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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골&마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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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풍경사진 스크랩 정선여행 - 폭염속에 핀, 함백선 함백역 코스모스와 함백탄광
그시절에 추천 0 조회 297 15.09.13 15: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태백 황지자유시장에서 점심으로 연탄 불고기를 먹고

고한, 사북, 문곡을 지나 함백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어가고 있었어

 

차창 밖으로 가랑비가 어지러이 날리고 있는 함백역의 오후시간 !   

그곳엔 찾는 사람 하나 없어 고요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지

멀리 두위봉 산꼭대기에도 가랑비가 날리고

마을앞 개천에는 자욱히 물 흐르는 소리 !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루밤 보내고 가려고 작정하고 이곳까지 온거였어

마을이 사방팔방 높은 봉우리들로 꽉 막혀 좀 답답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이런 마을이

요즘같은 피서 절정기에는 여관이나 민박집 잡기가 쉬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 

그러잔아도 여행 이틀째인데 어디서 방도 못잡고 노숙만 하고 돌아 다녀서 온몸은 몹시 끈적 거렸어 

 

머....볼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아니아니....볼것이 없는 마을이 아니라 놀이거리가 없는 마을이지 

아니아니.....볼것도 없는 마을.....그것이 바로 우리의 볼거리였어

하지만 이 마을에도 볼거리는 있었지

녹슬은 함백선 철도에서부터 적막속에 휩쌓인 함백역, 아직도 검은 석탄에 그을려 있는 두위봉

탄광마을, 안경다리 폐광마을, 철로변에 서너채씩 외따로 떨어져 있는 80년대 탄광 판자집 등등....

이렇게 볼거리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만 몰려가고 이곳은 아무도 찾지 않았어

 

고요 적막속에 휩쌓인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은 한때 정선군 석탄산업 1번지라 불려졌었지 

 그치만 같은 정선군의 탄광촌이었던 사북과 고한처럼 아직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 

간혹 몇몇 여행객들이 함백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함백역만 돌아보고는 서둘러 도망치듯 내빼는거야 

사람들은 함백을 아무 볼거리가 없는 그냥 폐광촌 마을 쯤으로 생각하는것 같았어 

 

한때 석탄산업으로 번성했던 함백은 1990년대 초부터

석탄 사양화로 인하여 탄광들이 줄줄이 폐광하기 시작했지

게다가 함백에 하나 있는 함백역 마져 폐역이 됨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점차로 잊혀져 갔어

 

 적막속에 묻힌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함백역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되었다는 함백역 안내석

 

 정선군 석탄산업 1번지였던 함백리의 함백역

 

함백역은 1957년 함백탄광 광업소와 함께 두위봉 자락에 산속도시가 크게 형성되자 세워진 역이었지

그리고는 이 함백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늘 북적였어

하지만 그 풍요로움도 36년만에 막을 내려야 했었지

 

93년, 함백탄광의 모든 광업소들이 문을 닫게되자 함백역도 제 기능을 잃고 휘청 거렸어

그리고 2천여명이 넘던 광원들과 그의 가족들은 이 산속도시를 썰물처럼 빠져 나갔지

그후, 하루 서너차례씩 다니던 여객열차마져 끊어져 버린거야

 

역사가 세워진지 49년째 되던 2006년 10월 31일,

허름한 함백선의 함백역은 낡아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철거되고 말았어

물론 마을 주민들도 함백역이 철거 되는줄 몰랐다는 거야

 

그렇게 철거된지 2년만인 2008년 11월,

함백역은 마을 사람들의 힘겨운 노력으로 다시 원상태로 복원 되었지

그리고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기록사랑 제1호인 함백역으로 기록 되었어

 

2008년 11월에 다시 복원된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역은 1957년 영월 - 함백간 함백선 철도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었지

같은 정선군의 사북과 고한역 보다 역사가 훨씬 더 앞서 있었어

 

