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화와 수묵담채화,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수묵화
1.특징
1)먹색의 변화에 의해 표현되는 단색화,정신적인면이 강조된다.
2)농담의 변화와 필력에따른 먹선의 변화,여백의 미를 살려 표현하는 그림이다.
2.삼묵법-먹색의 진한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1)농묵;먹의 양이 많고 진한 것
2)중묵;농묵과 담묵의 중간 먹색
3)담묵;물을 많이 섞어 먹색의 농도가 흐린 것
▶ 수묵화의 표현 기법
1)구륵법;대상의 윤곽선을 그린 후에 채색한다.
2)몰골법;한 붓에 먹의 농담이나 채색으로 그린다.
3)백묘법;수묵의 선으로만 그리며,일종의 선묘화이다.
4)갈필법;물기를 적게 하여 거칠게 표현한다.
5)운염법;번지는 효과를 이용하여 표현한다.
[포마 노경상의 수묵화(일지병풍)]
○ 수묵 담채화
1.특징
먹색의 농담효과를 살린 수묵화에 엷게 채색한 그림으로 ,채색보다는 수묵 위주로 그려지며 남종화에서 많이 사용한다.
2.표현방법
1)수묵으로 그린 위에 엷게 채색하는 방법과 먼저 엷게 채색을 한 후에 수묵으로 그려 먹색이 채색위에 번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
2)수묵이 번지지 않고 수묵의 선이 뚜렷한 골격을 갖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박순철 작 수묵담채화]
○ 진채화(후채화)
1.특징
1)채색을 두텁고 진하게 칠하는 채색 위주의 그림으로,먹은 채색의 보조 역할을 하게 된다.
2)북종화에서 많이 사용되며 ,먹은 채색 그림의 윤곽 등을 표시하는데 쓰인다.
[작가미상의 진채화]
○ 소재에 따른 분류
1)산수화- 산과 들, 계곡 등의 경치를 그린 그림
2)인물화- 사람을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
3)화조화- 꽃과 새를 소재로 한 그림
4)영모도- 새나 짐승을 소재로 한 그림
5)초충도-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
6)어해화- 물고기,게 등을 그린 그림
7)기명 절지화- 그릇과 나뭇가지 등을 그린 그림
8)풍속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소재로 한 그림
○ 수묵화의 재료와 용구
.종이(화선지) 번짐이 잘 되는것이 좋다.매끄러운 쪽이 그림그리는 면이다.
.붓(모필) 털이 빠지지 않아야 되며,끝이 모아지는 것이 좋으며 부드러운 표현을 할 수 있다.
.먹 입자가 고우며 향기가 좋고,먹물 위에 기름이 뜨는 것이 좋다.
.벼루 먹의 입자 가 고르게 갈리는 것이 좋으며 물을 흡수하지 않아야 한다.
.문진(서진) 돌,나무,금속 등으로 만들며 종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누르는 용구.
.연적 물을 담기위한 그릇으로,꽃,거북이,복숭아 등 여러 가지모양의 도자기가 있다.
.기타 접시,담요(모전),붓말이 등
○ 수묵화 [水墨畵]
▶ 채색을 쓰지 않고 먹만으로 그리는 동양화 고유의 회화(繪畵)양식
수묵화는 문인화(文人畵)의 대종(大宗)을 이루며 기법에 따라 크게 농묵(濃墨)·담묵(淡墨)·발묵(潑墨)·파묵(破墨) 등으로 나뉜다. 수묵화는 특히 현란한 채색을 피하고 먹의 정신성(精神性)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양식으로, 예로부터 많은 문인과 선비들이 즐겨 그렸다.
동양인의 미의식과 사의(寫意)를 반영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문인과 선비는 교양과 여기(餘技)의 한 방편으로 수묵화를 자주 그렸으며, 화원(畵院)에서의 그림과 같은 본격적이고 직업적인 회화로서보다는 시(詩)·서(書)를 일치 시킨다.
