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국권회복과 근대적 시형의 모색
푸른 바다로 돌진한 흰나비의 열망과 좌절
바다와 나비
김기림 |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출처 《김기림 전집 1: 시》(1988) 첫 발표 《여성》(1939.4)
김기림 金起林 (1908 ~ )
함경북도 학성 출생. 니혼(日本)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에 구인회 멤버로서 당대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활동했다.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이자 비평가, 문학이론가로 활동했으며,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수필집으로 《바다와 육체》(1948), 비평 및 이론서로 《문학개론》(1946), 《시론》(1947), 《시의 이해》(1950) 등이 있다.
ㅣ ‘바다’를 ‘청무우밭’으로 생각한 흰나비
푸른 바다 위를 흰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일상생활에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비는 주로 꽃잎에 앉아 꿀을 먹거나 풀밭이나 들판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그런데 꽃 한 송이 피지 많은 광대한 바다에 흰나비가 등장했다. 흰나비 앞에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푸른 바다가 자신이 자주 보았던 '청무우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비에게 바다가 어떤 곳인지, 얼마나 깊은지 알려 준 적이 없기에 나비는 '청무우밭'이려니 하면서 용감하게 바다로 돌진한다. 그런데, 아차! '청무우밭'이 아니었다. 이미 때는 늦었다. 몸은 벌써 바닷물을 스쳤고, 얇고 가냘픈 날개는 짠 바닷물에 닿고 말았다. 바다를 향해 돌진하던 에너지는 소진되고 바닷물에 절은 날개를 끌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가는 나비의 좌절이 클로즈업된다. 바닷물에 '젖었다'는 표현보다 '절었다'("물결에 저러서”)는 표현에서 바다의 짠 소금물이 배어들어 날개가 축 늘어진 나비의 모습이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ㅣ초승달이 뜬 서쪽 하늘을
ㅣ낮게 날아오르는 흰나비
3월이면 아직은 추운 날씨다. 저녁 즈음 바닷물을 스치듯 막 빠져나온 흰나비가 초승달이 뜬 서쪽 하늘로 낮게 날아오르고 있다. 나비가 좋아하는 꽃이라도 피어 있었으면 지친 몸을 잠시라도 쉴 수 있으련만, 드넓은 바다 어디에도 나비가 쉴 곳은 없다. 초승달은 음력 초사흗날 저녁 서쪽 하늘에 낮게 뜨는 눈썹 모양의 달이다. 밝고 환하고 둥근 보름달이었다면 공주처럼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파란 초승달이 작고 가녀린 흰나비의 허리에 걸쳐진 것처럼 보인다. 새파란 초승달이 떴을 리는 없다. 눈썹 모양의 초승달이 어두워져 가는 저녁 바다 위로 낮게 떠 있어, 그 바다 색깔에 동화된 듯 보였을 것이다. 또한 추운 날씨에 바라본 저녁 하늘의 날카로운 초승달에서 쉽게 서늘한 냉기를 느꼈을 것이다. 나비가 느꼈을 서늘한 냉기가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순간이다. 바닷물에 날개가 절어서 지쳐 돌아오는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걸쳐진 것은, 온기 하나 없는 냉혹한 현실에 흰나비가 내던져졌음을 의미한다. 나비의 흰색 이미지가 바다와 초승달의 파란색 이미지와 선명하게 대조되면서 나비의 좌절과 절망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 푸른 바다를 만난 흰 나비의 좌절
이 시에는 부연이 없다. 마치 화자가 방금 눈앞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다와 나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수다스럽지도 않다. 나비의 좌절과 절망이 시리게 저며 오지만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외치지 않는다. 흰나비가 바다로 돌진하는 장면, 바닷물에 절은 날개로 가까스로 날아오르는 장면, 흰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걸쳐진 장면만이 이미지화되어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푸른 바다와 흰나비의 선명한 대조는 푸른색과 흰색의 시각적 대비를 부각할 뿐만 아니라, 광대한 낯선 세계로 돌진하는 가냘픈 주체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절망과 좌절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흰나비와 연관되는 ‘어린 날개’, ‘공주처럼 지쳐서’, ‘서거푼(서글픈)’ 등의 표현은 나비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하면서도 여린 존재임을 나타낸다. 이에 비해 푸르고 시린 바다는 이제까지 나비가 만나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인 동시에, 순진하면서도 여린 나비를 품어 주기에는 너무나도 냉혹한 세계이다. 