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외도(外道) / 신형호
완전 무장 해제다. 출입구에서 휴대폰과 신분증을 제출하고, 가방은 X-레이 검색대를 통과해야 소지할 수 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L 계장님을 따라 다음 철문을 향해 걸어간다. 보안카드와 안면인식을 해야 통과할 수 있는 철문을 세 군데나 지나면 비로소 강의실이 보인다.
퇴직을 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생각지도 않은 암 수술로 마음고생도 심했지만, 하고 싶은 일도 이것저것 맛보던 중이었다. 늦잠도 푹 자고 등산도 하고 도서관 문화강좌도 기웃거렸고, 악기 연주에도 빠졌다. 3년쯤 지났을까? 타성에 젖은 일상에 싫증이 날 무렵 우연히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람 있는 일을 소개 받았다. 교도소 수감자들과의 한글 교육 만남이다. 완전히 문맹자는 아니지만 읽고 쓰기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60-70대로 그 당시 두메산골에 살아 학교를 다니지 못했거나, 다녔더라도 공부와 담을 쌓았기에 배우지 못하고 삶의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늘어진 악기 줄 같은 날을 누리다가 수요일은 비상이다. 새벽 5시 40분 알람에 일어나 탱탱하게 하루의 줄을 조인다. 처음 시작할 땐 위치가 화원에 있었다. 그때는 교통이 좋았지만, 지금은 달성군 하빈면으로 옮겨 거리가 멀다. 내가 사는 시지와는 동쪽 끝과 서쪽 끝이다. 지하철을 타고 종점인 문양역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탄다. 가는데 2시간, 강의 마치고 돌아오는데 2시간 걸리기에 전체는 6시간 소요된다. 강의 시간은 2시간이지만 경주 정도 다녀오는 거리이다. 옮기고 나서 계속할까 말까 많이 망설이기도 했다.
수강자 실력은 읽기는 어느 정도 가능하나 쓰기는 바닥 수준이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글을 소리 나는대로 쓰기도 하고, 겹받침이 있는 말은 무척 어려워한다. “돈이나 좋은 물건은 남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가 있지만, 지식이나 공부는 남이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내 힘으로 노력해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지식이나 언어는 스스로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수업을 연다. 글을 몰라서 받은 불이익과 업신여김을 평생토록 겪고 살아왔기에 마음은 더 절실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금씩 진도를 나간다. 왜 글을 배워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기에, 수업시간 눈빛은 누구보다 초롱초롱하다. 문맹자를 위한 평생교육원 교재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진도를 나간다. 자존심이 강하고 눈치는 최고수들이다. 수감자 그들만의 법칙이 존재한다.
한 학기가 끝나면 간단한 다과회를 가진다. 짧은 대화 속에 애환 많은 사연도 접하게 되었다. “선생님, 저는 글을 꼭 배우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 학교를 가지 못했어요.” “우리 부모님은 공부보다 일만 시켰어요.” “산골에서 나무하고 밭일 한다고 시간만 때웠지요.” “너무 가난해서 어릴 적에 서울로 도망가서 생활하다가 글을 못 깨우쳤어요.” 강습자들마다 사연이 절절하다. 환갑을 지나 허연 머리를 한 아이들의 고자질 같다. 한국전쟁 전후에 태어난 분들이 아닌가. 그 시절은 문맹률도 높았고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하기 전이기에 산골의 삶은 무척 어려웠다. 글을 잘 몰랐고 어린 나이에 생업에 나섰기에 사람 대접도 받지 못했단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일에 연관되어 큰집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힌두교에는 ‘아쉬라마’라고 네 주기로 인생을 말한다. ‘학습기(學習基)’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첫 시기인 ‘학습기’를 잘못 보낸 사람들이다. 어린시절과 청년기인 이 시기는 부모의 보살핌과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시기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에 다음 단계인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가주기’도 원만하게 연결되지 못한 모양이다. 안타까움으로 차분히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야 할 사람도 있고,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은 죄목은 알 수 없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짠하다. 용서할 수 없이 지은 죄는 자신의 몫이지만 환경의 탓도 크다.
어제는 흘러갔고 내일은 또 다가온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야한다.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몇 가지라도 확실하게 가르치려고 온 정성을 쏟는다. 글공부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손으로 쓰면서 익히는 노하우를 누누이 강조한다. 우연히 접한 퇴소 후의 소망이 소박하다. 작은 섬 바닷가에서 낚시나 하며 살고 싶은 분도 있고, 편안하게 여행을 한번 하고 싶다는 꿈도 얘기한다.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이 짠하다. 꿈이다. 아름다운 내일에 대한 꿈이다. 더욱 배움이 절실하다. 그들에게 남은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성을 쏟는다. 열정이 강할수록 내 마음도 숙연해진다. 가르침을 통해 다시 나를 돌아보고 그들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한다.
중국 고전 예기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도 배우고 봉사하면서 나를 단단히 엮어간다. 아름다운 외도를 통해서.
24.8.3.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