또는 조화시켜 문기(文氣) 짙은 화면을 이루어 내기 위하여 수묵화를 자주 그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문인화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시백(詩伯) 왕유(王維) 같은 이는 그의 《화학비결(畵學訣)》이라는 화론서(畵論書)에서 '화도지중 수묵 최위상(畵道之中 水墨最爲上)'이라 하여 이론적으로 수묵화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먹은 본시 단일색이지만 고래로 중국인들은 먹색이 모든 색을 다 함유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질료적(質料的) 성격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정신성이 강한 재료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먹만을 써서 그리는 수묵화는 채색화가 지닐 수 없는 담담한 맛과 운치를 구현하기에 좋은 양식이었던 것이다
수묵화의 기법은 크게 발묵·파묵·농묵·담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발묵기법은 주로 종이 위에 먹이 번져 퍼지는 효과를 얻는 방법으로 농묵이 담묵이나 물기를 따라 삼투압현상을 일으켜 번져가는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파묵기법은 담묵으로 윤곽이나 용적 밑을 일차적으로 칠하고 그 뒤에 차차 농묵으로 덮어 습하듯이 하며 왕왕 초묵(焦墨)으로 그 윤곽선을 깨뜨리거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기법이다.
농묵기법은 먹을 진하게 갈아서 그리는 기법이며 담묵기법은 보다 흐리고 습하게 운필하는 기법으로서 물기와 먹이 번져 어울리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법이다. 이 외에 먹을 농담으로 순차적으로 쌓아 가듯이 그리는 적묵법(積墨法) 등도 있다
수묵화의 발생은 당(唐)나라 때부터이며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와 더불어 발달하였다. 수묵화는 종래의 선묘(線描)에 의한 윤곽 위주로 그리는 관습을 깨고 먹의 농담 변화와 효과에 의해 질량과 암영을 나타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특히 왕유(王維)에 의해 시작된 사의적(寫意的)이고 시취적(詩趣的)인 남종문인화는 거의 수묵 위주이므로 한층 더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원래 남종화는 중국 남방의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양쯔강[揚子江] 유역에서 발생한 문인(文人)·고사(高士)의 그림이다.
그렇지만 점차 지역적 의미를 떠나서, 이사훈(李思訓)류의 사실적(寫實的)이고 장식적이며 유교의 현실주의 및 불교의 북종(北宗)과 그 원류를 같이 하는 그림양식과 대칭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당대(唐代)의 수묵화는 한마디로 조방일격(粗放逸格)한 묘사정신으로 구축된 것이었다.
그리고 후에 중국 수묵화의 향방(向方)을 어느 정도 결정하였는데, 주로 대상의 간명직절(簡明直截)한 표현에 주안을 두고 있다. 이런 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는 중당(中唐) 때의 왕묵(王墨:王默)이다. 그의 그림은 한 마디로 수묵의 정신을 극대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 등이 전하는 그의 화풍은 형식주의를 벗어나 탈속(脫俗)의 경지를 구가하는 것으로, 제작태도 또한 표일분방(飄逸奔放)하였다. 그리하여 중당 후반 강남의 항용(項容) 천태처사(天台處士) 고황(顧況) 등에 의해 수묵화의 화풍이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
이 발흥기에 강남 오군(吳郡) 등지에서는 독필(禿筆:몽당붓)로 양손에 두 붓을 쥐고 그리는 기묘한 묘사법이 나왔다. 만당(晩唐)에 이르면 왕묵이나 항용(項容)류의 다소 광태적(狂態的)인 수묵화는 점차 온건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그런데 오대(五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이르면서 소동파(蘇東坡) 등에 의해 문인화론의 이론적 성립을 보게 되면서 동양적인 독특한 회화 표현양식으로서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또한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川高致)》 등의 화론(畵論)에 의해 수묵산수화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으면서 이·곽파(李郭派) 등의 화풍이 유행하였고, 미불(米芾)·미우인(米友仁) 부자(父子) 등에 의해 수묵산수의 새로운 양식이 싹텄다.
그 후 원(元)·명(明)·청(淸)나라 때에 이르면서 왕유 이래 지금까지 수묵화는 시·서·화 일치(詩書畵一致)사상과 결합되면서 많은 걸출한 화가를 배출시켰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종문인화의 수용과정을 통해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수묵화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체계적인 파악이 불가능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실용적 기능을 지닌 작품들뿐만 아니라 여기와 감상대상이 되는 작품 등이 다수 제작되었다.
전문으로 그림의 일을 관장하던 도화원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왕공사대부(王公士大夫)들이 여기로 묵매(墨梅)·묵죽(墨竹)·묵란(墨蘭) 등을 그렸다. 그리하여 당시 수묵 위주의 문인화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화원화가보다도 그 수가 많았다.
