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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계절
공 선 옥
소음은 끝이 없다. 아파트 뒤편 길은 아직 포장도 제대로 안된 이면도로인데도 불구하고 남해고속도로로 직통으로 빠지는 길이라서 차량의 소통은 큰길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시내로 들어가는 큰길의 교통 체증을 미리 염려한 운전수들은 아파트 뒷길로 난 이 이면도로를 선호한다. 버스와 택시와 승용차만의 통행이라면 또 그런대로 참을 만하겠는데 어디서들 오는지는 몰라도 몸체에 흙을 잔뜩 묻힌 덤프트럭과 레미콘, 지게차들의 무서운 행렬이란, 컨테이너와 트레일러*와 유조차량의 육중한 질주란, 그것들이 질주하며 내뿜는 매연과 굉음과 먼지들이란 숨이 탁 막히고 귀가 멍멍할 정도다. 숨이 막히고 귀를 멍멍하게 하는 소음은 뾰족한 촉감까지 지녀서 골수 구석구석까지 송곳처럼 파고들어, 끝내는 머리를 감싸 쥐고 거대한 소음의 벽 속에 갇힌 채 울어버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고만다.
아파트는 복도식이다. 아이들은 복도에서 논다.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마당 삼아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도 하고 크레용으로 금을 그어놓고 가위바위보놀이도 한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어디 차 소리 네가 이기나, 우리들의 고함 소리가 이기나 하고.
차 소리가 시끄러우니 아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목소리가 커지니 텔레비전 볼륨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소음은 저 혼자만 소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충분히 소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단순한 소리들을 제 주변으로 끌어당겨 이내 소음화해버린다.
아이들이 유아원에 가지 않는 일요일날은 아예 소음의 도가니다. 아이들은 노는 것이 아니고 흡사 싸움질하는 것 같다.
아파트 뒤편의 소음은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아파트 앞편의 소음사정은 또 어떤가.
아파트는 일렬횡대로 1, 2, 3동이 늘어서 있다. 일렬횡대의 1, 2, 3동 앞에 4, 5동이 늘어서 있고. 아파트는 15층이다. 15층짜리 아파트 한 동당 세대수는 한 층에 각 20세대씩 총 300호가 들어가 산다. 일렬횡대의 세 개 동에 그러니까 900호가 되는 것이고, 앞마당이 따로 없는 앞의 두 개 동까지 합친 1500호의 마당은 세대수가 많으니 의당 드넓은 광장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500호의 마당이 되어야 할 광장, 엄밀히 말해 주차장, 문제는 그 주차장에 있다.
한밤중의 영구 임대아파트 주차장을 한 번쯤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그곳은 화물차 터미널이다. 화물 집하장이다.
언젠가 재벌회사가 지은 민영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내 집을 방문하고 나가는 길에 그 거대한 주차장의 화물 트럭들을 목격하고는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거야, 끔찍한 리얼리티라는 게.”
왜냐하면 주차장에는 승용차라고는, 하다못해 국민차라 불리는 조그만 티코 한 대도 섞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화물 트럭들 속에 섞여 있는 작은 ‘차’ 라고는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리어카뿐이었으니 .
그러나 진짜 끔찍한 리얼리티는 화물 트럭들이 움직이는 신새벽에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끔찍의 극치다.
거대한 산이 무너진다. 새벽마다. 땅이 갈라진다. 새벽 마다. 아이가 운다.
“엄마, 내가 막 흔들려. 가만히 있는데.”
나는 속수무책으로 아이를 끌어안는다.
“조금만 기다려라. 지진은 아니다.”
주차되어 있는 화물 트럭들이 제각각 해산하고 난 뒤에는 또 쓰레기차의 소음이 아이를 더 잠들지 못하게 한다. 세대수가 많으니, 쓰레기 치는 시간도 길 수밖에 없다.
영구 임대아파트의 아침은 이렇게 하여 뒤편의 소음과 앞편의 소음이 어울려 이루어내는 웅대한 소음의 오케스트라로 하루의 서막을 열게 되는 것이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앞과 뒤 충에서 어느 한곳의 소음만이라도 나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앞쪽은 어차피 어쩔 수 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뒤편에다는 방음벽이라도 설치할 수 있잖은가.
영구 임대아파트의 시공자인 주택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심정을 꼭꼭 눌러 삼키며.
“시정하도록 건의 올리겠습니다.”
첫 번째 전화를 했을 때, 주택공사의 여직원이 나긋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서명을 받아 오세요.”
무소식을 못 견디다 세 번째 건 전화에서의 답변이다.
서명을 받겠다고 통장 집으로 가서 반상회에 방음벽에 관한 안건을 올려주십사 여쭈었더니, 내 앞에서는 그러마고 해놓고 이 또한 감감무소식이다.
통장 아줌마한테 어떻게 된 사연인지 정중하게 여쭈었더니,
“아줌마가 신경을 꺼부러.”
도저히, 도저히 한 번 켜진 신경불을 끌 수가 없어서 없는 시간을 틈내 서명을 받겠노라고 내 가까운 이웃집부터 방문을 하였다.
내 바로 옆집인 302호는 낮에는 리어카 행상을 나가느라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으므로 바로 건너 303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이사 와서 한 달 만에 처음으로 303호 여자를 만나본 것이다. 그 여자는 이제 마악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는 301혼데요. 이 아파트가 너무 시끄럽지 않으세요?”
“모르겠어요.”
“아파트 뒤로 저렇게 덤프트럭이 질주를 하잖아요.”
“어쩔 수 없는 일 아녜요? 이만한 아파트에 살게 된 것도 어딘데.”
나는 서명받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만한 ‘아파트’에 살게 된 것도 어딘데. 이만한 아파트에 살게 해준 것만도 어딘데. 셋방살이 신세를 면하게 해준 것만도 어딘데 거기다 대고 소음이 어쩌니 환경이 어쩌니, 그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자고로 중이 저 살기 싫으면 절을 떠날 수밖에.
신경을 끄고 살아버릴 수밖에 달리 길은 없는 것이다.
303호와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였다.
“인사가 늦었어요. 저는 아람이 엄마라고 합니다.”
유정이 엄마는 그러시냐고,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이웃에 사는데도 얼굴을 못 보았다고, 언제 자기 카페에 오면 술 한잔 대접하겠노라고, 오늘은 가게 일 때문에 바빠서 나가봐야겠다고 했다.
“유정이를 데리고 다니세요?”
“봐줄 손이 없어서요.”
“우리 애들이 유아원에서 오면 같이 놀게 두고 가세요.”
유정이 엄마는 고맙다고, 친절한 이웃을 만났다고 기뻐하며 다섯 살 유정이를 두고 카페에 나갔다.
