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1990년대 말부터 쓸 만한 ‘수소전기차(Fuel-Cell Electric Vehicle, 이후 FCEV)’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그 중 일부를 시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15년 후면 FCEV가 대중화될 거예요.” 당시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FCEV가 흔한가? 글쎄, 아직 멀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친환경차인 ‘배터리 전기차(Battery Electric Vehicle, 이후 EV)’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EV가 단거리 도심 이동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력 이동수단으로 쓰기엔 주행 가능 거리가 짧았고, 충전도 하품이 나올 만큼 느렸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EV는 빠르게 늘고 있다.
친환경차의 미래를 두 전기차의 경쟁 구도로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배터리에 저장한 전기를 꺼내 쓰는 EV와 수소를 전기로 바꿔 쓰는 FCEV다. 지금 선두를 장악한 주역은 EV다. 그럼 FCEV에게 희망은 없는 걸까?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례가 좋은 예다. 그들은 이미 뛰어난 성능의 EV 라인업을 구축했다. 하지만 FCEV로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우월한 지위 또한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EV와 FCEV 사이의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애초 이 둘이 경쟁구도였을까 싶기도 하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우리는 EV와 FCEV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현대차그룹은 양쪽 진영 모두에 열정적이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과 가치를 가진 EV를 판매 중이며 2021년까지 주요 시장에서 더 많은 신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시에 넥쏘처럼 놀라운 FCEV도 판매 중이다.
지난 수십 년간 FCEV의 개발 과정은 비교적 예측이 쉬웠다. 기본 원리도 실용적이었다. 관건은 연료전지와 수소탱크의 원가를 줄이는데 있었다. 현대차는 “이제 2개의 저장탱크(넥쏘는 3개다)로 최대 500km를 주행하는 FCEV의 ‘비용균형점(Cost-Parity)’이 항속 거리가 같은 EV와 비슷해졌다”고 말한다. 이는 굉장한 진전을 의미한다.
여느 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동차의 대당 원가는 생산대수를 늘려야만 낮출 수 있다. FCEV 비용균형점은 연간 10만 대 규모다. 하지만 불행히도 FCEV는 아직 그만큼의 수요가 없다. 구매를 결정할 만큼의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상용차와 버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은 스위스의 H2 에너지와 FCEV 트럭 1,000대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트럭은 미리 정한 동선을 따라 달린다. 그리고 수소 펌프를 설치할 수 있는 창고에 주기적으로 들른다. 버스 또한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이미 전 세계의 많은 도시가 FCEV 버스를 사용하고 있다.
수송 분야에선 확실히 FCEV가 EV를 넘어선다. 트럭에 맞는 용량의 배터리보다 연료전지와 수소탱크를 합친 무게가 훨씬 가벼운 까닭이다. 이는 그만큼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 FCEV 트럭의 총 소유비용이 디젤 트럭과 같으려면 수소를 재생 에너지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는 그런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동선이 일정치 않은 승용차는 수소충전소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에너지 회사들은 수익성을 이유로 충전소 구축을 꺼리고 있다. 그야말로 교착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이 정부와의 협력체제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는 2022년까지 수소충전소 310개소를 세울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FCEV 생산을 연간 50만 대 규모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V의 개발 과정은 깜짝 놀랄 만큼 흥미롭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모두가 지금과 같은 대용량 배터리는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배터리가 나온다고 해도, 하염없이 긴 충전시간이 발목을 잡을 것 같았다. 그런데 2012년 테슬라 모델 S가 데뷔하며 이런 선입견은 산산조각 났다. 테슬라가 고전압 충전 인프라를, 일본이 ‘차데모(CHAdeMo, 급속 충전기 규격)’ 표준을 만든 직후였다.
이제 현대차 코나 EV와 기아차 니로 EV는 불과 한 시간 미만의 고전압 충전으로 장거리 여정에 나설 수 있다. 찻값은 같은 차체에 내연기관 엔진을 얹은 모델보다 비싸지만, 연료비를 포함한 운영비로 상쇄할 수 있다. 보다 고전압을 사용하는 충전기를 도입하고 배터리 냉각 시스템을 보완하면, 1분 충전에 15km를 더 주행할 수 있는 전기를 추가로 채울 수 있다. 게다가 그동안 배터리 가격은 하향세를 그려왔다. 아울러 더 빠른 충전과 저렴한 원가, 높은 에너지 밀도를 실현할 화학 업계의 희소식도 꾸준히 들려온다.
