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법 : 전성욱교무님
>타이핑 : 문혜은
>주제 : 염치 가지는 법
원기100년 8월9일 일요법회설법 - 염치 가지는 법 - 전성욱교무님.hwp
반갑습니다.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여름이 없는 곳이 그립습니다. 보산님께서는 청년들과 여름 훈련을 나고 계십니다.
염치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 된다 하는데요, 우리 교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예 아닌 경계를 당하여 양심상 부끄러운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하며> 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아닌 경계를 당하여> 라고 합니다. 양심상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합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안나면 염치가 없는 것이지요. 청렴을 지키지 않는 것을 파렴치다 라고 하지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남이 볼 때는 파렴치한 것 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으로 나오냐 안나오냐가 기준입니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있으나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보고 염치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염치가 없을까요? 예전에는 염치에 대해서 알고 있어도 좋은게 좋은거지 하거나 욕심 때문에 염치가 없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몰라서 염치가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상황이 예에 맞는 것인지를 몰라서 염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앞으로 더욱 그럴 듯 싶습니다.
욕심이 정신을 다 덮어버리면 염치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욕심이 있는데 그 마음이 계속 솟아나면 예의와 염치가 없이 그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예의를 무시하고 염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욕심이 있으면 계속 염치 없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스승이나 동지가 보고 있거나 마음에 교법이 들어오면 염치를 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모습은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양심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시대가 지날수록 염치가 없어지는 걸까요?
우리 아이들도 보면 어른과 함께 자라지 않아서 그런지 염치가 없습니다. 염치에 대해서 누가 잘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학생들이나 청년들에게 염치를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가르쳐주어도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었다>라거나 <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대종사님께서도 그래서 세상이 점점 돈의 병이나 원망병에 걸려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염치가 없어지니까 자기 잘못은 못보고 내가 은혜 준 것만 보고 자기를 보지 않는 모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도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염치없는 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제대로 밟아가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염치가 없어지면 거의 축생과 같습니다.
교법으로 다 무장을 해서 염치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남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남이 염치 없는 짓을 하면 그렇게 밉지요. 결국은 답은 중도밖에는 없습니다. 내 스스로는 내가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게 없는지 살피고 다른 사람은 모르면 알려주고 알고도 그러면 내가 도울일이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 불보살의 마음입니다.
구체적으로 [염치 가지는 법]에 대해서 예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집어볼까 합니다.
열네 가지를 하나하나 간단히 살펴보고 이 주제로 회화 때도 같이 이야기 나누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염치 가지는 법 ■
내 물건이 아닌 바에는 어떠한 물건이라도 의 아닌 욕심을 내지 말 것이요.
예전에는 식당이나 어디에 가서 예쁜 컵이나 포크를 보면 가방에 챙기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른들이 많이 그러셨었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이쁜 것을 구하냐면서 욕심내고 가지고 와버리십니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셔서 하지 말라고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게 죄처럼 여겨지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은 풍요로워져서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비슷한 것들을 잘 구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러지 못해서 그런 일이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주머니에 못넣고 여자분들이 가방에 잘 넣습니다. 집이나 교당에서도 흔히 있는 일인데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어머 이게 뭐야?) 하면서 말하면서 이미 먹고 있습니다. 묻지도 않지요. 예 아닌 행동을 하면 예 아닌 일이 돌아옵니다 내 물건이 아닌데 왜 욕심을 냅니까? 작건 크건 욕심을 내면 안됩니다.
정당치 못한 부귀에는 마음을 뺏기지 말 것이요
정당치 못한 부귀는 잠깐 내 앞에 가져다 두어도 결국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또 쉽게 나가게 되있습니다. 부정당하게 취하려다 보면 염치를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 마음부터 정당하지 않은 거다 싶으면 아예 쳐다보지를 않아야 합니다. 정당한가 아닌가 그걸 표준 잡아서 만약 정당하지 않으면 쳐다 보지도 마십시오.
일단 마음을 내서 계속 쳐다보면 점점 자기 자신을 합리화 시키게 됩니다. 물건 뿐 아니라, 일에 대한 공에 대해서도 내 공이 아닌데 내 것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정당치 못한 것에 마음을 뺴앗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당한 연고 없이 남에게 의뢰하지 말 것이요
이 의뢰 생활도 처음에는 염치가 있어서 <정말 미안한데 한번만 도와줘> 합니다. 그 다음엔 < 미안한데 한번만 도와줘>가 되고 나중엔 그냥 <한번만 도와줘>가 됩니다.
그러나 <왜 안해줘>가 되고 <니가 나한테 이럴수 있어>까지 됩니다.
한번 두 번이 계속을 낳습니다. 염치인지 의뢰인지 나중에는 알지도 못하게 됩니다.
