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년때 美로 전훈, 눈물 한방울 안 보여… 2002년 국제대회 첫우승
초등학교 6학년 소녀는 가족과 영화 '물랭루주'를 보고 있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19세기 말 파리 물랭루주의 스타 가수(샤틴)와 젊고 재능 있는
작가(크리스티앙)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뮤지컬 영화였다.
'록산느의 탱고'가 흘러나오자 아이는 이렇게 다짐했다.
'언젠가 꼭 이 음악으로 스케이트를 탈 거야.'
■'록산느의 탱고'로 세계를 홀리다
5년이 지난 2007년 3월 23일 일본 도쿄 체육관.
열일곱이 된 소녀는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 나섰다.
김연아(군포 수리고)였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의상을 입은 김연아는 어느새 '록산느'가 되어 있었다.
고교 2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발산했다.
1980년대 최고 스타 카타리나 비트의 '카르멘'과 비교될 정도였다.
한 해설자는 생중계하면서 "이렇게 음악과 연기를 조화시키는 선수는 보지 못했다"고 극찬했다.
대기석을 일컫는 '키스 앤드 크라이 존(Kiss & Cry Zone)'에 앉아 점수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71.95점이 떴다. 신채점제가 채택된 이후 세계 최고 점수였다.
'김연아 시대'의 서막이었다.
■미셸 콴처럼 되고 싶어요
1996년 7월.
만 여섯살이던 유치원생 김연아는 어머니 박미희씨에 이끌려 언니 애라와 군포 집 근처에
새로 문을 연 과천시민회관 실내 빙상장으로 갔다.
처음 서본 얼음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즐거워했다.
김연아는 고모가 이웃에게 얻은 빨간 스케이트를 신었다.
특강이 끝난 다음엔 마스터반에서 스케이트를 계속 배웠다.
새로 강습 등록을 하면서 하얀색 새 스케이트도 받았다.
주 3회, 10개월간의 마스터반이 끝나갈 무렵 지도자였던 류종현 코치가 어머니를 찾아왔다.
"연아에게 재능이 있습니다."
반신반의하던 어머니는 '재능이 있다면 썩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개인 교습을 맡겼다.
세계적인 피겨 스타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긴 고행길의 출발이기도 했다.
김연아가 신흥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미셸 콴이 꼬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김연아는 언제나 콴의 동작과 표정을 흉내 냈다.
■뭔가 남달랐던 아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9년엔 처음 미국으로 5주간 전지훈련을 떠났다.
어머니는 걱정에 마음이 떨렸지만 김연아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
김연아가 국제대회에 나가도 긴장하지 않고 실전에서 더 강한 기량을 보이는 이유는
워낙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다.
김연아는 첫 국제대회 출전인 2002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대회(13세 이하)에서
우승하며 가능성의 싹을 보였다.
김연아는 '신동(神童)'이었다.
13살 무렵 이미 피겨 스케이팅의 6가지 점프 중 트리플 악셀을 뺀 5개에 숙달해 있었다.
보통 트리플 점프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넘어지길 되풀이하면서
1~2년 동안 수련해야 한다.
김연아는 '난 왜 남들이 어렵다는 점프를 할 수 있지?'라고 신기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