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호텔을 가다-도쿄 파크 하이야트] 전통 명문 제치고 톱3로 급부상
일본어 중에 ‘고상케’(禦三家)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도쿠가와(德川) 일가인 오와리(尾張), 기이(紀伊), 미도(水戶)의 세 명문가를 높여 부르던 말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어느 분야의 베스트 3 또는 톱 3를 말할 때 흔히 쓰이곤 한다. 그 중에서도 고상케하면 도쿄의 세 전통 명문호텔을 떠올리는 일본사람들이 많다.
그 호텔은 호텔오쿠라, 帝國호텔, 그리고 뉴 오타니호텔이다. 세 호텔은 원래부터 자타가 인정하는 명문호텔들이기는 하지만 고상케라는 독보적인 프리미엄의 덕도 충분히 누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얼마전 일본의 한 유명한 시사주간지가 각계 각층에서 받은 평가를 근거로 일본의 호텔랭킹을 발표하면서 그 중의 한 호텔인 뉴 오타니호텔이 고상케에서 탈락했다고 선언해 호텔 업계를 놀라게 했다.
게다가 3위에서 5위에 새로 랭크된 세 개의 호텔들을 ‘신(新) 고상케’라고 명명하여 그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별로 좋지도 않은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물결은 애써 외면하고 콧대를 높인 채 고고한 척하던 기존의 명문호텔들에 큰 충격을 주었다.
‘신 고상케’란 신주쿠의 파크 하얏트(Park Hyatt), 친잔조(瑃山莊)의 포 시즌스(Four Seasons), 에비스(惠比壽)의 웨스틴 호텔(Westin Hotel)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두 몇 년 사이 도쿄에 진출한 외국계 체인 호텔들이었다.
자국 내에서만큼은 호텔업에서 외국계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고 내심 자부하던 일본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의 호텔산업 수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기존 호텔들이 과연 격변하는 경영환경과 고객의 다양한 욕구변화에 얼마나 신속히, 적절히 대처했던가 하는 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던 일이었다.
더욱이 호텔의 핵심이랄 수 있는 객실부문 평가에서 신 고상케의 두 호텔이 기존 고상케를 를 모두 누르고 1, 2위에 랭크된 것은 결코 가벼이 보아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파크 하얏트는 상식을 뛰어넘는 상품력과 연출로 화제를 일으키며 신 고상케 중에서도 단연 선두주자 격으로 부상하고 있는 호텔이다.
서(西) 신주쿠 신도심은 일본인들에게는 바람직한 자화상이다. 도쿄도 청사를 비롯한 거대한 고층 건물군과 널찍널찍한 도시공간은 축소 지향적이라는 잠재적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52층 짜리 도쿄가스의 본사 건물이다. 총면적이 8만평이나 되는 이 초현대적 건물은 현존하는 일본 건축가 중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당게겐조(丹下健三)가 설계한 것으로서 역시 그가 설계한 도쿄도 청사와 더불어 신주쿠 신도심의 중심적인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 파크 하이야트는 이 건물의 39층부터 52층에 걸쳐 객실 178실로 자리잡고 있다.
호텔로 가려면 본 건물의 현관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있는 호텔 진입로를 이용해야 한다. 철저히 독립적인 어프로치가 복합건물에 있는 호텔로서의 핸디캡을 완전히 해결하고 있다.
현관 로비 홀에 들어서면 무언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정돈된 넓지 않은 로비. 한 켠의 베이커리숍만 아니라면 조각품들과 그림들로 마치 미술관에 들어선 듯 착각할 지경이다. 호텔 문을 들어서면서 예상했던 로비에 대한 고정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홀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곧장 이들이 얘기하는 이른바 공중로비인 41층의 호텔 메인로비로 올라간다. 호텔을 이용하면서 평면적인 진입공간에 익숙해져 있던 감각을 입체화시켜야 하는 과정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갑자기 눈앞으로 펼쳐지는 서(西) 신주쿠의 도시경관은 도쿄의 새로운 모습을 실감케 한다. 그러다가 다시 둘러보면 주변은 풍성한 수목과 실내분수로 한결 긴장감이 누그러진다.
프런트 리셉션으로 가는 길은 위 아래층으로 복합된 건축적인 공간연출을 적당히 즐길 수 있게 되어 있고 이제 프런트데스크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할쯤에 양켠으로 서가가 늘어서 있어 마치 도서관 인가 싶은 복도를 지나게 된다.
이쯤이면 이미 특별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연출을 시도한 호텔측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리셉션홀은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178개라는 객실 수 때문인지 로비는 언제고 여유롭고 데스크들도 고만고만하게 크지 않아 호텔 프론트데스크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퍼스널 서비스를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검정과 회색 톤의 세련된 가구와 차분하지만 우아한 실내 분위기가 전혀 일본 안의 호텔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미 일본인 고객의 1차적 욕구인 서구지향적 취향이 만족되는 순간이다.