남의 은혜를 받았거든 반드시 보은할 생각을 가질 것이요.
염치있는 사람은 받은 것을 반드시 갚습니다 . 어떤 분들은 갚으려 할 때, 뭐 이렇게 작은걸 신경쓰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갚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알아서 갚으면 은혜가 되는데 억지로 갚으면 해가 됩니다.
교화단에서도 내가 자주 얻어먹는 편이다, 내가 사본적이 없다 그러면 작은 것이라도 한번씩 마음을 내셔야 합니다. 보산님이 가끔 이야기하시는 예가 있습니다. 한 청년이 교당 근처에 살면서 교당에서 계속 밥을 먹고 누가 뭐 사오면 그것도 계속 먹고 그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거의 1년이 다 되어도 한 번도 안 사오더랩니다. 교무님 보시기에 이 사람은 참 복이 없겠다 싶어서 한번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청년이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아서 불러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공심있는 청년이 되어서 잘 사오고 잘 베푸는 청년이 되었다 합니다. 이렇게 모르면 알려주면 됩니다.
남이 대우를 하거든 반드시 겸양하며, 더 과분한 대우를 요구하지 말 것이요
대우를 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과하게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긴 있습니다. 교도님중에도 몸둘바를 모르게 칭찬을 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처럼 하면 염치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우를 해주면 <사실은 내가 전에는 이랬었다> 하면서 더 많은 상을 내고 대우를 바라는 경우도 생깁니다.
인도품54장에도 나옵니다.
부호 한 사람이 가뭄이 들었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쭉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서 비를 하나 세워주었는데 이 비가 너무 작아서 그 부호가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너무 작고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상을 냅니다. 그래서 자기가 새로 멋지게 하나 세웁니다. 마을의 인심은 결국 욕하는 마음이 되었을 테지요. 사람들이 그만하게 세워주었으면 그만큼 한겁니다. 대중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크게 하면 결국 해가 됩니다.
남의 잘못을 찾는 마음으로 나의 잘못을 먼저 찾을 것이요
남의 잘못을 찾을 때는 열심히 세밀히 찾는데 내 잘못을 찾을 때는 최대한 감추어서 안드러 나게 할려고 하죠 . 내 잘못을 감추려고 하다보면 갈수록 염치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창피하겠지요. 그건 당연한 것인데 그걸 면하려고 염치없이 계속 뭔가를 갖다 붙여서 더 큰 죄악이 되고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면 참 작은 일인데 자꾸 감추고 감추다 보니 정말 챙피한 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교당 봉고차를 여러 명이 운전을 합니다. 그러면 봉고차에 기스가 나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알았으면 바로 차 긁었다고 이야기 하면 됩니다. 바로 이야기하면 작은 일인데 이게 놔두어서 녹이 슬어 발견이 되면 일이 커지게 되는 겁니다. 잘못은 초반에 빨리 시인 할 수록 작은 일이 됩니다. 갈수록 큰 일이 됩니다. 그리고 언제 알까 불안하잖아요 감추려고 하면.. .
공사를 막론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쳤거든 비록 고의가 아닐지라도 미안한 마음을 잊지 말것이며,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에 대한 보상을 강구할 것이요
잘못을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만은 표현이 안됩니다.
교당에서 아침마다 공사(회의)를 합니다. 잘못한 일이 나와서 지적을 받게 되면 바로 <죄송합니다>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가만히 있는가 물으면 자기는 참회를 하느라 그런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는 사람에게 전달이 안되고 오히려 기분 나빠있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더 오해만 사고 말한 사람에게 <괜히 지적했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려 했는데 저렇게 됐네요.> 하고 말을 해야 기운이 통하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한거 알고 있고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어요, 그런데 왜 몰라주나요> 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으면 그걸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개인적인 일은 물론 공적이 일도 사과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공적인 일에서 대중이 해를 보았거나 손해를 본 것을 <내가 공적인 일을 하다가 그런 것을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적인 일도 반드시 잘못한 것은 미안하다고 해야 합니다.
공사를 했던 사사를 했던 잘못은 미안하다고 해야 합니다. 성과와 사과를 구분을 해야합니다. 공으로 다 덮으려는 사람을 무뢰한 이라고 하지요. 아무리 공적으로 잘 해도 사적으로 피해를 주었다면 반드시 인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상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물질은 물질로 마음은 마음으로 보상을 해야 합니다.
누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내 마음이 바로 풀어지십니까? 정말루요? 그게 잘 안됩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 달랠 때, 말만 하면 안달래져도 사탕하나 주면서 하면 달래집니다. 그게 사람의 인정입니다. 어른이라도 말로만 하지 마시고 반드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보상을 강구해야 합니다.
