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은 이성과 칠정이 사이좋게 성장할 수 있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이성(理性)과 기성(氣性)을 구분함으로써 이성을 키우기 위해 칠정을 억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노하지마라,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등(理貴氣賤). 퇴계는 그 방법으로 거경(居敬)과 신독(愼獨)을 택했으니, 제자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공경의 독서이며 혼자일 때는 흐트러짐을 경계하는 신독의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기(氣)는 무조건 멀리하고 이(理)만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理)로서 기(氣)를 다스려 모든 사물을 냉철하게 운영해 나아가야한다는 조화의 원리를 극력 강조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사에 있어서도 감성(感性)을 무시하고 이성(理性)일변도로 살아간다면 인간생활은 인정도 애정도 없는 삭막하고 냉혹해질
것이며, 그 반대로 이성을 전연 무시한채 감성(感性)만으로 살아간다면 도덕 윤리가 피폐하여 인간생활이 동물생활로 전락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이(理)와 기(氣)의 조화를 통해서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理) 자의 뜻에 대하여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배를 만들어 물 위를 다니고 수레를 만들어 땅 위를 다닌다"는 말을 자세히 생각해 본다면 나머지는 모두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배는 당연히 물 위를 가야 하며, 수레는 당연히 땅 위를 가야 한다. 이것이 이(理)이다.
배이면서 땅 위를 가고 수레이면서 물 위를 간다면 그것은 이(理)가 아니다. 임금은 어질어야 하며, 신하는 공경하여야 하며,
아비는 사랑하여야 하며, 자식은 효도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理)이다.
임금이면서 어질지 않으며, 신하이면서 공경하지 않으며, 아비이면서 사랑하지 않으며, 자식이면서 효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理)가 아니다. 천하에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이 이(理)이며, 당연히 행해서는 안되는 것이 비리(非理)이다.
이런 방식으로 추리해 나가면 이(理)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이(理)는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며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능히 참됨을 쌓고 힘쓰기가 더욱 어려운 것”바로 그것이라고 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사물에는 대소(大小)의 차이가 있지만, 이(理)에는 대소(大小)라는 개념이 없다.
아무리 밖으로 나가 보아도, 그 바깥이 없는 것[無外]이 이(理)이며, 아무리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그 안이 없는 것[無內]이 이(理)이다. 방향도 없고 장소도 없고 형체도 없으면서 어디에서나 충족하여, 거기마다 하나씩 태극을 갖추고 있어서 남거나 모자라는 일을 볼 수
없다 하였다. 제자가 묻기를 "생각이 복잡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선생이 말씀하기를 "사람은 이(理)와 기(氣)가 합하여 마음(心)이 되었다. 그래서 이(理)가 주재(主宰)가 되어 기(氣)를 거느리면,
마음이 고요하여지고 생각이 통일되어 자연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지만, 이(理)가 주재 노릇을 못하고 기 (氣)한테 눌리면,
마음이 흔들리어 어지러워져서 그 끝이 없다. 그리하여 온갖 못된 생각들이 자꾸만 몰려들어서, 마치 무자위가 빙글빙글 돌듯이 잠시도 가만히 붙어있지 못하는 것이다."하였다.
또 말씀하기를 "사람이란 잡념이 없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잡념이 끼어들 틈을 주지않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단지 공경[敬]하는 일에 불과하다.
공경하면 곧 마음이 통일되고, 마음이 통일되면 잡념은 저절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첫댓글{무-자위 [명사]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기계. <동의어> 물푸개. 수룡. 수차(水車)②. 양수기(揚水機)①. 용골차. 즉통. }.....위 글에서 무자위는 물레방아인 듯.....[물레-방아 :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물레바퀴를 돌려 곡식을 찧는 방아. <동의어> 수차(水車)]
첫댓글 {무-자위 [명사]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기계. <동의어> 물푸개. 수룡. 수차(水車)②. 양수기(揚水機)①. 용골차. 즉통. }.....위 글에서 무자위는 물레방아인 듯.....[물레-방아 :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물레바퀴를 돌려 곡식을 찧는 방아. <동의어> 수차(水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