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7구간 : 비득재에서 샘내고개까지
언제 : 병신년(16년) 해오름달 스물사흘 흙날 누구랑 : 나홀로 어딜 : 비득재 ~ 축석령 ~ 오리동고개 ~ 태미산 ~ 샘내고개 정맥 18.3km(접속구간 미포함)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871 에 있습니다 *********
요 몇년동안 계절이 철없는 행동으로 겨울도 겨울답지 않게 지나가곤 했고 또 그렇게 올해도 지나가나 했는데 올 해는 뭔가 보여주려는 듯 소한이 지나고 나니 오랜만에 겨울다운 추위로 이름에 걸맞는 대한의 위세를 실감한다 그간 소한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매년 당하고만 살아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이름값을 한다 거기에 눈까지 남부지방을 강타하여 길까지 막아서고... 이제 양주땅에서 맞이하게 될 한북정맥은 어떤 모습일까?
한북정맥 7구간 비득재에서 샘내고개까지 - 참고용
앞 구간 명덕삼거리 직전 425봉에서 한북정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가평군과의 이별과 동시에 포천의 속살로 들어와 축석령 직전 귀락터널에서 이젠 의정부와 포천이 만나 축석령을 넘고 포천과의 이별을 하기 위한 한북왕방지맥 분기봉에서 양주시까지 함께하니 삼군봉을 이루고 화합하고 나서 포천과 이별하고 양주와 의정부의 경계를 따르다 천보산갈림길 삼거리에서 의정부시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양주시속으로 들어간다
07:30 이제 한북정맥도 몇구간 남지 않았는지 이제 버스 출발지를 동서울에서 의정부역으로...
의정부역을 나와 지하도를 이용 6-2번 출구로 나왔는데 도로 반대편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21번 버스로 이동한다
07:36 환화생명입구 버스정류장에서 21번 버스가 정확히 9분후에 도착
08:20 직동3리에 도착. 반대편 정류장이 보이면 편의점 사이로 올라가게 된다
비득재로 올라가는 길 - 곧은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고든골 또는 직골, 직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08:43 23분 걸려 비득재 도착 - 올라오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상가들이 인상깊었는데 비득재에도...
비득재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와 직동리 고모리로 통하는 장령(長嶺)의 모습이 흡사 비둘기가 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비득재’라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구현(鳩峴)이라고 한다. 비득재는 삼국 시대 군사적 요충지로 북쪽[철원 방면]에서 한강으로 진입할 때 왕숙천 방향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이다. 때문에 비득재가 있는 노고산에는 삼국 시대부터 산성[고모리 산성]을 축조하여 북쪽의 적을 방비하였다. 현재 비득재가 있는 소흘읍 고모리에는 고모 저수지를 중심으로 많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득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바로 위에 있는 철탑을 보면서 작은 사다리로 한북정맥은 시작되고
고모리 산성의 흔적인 듯
통신탑이 있는 노고산(老姑山380m) 정상
고모리古毛里 산성 시 대 삼국시대로 추정 소흘읍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고모의의미는 새가 높은곳에서 춤을 추다는 의미인 고무(高舞)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새가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포천 고모리 산성(抱川古毛里山城)이 있는 노고산[386m] 일대는 예로부터 서울에서 관북 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비득재는 북쪽의 철원지역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남.북을 진출하려는 세력은 모두 비득재를 통해햐 했기에 이 같은 교통 요지를 방어할 목적으로 고모리 산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의정부에서 축석령(祝石嶺)을 넘으면 동쪽과 서쪽으로 산맥이 연결되어 있고, 그 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포천 평야가 자리 잡고 있는데, 노고산은 남쪽에서 포천 평야로 들어가는 입구 길목에 놓여 있다. 그리고 노고산의 오른쪽으로는 비득재[鳩峴] 고개를 따라 광릉을 거쳐 진접을 지나는 국도 47호선과 연결된다 고모리 산성은 이 같은 교통 요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축조된 성으로 추정된다. 국도 47호선은 조선 시대에는 서울에서 관북 지방으로 가는 중심 교통로로 국도 43호선의 축석령 국도보다 더 오래되고 중요한 남북 통로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천 고모리 산성 [抱川 古毛里 山城]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남양주와 의정부의 경계를 이루며 잠시 후 만나게 될 수락지맥 줄기인 용암산과 그 뒤로 소리봉이 전망된다
지도에는 임도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지금은 포장이 되어 있다 - 양쪽이 모두 아곡리라 이정표가 있다
천주교 공원묘지 직전 258.2봉에서 원 한북정맥 마루금인 부대초소가 조망되지만
천주교 공원묘지를 지나고
천주교 공원묘지(무봉리 묘지) 무봉리는 앞뒤로 큰 봉우리가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거친봉이 또는 무봉이라 하였다. 충목단은 이내리라고도 하며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사육신(死六臣) 유응부(兪應孚)와 한남군(漢南君) 이어(李岾), 병사 양치의 위패를 모시고 유림들이 제사를 지내는 충목단(忠穆壇:경기기념물 제102호)이 있는 마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봉리 [Mubong-ri, 茂峰里] (두산백과)
우측 포천 소흘읍으로 잠시 후 왕방지맥 갈림길에서 만나게 될 천보산줄기와 우측 멀리 왕방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소흘蘇屹읍 소흘읍은 원래 소흘산면(蘇屹山面)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새의 둥지가 있는 산이라는 소을산(巢乙山)의 이름이 변화된 것으로 소흘읍의 소재지인 송우리에서 연유한 것이며 소흘읍의 예전 이름인 내소면과 외소면 역시 새의 둥지를 말하는 것이다 소흘읍이라 한 것도 소(蘇)자는 풀이름으로 차조기 소, 나무 이름으로는 소나무 소로 풀이 되고 흘(屹)은 산 우뚝할 흘 즉 산이 높다는 뜻이다. 주위에는 산이 많으며 나무와 풀이 무성하였던 이유로 소흘읍이라 부른 것이라고 한다.