비록 땅에 흘린 것이라도 남의 것을 사사로이 취하지 말 것이요
복도를 지나가는 데 아무도 없는데 오만원 짜리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누가 가져가도 가져갈 건데 이왕이면 내가> 하면서 가져갈 마음이 납니다. 대종사님께서 <길에 흘린 물건을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물건을 잃어버린 자의 아픈 마음이 같이 오는 것이니 가져오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오게 되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갚아야 합니다. 몇 가지 더해서 더 갚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이 보지 않으면 <이왕이면 내가 >하는 마음이 납니다.
이걸 공사에 쓰면 되지 않을 싶지요? 가지고 오지 마세요. 그 아픈 마음을 가져다가 공사에 쓴들 ..복이 크지 않습니다.
모든 말이나 행동을 거짓으로 꾸미지 말 것이요.
뻔히 들어날 거짓말을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한번 거짓 두 번 거짓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염치 없는 사람이 되어서 속이게 됩니다.
주위 사람의 생활이 궁핍한 가운데에서 혼자 호화한 생활을 자랑하지 말 것이요.
다 굶고 있는데 혼자 빵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해보십시오. 돌 맞습니다. 나누어 먹든가 혼자 조용히 먹어야죠. 이런 분들은 어디가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내거 내가 먹는데 왜 뭐라고 해?> 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학원 시절에 동기 형 한분이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순수한 분이십니다. 먹을게 있으면 혼자 먹는게 당연한 사람입니다. 한번 먹어보라고도 안하고 그냥 혼자 먹습니다. 혼자 먹어야지 하는 그런 골려먹고 싶은 마음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자기거라 자기가 먹는다 딱 그 마음만 있는 겁니다. 여러명이 있을 때 염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대중의 경제가 위험한 기회를 이용하여 혼자 과도한 이익을 도모하지 말 것이요
기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전 농경사회에서 지주들이 이런 도모를 많이 했습니다. 가뭄이 나면 땅 뺏을 찬스라고 생각하고 쌀로 고리대를 해서 못 갚으면 땅을 뻇었습니다. 남의 아픔을 이용해서 돈을 벌면 끝이 좋지 않습니다. 남이 위험한 기회를 당했을 때, 그때 베풀어버리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용하는 사람이 되면 참 염치가 없는 사람인겁니다.
대중을 지도하는 책임자로써 혼자 권리를 남용하여 사리를 도모하지 말 것이요.
뭐 장이라도 하나 맡으면 그걸로 뭐든 해먹으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장이 되면 청소당번을 정하는 권한이 생깁니다. 그러면 초코파이라도 하나 받으면서 청소당번을 맘대로 짤 수 있습니다. 내가 장을 맡았을 때, 공심으로 큰 복을 지어버리면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를 취해버리면 공은 다 도망가고 사적인 취득은 나중에 다 들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요즘 청문회 하는거 보십시오. 예전에 조그마하게 뇌물 받았던 것 까지 모두 나옵니다. 그것만 아니면 능력있고 좋은 사람인데 그것이 발목을 잡아서 결국 큰일을 못합니다. 요즘은 큰 일을 하려면 내가 유명해 지기 전부터 잘 살아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작은 일도 다 대중앞에 드러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대중이나 이웃이 어떠한 재난을 당한 때에는 비록 책임자가 아닐지라도 무관심하지 말 것이며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 도울 바를 연구하며, 개인의 유흥 같은 것은 삼갈 것이요
세월호, 지진, 이런 사건 후에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염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놀러가는 것도 자제를 하고, 이래저래 유흥도 자제를 하면서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염치를 느꼈습니다.
비록 내가 책임자가 아니어도 말로만 동포가 아니라 실제로 도울 바를 연구를 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생을 통하여 자신의 공중에 대한 공헌을 자주 반성하여, 그 실적이 부족하거든 늘 새로운 정신으로 정진하여야 할 것이니라.
내가 다 돌아보았을 때, 공사에 얼마나 합력을 했느냐.... 일생 나 하나 , 내 가족 잘 살았으니 됐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면 아직 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종의무를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개인적이나 가정적으로 보면 아주 잘 사는 사람이지만 더 크게 넓혀서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염치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갈수록 염치없는 사람이 되는 길과는 멀어지고, 내가 대접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어디가든 대접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결국 교법을 아는 사람이고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의 중도를 아는 사람이고 또 공이 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아는 사람입니다. 도도 알고 공도 아는데 예의를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의는 그 사람의 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행동방식이 예의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합니다. 이 예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고 모르면 알려주어야 합니다. 염치 있는 사람, 염치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염치가 안좋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염치 있는 사람이다 하는 표현에는 저 사람 참 도가 있고 좋다 하는 뜻으로 쓰입니다. 염치있는 사람이 되자는 뜻으로 예전에 있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단회때도 쭉 한번 보시면서 염치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