흰나비는 바다를 열망한다. 비록 ‘청무우밭’으로 잘못 알기는 했지만 바다는 흰나비가 가 보고 싶고 앉아 보고 싶은 세계였다. 그런데 그 열망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자, 열망은 좌절로 바뀌어 버렸다. 이 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도전, 그리고 그 도전이 실패하는 데서 오는 좌절과 절망을 그린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운명적 절망감”(이승원, 2008: 199)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 <바다와 나비>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이 시를 일제강점기에 현해탄을 건너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지식인들의 좌절을 그린 시로 해석하기도 한다. 바다를 향해 돌진했지만 지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흰나비를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 보는 해석을 들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바다로, 냉혹한 현실에 맞서는 시적 자아를 나비로 파악하는 것이다(윤여탁, 2008: 339).
한편, 김기림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김기림은 1936년 그의 나이 29세에 본격적인 문학 연구를 위해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일본의 도호쿠(東北)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39년 3월에 귀국했는데, 바로 같은 해 4월에 <바다와 나비>를 발표했다. 이숭원(2008: 95-98)은 유학을 마치고 현해탄을 건너 돌아오는 김기림의 눈에 초승달이 비쳤을 것이고, 거기서 새파란 초승달 아래 바다를 날아가는 나비의 애처로운 모습이 연상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문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 재차 일본 유학을 감행했지만 소기 목적한 바를 이루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귀국길에 올랐을 것이며, 그러한 심정이 <바다와 나비>에 표현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 속의 나비는 실제의 나비가 아니라 김기림 자신을 비유한 것”이며, “바다와 나비의 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승원, 2008: 96)으로 이 시를 해석한다.
ㅣ '힌 나비'를 위하여
바다와 나비의 관계를 부정적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흰나비는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리고 순진한 존재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드넓은 세상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수심을 잘 모르기에, 광활한 바다를 ‘청무우밭’으로 생각했기에, 바다에 뛰어드는 도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바다를 ‘청무우밭’으로 생각한 것은 바다에 대한 나비의 새로운 해석이자 나비의 지평(관점)에 따른 해석의 결과이다. 우리는 때때로 익숙한 세계가 아닌 새롭고 낯선 세계와 만난다. 그리고 그 세계를 피할 것인가 아니면 도전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나비는 낯선 세계를 피하지 않고 자신의 지평을 바탕으로 낯선 세계와 교류하고자 했다. 물론 교류의 결과는 좌절로 끝났고, 열망의 크기만큼 좌절도 컸을 것이다. 그 결과가 가져온 무게는 오롯이 자기 혼자 짊어져야 한다. 자신의 허리에 시리게 저며 오는 새파란 초승달의 무게를 견뎌 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비가 바닷물에 날개를 적시고도 곧바로 날아오를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다. 바닷물에 몸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채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열망을 뒤덮은 좌절을 어떻게 자신의 몫으로 만들며 성장할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흰나비의 몫이다. | 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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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학동. 김세환 편 (1988), 《김기림 전집 1: 시》, 심설당.
윤여탁(2008), 「김기림」, 근대문학 100년 연구총서 편찬위원회, 『약전으로 읽는 문학사 1: 해방 전』, 소명출판,
이승원(2008), 『김기림』, 한길사,
사회평론 교육 총서 19 문학 교육을 위한 『현대시작품론』
2025. 1. 29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