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서울(Hi Seoul) / 양귀순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다. 예부터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한양으로 보내라고 했다. 나는 대전 토박이다. 그래서인지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예부터 전해 내려온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임금이 살고 있는 곳은 항상 먼저 발전했다.
얼마 전에 볼 일이 있어 서울에 가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려니 번거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네이버지도로 길 찾기 검색을 하여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여 검색을 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아파트에서 몇 분, 몇 미터 보행을 하여 어떤 승강장에서 몇 번 버스를 타고 버스정거장 몇 정거장을 이동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동서울에 도착하여 얼마를 가서 강변역 플랫폼 5-2번에서 타면 빠른 하차라고 쓰여 있다.
10여 년 동안 서울에 고속버스 타고 갈 일이 없었다. 고속버스모바일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해서 승차권을 예매했다. 프리미엄, 우등, 일반으로 나뉘어져 있어 시간에 맞는 조수석 쪽 맨 앞의 자리를 선택하여 카드결재를 했다. 편리한 세상이다.
내가 서울에 처음으로 간 것은 1978년이다. 언니가 결혼하여 서울 잠실에 살고 있을 때다. 그때 지하철 2호선 건설 중이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남동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갔다. 현재의 창경궁이 그 당시는 창경원이었다. 세 살짜리 조카아이를 서로 번갈아 안아가며 언니와 함께 창경원 동물 구경을 하였다. 버스를 타면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안내도 잘 안 되었고 계속 밖을 내다보며 긴장을 하던 때였다. 그 후로도 서울 갈 때마다 그렇게 긴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살지 않은 서울에 가도 안정감이 있었다. 바로 지하철 때문이다.
서울은 자꾸만 비대해졌다. 인구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이런 현상은 국가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서울이니까 그냥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성장을 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부터다.
대전도 도시 균형 발전에 실패한 도시다. 둔산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모든 관공서가 그 곳으로 집합되었다. 이미 정부종합청사가 와 있는데 대전광역시청, 대전서구청, 대전지방노동청, 둔산경찰청, 교육청, 서대전세무서, 모두 그곳으로 옮겨 갔다. 그렇게 해놓고는 동구는 낙후된 구도심이고, 대덕구는 어떻고, 중구는 어떻고 하며 재정자립도가 안된다고 한다.
도시를 균형 발전시켜야 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은 정책결정권자의 혜안이 없어서다. 직장이 어느 쪽에 있었느냐에 따라 거주지역이 변한다. 내 집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몇 년 후에 자산총액이 달라진다.
부동산 임대사업을 할 수 있게 한 결과가 요즈음 나타난다. 한 사람이 몇 백 채씩 소유하고 임대사업을 하게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인가? 조선시대 노예 제도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집의 노예가 되어있다. 모임에 가면 어떤 집이 얼마에 팔렸다더라. 승승장구 오르는 곳에 내 집이 있어 집값이 오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은행 이율이 적으니 노후 대책으로 작은 집 몇 채를 임대하여 먹고 산다면 이해를 하겠다.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주택 수 상한선을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몇 년 전 홍콩으로 여행을 갔다. 여행가이드에게 아파트 한 평이 1억이 훨씬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좁은 땅덩어리라 초고층이며 아파트 평수는 3평 4평인 집이 대다수라고 했다. 어떻게 3~4평에 살 수 있을까?
