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의 이만기가 '장사의 천하'를 통일, 새로운 장사중의 장사로 군림하면서 스포츠 단일대회 개인경기 상금사상 최고인 1천 7백만원을 거머쥐었다. '떠오르는 해' 이만기가 마침내 홍현욱, 이준희의 양대산맥을 허물고 국내 씨름의 새질서를 낳았다. 그것은 분명 '씨름계의 쿠데타'였다. 17일 장충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제1회 천하장사 대회는 거함 이준희 홍현욱의 침몰로 최대이변을 낳으며 신예 이만기를 초대 천하장사로 탄생시켰다. 이로써 당분간 흔들리지 않으리라던 이준희 홍현욱의 씨름 뿌리가 흔들렸다.
거인 이봉걸, 천하를 들다 지난6일의 백두장사 결승전에서 이미 3:2로 이만기를 누른 채 모처럼 두 손을 들고 기고만장했던 이봉걸은 "이제 너쯤은" 하듯 이만기를 깔봤다. 8초 만에 안다리 걸기에 걸려 첫판을 내줬으나 왼배지기로 둘째 판을, 잡치기로 세번째와 네번째판을 잇달아 따내 숙적 이만기를 옥좌에서 끌어내렸다. 천하장사가 된 뒤 이봉걸은 "이번 대회에 대비, 밤에도 혼자 어린이 놀이터에서 기술을 연구해왔다"며 "상대가 파고들지 못하게 상체를 밀고 이만기의 샅바쥔 왼쪽손에 힘을 빼기 위해 나의 오른발을 최대한 뒤로 뺀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장사씨름 이준희 "이제야 나를 알아보느냐" 「신사」앞에 천하가 조용 이준희는 민속씨름 출범 이후 천하장사대회 8강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올랐던 유일한 선수. 그러나 그는 지난해 5,6회 대회 때는 집안형편으로 대회출전조차 못해 신인 선발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1m88, 1백14kg으로 체구가 남보다 커 타고난 씨름선수로 알지만 사실은 지독한 연습벌레. 고교시절부터 밤중에 몰래 연습하기로 유명했으며 최근에도 일요일 몰래 숙소를 빠져 나와 연습을 하다 들킨 일이 많았다.
최연소 강호동 "모래판 회오리" 1m82, 체중120kg으로 지난 2월 마산상고를 졸업, 계약금 5천만원, 연봉 2천만원으로 조흥금고팀에 입단하며 일찌감치 프로씨름판에 뛰어들었던 강은 4월 일양약품으로 이적했었는데 경기전 괴성을 곁들인 독특한 제스처 등으로 「모래판의 무법자」로 불려왔었다. 강은 이날 우승한뒤 『준결승에서 이만기 선배를 이기고 난 뒤 자신을 얻었다』며 『오늘의 우승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이선배덕분』이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황대웅 「모래밭 영웅」 선언 이날 결승전에서 황대웅은 박광덕을 맞아 2판을 먼저 내준 뒤 3판을 내리 이겨 역전승했다. 역대 천하장사대회 결승전에서 먼저 2판을 뺏긴 뒤 경기를 뒤집은 것은 황대웅이 처음이다. 이로써 황대웅은 민속씨름사상 천하장사를 연속 제패한 3번째 선수가 됐다. 지난83년 민속씨름이 막오른 이래 천하장사 3연패를 이룩한 선수는 이만기(은퇴·14~16회)와 강호동(18~20회)이며 2회 연속 우승기록은 이만기(1~2회, 6~7회)가 갖고 있다.
기술씨름시대, 모래판 스타들의 주무기는? 이만기의 허리 힘은 천하제일. 최중량급인 백두급에도 2백10kg이나 되는 이의 허리힘을 당할자가 없다. 경기중 뒤엉키기만 하면 거구들도 이의 허리힘에 뒤집기를 당한다. 백만불짜리 허리와 스피드가 둔화되지 않는한 이만기 시대는 당분간 계속되지 않겠느냐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한편 이만기의 허리에 버금가는 보기는 이준희의 다리. 1백88cm의 거구에 허벅지 둘레가 65cm나 되는 이의 밧다리는 관우의 청룡도에 견줄만한 무기. 이의 통나무다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다간 상대 다리가 고장난다는 얘기를 씨름판 주변에선 종종 들을 수 있다.
강호동, 들배지기 무적인가 강호동의 들배지기는 원래 상대선수를 번쩍 들어올린 뒤 허벅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구사한 들배지기는 들어올리는 것까지는 같으나 이후 허벅다리 걸기가 아닌 왼발 덧걸이가 이어지는 것이 특색. 때문에 상대선수는 허벅다리 걸이에 대비했다가 순간적으로 허를 찔리게 되는 셈이다. 조흥금고의 김병철 감독은『강호동은 힘을 모아쓸줄 아는 선수다. 게다가 기술 연결동작이 전광석화처럼 빠르다』며『같은 기술이라도 강호동이 쓰면 갑절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기술씨름' 이기수 최고인기 이기수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 경기는 18일「람바다」박광덕(LG증권)과의 일전. 비록 8강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 가진 경기였지만 이기수는 자신보다 60kg이나 더 무거운 박광덕에게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기수는 경기 종료 4초를 남겨놓고 박광덕의 왼쪽 무릎 쪽으로 파고들며 뒤집기를 성공시켰다. 98kg 선수가 158kg 선수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몸 위로 넘겨버린 것. 순간 박광덕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기수는 90년 10월 대회서 처음으로 한라장사에 오른 이후 4차례나 한라봉에 오른 한라급 간판스타다.
1천5백석이 넘는 좌석이 연일 가득차 ‘만원사례’를 이뤘다. 그러나 모래판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의 대부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고 젊은층 팬은 거의 없었다. 이는 민속씨름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 장면.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 국민적인 호응을 얻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씨름이 최근 들어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젊은층에게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게 중론이다.
"상금 올려야 민속씨름 선수들 희망 경기 활성화" 선수들은 "지난 83년 민속씨름 출범 당시 천하장사상금 1천 5백만원은 작은 평수의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면서 "그때의 가치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상금은 최소 3~4배정도는 인상되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상의 필요성이 더 절실한 것은 체급별대회의 경우. 천하장사와 경기내용은거의 같으면서도 우승상금은 20%에 불과해 체급별대회가 선수들의 열의나 관중들의 관심이라는 측면에서 2류 대회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