사북역과 고한역 영업 개시일 66년, 정선역 영업 개시일 67년,

아우라지역 영업개시일 71년, 구절리역 영업개시일 74년,

이처럼 함백선의 함백역은 정선군의 역들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역이었지

이런 이유로 함백은 정선군 석탄산업 1번지라 불려지기도 했었어

 

 81년 3월, 함백탄광 광원의 월급봉투 (함백역 소장)

 

이 월급봉투는 함백역에 소장 되어 있는데 81년 3월분, 광원의 월급명세표였지
월급 총액은 306,078원, 그리고 상여금은 85, 893원으로 되어 있었어

 

여기서 의료보험 6,090원, 노조경비 3,060원, 사택료 900원, 원탄대 8,095원, 보험 5,000원 병원약대 7,600원, 공제조합 3,400원, 식육대 3,600원을 공제하고 나니

총 지급액은 354,000원이었지

문경의 석탄 박물관에 전시된 81년도 광원의 월급은 25만 9,529원 이었어 하지만 함백탄광 81년 3월, 월급 총 수령액은 35만 4,000원으로 근 10만원 정도가 더 많았지

 

문경 석탄박물관 자료에 위하면 81년도 문경시청 공무원 월급은 11만 9,546원 이었어

당시의 함백탄광 광원들의 월급에 비하면 공무원들 월급은 3분의 1밖에 안 되는 액수였지

 

81년도 우리나라 쌀 한가마 값은 6만 4천원이었어

당시 함백탄광 광원의 한달 월급으로 쌀 5가마를 사고도 돈이 조금 남는 액수였던 거야

그러나 말단 공무원 월급으로는 쌀 2가마 사기도 벅찬 액수였지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 자료에 위하면 우리나라 쌀값의 동향은 대략 이러했어

 1980년 1월을 기준으로 한 쌀값이 45,146원

1981년 1월 기준 64,387원  

1982년 1월 기준 62,374원

 1983년 1월 기준 66,021원

 

1984년 1월 기준 64,261원

 1985년 1월 기준 65,644원

 

- 이상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 자료에서 발췌 -

 

함백역 맞이방에 진열된 통일호와 무궁화호 승차권

 

8월 2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에 핀 함백역 코스모스 

  

 8월 2일, 35도를 오르내리는 후덥지근한 폭염속 ! 

함백역 승강장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고 그 사이를 화물열차가 지나고 있었어

그런데 내가 함백역에 수차례 와 봤었지만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거야 

어라 ? 여기도 기차가 지나 다니네 ? 

대체 어케 된거야 ? 함백역 앞으로 기차가 다 지나다니고....

나중에 알고보니 화물열차만 하루에 한두차례씩 함백역을 지나 다닌다고 했어  

 

 한 여름, 함백역 승강장에 핀, 코스모스 사이를 지나가는 화물열차

 

 한 여름, 함백역 승강장에 핀, 코스모스 사이를 지나가는 화물열차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 뒤, 다시 적막속으로 빠져드는 함백역 승강장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 뒤, 다시 적막속으로 빠져드는 함백역 승강장 

 

 함백역 승강장앞 터널

 

함백선 여객열차 운행이 멈춘지도 어언 20년 세월 !

이제 함백선을 오가던 여객열차들은 예미역에서 방향을 틀어 자미원역으로 올라가지

그래서 함백역으로 올때 예미에서 자동차를 타고 두위봉 자락 골짜기를 돌아와야 했어

 

함백역 주차장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역 앞, 도로 표지판

 

함백역 건너편에 있는 함백역 화물 취급소 

 

함백역에서 나와 건너편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다 스러져가는 목조 스레이트 건물이 하나 있었어 

가까이 가 보니 마당에는 녹이 벌겋게 슬은 국기 게양대가 세워져 있었던 거야

그래서 이것이 무슨 건물인가 알아보니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라나....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

 

이미 페허가 된 함백역 화물 취급습소는 각목이 떨어져 나가며 반쯤 허물어져 있었지

그곳엔 당시에 사용하던 책상과 벽에는 태극기가 그대로 걸려 있었고.....