유치원 종일반인 내 아이들이 올 시간까지 유정이는 내가 봐주어야 했다. 유정이는 내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청승스런 노랫가락까지 홍얼거리며 착하게 놀았다.
“나는나는저팔개왜나를싫어하냐아…… 나는나는저팔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장편소설을 무슨 궁리를 써서 쓰겠단다고 덜컥 해버린 출판사와의 약속 때문에 나오지 않는 그놈의 궁리들을 짜내느라 낑낑대는 날들이었다. 한참을 바스락거리던 장난감 소리가 언제부턴가 나지 않는 것을 안 것은 내가 나오지 않는 궁리들을 짜내느라 정신없이 워드의 자판과 씨름을 하다 어쩐지 등 뒤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굽혔던 허리를 펴고 뒤를 돌아다보았을 때였다.
청승스레 노랫가락까지 흥얼대며 놀던 유정이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유정이를 찾으러 아파트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복도에도 아이는 없다. 예의 귀청을 찢는 소음만이 가득할 뿐.
“유정아아!”
겁이 덜컥 나서 아파트 계단을 뛰쳐 내려갔다.
아파트 광장에는 오늘도 경로잔치가 벌어졌다. 낮에는 텅 비는 아파트 광장은 아이고 어른이고 뒹굴고 놀고 싶은 유혹을 일으키기 딱 맞게 드넓고도 드넓은 광장이다. 뛰고 춤추고 놀기 딱 알맞은 그 광장을 내버려 두면 괜히 서운해져서 아파트의 노인들은 밤에 편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로잔치’는 날마다 벌어질 수밖에 없다.
때는 바야흐로 봄날, 햇빛은 나른하게 아스팔트 광장으로 쏟아져 내리고, 어디서 구해 왔는지는 모르지만 ‘전남대학교 민주동문회’ 마크가 찍힌 차일*까지 쳐놓고 노인들의 화전놀이*가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화전놀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편으로 나뉘어 있었고 유정이는 저도 여자라고 할머니들 틈에 끼여 있었다.
술이 오른 할머니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다섯 살배기 유정이는 덩실덩실 춤추는 할머니들 틈에서 천연덕스럽게 나비처럼 하느작 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유정이는 내가 불러도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하느작이는 손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애는 하느작이며 내게 다가왔다. 나비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의 무구한 눈빛이 하느작이며 내게 다가오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오는 것이었다. 나는 유정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햇빛이 내 등 뒤로 따스하게 쏟아져 내리는 봄날이었다.
영구 임대아파트로 이사 온 지난 일 년 동안 내 아이들은 유정이하고 놀았다. 소음 가득한 영구 임대아파트의 복도에서. 유달리 겁이 많고 심약한 내 큰아이는 유아원 빼고는 저희 집 문이 빤히 보이는 복도를 벗어나 놀지 않았으므로, 큰아이보다 어린 유정이와 내 둘째 아이는 큰아이를 따라 복도에서 놀 수밖에 없었다. 유정이는 밤이 되어도 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 아이들하고 잤다. 나는 졸지에 세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여름밤이었다. 세 아이들을 겨우 재워놓고 비도 와서였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해져서 베란다에 나가 흘러간 옛 노래를 소리 죽여 부르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추억 어린 노래를 부를 때면 종종 내가 부르는 내 노래에 내가 위안을 받아오곤 하던 터였다. 아파트 광장에 켜켜이 주차해 있는 화물 트럭들에도 체념인지 애정인지는 모르지만 웬만큼은 관대해질 무렵이었으므로 나는 비를 맞고 서 있는 그것들을 아무런 적대감 없이 바라보며, 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내가 새로 가사를 지어낸 노래를 하냥 흥얼대고 있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화물 트럭들과 리어카들과 포장마차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기이하게도 어떤 따스한 슬픔 같은 것이 내 가슴을 적셔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애들 자니?”
유정이 엄마 현순 씨하고는 이제 언니 동생 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응.”
“애들 자면 나와라 야.”
“왜, 또 장사가 안돼요?”
“장사도 안되고, 비도 오고 싱숭생숭한 게 도저히 그냥은 못 들어가겠다.”
아파트 광장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비는 억수로 쏟아졌다. 택시 속에서 듣는 유행가 같은 찬송가 가락도 그런 날은 마음을 울렸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아·…….
비가 오는 가로수 밑에 서서 현순 씨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야 영업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지하 카페 ’소정’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두웠다. 카페로 들어서자 술 냄새와 습기 냄새가 혼합된 축축한 냄새가 끼쳐왔다. 카페 소정에는 두 여자가 앉아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주인 현순 씨와 그리고 종업원 ‘미스 조’.
술을 마시던 두 여자를 눈매 선해 보이는 생쥐가 의자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스 조는 술집 종업원임에도 불구하고 술은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는 내가 자리에 앉자 곧 일어섰다.
“언니, 나 먼저 갈게. 더 있어봤자 손님도 없을 것 같고.”
“그래라.”
현순 씨는 미스 조에게 택시비를 쥐어주었다. 미스 조는 발등까지 덮는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일어서자 긴 원피스 자락이 커튼처럼 그녀의 아랫도리로 쏟아져 내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걸음을 옮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아챌 수 없었다. 그녀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물결처럼 흘러내린 아름다운 원피스 자락 속에 술픈 이물(異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스 조는 현순 씨의 부축을 받고 카페 계단을 올라갔다.
현순 씨는 미스 조를 보내놓고 돌아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신세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미스 조의 불편한 다리에 대하여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순 씨는 그즈음 목하* 실연의 아픔을 달래느라 몸부림치는 중이었으므로 나는 그날 밤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온갖 위로의 말들을 현순 씨에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순 씨는 가게에 딸린 골방에서 표구가 안 된 그림 한 점을 들고 나왔다. 그림 속의 사내는 실제로 그렇게 생겼는지 일부러 그렇게 그렸는지는 몰라도 굵은 곱술머리에 곧은 콧날을 지닌 ‘유럽풍의 미남형’이었고(그 남자는 그러고 보니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예수의 초상화를 닮은 것 같다) 현순 씨는 자신이 애써 그린 애인의 얼굴을 발기발기 찢다 말고 또다시 통곡했다.
마흔한 살의 여자가, 두 번씩이나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여자가 그날 밤 울었다. 그날 밤 마흔한 살 이혼녀가 울고 서른 살의 어린 이혼녀는 말도 되지 않는 위로의 말들을 찾느라 허둥대었다.