사회주의를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람이 살아야 하는 주택으로 부를 축적하려 하지 말게 하라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평수를 넓혀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신축 아파트도 다양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사람은 비와 눈만 가려주어도 행복해 할 것이다, 살림에 필요한 가전제품을 들이며 소소한 행복감을 누리기도 한다. 점점 자재를 고급화 시켜서 턱없이 주택 값을 높인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방과 거실, 주방, 베란다의 구분만 하여 분양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풀 옵션이다. 그러니 결국 가구 산업도 발달하지 못한다. 내 취향대로 가구도 선택해서 들여야 하는데 획일적이다. 건설회사가 가구제작 회사와 직접 거래를 한다. 큰돈의 법칙대로 움직인다. 그럼 중간 상인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파트 내부를 전문가가 디자인 했으니 세련미는 있겠지만 내 집안 살림이 조금 촌스러우면 어떠나. 살면서 다듬어 가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주택을 옮기며 낡은 가구도 바꾸며 살아간다. 다양화 되어야 하는데 획일화 되어 간다. 붙박이가 처음에는 좋을 것 같지만 그것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 낡아 버린다. 틈새를 메꾼 코킹도 누렇게 변하고 말라서 쪼그라든다. 그러면 교체해야 한다. 그럼 그것도 또 대기업 A/S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 삼성전자 세탁기 호스가 물의 압력으로 수도꼭지에서 빠졌다. 오래 된 것이라 프라스틱 꼭지가 깨져버렸다. 어차피 교체를 해야 해서 서비스를 신청했다. 호스를 빼가지고 가서 구입하고 싶었지만 호스를 어떻게 빼는지 잘 몰랐다. 다른 것 까지 망가트릴 것 같아서 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출장비와 부품 값은 당연히 지불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기술료가 있다는 것이다. 출장비와 부품 값만 받는 줄 알았다가 황당했다. 서비스 신청 시 기술료를 내야 한다는 안내도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새 아파트 좋아서 들어가지만 언젠가는 코킹도 누렇게 변하고 붙박이장도 헐거워지고 모든 것이 다 낡게 된다. 결국은 부수고 다시 공사를 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가구만 들이면 될 것을. 뻔히 내다보이는 일이다.
고가 제품으로 실내장식을 조금 바꾸어 놓고 아파트 분양 금액만 잔뜩 올린다. 도대체가 이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갈까?
세상에는 어떤 사람도 불필요한 존재는 없다. 직업의 귀천은 없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직업은 있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고되고 험한 작업을 해주지 않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직업은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분배도 필요한 것이다. 그 고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사는 곳도 열악하다. 그들은 비싼 실내장식이 1순위가 아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함께 더불어 가며 살아가야 한다. 다 허물어져가는 쪽방촌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면 안된다. 가구산업도 키우려면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처럼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 깔끔하고 산뜻하여 그것이 좋은 줄 알고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것 역시 낡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다.
주공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왕따 시키고 같이 놀지도 않는다. 주공과 같은 학교를 배정 받는 일반 분양 아파트의 시세도 그렇지 않은 아파트와 천지 차이다. 왜 주택공사에서 건축한 아파트 이름은 주공이라고 했을까? 왜 어디를 가도 천년마을이라고 했을까? 아파트 이름부터 재정비 해야 한다. 행정구역으로 주소 자체를 옛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정책입안자, 정책결경자의 잘못이다. 대체로 권력이 있는 사람이거나 부를 누리는 사람들은 기득권자이다. 누구는 오페라 관람을, 연주회 관람을 없는 돈에 십여만원씩 들여 어렵게 구입해서 가는데 한 편에서는 초대권을 돌린다. 그 초대권은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쥐어진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다못해 자녀들 자원봉사도 눈 꿈먹 해가며 얼렁뚱땅 자원봉사 시간을 올린다. 이런 것을 지시하는 사람도, 명을 받아서 가짜를 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공정한 사회에서 공정하지 못한 행동이다.
30여년 전부터 중앙부처 이전화를 논의해 왔다. 기득권자들은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자녀들은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 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해야 하기 때문에 꿈쩍을 하지 않았다. 오죽해야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까지 방영되었을까.
전 세계 수도는 모두 서울과 같을까? 미국의 명문대는 뉴욕에만 있을까?
