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와 TV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끊임없는 탐식(먹방)과 쾌락, 소음 그리고 스포츠가 주는 거대한 집단적 열광이다.
클래식 거장, 대형 가수의 무대나 스포츠 경기장에 모여 환호하는 대중의 풍경은 오늘날 '영문 안(Inside the Camp)'이 선사하는 가장 완벽한 평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집트 참전에 따른 중동발 3차 세계대전의 위기와 핵전쟁의 공포를 부르짖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종교 지도자들과 세대주의자들은 다시금 다니엘서의 지도를 펼쳐 들고 "누가 북방 왕이고 누가 남방 왕인가", "어느 세력이 적그리스도인가"를 다투며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세속적 이념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쾌락에 빠진 대중의 열광과 전쟁을 부르짖는 종교적 공포 마케팅. 전혀 달라 보이는 이 두 풍경은 사실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1. ‘영문 안’의 두 가지 얼굴: 쾌락과 공포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노아의 때"와 "롯의 때"의 핵심은 사회가 유독 잔혹했다거나 악마적 의식이 횡행했다는 데 있지 않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누가복음 17:26~28)
TV 속의 탐식과 놀이
세상이 끝으로 달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망의 성벽 안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마비된 ‘영문 안의 무감각’이다.
중동전과 3차 대전을 부르짖는 소리
짐승 세력들의 파워게임에 장단을 맞추며, 세속 권력 중 어느 편이 선(善)인지를 편 가르기 하는 ‘영문 안의 헛된 신학 놀음’이다.
한쪽은 쾌락에 취해 심판을 잊었고, 다른 한쪽은 세상 짐승들의 전쟁에 몰두하여 정작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잊었다.
즉 두 부류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의 몸인 '옛 뱀' 마귀 사탄과, '일곱 머리 열 뿔 짐승' 하의 세계관 속에 갇혀 있기는 매한가지다.
2. 전쟁의 소문 속에서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곳
중동에서 총성이 울리고 제국들이 충돌할 때,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은 "어느 강대국이 이길 것인가"나 "어떤 정치 체제가 적그리스도인가"를 분석하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서와 묵시록이 말세의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보여주는 진짜 이유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 제국(짐승)의 거대함에 압도되거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말고 "짐승의 제국은 결국 망하며, 인자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북방 왕이든 남방 왕이든, 중동의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게 만드는 거대 권력들은 모두 사탄의 하수인일 뿐이다. 그 짐승들의 싸움에 손가락질하며 정치적·이념적 단죄를 내리는 것으로는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3. 결론: 영문 밖에서 방주를 짓는 자
TV 화면 속 탐식과 음악, 스포츠의 열광에 마비되지도 않고, 중동전의 종말론적 공포에 조종당하지도 않는 제3의 길, 그것이 바로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믿음'이다.
세상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때 산꼭대기에서 조롱을 받으며 방주를 지었던 노아처럼,
세상 제국들이 주권 싸움을 벌일 때 독자 이삭을 바치며 부활의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아브라함처럼,
오늘을 사는 참된 성도는 자신이 서 있는 일상의 자리에서 '자기 십자가'라는 방주를 지어야 한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마땅히 조심하여 방탕함과 술 취함과 세상 걱정에 마음이 눌리지 말고 그날이 갑자기 그물같이 너희에게 임함을 면하라 반드시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날이 이렇게 임하리니" (눅 21:33-35)
TV의 환락에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도, 종말의 공포와 세속의 정치 이념 싸움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모두 '영문 안의 덫'이다.
난리와 소문이 무성할수록, 헛된 종교적 이분법을 털어내고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그 낮고 치욕스러운 ‘영문 밖’으로 나아가 조용히 순종과 사랑의 씨앗을 심는 자.
그 사람이야말로 노아의 때에 방주의 문을 열고 들어갈 진정한 의인(義人)이다.
"대제사장이 속죄하기 위하여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는 그 피의 짐승 몸뚱이는 영문 밖에서 불사르나니 그런고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갈지어다" (히 1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