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잊고 싶은 기억
임해량
수연이 엄마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엄마에게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했다.
엄마는 소고기 상자를 마루에 내려놓으며 보자기를 푸셨다.
" 아니, 이거 소고기 아니냐?
누가 이 귀한 것을 보냈다냐, 수연아!"
수연은 귀가 빨개지며 말을 더듬거렸다.
" 응, 엄마 그~ 그것 친구가 보낸 거예요."
" 아니, 수연아 날마다 집구석에서 책이나 보더니 언제 이런 친구를 사귀었다니,
친구가 너무 마음씨가 고운가 보다. 근데 소고기가 너무 좋은 거 같구나. 세상에 이리 고마울 데가."
수연이 엄마는 소고기 상자를 열어보시더니 입을 다무시지를 못하셨다.
그런데 보자기 사이로 떨어진 편지를 수연이 발견하고는 어머니 모르게 얼른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어머니는 소고기를 들여다보시며 마냥 기쁘신지 얼굴이 싱글벙글하셨다.
수연은 방안으로 들어와 경호가 전해준 편지를 편지지에서 꺼내읽었다.
" 수연 씨 저 이 경호입니다.
소고기 적지만 추석에 차례상에 올려놓으시기 빕니다.
수연 씨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요.
수연 씨 한가위 잘 지내시기 빕니다. 몸조심하시고요. 이경호 드림."
수연은 경호의 행동이 왠지 밉지가 않았다.
뭔가 그만의 독특함이 느껴져 입가에 미소가 흘렀지만 한편 마음이 무거웠다.
수연이 며칠 만에 집에 오니 그녀가 꺾어다가 사이다 병에 꽂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노란 국화가 시들어 있었다.
수연은 마당으로 나갔다.
하늘엔 달님이 방긋이 웃고 있었고 마당 우물가로 핀 노란 국화와 흰 국화가 달빛에
수줍게 물들어 수연을 보더니 보시시 웃어주었다.
수연도 가만히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 얘들아, 잘 있었니, 미안해 언니가 너희들 아프게 꺾어서, 앞으론 안 꺾을게,
너희와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서 꺾어다가 방에서도 보았는데 이제는 힘들게 안 할 게,
이 언니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꽃들은 수연의 고운 심성에 반했는지 달빛에 더 환하게 빛났다.
다음날 수연은 오빠와 동생들과 과자 파티를 하고 아버지께 진로소주 한 잔을 따라드렸다.
아버지께서 너무 흐뭇해하셨다.
" 아이고 우리 책 보 아가씨가 웬일로 이 아빠 위해 소주를 다 사 오고 오래 살 일이다. 허허허"
하시며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수연의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인데 수연 엄마를 너무 사랑하셔서 배에 다녀오시면 한순간도 엄마 곁에서 찰떡처럼 떨어지지 않으셨다.
그러자 수연 엄마가 어제 경호가 보낸 소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오셨다.
" 수연 아버지, 이거 국산 소고기인데요. 수연이 동창 친구가 명절상에 놓으라고 보냈다지 뭐예요."
아버지와 오빠와 동생들은 소고기를 보더니 너무 좋아했다.
" 아니 수연아, 너에게 그런 동창이 있었느냐, 흐 흐흠 "
수연 아버지는 좋으신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셨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회사 다니는 여동생은 수연 언니가 입은 연한 분홍색 원피스를 보더니 환호를 질렀다.
" 언니 그 원피스 이모가 해주셨어, 언니 너무 예쁘네. 천사 같아. 벗어봐 나 한번 입어보게, 언니!"
수연은 오늘 점숙이와 정민이가 떡방아 찍어주러 온다고 해서 이모가 주신 원피스를 입었던 것이다.
여동생 수희는 첫사랑 남자애에게 배신당해 회사에 들어가자 멋을 잔뜩 부리고 다녔다.
수연은 동생에게 미안해서 얼굴을 붉혔다.
" 미안해 수희야, 담에는 네 옷도 이모님께 달라 해 볼게 "
옆에 있던 막내 여동생도 셈을 냈다.
그러자 수연 엄마가 수연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눈물을 글썽이셨다.
" 우리 수연이 정말 예쁘다. 다리만 안 아팠으면 높은 학교도 나왔을 텐데 엄마가 미안하다.~^^"
수연은 어제오늘 엄마의 모습에 지금까지 가슴에 뭉쳤던 몽우리를 풀게 되었고,
어머니의 속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도 가슴 한편이 울컥하셨는지 저 높고 높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셨다.
" 수연 아빠 가마솥에 쑥이랑 찹쌀 익었으니 어서 도구 통에 퍼서 찍읍시다. 우리 얌전한 큰아들은 아빠를 도우렴"
엄마가 모르는 채 가마솥에서 잘 익은 쑥 찹쌀을 퍼서 도구 통에 담자 아빠는 도구대로 찹쌀을 쳤다.
.
쑥과 찹쌀이 아빠 도구대에 넙적 엎어지는데 그때 점숙이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 이모 이숙 저 점숙이예요. 안녕하셨지요 호호 "
수연 엄마가 점숙이에게 다가서며 맞이하려는데 그 순간 대문을 열고 잘생긴 청년이 손에 정종을 들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첫댓글
잔잔한 사랑 누구인지 였보이네요
다음 편 기대 합니다
고맙습니다~^^
한 30프로는 들어갔습니다 ㅎㅎ
재밋게 봐 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뵈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