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석유화학 사업재편·산단 안전까지…여수상의 역할 변화 추적
-“기업이 무너지면 골목상권까지 무너진다”…한문선이 말하는 여수경제의 다음 10년
“여수국가산단 기업이 어려워지면 그 회사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협력업체 일감이 줄고 근로자가 떠나고, 결국 음식점과 숙박업, 택시, 골목상권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한문선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년 반 동안 줄기차게 강조해 온 말이다.
실제 지표도 위기를 보여준다. 여수시 지방세 수입은 2023년 약 4천억원에서 2024년 2,927억원으로 1천억원 넘게 감소했다. 여수산단 고용인원도 1년 새 약 4천명 줄었고, 플랜트건설 노동자는 2024년 8,742명에서 올해 2월 1,634명으로 81.3% 급감했다.
한 회장이 석유화학 기업 지원을 단순한 ‘대기업 지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한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현안 중 하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다. 2024년 10월 산업용 전기요금이 10.2% 인상되자 여수상의는 5일 만에 정부와 국회에 인상 철회를 건의한 뒤 약 2년간 요금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최근 정부가 남부권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8원/kWh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현실화될 경우 여수산단은 연간 약 2천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수상의는 분석하고 있다.
한 회장은 “18원이라는 숫자를 단순한 전기료 할인으로 보지 않는다”며 “기업이 앞으로 어디에 설비를 투자하고 어느 지역에 신규투자를 할 것인지를 움직일 수 있는 ‘가격 신호’”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기요금 인하만으로 산단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중동의 대규모 증설과 공급과잉에 대응하려면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친환경 화학산업으로의 전환과 사업재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취임 직후부터 석유화학 위기가 기업을 넘어 여수경제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정부와 정치권에 계속 알렸습니다. 이후 특별법과 산업·고용위기 대응, NCC 사업재편 등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산단을 지키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라 일자리와 지역경제 생태계를 지키는 일입니다”
한 회장은 울산에는 이미 구축됐고 대산에도 도입이 추진되는 대용량포방사시스템이 국내 최대 석유화학산단인 여수에는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소방당국의 요청을 받은 뒤 정부와 기획재정부 등을 상대로 필요성을 건의했고, 결국 총 220억원의 국비가 반영돼 2027년 구축을 목표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여수산단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호남권에서 대형 화재나 자연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지난 2년 반의 또 다른 변화로 상의의 체질 개선을 꼽았다. 핵심은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이다.
“상의 회장직이 개인 사업을 넓히거나 회원사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상의의 자산은 회원사를 위해 쓰여야 합니다”
기업인들의 친목단체를 넘어 지역 경제현안을 먼저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조직으로 상의의 역할을 바꾸는 데도 힘을 쏟았다고 했다.
다음 목표는 상의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젊은 기업인과 지역기업 2세 경영인들이 상담과 회의, 사무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기업인 라운지’를 구상하고 있다.
“공항의 라운지처럼 젊은 기업인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사람을 만나고 비즈니스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역기업의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실제 젊은 기업인들의 MBA 진학을 권하고 추천서를 써주는 한편, 석유화학산업에 머물지 않고 반도체 등 새로운 산업을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여수산단 기업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정비·운전·설비 기술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첨단산업 공급망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찾아보자는 구상이다.
“부모 세대가 국가산단에서 회사를 일으켰다면 다음 세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사업해야 합니다. 그 친구들이 새로운 시장을 찾도록 상의가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전남광주 행정통합 이후 여수의 위치에 대해서도 분명한 그림을 제시했다.
광주가 AI와 연구개발, 첨단산업의 거점 역할을 한다면 여수·광양만권은 국가산단과 항만, 에너지 인프라를 기반으로 생산과 에너지 공급, 수출을 담당하는 실물경제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행정통합이 여수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돼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여수를 남부권 산업·에너지·항만경제의 중심지로 성장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하나의 성장엔진을 더했다. 바로 해양관광이다.
한 회장은 2026여수세계섬박람회를 계기로 365개 섬과 바다, 세계박람회장, 해양레저, 음식과 역사·문화를 하나의 관광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박람회 기간 관람객 숫자가 아니다. 관광객이 여수에 오래 머물고 숙박과 음식, 쇼핑으로 실제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 섬박람회의 진짜 유산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회장에게 10년 뒤 여수를 물었다.
답은 ‘산업도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산업도시를 바꾸는 것’이었다.
“2036년 여수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도시에서 대한민국 산업전환을 선도하는 도시로 바뀌어 있어야 합니다”
석유화학은 고부가·친환경 산업으로 전환되고 새로운 첨단산업과 해양관광이 함께 성장하는 도시, 그리고 떠났던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다시 돌아오는 여수가 한 회장이 그리는 미래다.
그러면서 자신의 임기가 끝난 뒤 받고 싶은 평가를 하나 꼽았다.
“여수산단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상공회의소가 기업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했고, 여수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제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들었으면 합니다”
한 회장은 잠시 말을 멈춘 뒤 덧붙였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최향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