EV와 FCEV가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넉넉한 항속 거리와 짧은 충전 시간은 FCEV만의 장점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FCEV가 양산 및 시판을 준비하는 동안 EV가 상대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해 차이를 줄인 것이다. 그렇다면 FCEV는 정말 EV에 추월 당했을까? 만약 두 기술 모두 운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기술이 더 친환경적이고 합리적인지 살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FCEV의 에너지 효율은 EV보다 낮아요. 그래서 좋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간단한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맞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FCEV의 에너지 효율은 EV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수소 가스를 전기로 바꿔 차를 굴리는 FCEV보다 배터리에 채운 전기를 사용하는 EV가 더 손실이 적다.
하지만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수소는 충전소에서 천연가스를 추출한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가 나온다. 그런데 미국 ‘참여 과학자 모임(US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에 따르면, 이렇게 추출한 수소를 쓰는 FCEV와 천연가스를 태워 만든 전기로 달리는 EV는 1km 주행에서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 여러 지역이 재생 가능한 전력망으로 신속히 갈아타고 있다. 우리는 친환경 에너지를 최우선적으로 쓰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럴 경우 전기를 잡아먹는 EV가 계속 빛날 수 있을까?
우선 풍력과 태양열은 날씨 의존도가 높다. 수소에너지의 뚜렷한 장점 중 하나는 에너지원인 동시에 에너지 저장매체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발전 전력량이 충분한 경우 전기분해로 수소를 만들어 저장할 수 있다. 청정전력이 부족할 때 FCEV는 이 수소를 사용하면 되지만, EV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만든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EV의 제조공정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가령 배터리의 원료로 쓸 광물은 채굴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현재 EV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일조하고 있지만, 생산대수가 늘어날 경우, 제조공정에서 뿜는 이산화탄소가 주행에서 줄인 이산화탄소의 양을 넘어설 수도 있다. 또한, 배터리 셀 제조공정은 복잡하고 은밀하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은 누구도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 없다.
반면 FCEV 제조공정은 EV에 비해 탄소를 덜 배출한다. 또한, 차의 수명이 다했을 때 연료전지는 배터리보다 금속 요소로 재활용이 쉽다. 물론 이 부분은 폐차 때 배터리를 불규칙한 재생 에너지의 공급을 안정화하는 ‘그리드 스무딩(Grid smoothing)’에 사용할 경우 일정 부분 상쇄된다.
EV와 FCEV는 주행 시 이산화탄소와 더불어 유독가스 및 입자의 배출이 전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FCEV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연료전지로 공급할 공기를 거르는 필터를 갖춘 까닭이다. FCEV를 ‘달리는 공기 청정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즉 FCEV는 대기오염에 시달리는 도시에 조금 더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이동 수단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EV와 FCEV는 서로를 보완하며 상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FCEV는 산업용 및 상용차, EV는 개인용 자동차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주차장에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EV, 그렇지 않다면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에너지 사업자가 운영하는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는 FCEV를 고르면 된다.
수소경제로 가는 길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예상이 정말로 현실이 될 수 있을지, 그렇다면 그게 언제일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정부와 에너지 회사, 기술자가 모두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어느 지역에서 태양이나 바람 또는 파력을 통해 막대한 양의 친환경 전기를 얻어낸다고 상상해보자. 이 전력을 다른 먼 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망을 갖추는 비용은 굉장히 비싸다.
그래서 그 전력을 수소로 바꾸는 쪽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역시 수소를 나를 파이프라인이나 수송선이 필요하다. 또한 소중하고 제한된 자원인 담수를 전기분해에 사용하는 게 나쁜 생각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안은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해수를 전기분해에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거다.
EV와 FCEV 모두 제조비용, 환경비용, 광물자원 고갈, 인프라의 기술, 경제성 등 수많은 변수를 갖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부 재정정책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국가마다 에너지원에 따른 세금과 보조금 제도가 크게 차이 난다. 심지어 예측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 모든 불학실성과 변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오직 한 종류의 자동차에 인류의 미래를 맡기는 건 현명하지 않다. 이런 생각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린 EV와 FCEV 모두에 희망을 걸고,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결코 둘을 경쟁 구도에 두어서는 안 된다.
글. 폴 호렐(Paul Horrell)
30년째 자동차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나왔을 시절부터 전세계 거의 모든 주요 자동차를 시승했다. 자동차 엔지니어, 디자이너, 자동차 회사의 임원들의 인터뷰를 주로 진행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관련 기술 그리고 디자인 분야의 국제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자문 에디터, BBC 탑 기어 매거진
컨트리뷰터, CSMA Boundless
컨트리뷰터, The Road Rat
컨트리뷰터, GENROQ (일본)
컨트리뷰터, edmunds.com (미국)
심사위원, <올해의 차>
심사위원, <올해의 엔진>
심사위원, <미래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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