소정 카페를 나와 우리는 빗길을 택시를 타고 달려서 해장국집으로 갔다. 광주공원 광장에 즐비한 포장마차들은 빗속에서 퍽이나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현순 씨는 포장마차들은 턱없이 비싸서 다 먹고 돈 낼 때 속상하므로 머릿고기집으로 가자고 했다. 돼지머리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술청*에서 머릿고기집 주인 아낙도 꼭 그렇게 지그시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현순 씨는 더 이상 통곡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을 배신한 애인 이야기는 뚝 떼어놓고, 우리는 그날 밤 선거 이야기를 하였다.
“하여간에, 김대중이가 당선되어야 해.”
“만약에 김대중 씨가 안 되면 어떡 할 거야.”
“전부 혀 깨물고 죽을 수밖에 없어.”
현순 씨는 빨간 루주가 두텁게 발린 입술을 다소 과격하게 움직여 혀 깨물고 콱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때는 여름이었고, 끝에 어울리지도 않게 도대체 지금 우리가 왜 선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의의를 찾지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다소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생각해도 기묘한 느낌이 들던 밤이었다.
현순 씨의 장사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별로 신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파트 입구의 우편함에서 관리비가 내리 석 달째 밀려 있는 303호의 관리비 청구서를 발견하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이달에도 관리비를 내지 못하면 ‘가옥 명도* 소송세대 유의사항’ 에 나와 있듯이 ‘제 부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되었으므로’ 가옥 명도 청구소송에 제소되든지 아니면 경매 처분에 들어갈 입장에 놓인 것이다.
나의 소설 쓰기 또한 지지부진하였다. 소설도 쓰지 못하고 취직도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나 또한 관리비를 못 내게 될 형편임은 마찬가지였다. 이래저래 우울한 계절, 가을이 영구 임대아파트에 찾아왔다.
어미들의 민생고 문제야 어찌 됐든 아이들은 예의 소음 가득한 복도를 치달리며 기를 쓰고 놀았다.
노인과 모자(母子) 세대가 주를 이룬 아파트였으므로 ‘거택 보호자’인 노인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동(洞) 직원이 아파트 한구석에서 쌀을 나눠주었다. 쌀을 타려는 노인들이 부대자루 하나씩을 들고 엄숙하게 줄을 서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한국전쟁 당시를 찍은 기록사진첩에서 본 것도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그 사진에서의 초조하고 수척한 사람들보다는 영구 임대아파트의 노인들은 좀 더 건강하고 경건한 모습이다. 한순간 나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50년대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노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구호양곡으로 생명을 부지해온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하여 영구 임대아파트의 거택 보호자들에게 50년대와 90년대는 별반 차이 없는 세월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50년대나 90년대를 별반 차이 없이 사는 노인들 곁을 나 또한 엄숙하게 가로질러 갔다. 거택 보호자가 아닌 나는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일용할 양식을 사야 했으므로, 취직을 하기로 마음먹고 지역 정보 신문에서 본 취직자리를 찾아가 보기로 했던 것이다.
가을 햇살이 비끼는 아파트 구석에서 배급 쌀을 타는 노인들을 스쳐가며 나는 내 가계의 엥겔계수*를 계산하였다. 그리고 밀린 광열비(난방비, 도시가스비 등)와 통화 정지 처분이 임박한 전화료와, 체납금과 연체료를 물지 못하여 소송에 들어간다 한들 소송비용조차 아득한 영구 ‘임대아파트 임대료. 목숨 붙이고 산다는 일의 끔찍함.
취직을 하자고 찾아간 곳은 일종의 인력 수급 용역회사였는데, 내 수척한 몰골을 한눈에 훑어본 용역회사 직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줌마, 주식만 먹지 말고 앞으로 부식들을 좀 더 기름기 있는 걸로 섭취 하셔야겠는데요.”
용역회사를 나오며 나는 아닌 게 아니라 지방분이 부족해서였는지, 다리가 좀 휘청였다.
휘청이는 다리를 끌며 그날은 좀 많이 걸어 다녔다. 내 집이 없는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싼값의 주거비용을 치르고 살 수 있다는 영구임대아파트의 임대료도 못 물고 사는 주제에 소음을 탓하다니, 소음타령을 타령으로 끝냈으면 좋으련만 먹혀들지도 못할 서명이네 전화질이네 그 주접을 떨었다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웠고 그리고 서글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미친 듯이 걸어 다녔다. 미친 듯이 걸어 다닌 보람이 있어서였는지, 길거리에서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산동네에서 셋방을 살 때 바로 옆집에 살았었다. 그의 원래 직업은 교사였는데 전교조 일로 해직을 당하고 난 뒤부터는 그야말로 ‘시’만 쓰면서 살고 있었다.
때는 가을이어서였는가. 시인의 이름에 걸맞게 시인은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수심*이 잔뜩 서린 얼굴로 바람 찬 광주천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시인은 나의 행선지를 물었다.
“취직을 하려는데, 몸에 기름기가 없어서 안 된대요.”
“거 골치 아픈데요. 기름기를 채울래도 일단 취직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누가 아니랩니까.”,
“그렇다면 약소하나마, 제가 오늘 약간의 기름기를 보충시켜드리지요.”
휘청이는 다리를 이끌고 미친 듯이 헤매고 돌아다녔는지라 피곤하였고 어느덧 날도 저물었으므로 나는 시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인은 나에게 기름기를 보충시켜주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이인분의 삼겹살을 시켜놓고 자신은 한 점도 먹지 않고 강소주만 들이켰다.
나는 고깃점을 씹으며, 어미를 닮아서 그 또한 기름기라곤 없는 내 아이들이 걸려서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그러나 시인이 하는 말의 허리를 자르고 일어설 수는 없었으므로 죄 없는 고깃점만 질겅질겅 씹었다.
시인은 말했다.
“아줌마가 발표한 글 두 개 있지? 그것도 내리 ㅊ지에다가.”
나는 본능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젠 아줌마도 광주에서 벗어나야 해요. 2, 30년대의 신파가 그보다 낫거든. 한마디로, 아직도 광주? 웬 광주?거든.”
씹고 있는 고깃점 이 단물 빠진 껌처럼 입속을 굴러다녔다.
시인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좀 쓸쓸했다. 사실은 아이들이 저녁도 굶고 기다리고 있을 영구 임대아파트 301호르 당장에 들어가야 옳았다. 그것이 어미 된 자의 도리였다. 아직은 제 손으로 끼니를 챙겨 먹을 줄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굶긴다는 것은 이유야 어떻든 간에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시인과 헤어지고도 저 혼자만 기름기를 채운 부도덕한 어미가 되어 거리를 헤매었다.
가을날 찬바람에 가로수의 잎은 지고 있었다. 다가올 겨울은 무엇으로 양식을 살까. 미물인 산짐승들도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이 가을에 나는 무엇으로 두 아이의 양식을 사고 무엇으로 추위를 막을 의복을 살까.
