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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는 1909년 1월 15일 중광을 선포하면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해 왔습니다. 홍암 나철 대종사께서는 국치 직후인 1910년 9월 27일 대종교의 교명(敎命)으로 종단의 '의식 구례'를 제정ㆍ발표하였습니다. 대종교의 의식과 행사를 규정하는 내용입니다. 제3장에 개천절에 관한 항목을 명시하면서 "개천절은 강세일(降世日)과 개국일(開國日)이 10월 3일이라 경일(慶日) 합칭함" 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천절의 어원이자 시작입니다.
대종교는 1909년 1월 15일 중광을 선포하면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해왔고 이것을 '의식 구례'로 확정한 것입니다. 우리 배달민족은 오래 전부터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불러한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사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였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겼습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을 비롯하여 마니산의 제천단, 구월산의 삼성사, 평양의 숭령전 등에서 행하여진 제천행사는 국조 단군의 탄신을 축원하는 행사였습니다. 대종사께서는 대종교 총본사를 만주로 옮긴 이후에도 이날이면 개천절 행사를 거행하였고, 1919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임정에서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했으며, 충칭으로 옮긴 임시정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이날 경축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임정은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명명하고 국경일로 삼았습니다.
대종교인이었던 독립운동가 위당 정인보는 1935년 개천절의 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했습니다.
"삼위태백을 굽히어 보아 인간에 홍익을 도모할 수 있음을 헤아리시고, 태백산정 신단수 아래에 하강하셨다 하는 환웅천왕의 성스러운자손이신 단군은 곧 상천(上天)의 부속(咐屬)을 몸받으신 고의(古義)라, 홍익인간이 단군의 심인(心印)인 동시에, 이른바 천부인 삼개(三個)라 함이 환인ㆍ환웅ㆍ단군 삼위의 일심(一心)이 한 가지 이에 있음이 인(印) 침 같다 함을 화전(化傳)함이러니, 그 심인(心印)이 있는곳을 찾으려 할진대 홍익인간이 이것이요, 인간에 홍익을 도모하시니 만큼 두루요, 또 크되 삼위태백으로 그 베푸심에 근본을 삼으시니, 예로부터 전함이 비록 간소할지언정 고정교(古政敎)의 면모를 삼가 계고(稽考)함직하니."
개천절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0월 3일(양력)을 정식 국경일로 지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육당 최남선 작사의 '개천가'를 위당 정인보가 새로 작사한 '개천절 노래' 로 바꾸었습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해방 후까지는 그대로 지켜오다가 1949년 문교부가 사계의 전문가들로 위촉한 '개천절 음ㆍ양력 환용 심의회'의 심의결과, 음ㆍ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무엇보다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종사께서 1916년 구월산 봉심(奉審) 행사에 갔을 때 동행하고, 상하이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위원회 위원과 제5기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을 역임한 한글학자 출신의 백연 김두봉은 1922년 10월 임시정부의 개천절 경축식장에서 개천절에 대한 역사를 피력하였습니다.
"오늘은 단군께서 우리나라를 처음 세우신 건국기념일이라.…독립을 선언한 지 올해까지 3년 동안 국경일로 지냅니다. 이제로부터 13년전에 대종교 곧 단군이 세우신 종교가 부흥하게 됨으로부터 그 교중(敎中)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단군이 건국하신 후 단군조는 물론이고 그 뒤를 계승한 역대의 모든 나라들이 다 단군의 건국위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월일을 택하여 성대한 의식을 거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역대로 그 기념의 명칭과 의식과 그 월일의 차이는 불문하나, 단군을 건국시조라 하여 그를 불망함이 건국을 기념함으로 생각함은역대의 공통된 정신으로 볼 수 있으며…교조로 신봉하여 기념함도 사실이었습니다. 명칭으로 말하면 삼한의 천군제라던지 부여의 영고회ㆍ예의 무천회ㆍ기씨(箕氏)의 보본제ㆍ고구려의 동맹회ㆍ신라의 태백산사(太白山祠)ㆍ백제의 사중제(四仲祭)ㆍ발해의 단계축(壇戒祝)ㆍ요(遼)의 군수제(君樹祭)ㆍ금(金)의 장백산책(長白山柵)ㆍ고려의 삼성사제(三聖祠祭)ㆍ조선의 숭령전제(崇靈殿祭) 등이 이명동체의 기념이 올시다. 의식으로 말하면 삼한, 부여, 예, 고구려 등 모든 나라에서는 전국의 공동거행으로 삼한은 대표자를 선출하여 국읍(國邑)에 제(祭)하고 그 남아 세 나라는 민중이 회집영축(會集頒祝)하였으며, 기씨(箕氏)ㆍ신라ㆍ발해ㆍ요금(遼金)ㆍ고려ㆍ조선 등 모든 나라는 국군(國君)이 친제(親祭)하거나 혹 강향대제(降香代祭)하였습니다. "
참고자료
대종교중광60년사, 160쪽.
정인보, 「단군개천과 상월」, 『담원 정인보전집(2)』, 362~363쪽, 연세대출판부, 1983.
김두봉, 「개천절 역(歷)」, 『독립신문』, 1922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