전체 건물의 기본 모티프였던 ‘모던’ 이미지에 호텔컨셉의 키워드로 ‘인터내셔널’이라는 주제를 섞고자 했다는 것이 초기 인테리어디자인의 개념 설정이었다고 한다.
자칫 모던 이미지가 가져올 수 있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은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조각이나 장식으로 완화시켰고, 인터내셔널 이라는 테마를 추구했지만 가능한 한 일본적인 요소와 접목을 시도했다는 것이 설계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1987년, 계획 초기에 완전한 퍼스널 서비스를 추구하는 이런 부티크 호텔 개념의 사업구상에 거센 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기획의 의도가 빈틈없이 맞아떨어진 사례가 되었다.
내로라 하는 호텔들을 다녀보아도 객실이야 서로 비슷한 게 사실인지라 큰 기대없이 객실에 들어섰다가 마치 호텔방을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높은 천정, 널찍한 실내공간, 짙은 검정색 가구들과 베이지색 실내톤이 잘 어우러져 색다른 우아함과 풍부함이 인상적이다. 팔을 뻗으면 양쪽 벽과 천정이 닿는 비즈니스호텔 객실에 익숙한 일본의 고객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쉽게 짐작이 가는 있는 일이었다.
각종의 첨단오디오 비디오기기, 모든 기능을 망라한 ‘인 룸 비즈니스’ 설비. 욕실의 호화로움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욕조를 신주쿠의 휘황한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 옆에 둔 것에 이르러서는 그 과감한 시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카이 레스토랑인 ‘뉴욕 그릴’은 당일 예약은 거의 어려운 도쿄의 명소다. 상식을 넘어서는 실내의 공간감과 창 밖으로 펼쳐지는 멋진 도시경관의 파노라마, 도시의 공중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 감상 등, 일본에선 결코 흔하지 않은 환경이다. 여기에다 많은 일본인들이 막연히 동경하는 ‘뉴욕’이라는 테마를 적절히 섞어 일본고객의 서구지향적 취향과 호텔을 통한 비일상성의 추구라는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킴으로써 대성공을 거둔 경우다.
“우리가 이곳에 이탈리아 식당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도쿄에 이미 600개가 넘는 이탈리아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무언가 다른 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메뉴를 좀더 다국적화하고 엉뚱하지만 ‘뉴욕’이라는 테마를 만들기로 했죠.뭐 어떻습니까.”
이탈리아 식당의 이름이 왜 뉴욕이냐는 물음에 식당 기획에 참여했다는 매니저의 답변이다. 자연스러운 고정관념의 탈피다.
본 건물의 저층부는 사무실동의 로비와 오-존(O-Zone)이라는 대규모 생활용품 전시장이다. 어쩌다 본 건물을 통해 호텔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 같으면 고객의 동선이다 편리다 해서 전용 엘리베이터라도 놓을 생각을 했을 터라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호텔용 엘리베이터를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안내에 물었다.
유일한 통로인 계단을 가르쳐 주는데 구석으로 돌고 높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짜증스럽게 계단을 올라 호텔로비로 들어서다가 문득 호텔의 정교한 의도에 의해 연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지한 메시지는 마치 “그 길은 파크 하이야트로 오시는 바른 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오니 문 밑에 전달물이 있다. 전날 간단한 부탁이 있어 들렀던 Concierge의 여직원에게서다. 펼쳐 보니 도쿄 시내에서 열리는 금주의 음악회 일정과 몇 매의 공연안내 팜플렛이었다.
전날 그녀의 데스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기의 대기음악과 감도가 훌륭하다고, 객실에서 전화를 걸다가 잠깐 대기 중 일 때 내가 좋아하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가 나와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고 했더니 그 곡은 자기도 매우 좋아하는 곡이고 일하다가 피곤하면 일부러 수화기를 들고 음악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함께 웃었던 것이 생각났다. 감사의 말을 전하려 전화를 했더니 비번이란다.
영업적인 철저함보다는 사려 깊고 살뜰한 배려라는 인상이 깊이 새겨질 수 밖에 없었다. 이 호텔이 어떻게 그리 빨리 고상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일이었다.
/윤병권 호텔프랜코리아(www.hotelplan.co.kr)㈜ 대표
파이네셜뉴스 2004 4월 7일자 www.fnnews.com
우리나라에도 많은 호텔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세계에 알려지거나 유명한 호텔은 들어본 적이 없는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일본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배울건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고객에 대한 깍듯한 서비스정신은 미래의 관광인들인 우리에게 좋은 배울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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