주부사원 모집의 광고가 붙어 있어서 들어가 본 방직공장은 노동쟁의 중이므로 차후에 소식을 주리라 하였다. 용역 회사의 직원은 기름기를 더 채워서 오라 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밤 나는 다소의 기름기를 채웠으니, 내일 다시 그 용역회사에 가보리라. 그들이 다시 왼 고개를 흔들면 나는 기름기를 채운 내 뱃속을 까발려 보여주어야 하리라. 그러나 뱃속을 열어 보일 방법은 없다. 내 손으로 내 배를 갈라 내가 죽고 난 연후가 아니고는. 그것 참 난감한 일이로구나.
어이, 현순 씨. 당신이라면 대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죽지 않고도 뱃속을 열어내 보일 방법을 말이오.
용왕님 앞의 토끼처럼. 어떻게든 뱃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면 나와 내 아이들이 굶어 죽게 된단 말이오.
“토깽이는 뭐 열어 보이기나 했간디? 다아 지혜로써 목숨들을 연명해가는 것이지.”
현순 씨는 새끼들이 불쌍타며 내게 된호통을 치고 좌우당간 자리에 앉기나 하라고 내 지친 몸을 가게 구석방으로 끌어다 앉혔다.
“웬 거요?”
나는 골방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내 생일이란다. 에미 생일이라고 우리 딸년이 저렇게 솜씨를 부려 놨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유정이 말고 현순 씨에게 큰딸이 있음을 알았다.
“저것이 말도 못하고 듣도 못하지만 손재주하고 인정은 있어서……”
현순 씨는 울먹이고 있었다. 현순 씨의 딸, 잔디는 말하자면 첫 남편에게서 난 아이인 데, 어미 생일이라고 서울서 내려온 모양이었다.
그 아이는 서울에서 장애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현순 씨는 딸을 서울의 장애인 학교에 넣은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학교는 어떻게 하고 왔어?”
“아파서 며칠 쉬기로 했단다.”
잔디는 만성 열병에 시달리는 와중에서도 제 어미의 생일상을 알뜰히 차려주고 영구 임대아파트로 돌아갔다.
“우리 잔디가 어떤 애냐 하면, 내가 말이다, 애비 없는 자식 낳는 게 우세스러워* 오일팔 때 죽은 귀신들 묻힌 산골짝 동네로 들어가지 않았겠니. 애를 방바닥에 쏟아놓고 뭐가 잘못됐는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누워 있는데, 그 애가 우리 잔디가, 이제 열 살 먹은 우리 잔디가 그 험한 산골짝 동네에서 십 리나 떨어진 약국으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중에 약을 사러 간 애라구. 말도 못하고 듣도 못하는 애가 약국 문을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어떻게 어떻게 약을 구해왔는데, 그게 진통제야. 그걸 먹고 나는 그대로 떨어져 버렸는데 한참 만에 눈을 뜨고 보니까, 우리 잔디가 말도 못하고 듣도 못하는 애가 이렇게, 이러어케 귀를 내 배 위에 대고 있는 거야. 뭐를 듣겠다고, 제 에미 살았나 죽었나 볼라고.”
나는 현순 씨에게 홍도야 우지 마라가 따로 없네 얼씨구, 어쩌고 하며 일부러 타박을 주었다. 타박을 주며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애를 쓰는 자신이 영 내가 아닌 것 같아져서 결국에는 울어버렸다.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사연들을 듣고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매번 현순 씨의 딸들에게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곤 한다. 하느작이며 춤을 추던 유정이, 그리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어미의 생일상 하나는 그렇게 멋있을 수 없이 차려낸 잔디. 사람의 신체기능 중 어느 한곳이 이상이 있으면 어느 다른 한곳의 감각은 발달하는지도 모른다. 맹인이 청각이라든가 촉각은 성한 사람 이상이듯이. 그런 의미에서 잔디는 특히 미각이 발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미각과 함께 손재주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니, 오직 제 눈앞에 보이는 손으로 온갖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공작을 하고.
그날도 손님은 들지 않을 모양이었다. 현순 씨는 자신의 장사가 안 되는 건 길목이 안 좋아서도 아니고 제 수완이 나빠서도 아니고, 순전히 서민들의 경제를 파산시킨 정권 때문이라며 술 한잔 들어간 김에 다소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한참 술 마실 시간에 딱하니 영업을 금지시키니, 죽어나가는 건 요런 외진 곳에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지.”
현순 씨는 그녀가 데리고 있는 유일한 종업원인 미스 조를 불렀다. 나는 그제서야 소정 카페의 미스 조를 내가 깜빡 잊고 있었음을 알았다. 미스 조는 술을 못 마실뿐더러 도통 말도 없었다. 나는 현순 씨에게 미스 조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물었다.
“주인장 아줌마, 저렇게 얌전한 사람을 써서 장사 되겠어요?”
미스 조는 커튼이 드리워진 구석 테이블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언젠가 보았던 하얀 원피스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미스 조에게 술을 따랐다. 그녀는 술잔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가 단숨에 들이켰다. 술을 마시고 제 잔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술을 받았다. 이상한 고요로움. 미스 조의 손동작은 섬세하고 고요했다.
참 이상도 하다. 내 감정이 헤퍼서 터무니없는 감동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느끼는 것인가. 나는 미수 조가 따라준 술을 방금 전 미스 조가 내 잔을 받고 그랬듯이 또한 가만히 응시를 해본 뒤에 마셔지는 것이었다.
못난이 생일에 못난이들의 축제도다. 스텝 바이 스텝.
현순 씨가 손가락을 튕겨내며 노랫가락같이 읊조렸다. 현순 씨의 소음 속에서 미스 조의 낮은 노랫소리가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스 조의 노랫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현순 씨는 끊임없이 한옆에서 자작*을 하며 떠들어 대었다.
……그러니까 이 가게를 처분하고 단란주점이라는 것을 해봄이 어떻겠음? 에또 그러니까, 한 달에 보증금 백에 12만 원씩이면 단란주점을 단란허니 꾸릴 수는 없단 계산이란 말임?
지혜구나. 죽지 않고도 뱃속을 열어 보이는 방법. 목숨을 붙여나갈 수 있는 지혜. 한참을 혼잣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던 현순 씨가 느닷없이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갑자기 쏟아지는 고음이었으므로 미스 조와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나 금방 무슨 노래인지를 알았으므로 따라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세 여자는 발까지 쾅쾅 굴렀다. 현순 씨는 발을 구르고 팔을 휘둘렀다. 노래가 끊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듯 행진곡이 끝나고 나면 너도나도 침울해질 것을 미리 염려하여 우리는 되도록이면 고성방가를 하였다.
“웬 흘러간 노래여?”
