니 하시며 온갖 굳은 일을 다 하고 사셨던 것입니다.
그리 살아 오신 일생이신데, 연세가 높아지시면서는 좀 더 나은 삶, 여유있는 여생이셨어야 할 터 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님께서는 끝내 아무 자식들의 수발 한 번 제대로 받아 보시지 못 하시고 고생, 고생만 하시다가 그만 하늘나라로 떠나 가시고 만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러니 소자가 보건대 아홉 자식들 모두가 불효자식들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어 그 부분이 못내 마땅찮기만 하다는 것이 지요.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해 보지 못 하고 어머님을 떠나 보내시다니......................................하는 회한은 평생 동안 저의 가슴에 못이 박히듯 피멍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어찌 갚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제 어머님 부재의 세월 1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에 잘 살지 못했던 과오를 깊이 뉘우치며 아버님과 어머님의 유훈-"서로 사랑하여라", "하나 되게 하소서."-을 받들어 모실 요량으로 소자에게 남은 인생 만큼은 정말이지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하며 살아 가고자 합니다.
아홉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신 그 사랑의 정신을 깊이 묵상하며 올곧게, 성실하게 잘 살도록 노력하며 살아 가겠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맡겨 주신 아이들에게도 평소부터 꾸준히 열심히 살아 가는 삶의 지혜를 몸에 익히도록 그리 지도하며 살아 가겠습니다.
소자는 비록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어머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그 즈음에 어머님과 함께 하였던 시간, 시간들을, 그 시간 속의 추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어머님의 숭고한 일생에 버금가는 참된 삶을 살아 가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여 나아 갈 작정입니다.
어머님!
부디 영면하시옵소서.
천상에서 아버님과 모든 조상님들과 친지분들과 함께 내내 영복을 누리소서.
행복하시옵소서.
2007년 2월 5일(일) 새벽 01:55분에, 소자의 서울 공릉동 집에서.
어머님을 한 없이 그리워하는 네째 아들 홍대 스테파노 올림.
* 오늘이 음력으로 섣달 열 여섯날 밤이어서인지 휘영청 달이 밝아 곧 설날이 가까워 옴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더욱 그리운 분들이 바로 저희 부모님이시요, 가족들의 모습인데, 어찌 올 설날을 지나 보낼 수가 있을까 미리부터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리운 어머님!
부디 천국에서 행복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