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안철수의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 "하늘이 무너져도 연횡(連衡)은 없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①]
중앙일보
입력 2022.02.11 05:00
이정재 기자
대권무림
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3부 제1화〉 이인삼각: 누구와 다리를 묶을 것인가
무력(武曆) 2022년 두 번째 달.
천하 무림의 눈과 귀는 철수의사(義士) 안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었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지켜보는 구경꾼의 심정으로.
불과 스물일곱날을 남긴 지존비무
판세는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열쇠는 철수의사가 쥐고 있었다.
#민주적 절차로 임금 뽑는 나라
무림신사 정성호는 여전히 분을 참지 못했다.
재명공자의 책사이자 오른팔로 불리는 그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재인군은 주공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 게 틀림없어요.
검찰을 움직여달라는 것도 거절,
국고를 털어 자영업자에게 황금을 뿌려달라는 것도 거절,
코로나 역병 관리를 느슨하게 해달라는 것도 거절,
벌써 일곱번 째 거절입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기라는 겁니까."
재명공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재인군은 누가 이기든 별 관심이 없는 듯하오.
오로지 권좌에서 내려온 후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오.
그 점에서 그는 나보다 나찰수 윤석열을 더 믿는 것 아니오?"
재명공자가 그런 말을 할만했다.
당금 강호의 재인군 지지세력인 문파(文派) 사이에선 공공연히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재명공자가 차기 지존이 되면 재인군은 무림옥에 갇힐 것이다.
재명공자는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하는 자,
게다가 재인군에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자,
재인군을 잡아넣는 게 유리하다고 여기면 능히 그리할 위인이다.
반면 나찰수 윤석열이나 그의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는 다르다.
재인군과는 애증 관계,
원한도 복수심도 없다.
억지로 재인군을 잡아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나찰수를 차기 지존에 앉히자.'
"어차피 재인군에게 더 기대할 것은 없소이다.
우리 힘으로 해냅시다.
무척 어렵다고 하나, 아직 시간이 꽤 남았소.
재여무림 불패신화가 괜히 생겼겠소.
아무리 위기에 몰려도 재여무림엔 판을 뒤집을 수가 여럿 있는 법이지요.
그나저나 철수의사 안철수와의 합력(合力)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겁니까?"
"바른검 김관영, 무림묘뇌(武林妙腦) 이광재, 두 분이 계속 물밑 접촉 중입니다.
무림총리 5년 보장, 무림장관 5명 임명권 보장,
원하면 재명공자와 일대일 경선비무까지,
우리가 쓸 수 있는 패는 다 내놨지만
가타부타 답이 없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합니다.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지면 죽는 전쟁입니다.
철수의사와의 단일화는 꼭 해야 합니다.
지존좌 빼고 원하는 건 뭐든지 준다고 하세요.
그럴 능력이 있는 곳은 나와 민주련입니다.
나찰수 윤석열은 지존좌에 오른들
안철수에게 무림총리를 줄 수도,
공동 정부를 꾸릴 수도 없어요.
180석의 무림의원을 보유한
우리 민주련만 가능한 일이란 걸
잘 알아듣게 하세요."
무림신사 정성호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재명공자는 그런 그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철수공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더라도 그가 윤나찰에게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안철수와 합력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안철수가 윤나찰과 합력하도록 놔뒀다간 불문가지,
필패다.
어차피 한칼에 전세를 뒤집을 묘수는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최후의 절초를 꺼내야 한다.
지존임기단축3년 초식과 지존권력힘빼기개헌 초식.
현 무림의 모든 폐해는 절대 권력을 용인하는 무림지존제 때문.
오죽하면 "민주적 절차로 임금을 뽑는 제도"란 말이 나오겠나.
무림지존을 신의 권좌에서 인간의 자리로 돌려놓는 게
무림의 승자독식, 진영 전쟁을 끝낼 유일한 방책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서라도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귀제갈 김종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양대 문파가 무림 권력을 독점하는 양당제를 끝내고
다당제 무림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라.
그것이 최후의 구명절초가 될 것이다."
그래. 무엇인들 못 하랴.
어차피 지면 죽는 전쟁.
이기기 위해서라면 독약인들 못 들이키랴.
으드득~
재명공자는 으스러지라 이를 악물었다.
#나찰수의 봄날
나찰수 윤석열에겐 요즘의 나날들이 꿈만 같았다.
두 달째 이어진 암흑의 시간은 마침내 끝났다.
무림언론들은 이제 나 나찰수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점치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나찰수는 새삼 감회가 밀려왔다.
물론 오늘의 성과는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TV논검(論劍)비무에서 크게 밀리지 않은 것이 덕을 봤다.
더 큰 건 민주련의 내아내녹취록공개 초식이 더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가 잘해서가 아니다.
이독치독(以毒治毒), 독은 독으로 이겨내는 법,
혜경궁김씨의 마각이 드러난 게 반전이었다.
혜경궁김씨는 10여년 간 횡령한우초식과 법카멋대로쓰기 초식을 몰래 사용했다.
그러다 측근의 배신으로 그 사실이 탄로 났다.
두 초식이야말로 무림인에겐 금기 중 금기인 마공,
쓰는 자는 당장 무공을 폐지당하고 무림에서 쫓겨났다.
그야말로 천우신조,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 백성은 쉽게 잊고 용서한다.
우리 백성은 또 쉽게 미워하고 비난한다.
언제 혜경궁김씨를 용서하고
내 아내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지 모른다.