고성방가를 한 덕분에 누가 들어온 것도 몰랐다. 우리는 부르던 노래를 딱 멈추고 카페의 입구로 일제히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그중에도 유독 현순 씨의 눈빛은 먹이를 발견한 고양이의 것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참, 내 정신 좀 봐. 장사할 생각은 않고. 딸년 덕분에 오랜만에 스트레스만 풀고 앉았었네. 현순 씨는 순식간에 말끔한 카페 주인 본연의 얼굴빛으로 돌아갔다. 미스 조도 굼뜨게 일어섰다.
축제는 끝났다. 나는 이제 내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탈탈 굶었을 아이들이 불쌍해 나는 또 울컥 목이 메었고 목이 메므로 다리가 휘청거렸다. 내 죄를 사하여주소서. 주신(酒神)이여.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한 잔의 술을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 안은 시끄러웠다. 늘 있는 일이겠거니 하고 나는 현순 씨에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작별 인사를 했다.
“봐요. 아줌마, 심야 영업은 불법이란 말이오.”
“불법 좋아하네. 동생들하고 생일 파티 한 것도 불법이여?”
“어이, 지금 나가려는 사람 내려와.”
사내는 비위 틀어지는 반말지거리를 썼다. 나는 올라가려던 계단에서 돌아섰다.
“지금이 새벽 한 시란 말요. 불법 영업을 하려면 간판불 끄고 샤타내리고, 커튼 치고 소리 죽여 하든지, 뭔 배짱이요들?”
들어온 사내는 손님이 아니고 심야 영업 단속을 나온 형사였고 현순 씨와 미스 조와 나는 셋이 한 오랏줄에 묶일 판이 된 것이다.
심야 영업이 아니었다고 증명해 보일 어떤 증거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판이라 나는 이제 불쌍한 새끼들한테로 가기는 다 틀렸구나고 생각하며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사가 먼저 앞장을 서며 따라오라고 말했다.
“어이, 당신도 같이 가줘야겠어.”
형사는 현순 씨와 미스 조에게는 말을 높이면서 유독 나에게만은 반말을 썼다. 나는 불법 영업을 하지 않았는데도(영업을 하려 했대도 손님은 없었을 것이다) 새벽까지 불을 켜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법을 어긴 죄인이 되어야 하는 현순 씨의 상황도 화가 났지만 형사가 꼬박꼬박 나에게만 반말을 쓰는 데도 화가 났다. 그래서 일어서지 않았다. 형사의 미간에 심지가 돋치고 있었다. 현순 씨가 변명조로 말했다.
“내 동생인데, 내 생일이라고 축하 인사차 온 거라구.”
형사가 내게 했던 것과 반대로 현순 씨는 형사에게 반말을 쓰고 있었다.
“동생이란 증거있소?”
“동생이라면 동생이지. 그것도 소설가 동생이라구.”
형사가 쌍심지 돋은 미간에 이번에는 조롱기를 담뿍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쓴 소설 제목이나 한번 읊어보시지?”
늘 침을 뱉고 싶은 순간을 참아내며 살아오는 데는 이골이 나 있는 지라 나는 형사의 조롱기 어린 미간을 여유 있는 미소까지 띠고 가만히 맞받아 보았다. 이번에도 현순 씨가 나서서 동생을 변호했다.
“위대한 대로망이지, 그런 샤쓰빤쓰하며. ‘사랑의 종말’이라고 요번에 출간될 거야.”
실은 현순 씨는 내가 무슨 글인가는 몰라도 글을 좀 끄적거리는 것으로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쓴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되나캐나* 주워섬길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현순 씨의 변호가 효험이 있었던지 형사의 미간에 돋쳐 있던 심지가 풀어지면서 현순 씨에게 협상의 제스처를 보낼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사랑의 종말’ 작가는 이제 쭈그리고 있던 계단에서 일어서서 카페 ‘소정’의 출입문을 나섰다.
내가 출입문을 나섬과 동시에 지하 카페의 간판불이 내려졌다. 바야흐로 심야 영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현순 씨가 쥐여준 택시요금을 확인한 뒤에 멀리서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내 빈곤한 팔뚝을 번쩍 들고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목이 말랐다. 속 쓰림과 갈증이 한꺼번에 덮쳐와 죽을 것만 같았다. 통증과 갈증을 참을 수 없어 불을 켰다. 오늘은 네 명의 아이가 내 집에서 자고 있었다. 현순 씨의 큰딸 잔디와 그 밑으로 조무래기들 셋. 잔디를 정점으로 아이들은 구도도 정교한 대각선을 이루어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널브러져(자고 있다기보다 널브러져 있다는 표현이 적합할 그런 모습으로) 있었다. 어미는 있되 바람난 어미의 자식들 모양. 쓰린 속에서 나를 향한 욕지기*가 마른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나는 아이들의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대충 일별하고* 욕설 서너 마디도 주절주절 뱉어내 가며 부엌이 딸린 복도로 나가 물주전자를 기세도 좋게 기울였다. 기세 좋게 기울인 보람도 없이 물주전자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에도 물은 없었다. 끓인 물은 아무데도 없어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상했다. 수도꼭지에 힘이 없다. 가르륵가르륵, 수도꼭지 속에서 가래 끓는 소리만 난다. 어디서 수도공사를 하나? 아침까지 나오던 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온수가 나오는 쪽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온수는 콸콸 쏟아진다. 할 수 없다. 나는 김이 펄펄 오르는 뜨거운 수돗물을 마셨다. ㄸ거운 물도 물은 물이니까.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고 나니, 갈증은 여전하지만 속 쓰림은 좀 나아진 듯했다.
제한 급수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가뭄이라 하였다. 수원지(水源池)의 물이 모자라서 격일제 급수를 하는데, 이상하게 뜨거운 물은 계속 나왔다.
아래층의 물 쏟아지는 소리도 격일제 급수가 시작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찬물이 나오지 않는 날은 물소리가 나지 않다가 찬물이 나오는 날엔 여지없이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밤이고 낮이고 들려왔다. 물소리는 바로 201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소리 자체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참기로 했다. 차 소리도 그랬지 않은가. 참고 살다 보면 난청이 되든 어쩌든 그래도 어떻게 살아지던 것이었으므로 물소리도 마찬가지라 여겼다. 물이 나오지 않는 날 주인이 깜박 잊고 수도꼭지를 열어둔 채 어디 외출을 한 모양이다. 이제 곧 집주인이 돌아오겠지. 하루만 참으면 될 것을. 날마다가 하루만 참으면 되겠지였다. 그러다가 한 달이 갔다.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를 하루건너 하루씩 보름을 들은 것이다.
