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와 문화가 공존하는 석호(潟湖)
瓦也 정유순
강원도 강릉에 가면 경포대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명승지라고 한다. 보름달이 환하게 뜨는 밤에 정자에 올라 술잔을 기울이면 달이 여섯 개로 보인다고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달, 동해 바다에 비친 달, 경포 호수에 비친 달, 술잔 속에 있는 달 그리고 마주 앉은 그대의 두 눈 속에 비치는 달’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낭만을 노래했던 옛 선비들의 모습이 부럽다.
<강릉경포대>
경포호는 원래 육지 속으로 쑥 들어온 바다였는데 파도에 밀려오는 모래톱 등이 오랜 세월 동안 만(灣)의 입구를 막아 바다와 분리되어 생긴 호수였다고 한다. 여름이면 누구나 한번 쯤 가고 싶어 하는 경포대해수욕장이나 화진포해수욕장 등은 모래톱이 쌓여 바다와 호수를 분리해 놓은 경계선이다.
<강릉경포호>
이렇게 생긴 호수를 석호(潟湖)라고 하는데 화진포호, 송지호, 영랑호, 청초호, 매호, 쌍호, 봉포호, 광포호 등 18개가 있으며 모두 강원도 고성에서 강릉까지 동해안에 이르는 약 100km에 분포되어 있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화진포호도 넓은 호수가 소나무에 둘러싸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 이승만대통령의 별장도 있고, 김일성의 별장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강릉경포호>
봄이 되면 바다와 연결된 수로에는 팔뚝만한 숭어들이 호수에 들어와 산란을 하기 위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이중 화진포호만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어 있고 나머지는 농경지 개발과 도로 개설, 골프장과 콘도미니엄 등 위락시설 등이 들어 차 원형을 잃어버렸으나, 그나마 호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경포호와 송지호 등 6개고, 나머지 풍호, 쌍호 등 11개는 개발로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호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거나 석호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된 상태라고 한다. 석호는 자연 형태로 이루어진 호수 중에서 화산 호수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은 자연 호수다.
<화진포호>
석호는 비교적 수심이 얕고 바다와는 모래로 격리된 것에 불과하므로 지하를 통해서 바닷물이 섞여드는 일이 있고, 수로로 연결된 것도 있어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있는 ‘기수호(汽水湖)’로 소금 성분이 녹아 있어 물 맛이 짜다. 따라서 바닷물과 민물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조류들이 풍부하여 고기들의 먹이가 많다고 한다. 석호는 바다와 민물의 생태계를 연결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물고기들이 산란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랑호>
그래서 그런지 석호에는 수생식물이 적은 대신 물고기의 개체 수가 많이 있다. 그리고 단순한 생태계 같지만 산란기나 계절에 따라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바뀌기 때문에, 종과 개체 수가 역동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철새도 먹이도 풍부하여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석호는 ‘생물들의 정글이고, 철새들의 낙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다고기와 민물고기가 어우러져 사는 독특한 생태계가 있는 곳이다. 즉 해수와 담수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수역이다.
<강릉경포호>
파도가 높게 치거나 비가 많이 오면 바다와 호수는 물이 빠져 나갈 출구를 서로 찾게 되는데, 이를 ‘갯터짐’이라고 한다. 그런데 각종 개발로 갯터짐이 이루어지는 출구를 막아버려 석호의 기능도 약해지는 가보다. 경포호는 호수의 주변을 농토로 개발하여 면적이 반으로 줄었으며, 또한 위에서 흘러내려 오는 하천의 유입을 막아버려 해수로 되어버렸고, 속초시에 있는 청초호와 영랑호는 도시가 개발되면서 호수 주변이 매립 되었다 하고, 또 도시의 생활하수가 그대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 가끔 상류에서는 ‘잉어’ 등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고 한다.
<강릉경포호>
그 외에 그나마 물이 고여 있는 호수는 외래종인 ‘황소개구리’와 ‘불루길’, ‘붉은귀거북’ 등이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여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났으며, 물이 빠져 갯벌만 남아 있는 호수는 ‘가시박덩쿨’과 ‘단풍잎돼지풀’ 등 외래종 식물들이 우리 토종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
<가시박덩쿨>
동해안을 가보면 해안선을 따라 도로가 잘 닦여 있다. 도로변에는 어항(漁港)이 발달되어 값이 싸고 싱싱한 회도 맛볼 수 있는 횟집도 많이 있어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손짓한다. 더군다나 설악산 등 경치가 빼어난 명산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어 언제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길을 내고 도시를 건설하면서 석호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은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설악산>
호수의 개수 공사나 자갈, 모래 따위를 퍼내는 일이 물고기의 서식 환경 곧 집을 파괴하는 일이라면, 공장의 폐수나 도시의 하수가 흘러드는 것은 물고기의 밥에 독약을 뿌리는 격이 되고, 물의 흐름을 막는 것은 물고기들의 자유를 빼앗아 옥살이를 시키는 셈이 된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질렀다고 변명은 할 수 있으나 괜히 찜찜한 생각이 든다.
<강릉경포호>
우리의 자연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지구의 빙하기(氷河期)가 끝나는 육 천 년 전에 형성되어 우리 민족과 호흡을 같이 해 온 석호가 불과 백 년이 안 되는 세월 속에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니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너무 크다. 그리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와 역사를 뭉개 버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림 - 장영철화백>
<정유순의 우리가 버린 봄∙여름∙가을∙겨울 중에서>
https://blog.naver.com/waya555/220596140935
첫댓글 연상홍도 허벌나게 피는 곳이지요
그립다
강릉은 언제가도 좋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