서울로만 인구가 쏠리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가는데 편리해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세월동안 건설해 놓은 지하철이 사람을 모이게 만들었다. 서울이 직장이지만 집값이 비싸 서울로 못가고 경기권역에 거주 하는 사람을 위해 지하철은 자꾸 뻗어 나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강변역에 도착하여 역시 서울이구나 생각했다. 한가로운 대전의 대낮과는 달랐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많다. 대전에서도 살 수 있고, 금산에서도, 홍성에서도, 대천에서도 살 수 있다. 강원도 산골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일류 병원이 없어서이고, 일류 대학이 지방에 없어서이다. 초등학교도 통폐합되고 시골의 학교는 폐교가 된다. 산부인과 병원이 없는 소형 도시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젊은 처자들이 시골에 살려고 할까? 아무리 적자가 나도 없애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라 예산으로 보건소처럼 산부인과나 간단한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것을 서울에 집중적으로 건설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 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이나, 고려대학교 병원, 연세대 병원들이 지방에 있다면 병을 고치겠다고 서울에만 가겠는가? 원자력병원이 교통이 좋은 대전에 위치해 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해본다. 대전이 아니라도 경부선이 닿는 김천이나 영동에 위치해 있다면 어떤가 상상해 본다.
‘하이 서울’ 친근하지만 복잡하다. 서울을 비대하지 않게 하겠다고 수도권 교통망 확대 건설계획을 한다. 왜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가? 서울 중심이 아닌 각 지역 광역도시 중심으로 발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서울을 재정비해야 한다. 강남의 어느 곳 아파트는 평당 1억이 훨씬 넘는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아파트는 자꾸 짓지만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부자에게 아파트를 많이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자꾸만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아파트, 아이들을 서울에서 교육시키겠다고 집갑 상승 위험을 감수하며 분당시의 집을 팔고 서울 잠실로 거주지를 옮긴 조카가 있다. 이들에게 삶은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공정한 사회, 공정한 기회를 외치는 정부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꿈도 꾼다. 현금이 없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길에서 장사를 하는 군밤장수도, 야채를 파는 할머니도 모두 현금이 아닌 카드로 결재를 받고 현금을 없앴으면 좋겠다. 백화점에도 부자들은 자금추적을 피해 현금 결재를 한다고 들었다. 아직도 카드결재를 싫어하는 곳이 많다. 어떻게 돈을 벌든 좋지만 주택으로 부를 축적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옥죄는 것이 많다고 다른 나라로 떠나면 어찌하냐고 한다. 그런 사람은 떠나라고 해라. 대한민국에서 벌어들인 것 모두 내려놓고 떠나라고 하라. 세상살이는 혼자 할 수가 없다. 임대아파트 사는, 소득이 적은 사람의 돈으로 부를 축적했으면 이젠 내려놓았으면 한다.
스마트한 시대에 스마트한 정책이 펼쳐지길 바란다.
나는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이다. 제발 서울을 거대도시로 만들지 말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주택을 많이 소유해서 부를 이루게 하지 말자.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다. ‘하이 서울’ 슬로건처럼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서울이면 좋겠다.
첫댓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서울은 Hi Seoul이 아니고 High Seoul로 각인되어 있기도 합니다.
난 중학교를 서울로 가면서 서울에 살았었는데
처음 부터 서울이 싫었습니다. 아니 도시가 싫었지요
아파트는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ㅎㅎㅎ
동강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서울이 정이 안 갔을것 같아요. 서울, 다시 생각해봐야 할 도시예요..
전 서울에서 나서 자라며 삼십 년을 살다가 대전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겐 서울이 정겹고 익숙한 곳입니다. 처음 대전에 왔을 때의 느낌은 무슨 광역시가 이리 시골같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서울은 밤에도 잠들지 않는 도시인데 대전은 밤이 되니 동네가 전부 잠이 드는 게 신기했습니다. 이제 대전에 산지도 서울에서 산 기간과 비슷해져 갑니다. 그동안 안에서 일만 해서 그런지 아직도 제게는 낯선 대전입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 것은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조금씩이나마 대전에 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대전 사람인 선생님이 느낀 서울처럼 제게도 그렇게 느껴질 날이 있겠지요?^^
주거지역은 일찍 잠들지요. 대전도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많아요. 나이들며 그런 곳에서 멀어지더군요. 서울은 어느 지하철역에 내려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야밤에도..
그래도 대한민국은 늦은 밤에도 도심을 활보할 수 있어 좋긴해요.
신두리해변에 같이 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