 

석탄산업이 한창 호황을 누렸던 80년대까지는 그래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고 하는거야

화물 취급소 안에 사용하던 집기와 책상들은

폐광 당시의 암담했던 함백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어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

 

함백탄광 폐광후, 2천명이 넘는 광원들과 그의 가족들은 서둘러 썰물처럼 이 마을을 빠져 나갔지

그리고 마을엔 무섭도록 고요한 정적이 흐르며 

마을 곳곳엔 검은 탄가루만 스산하게 풀풀 날리고 있었던 거야 

  

마지막 남은 역사의 역무원 마져 떠나버린 함백역은 

그렇게 적막속에서 숨을 죽인체 절망감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었어   

 

함백역 건너편에 있는 45년 된 역 화물 취급소  

 

 함백역 앞을 지나가는 국내서 가장 경사가 심한 태백선 철도  

 

 함백역 앞을 지나가는 국내서 가장 경사가 심한 태백선 철도 

 

이 철도는 예미역에서 산꼭대기 자미원역을 지나 사북, 고한, 태백으로 이어지는 철도로서

아마 국내서 가장 경사가 심한 철도로 기억 되는 곳이었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기차는 산 허리를 타고 해발 700m, 자미원역까지 급경사 길을 올라가는 거야

해발 700m 자미원역에서 또 급경사길을 내려가는데

이때 차창밖으로 산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일어나곤 했어

왜냐하면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는것 처럼 공중에 붕 떠서 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함백역 앞을 지나가는 국내서 가장 경사가 심한 태백선 철도

 

태백선 기차에서 내려다본 산속 도시, 함백리 마을(2009년 겨울 촬영)

 

해발 1466m 두위봉 골짜기에는 오래전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었지

그곳이 어디냐 하면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함백리 마을이었어

함백은 함백탄광이 들어서기 시작하던 5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이 이 산속으로 몰려들어 이렇게 큰 마을이 형성 되었던 것이었지 

하지만 함백의 그 풍요움도 잠시....

90년대 초, 모든 광업소의 폐광과 함께 사람들은 서둘러 이 마을을 모두 빠져 나갔고 말았어 

그후, 이 마을은 지금 현재까지 적막속에 이렇게 고요하게 뭍혀 있는거야 

 

일체 만물은 모두 덧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있고 

번성한 것은 반드시 쇠멸한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짧은 영화를 누리고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릴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

 

태백선 기차에서 내려다본 산속 도시, 함백리 마을(2009년 겨울 촬영)

 

여행 두번째날, 어떻게 하다보니 우리는 태백에서 정선군 함백으로 흘러 들어왔어 

이 마을이 우리가 하루밤 보내고 가려고 작정하고 들어왔던 마을이었지 

여름휴가의 절정인 지금, 강원도 모든 관광지의 여관이나 민박집들은 만원 사절인 상태이고

그래도 만만한게 홍어젖이라고 아무도 찾지 않는 함백에 들어와 여관방을 흥정 하려고 했었어 

 

그런데....함백에는 여관도 없고 민박도 없었던거지 머야 ! 

예미읍내에 XX 하숙이라고 하는 하숙집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 하숙집을 찾아가 봤더니 글씨, 얼마전에 문을 닫았다고 하더만....

그리고 예미역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 여관이 하나 있긴 있었지

하지만 그 여관 주변으로는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었어 

 

그래도 명색이 읍인데 어찌 여관이 그렇게도 없는 거야 ?  

다른 동네는 사람도 없는 저 후미진 들판에도 모텔도 많더만....

 

그러고 보니 함백이나 예미읍에는 바람둥이들이 없는 동네인가봐 !

여관이 하나 밖에 없는거 보니.....그것도 2층짜리 쪼만한 여관.....

다음에 이 동네 올때는 커다란 현수막 하나 만들어서 예미역 앞에 걸어주고 와야겠어

" 바람둥이 없는 마을, 우리마을 청정 마을 " 이라는 현수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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