가을은 짧아, 겨울이 왔다. 물소리는 계절이 바뀌어도 끊이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했다. 진작 신고하지 못한 것을 입술을 깨물어 후회 하며 급박한 어조로.
“물소리가 계속 나거든요. 소리도 소리지만 물이 아까워서요.”
내 입에서는 차마 ‘혹시, 속에 무슨 사고가 나 있는지도 모르거든요’ 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설마, 그런 사고가 나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관리사무소 측의 대답은 내 급박한 어조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느긋하였다.
“문이 잠겨 있으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거든요. 나중에 집주인 오면 크게 혼내주십시오.”
혼을 내주라니. 그러면 나는 아래층 주인이 돌아와서 물을 끌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혼내줄 일만 남았는가. 아래층 201호 옆집 202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201호에 사는 사람 어디 가신 줄 모르세요?”
“그러고 보니, 어째 요새는 토옹 뵈지를 않네요.”
“혼자 사시는 분인가 부죠?”
“예에, 거택 보호자 할머니예요.”
202호 아줌마의 거택 보호 할머니라는 말이 내 머리끝을 쭈뼛 잡아당겼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형사처럼 물었다.
“혹시 할머니가 어디 갈 만한 데는 없나요?”
“글세, 딸이 하나 어디 살고 있다던데 거기 갔나. 아니 근데 왜 그러시우?”
“요새 물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잖아요. 근데 물 나오는 날에 201호에서 물소리가 그치지 않거든요.”
“위 층에 살우?”
“예에.”
“당신이 캐고 다닐 일이 아니지. 관리사무소에 신골 하시구랴.”
“예에.”
나는 비루먹은* 강아지 모양 어깨를 움츠리고 내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202호 아줌마 말대로 관리사무소에 재차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처음처럼 어쩔 수 없으니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내주자는 것이었다. 화가 났지만 그럽시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이 죽어 있든지 말든지 당신들이 알 바 아니란 말이지.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거택 보호 노인이 죽다. 죽은 지 몇 달 만에 하냥 쏟아지는 물소리에 의심을 품은 위층 여자에 의해 발견되다.
물소리가 시끄럽다. 그리고 아깝다. 이 가뭄에 낭비되는 물들이. 그 말까지는 좔좔 나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그 말, 혹시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는 이상하게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현순 씨는 내가 물소리와 싸우는 그동안 감방엘 들어갔다. 그것도 빚만 몽땅 지고서. 어느 날 젊고 예쁜 계집아이 둘이 현순 씨네 카페에서 일을 하겠다고 왔더라 했다. 병든 아버지 약값과 동생들 학비를 대야 한다며. 현순 씨는 그러냐고, 갸륵도 하다고 또 솔직히 장사 욕심도 나서 그 애들이 요구하는 목돈을 일수*를 내서 주고 일을 시켰는데 바로 그날 단속에 걸렸다는 것이다. 일숫돈을 챙긴 계집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순 씨만 미성년자를 고용한 악덕 업주가 되어 쇠고랑을 찬 것이다.
면회를 가서 퍼런 죄수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은 현순 씨한테, 그녀의 말대로 ‘그놈의 미(미성년자) 자가 들어 있는 줄을 몰랐던 죄로 빚지고, 장사 못하고, 몸 버리고, 우세 사고, 전과자가 되어버린’ 현순 씨한테 나는 한가하게 물소리 타령을 하였다.
“우리 미스 조는 어찌 지내고 있든?”
그제서야 나는 미스 조를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겠지. 언니보다야 더하겠수?”
“아니야, 엊그저께 걔 애인이 죽었거든. 면회 와서 울더라야.”
“애인이 죽었는데, 그럼 울지 안 울어요? 그러다가 또 새 애인 사귀는 거고.”
“그랬으면 오죽 다행이겠니. 그 애는 그게 아니야.”
“그럼 뭐란 말이우?”:
“그 애 애인이 오일팔 때 시민군이었대. 감옥 나와 십 년을 시난고난* 앓다 요번에 제명을 다 못 살고 죽은 거라. 914호에 산다. 내 대신 한 번 찾아가서 위로나 해줘.”
우리는 미스 조의 죽은 애인 얘기를 하느라고 정작 자신들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 미스 조 다리도 그해 오월에 다친 거다요?”
“아니, 사고로 그랬다더라. 열차 사고가 나서 양친 다 잃고 저는 다리 한쪽 나가고.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철도변에서 살았던가 보더라. 경비 영감이 소개시켜줄 때만 해도 신찮더니, 그래도 애가 지 딴에는 살라고 버둥대는 것이 안타까워 쓰기는 썼는데 영 마음이 아퍼 야. 애인을 사귔는데 그 애인도 심신이 그리 건강허지는 않았던가 보더라. 결혼을 하기에는 또 미스 조가 책임져야 할 동생이 둘이나 되고.”
나는 현순 씨가 나올 때까지 유정이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현순 씨 말로는 다섯 살이라는 유정이는 일곱 살인 내 딸보다 몸집이 컸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나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딸에게 취학통지서가 왔다. 면회를 가서 취학통지서 얘기를 꺼냈다. 현순 씨는 그제야 유정이의 나이를 실토했다. 유정 이는 올해 학교에 들어가야할 나이였다.
“어떡 허지? 호적에도 안 올렸는데.”
“성은 누구 성으로 할 거야?”
“지 애비 성이 박가이긴 하지만 종적을 알 수 없으니 할 수 없는 일, 내 성을 따를 수밖에. 아이고야, 아다리*가 딱 들어맞아 분다. 우리 잔디, 애비도 김가, 그래서 우리 잔디도 김가. 나도 김가, 그래서 우리 유정이년도 김 가.”
현순 씨는 발까지 굴러가며 좋아라 했다.
요번 참에 성도 박가가 김가가 되었으니, 일습*으로 이름도 새것으로 짓자 하여 즉석에서 유정이의 호적에 올릴 성과 이름을 지어냈다. 김향아.
향아, 향항. 교도소를 나와 마침 ‘향항’이란 선술집 간판이 눈에 띄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속이 쓰린지 마음이 아픈지 분간이 안 되었지만 나는 좌우간 술을 마셔야만 답답한 속이 풀릴 것 같아 막걸리 두 병을 들입다 마셔버렸다. 그래서 나는 실지로 목로주점 향항에서 향항을 보았다. 향항의 부두에서 향아가 하냥 웃고 서 있었다.
나는 그다음 날 내 손으로 작성한 현순 씨 이름의 위임장을 들고 동회로 가서 벌금 오만 원을 물고 김향아를 주민등록시켰다.
그러노라고 나는 또 미스 조를 깜박 잊고 말았다. 잊자고 해서 잊은 건 아니고 지척에 있는 미스 조를 찾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었다. 발을 삐었던 것이다. 발을 삐어서 이틀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중이었다.
