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7:1~8:22)
그리스 신화, 매혹적인 노래소리로 죽음을 부르는 영, 세이레네... 끌려 들어가면 배가 난파되어서 죽는. 이런 함정. 그 소리를 듣고 싶은데 죽고 싶지 않은 사람. 오딧세우스. 배를 타고 부하들에게는 못듣게 하고 본인은 결박. 소리 들을 때 죽음의 고통을 겨우 벗어남. 세상에도 그런 것이 많음. 그것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 진리의 돗대에 단단히 묶어야 함.
앗수르. 당대 해안지역을 지배하던 깡패들. 하나님을 등진 북이스라엘과 아람. 시리아(아람)와 에브라임(이스라엘)이 편을 먹고 앗수르에 대들기로 함. 시리아 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와 충돌. 그러기 위해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머물러서 준비. 합동훈련. 2절. 그래서 유다는 매우 불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임. 그리고 하나님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렇지 않는다면 세이레네를 쫓는 것과 같음. 남유다와 유다왕 아아스를 격려하기 위해 가는 이사야. 3절, 아아스왕이 왕궁에 있지 않고 세탁소 앞 큰 길에 있음. 뭔가 분주한 느낌. 위기라서... 4절,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이렇게 아아스 왕에게 말하라는 것임. 진정하고 차분해져라. 만일 하나님의 관점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이 고난이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임. 그렇게 이사야가 왕에게 전하라는 것임.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그들을 추종하는 핫바지(괴뢰) 유다정부를 새로 만드려는 계획이지만... 제국주의적 방식. 그런데 그것은 다윗의 혈통을 끊으려고 하는 것과 같음. 무모한 시도. 뒷골목 양아치가 뭣모르고 UFC 선수에게 대드는 형세? 그러니 하나님의 시선으로 지금 상황을 보고 차분하길. 그러나 다급한 현실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눌리기 마련... 그래서 9절,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선다." 그러면 "굳게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대상을 아는 것.' 굳게 믿는다는 것은 귀를 기울이고 살피는 것임. 내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결국 세이레네를 지나고 살리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것. 동시에 현실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는 것. 그래서 현실을 내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 것인지를 살피라는 것. 그것이 굳게 믿는 것. 난장판 같은 곳에서 고요히 장엄하게 지나오신 하나님을 보는 것. 는 몰라도 하나님이 알면 된다는 진실을 보라는 것.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 치매 부친. 사위에게 '내가 누구요?'라고 물었음. 산 자의 존엄을 그 순간 교수가 느낌. 아버지가 자기가 누군지 기억 못해도 괜찮다고 느낌. 내가 기억하면 된다고 생각. 기억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됨. 그것을 붙들어야 함. 내 믿음은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굳건함으로 자동차의 얼라인먼트와 같이 옳게 조정하실 것이기 때문. 10~11절, 징조를 구하라. 깊은 데든지 높은 데든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징조를 보는 것. 그런데 12절, 아하스가 구하지 않겠다고 거절. 이 거절에 이사야가 대노함. 13절,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왜 화내냐면, 진실하지 않기 때문. 아하스의 겸손은 거짓이기 때문에 해리 프랭트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진실과 거짓의 공통점. 일어난 사태의 진상을 중심으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 거짓조차 그런 방식을 빌어서 살 길을 찾는 것임. 아이들의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기보다 생존의 방법. 그런데 개소리는 사태의 진실과 관계 없이 가짜. 그것이 개소리. 모든 이단들은 가짜를 따라가는 것임. 아하스가 따르지 않겠다는 겸손한 척하는 말은 개소리. 아하스가 위기에서 성전으로 달려감. 기도가 아니라 거기 재물을 가져가소 앗수르에게 받치는 방법으로 자구책을 강구하려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비빌 언덕을 만드는 알량한 죄악. 성경은 그것을 "다윗의 길을 버렸다." 다윗은 여러가지가 있지마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체를 정직하게 인정. 망가진 현실에서 극복하는 것은 망가진 현실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인정한 자. 아하스는 그 길을 쫓지 않았다. 진실의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과정. 안타까운 일. 그래서 이사야가 분노를 느끼며 책망. 13~25절이 책망의 내용. "당신은 공의로 다스려 백성을 보호해야 할 자로서, 외려 불의와 포학으로...백성들을 지금껏 괴롭혔습니다.....(중략) 하나님이 주실 징조는 이겁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그 앗수르가 당신도 짓밟힐 것입니다. 백성도.... 저주의 땅이 되는 그날. 당신은 온 땅을 유린한 앗수르를, 손에 지고 사용하신 분이 바로 당신이 등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보고 조용히 기다리는 대신에 자구책, 세상에서
8장 6~7절, 은혜의 물을 버리고 현실에 대한 답이 안될 것이라는 자기 확신으로, 썩은 물(앗수르)을 찾아감. 그 썩은 물이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덮치고 급기야 유다까지 장악할 것이라는 것. 8:9~10절, 끝내 패망하리라.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정복과 여러 가지 몸짓은 허망한 것, 허물어지는 일.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 길을 찾으려면어떻해야 하나?
1.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를 복기하고 반복해야 함.
이사야에게 아들을 동반하라고 함. 안 믿는 아하스에게 한 번 더 징조를 보여주심. 새로운 아이를 잉태하여 그가 말을 하기 전에 앗수르가 망할 것이라는 징조. 다음 세대들이 우리가 품어야 할 징조. 18절,
2. 굳게 믿어야 함.
17절,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바라겠다. 남게 될 신자의 속성. 자녀들을 볼 때 양육할 때 몸살을 겪지 않는가? 그럴 때 '언제 얘가 엄마라 부르냐? 똥, 오줌을 가리나, 언제 유치원 가나? ...'등 등 그런데 어느새 지나가고 사라짐.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도 그러함. 도대체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그렇지만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아라. 이루셨고,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말고 기다려야 함. 11~12절, 세상이 뭐라해도, 세이레네 소리가 아무리 매혹적이라고 해도, 무당같은 것 찾지 말고 말씀을 따르라. 19~22절, 멍하게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버텨라.
지난 주, 화/수 우리 교회 출신... 사람들 수련회. 10년 전 이상욱 목사님. 아들이 초5. 식탁 대화. 그 아이가 경복궁. 어린이 해설사. 갑신정변 정확히 설명. 개인의 의견을 물어봄. 김옥균과 이완용. 김옥균은 존경하고 이완용은 싫어함. 이유는 김옥균은 나라를 위해서, 이완용은 자기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다. 토론의 분위기는 필요하나 말씀이 기본이 되어야 함. 개봉될 영화, '본회퍼'. 시대가 어려울 때마다 예수를 이용하는 자가 많지만, 그는 예수를 위하여 정치에 뛰어든 사람. 고된 여정. 현실에 눌려서 어려운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을 위해 뛰어드는 것이 중요. 말씀으로 굳게 묶고 굳게 믿고 은혜의 길을 걸어가는 인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