하여 이령(李寧)과 그의 스승 이준이(李俊異), 《해동기로도(海東耆老圖)》로 유명한 이전(李佺)과 그의 아버지 이존부(李存夫), 물고기 그림에 능했던 정득공(鄭得恭), 매화를 잘 그린 정지상(鄭知常)과 차원부(車原), 묵죽을 잘 그린 정서(鄭敍)·이인로(李仁老)·이암(李喦) 등이 있다.
초기에는 다양한 중국 화풍들이 전래되었는데 곽희파 화풍(郭熙派畵風), 마하파 화풍(馬夏派畵風), 명(明)나라의 원체화풍(院體畵風) 및 절파화풍(浙派畵風) 등이 고루 선보이다가 한국적 화풍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중기 이래 성하였던 절파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에 기반을 둔 문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면서 중국의 산세와 이상미(理想美) 위주가 아닌 한국에 실재하는 산천(山川)을 한국적 화풍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대두하였다.
하여 서정적이면서 소박한 정감의 수묵화가 풍미하였고, 인물화분야에서도 풍속화가 많이 나타나 한국 화풍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수묵화가라고는 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인물·산수·동물 및 대나무·매화·포도 등의 그림에 고루 뛰어났던 당대의 화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와 김두량(金斗樑) 등이다.
《묘작도(猫雀圖)》로 유명한 변상벽(卞相壁)과 김홍도(金弘道)·강세황(姜世晃)·겸재(謙齋) 정선(鄭歚) ·최북(崔北)·김석신(金碩臣)·심사정(沈師正)·이인문(李寅文) 등의 화가들이 모두 수묵화에 능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남종화풍은 더욱 유행되어 황공망(黃公望)·오진(吳鎭)·예찬(倪瓚)·왕몽(王蒙) 등 오파(吳派) 화가들과 청대(淸代)의 정통파인 사왕오운(四王吳惲:王時敏·王鑑·王翬 ·王原祁·吳歷·惲壽平) 등의 화풍이 잘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등에는 고아(古雅) 간담(簡淡)한 문기(文氣)가 먹의 다양한 변화에 의해 잘 나타나 있으며 그의 수묵화는 한결같이 청일한 느낌을 준다.
또한 강세황의 영향을 받은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18세기 말~19세기 전반에 활약하여 참신한 화풍의 대나무 그림을 남겼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의 학계와 서화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정희(金正喜)와 그의 일파의 등장으로 남종화의 본격적인 유행과 토착화가 이루어지면서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문기 짙은 묵란과 산수그림이 성하게 되었으며 담담하고 격조 높은 수묵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한편 김정희의 문하에 있었던 조희룡(趙熙龍)은 묵죽도(墨竹圖)에서 높은 경지의 독자적 세계를 개척하였고 19세기에 한국 회화를 꽃피운 장승업(張承業)에 의해 호방 활달한 기량이 발휘되면서 파격적이고도 개성 있는 화풍이 선보였다.
○ 수묵담채화
1) 뜻
먹색의 농담 효과를 살린 수묵화에 담담하고 엷은 채색의 느낌을 가미한 한국화(동양화)로 채색보다 수묵 위주로 그려진다.
2) 수묵 채색화
수묵 담채화에 비하여 좀더 짙게 채색이 가해지는 그림이나 수묵담채화와 엄격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3) 진채화(농채화)
먹의 사용을 줄이고 채색을 두텁고 진하게 칠하는 그림으로 사실적인 북화풍의 기법이다.
수묵화는 채색을 쓰지 않고 먹의 농담에 의해 그린 그림으로 묵화 또는 묵회라고도 합니다.
수묵화는 중국의 당나라 중엽부터 시작, 왕유를 시조로 하는 남종화에서 그려졌고, 주로 문인, 사대부들이 즐겨 그려 조선시대 문인화로 성행했습니다.
붓의 운필 속도에 따른 변화와 여백의 느낌 등이 강조된 그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수묵담채화는 전체적 분위기가 먹색을 위주로 그린 후, 그 위에 엷게 채색한 그림입니다. 명나라 때 동기창·막시룡·진계유 등으로부터 비롯된 남종화에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 간단히 요점정리를 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