발은 왜 삐었는고 하니, 시끄러웠다. 물소리가. 시끄러운 차 소리를 견디며 살고 있듯이 물소리도 견디며 살 수 있다고 이를 악물었다. 소리쯤은 견디며 살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이 가뭄에 하수구 속으로 속절없이 버려지는 물이라니. 그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쏟아져 내린 양만 해도 아파트 전체가 하루 쓰는 양보다 많으면 많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물이 나오는 날은 여지없이 밤이고 낮이고 한시도 쉬지 않고 쏟아졌으니까.
진정 물이 아까워서인가.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2층으로 들어가려는 이유는…… 그랬다. 거기에는 노인이 죽어 있을 것이었다.
노인은 지금쯤 썩어서 형체조차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주택공사 공무원(공무원인가 공무원이 아닌가?)들에게 할머니의 처참한 주검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었다. 이보세요, 이래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당신들은 부모도 없습니까? 노인이 이렇게 죽어 있는데, 어쩔 수 없으니 기다려보자구요? 사람 죽일 양반들 같으니라구.
나는 베란다의 철책에다 로프를 묶었다. 현관문이 잠겼으니, 베란다의 새시 문을 통해 들어갈 생각이었다. 창문이 열리지 않으면 깨고라도 들어가 볼 참이었다. 들어가서 나는 할머니의 시체를 관리사무소의 무정한 공무원들에게 보여줄 것이었다. 격렬한 항의와 함께. 이러고도 당신들이 아파트 관리비를 챙길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이 죽어나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관리비가 웬 말입니까? 향항에서 술을 마셔서였는가. 술을 마신 혼미한 내 의식이 아래층으로 로프를 타고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게 내 가라앉은 도덕성을 자극했다. 세상 사람들 이래서는 안 된다구요. 옆집 에 사람이 죽어나는데, 누구 하나 알려고 들지 않는 이런 삭막한 세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구요.
아래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어이, 당신 도둑이야?”
나는 엉겁결에 로프를 놓아버렸고 잔디밭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날 밤 나는 사람 없는 2층을 털려던 도둑까지는 안 되었어도 로프 도둑까지는 되었다. 왜냐하면 로프는 내가 2층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아파트 지하실에서 관리실의 허락도 없이 가져왔던 것이기 때문에.
다친 첫날은 그런대로 견딜 만하여 김향아 주민등록도 시키러 가기도 했는데, 주민등록시키고 난 이튿날부터 어디가 잘못됐는지 발목이 시큰거리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연이틀을 누워버렸다.
사람이 누워 있으면 잠이 한도 끝도 없이 왔다. 황소처럼 미련스럽게, 무작정 부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한숨 자고 나면 나도 모르는 새에 빠져 있겠지. 잠을 잤다. 그리고 눈을 떴다.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부기는 그대로였다. 실망을 하려다가 이상하게 실망을 하지 않아도 될 어떤 변화가 있음을 알아챘다. 물소리. 물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한 시. 물이 나올 시간인데도 물소리는 나지 않는 것이다. 역시 발목을 삔 보람이 있었구나. 발이 아파 밖으로는 못 나가고 베란다로 나가 2층의 창묻이 열려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열려 있으면 아마 할머니의 시체를 발견했을 터이다. 베란다로 나가려고 내가 막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딩동댕, 인터폰이 울렸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신원을 확인해주십시오.”
나는 발목 아픈 것까지도 다 잊어버렸다. 정신없이 2층으로 내려갔다. 드디어 2층 201호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2층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뒤편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바람이 거셌다.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 덜 녹아 아파트 뒤편 응달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황량한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시체는 응달에서 퍼렇게 얼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때 보았다. 시신의 아랫도리를 적신 물기가 플라스틱 다리 위에서 얼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시체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경찰차가 삐용거리며 달려왔고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영구 임대아파트 뒤꼍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싸늘한 응달의 시멘트 바닥 위에 미스 조는 퍼렇게 얼어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만큼 비껴 서서 시체를 건너다봤다. 죽음과 삶의 거리가 꼭 그만큼인 듯. 죽은 시신이 얼어들듯 산 사람들도 얼어가고 있었다.
미스 조가 죽은 며칠 뒤 나는 201호 할머니를 보았다. 그것도 우연히. 일 층 현관을 들어서는데, 할머니가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선 채 경비원으로부터 된타박을 듣고 서 있었다.
“이봐요, 할머니. 어데를 가면 간다고 말을 하든지, 말을 안 하려면 집단속이나 잘하고 다니시든지. 할머니 집에서 물이 계속 쏟아져서 민방공 훈련허드키 사다리까지 동원했단 말이요.”
할머니는 중죄나 저지른 사람처럼 하냥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제가 들어드리지요, 할머니 .”
할머니가 웃었다. 합죽하게.
“어디 멀리 갔다 오시는 모양이지요?”
“딸년이 애를 났거든. 백일까장 세고 온다우.”
할머니는 201호 문 앞에 멈추었다.
나는 말없이 돌아섰다. 뒤에서 할머니가 호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기 엄마 고맙소.”
돌아서 오는 내 눈에 이상하게 그럴 이유도 없건만 뜨거운 것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짐까지 들어다준 여자가 왜 느닷없이 우는지 영문을 모른 채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름 듯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랐다. 내 집과 현순 씨의 집이 있는 3층을 지나 자꾸자꾸 올라갔다. 이제서야 나는 미스 조가 살았던 9층에 올라가 볼 생각을 먹은 것이다. 9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소음의 공명이 가득하였다. 늘 그랬듯이, 늘 참고 살아왔듯이, 소음이 대수랴. 나는 소음을 뚫고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눈물은 어언 말라 있었다.
914호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래서 913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고개를 내민 사람은 키가 몹시 작은 사람인 게라고만 여겼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913호 사람은 아랫도리가 뭉턱 잘려나가고 없었다. 그는 썰매를 타듯 제 남은 몸뚱이를 양손으로 밀고 와서 문을 열었던 것이다.
“옆집엔 아무도 없습니까?”
“죽은 아가씨의 동생들이 있어요. 밤에 올 거예요.”
913호의 남자는 현관문의 손잡이가 닿지 않아서인지 문 따개로 쓰는 듯한 둥근 쇠막대를 만지작거렸다. 속도 모르고 초인종을 누른 것이 한량없이 죄송스러워져서 나는 허둥허둥 문을 닫아주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에 남자가 꾸벅 인사하였고 그리고 나는 남자가 다시 제 남은 몸뚱이를 밀고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실 평수 일곱 평 반의 삶의 공간 속으로 제 온몸을 밀고 들어가는 소리.