이제 남은 변수는 하나. 철수의사뿐이다.
사실 진작 내가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국힘방 내에 반대 세력이 많았다.
국민동자 이준석은 공공연히 4자 필승, 자강론(自强論)을 외쳤다.
섣불리 안철수와의 합력을 말하는 순간,
극심한 분란과 반발로 군세(群勢=지지율)를 잃을 수 있다.
그 바람에 심술(心術)도사 홍준표마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내 고민을 읽고 제주의 바람 희룡공자가 총대를 멨다.
희룡공자야말로 원전활탈(圓轉滑脫:일을 처리하는 데 원만하고 거침이 없음)의 절대고수.
더 늦었다간 민주련의 유혹에 철수의사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희룡공자는 내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철수의사와의 합력에 성공하려면
첫째, 너무 세세한 것까지 따지면 안 된다. 권력을 나눠먹는다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둘째, 너무 화끈해서도 안 된다. 벌써 오만해졌다고 강호 민심이 돌아설 수 있다.
셋째, 나 나찰수와 철수의사 둘이 담판을 지어야 한다. 옛 대중검자와 종필노사처럼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철수의사와 나의 무공과 기질은 합(合)이 맞는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철수의사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재명공자에겐 비장의 절초가 남아 있다.
임기단축3년 초식과 지존권력힘빼기개헌 초식.
일찍이 귀제갈 김종인옹이 내게 익히도록 권유했던 무공이다.
당시엔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 무공은 사실 재명공자에게 더 맞는다.
원래 이 무공을 쓰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 이대로 가면 불 보듯 패할 후보여야 한다.
이길 가능성이 큰 사람은 쓸 수 없다.
둘째, 무림의회의 다수 의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개헌초식을 성공적으로 펼칠 수 있다.
셋째, 지면 죽는 지존 후보라야 한다.
그래야 주변 세력의 반대를 물리칠 수 있다.
지금의 재명공자에게야말로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걸 안 하면 그는 죽는다.
그런 판에 독약인들 못 들이킬 리 없다.
그라면 능히 '백성의 6할이 비호감인 상황에서 누가 지존좌에 오른들 무림이 제대로 굴러가겠나'라며 '나는 2년만 지존좌에 앉겠다'고 할 수 있다.
그래놓고 이긴 뒤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지언정.
대비책은 하나뿐.
나도 같은 무공을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나.
이런 독약을 들이켜지 않고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해야 해, 해야 해, 해야 해.
나찰수는 격하게 도리질을 했다.
# 철수의사의 선택, 李냐 尹이냐
紛紛世事無窮盡
어지러운 세상일 끝이 없더니
天數茫茫不可逃
하늘의 뜻은 피할 길 없어라
鼎足三分已成夢
삼분 천하는 이미 꿈이 됐건만
哲秀憑勝空牢騷
철수는 이기겠다며 흰소리하네
철수의사 안철수는 밀지(密旨)를 구겨 휴지통에 던졌다.
밀지에 적힌 시구의 뜻은 분명했다.
'3자 대결 구도는 이미 꺾였다.
그러니 지존 비무를 포기하라.'
쉽지 않은 싸움인 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하지만 뒤집어보라.
지금 여의주를 쥔 자가 누구인가.
재명공자와 나찰수 윤석열이 왜
지금 내게 이리 매달리고 애걸하겠나.
자신들의 힘만으론 지존좌를 거머쥘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혹자는 나를 일러 철수전문초식의 대가라 부르나
천만의 말씀. 더이상 철수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내 진짜 무공 '새정치'초식의 위력을 보여주리라.
눈이 있는 자 보라.
당금 무림의 실상이 어떠한가.
나라의 존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3년째 계속되는 역병으로 백성은 온통 절망과 암흑에 빠졌다.
그런데도 나찰수와 재명공자는 케케묵은 흑색무공으로 이전투구만 벌인다.
눈만 뜨면 나라 살림을 뭉텅뭉텅 거덜 내는 퍼주기 초식이요,
입만 열면 '네마누라가더못났다' 초식으로 암수(暗手)를 쓰기 일쑤니
이런 자들을 어찌 믿고 나라를 맡기랴.
백성들에게 차선(次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게
어찌 무공을 익힌 자의 도리라 할 수 있겠나.
이번처럼 비참한 지존비무는 없었다.
나 철수의사 안철수만이 그런 백성의 아픔과 좌절을 달래줄 수 있다.
내 측근 호남문파 출신의 무림의원들은 은근히 재명공자와의 합력을 부추기고
또 다른 이들은 나찰수와의 합력을 말하나
나는 둘 중 하나와 합할 뜻이 조금도 없다.
나야말로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민주련의 재인군에게 속아봤고
국힘방의 국민동자 이준석과 귀제갈 김종인에게 당해봤다.
거대 방파와의 합력이란 게 사실은 일방적 양보와 희생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엔 철수도, 합력도 없다.
이번엔 기필코 끝을 볼 것이다.
밀지를 보낸 자는 내게 이렇게 으름장을 놨다.
"귀공의 잘못된 선택으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자유대한무림이 멸망할 것"이라고.
물론 내가 재명공자와 손잡는 일 따위는 하늘이 무너져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웬만해서는 나찰수를 돕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림 권력 교체에 실패한 들 어쩌랴.
진실을 말하자면,
세상이 멸망하는 일 따위는 없다. 단지 세상을 짊어지는 자가 바뀌는 것일 뿐.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첫댓글 재밌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