미스 조가 없는 미스 조 집의 굳게 닫힌 문과 쇠막대로 문을 열고 닫고 하는 옆집의 닫힌 문 앞 복도에 서서 나는 저 아래 찻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미스 조가 이렇게 서서 제가 뛰어내릴 곳이라고 미리 봐두었을 것이 틀림없는 시멘트 바닥. 고소공포증인가. 어지러웠다. 차 소리하고는 구별되는 이명*도 들렸다. 미스 조의 목소리. 나는 확실하게 미스 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느꼈다. 그녀의 딱딱한 플라스틱 다리가 내 등을 툭툭 차고 있는 것을. 죄가 있다면 살아 있다는 것이야. 살아남음이 죄라구. 싸늘한 추위가 내 등 뒤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복도 난간을 붙잡았다. 더 이상의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그때, 913호의 문이 왈카닥 열리며 거기 앉은뱅이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었다. 아니 그는 서 있었다. 방바닥을 짚은 팔뚝에 푸른 힘줄이 파득거렸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내게 소리쳤다.
“못난 짓거리 하지 말아요! 나도 살아요. 나 같은 인간도 산다구요.”
나는 쫓기듯 9층 복도를 내려왔다. 뒤에서 앉은뱅이 남자가 계속 소리 질렀다. 내려가, 한정 없이 내려가. 내려가서 살라구. 기를 쓰고 살라구. 밑바닥을 박박 기어서라도 살아내라구.
현순 씨를 보고 왔다. 하혈이 계속 쏟아진다고 해서 두툼한 생리대도 차입해주었다. 김향아 주민등록시킨 것도 보고하였고 미스 조의 죽음도 알렸다. 현순 씨는 충격을 받거나 깊은 슬픔을 느낄 때는 늘 하는 버릇인 듯 입술 끝을 일그러뜨리고 그렇잖아도 큰 눈을 땡그랗게 치켜뜨며 말했다.
“아이엔진 거라.”
“뭐라고?”
“현재 진행형이라구.”
“뭐가?”
“그만 얘기하고 그만 덮어두고 그만 울고 그만 그만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역사란 그런 거야. 갑오년이 따로 없고 기미년이 따로 없다구. 그러드키 오일팔이 따로 있는 게 아냐. 기미년의 삼일운동은 임신년에도 삼일운동으로 이어지듯이 경신년의 오일팔은 계유년의 오일팔로 새로 시작되는 거라구. 역사는 귀신이여. 귀신은 상관있는 놈도 물고 늘어지지만 상관있는 놈하고 끈이 맺어진 상관없는 놈들도 끌고 가거든. 그것이 바로 역사 귀신이거든. 상관없는 년이 어쩌다 상관있는 놈을 만나 덜커덕 물린 게라고. 그 귀신한테, 배곯은 귀신한테 잡아먹힌 거거든. 거 멋이냐, 역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거거든. 그런 거거든.”
현순 씨는 계속계속 거거든, 거거든 하고 말했다. 현순 씨의 꼴에 어울리지 않는 ‘……거거든’ 소리가 슬며시 지겨워져서 나는 냅다 큰 소리를 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미스 조는 김대중이 대통령 안 되었다고 죽은 거야. 단순한 걸 왜 그리 복잡하게 얘기해. 미성년자 고용한 악덕업주 주제에.”
나는 퍼런 죄수복을 입은 현순 씨 앞에서 터무니없이 씨근덕거렸다. 내 입속에서는 아직도 나오지 못한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미성년자 고용한 악덕업주 주제에 역사를 입에 올리지 말라구. 그런 식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말라구. 당신에게는 역사를 운위할* 자격이 없어. 왜 죽음으로 시작되어야 해? 역사가 이어지는 건 살기 때문이야. 죽어서는 안 돼. 죽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이을 수도 없는 거야.’
터무니없이 큰 소리를 내는 나에게 현순 씨는 화내지 않았다. 화낼 시간도 없었다. 현순 씨가 충분히 화낼 시간이 없는 것이 화가 났고 이유 없이 화가 나는 자신이 경멸스러워져서 나는 또 화가 났다. 현순 씨는 면회 시간에 쫓기며 재빨리 말했다.
“김대중이가 지 할애비냐?”
“언니가 그랬잖아. 김대중 대통령 안 되면 모두들 혀 깨물고 죽어야 한다고.”
“옘병. 죽을 각오로 살자 그거여. 누구 좋으라고 죽냐 죽기를.”
이제 또다시 봄이 왔다. 영구 임대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귀청을 찢다 못해 뇌수까지 파고드는 듯한 소음은 여전하고 현순 씨는 벌금형이 떨어지긴 했지만 벌금 낼 돈이 없어 아직 징역을 살고 가뭄은 해갈되지 않고 있다. 관리실에 연결된 인터폰이 울린다.
“광주시의 식수 사정이 여의치 못하야 격일제 급수를 삼일제로 실시코자 하오니 이 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서둘러 고무통에 물을 받는다. 물을 한 움큼 떠서 입속으로 흘려 넣는다. 이상하다. 물을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인다. 나는 아예 고무통 속에다 얼굴을 처박는다. 그리고 허겁지겁 마신다. 찬물 속에 내 눈에서 나오는 미적지근한 액체가 섞인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나는 물속에 처넣은 얼굴을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들어온다.
“엄마, 세수를 거기다 하면 어떡해. 삼 일 동안 마실 물인데.”
“그래. 미안해.”
고개를 든다. 눈물 섞인 물을 아이들에게 먹일 순 없다. 반쯤 찬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받는다. 그러나 이미 수도꼭지에서는 가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다시 물을 받으려는 순간에 물은 끊어지고 만 것이다. 나는 또다시 내 딸에게 된호통을 맞는다.
“물을 버리면 어떡해. 거봐, 인제 하나도 안 나오잖아.”
아이는 거의 울상이다. 울상인 아이를 달래느라고 나는 또 허둥댄다.
아이들은 허등대는 나를 남겨둔 채 복도로 달려 나간다. 소음 가득한 복도에서 이옥고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아파트 광장에는 햇살이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고 그 햇살 아래 올해도 어김없이 영구 임대아파트의 거택 보호자들이 모조리 나와 화전놀이를 벌이고 있다.
나도 저 속에 들어가 춤이라도 추어볼거나, 때는 바야흐로 만화방창* 호시절, 문민시대의 위대한 신한국이 졀리지 않았는가, 열리지 않았는가 하고 내려갈 참인데, 아파트 광장으로 육중한 컨테이너 트럭이 질주해 와 화전놀이를 벌이던 거택 보흐자들이 혼비백산하는* 것이 보였다.
『창작과비평』 80호(1993년 여름); 『피어라 수선화』 (창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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