조망이 좋아 뒤돌아 보니 가운데 살짝 노고산이 보이고 이제 아주 멀어진 죽엽산이 아직까지도 큰산으로 남아 있다
한북정맥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조망을 허락하여 좀처럼 보기 힘든 도봉산 삼각산 수락산까지 조망된다
멀쩡한 마루금을 놓아두고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우회를 시작하고
철조망따라 계속 이어지며 마지막으로 무덤을 지나
바로 철조망과 헤어지며 이젠 사유지인 철망을 따라 걷는다 - 나중에 보니 독립유공자 자손의 집이라고 한다
98번 지방도인 다름고개(무림리 고개) - 그러고 보니 21번 버스가 축석령에서 이 곳을 통과 했겠지?
다름고개(무림리고개) 포천 소흘읍 무림리茂林里는 본래 숲이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무림이라 하였다 소흘읍이라 한 것도 소(蘇)자는 풀이름으로 차조기 소, 나무 이름으로는 소나무 소로 풀이 되고 흘(屹)은 산 우뚝할 흘 즉 산이 높다는 뜻이다. 주위에는 산이 많으며 나무와 풀이 무성하였던 이유로 소흘읍이라 부른 것이라고 한다.
앞에 보이는 신호등에서 바로 치고 올라간다. 나중에 보니 좀 더 진행에서 상가옆으로 올라오면 길이 좋을 듯
숲길을 지나 포장도로도 만나고
포장도로에서 바로 좌측으로 오르면 수락지맥 갈림길이다 - 한북정맥은 우틀
수락지맥- 왕숙천 서쪽, 중랑천 동쪽 분수령 -도상거리 약40여 km (6개)... 한북정맥 축석령직전 분기점에서 남쪽으로 용암산-깃대봉-수락산-불암산-아차산-용마봉을 거쳐 중랑천으로 맥을 다하는 43.8km의 산줄기이다.
무림배수지시설을 통과하면 또 다시 부대 철조망을 만나게 된다
군부대 철망 끝지점에서 좌틀
귀락터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귀락터널 통과 - 생태통로와 분리되어 있다
귀락터널을 통과하여 우틀하여 이제 도로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도로옆길을 따르다 바라본 귀락터널
귀락터널 의정부와 포천의 경계 시작 ** 귀락(歸樂)마을 의정부시 자일동 귀락은 의정부시 최북단에 있는 마을이며 조선시대 평안도 도지사를 지냈던 한 사람이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에 돌아와 여생을 즐겁게 지낸다 하여 마을이름을 귀락(歸樂)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귀락터널이 생겨서 축석고개쪽으로 가는 길이 뚫렸다 자일동은 고려 말기의 승려인 태고(太古) 보우(普愚)가 이곳에 천보사(天寶寺)를 짓고 자적유일(自適遊逸)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일동 [Jail-dong, 自逸洞] (두산백과)
중간에 이정표도 당겨보고
마지막 이정표를 지나면 축석령이 보인다
축석령(祝石嶺) 포천과 의정부의 경계 포천시 소흘읍(蘇屹邑)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이백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동지지』에 축석령은 "옛날 이름은 벽석령(碧石嶺)으로 양주 동쪽 25리에 있는데 포천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되어 있고, 『여지도서』에 "포천현의 서남쪽 40리 주엽산 서쪽 기슭의 과협(過峽)인 곳이다."고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축석령 [祝石嶺, Chukseokryeong]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祝石嶺)이래 했다는 또 다른 전설이 살아 있는 효자바위가 바로 앞 공원에 있다. 원래 위치는 북쪽으로 500m 지점에 있었던 이 바위를 옮겨 왔다는데...지금은 보기 힘든 효심을 다시 생각해 본다
횡단보도를 건너 좌틀하면 앞에 축석교회가 보이면 교회 앞마당 계단으로 통과 할 수 있다
역시 오늘도 그 잘난 삼성 디카가 벌써 밧데리를 갈라... 날리고... 할 수 없이 왕방지맥때 남긴 사진으로 대신
우측길로 조금 들어가면 축석교회를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앞마당을 통과
11:30 축석령에서 올라오는 마루금에 접속하고
11:38 왕방지맥 분기점
왕방지맥(王訪支脈)- 포천천 서쪽, 한탄강 지류 산천 동쪽 분수령-도상거리 약40여 km (5개)... 한북정맥 축석령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어야고개-회암령-해룡산-왕방산-국사봉-하늘봉-개미산을 거쳐 영평천으로 맥을 다하는 37km의 산줄기이다.
정맥 마루금은 3보루로
11:41 285.7봉( 포천, 양주, 의정부 삼군봉 포천과도 이별)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 직전에 있는 제3보루 안내판
조금 진행하면 바위지대를 만나면서 조망이 허락된다. 오늘 초보산꾼 오랜만에 복받은겨? 천보산과 그 뒤로 사패산 도봉산 삼각산이...
천보天寶山(갈립曷立山)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마전동 의정부 금오동 사이 칠봉산으로 이어지는 천보능선의 시작점으로 6.25때는 모두 타버려 '빡빡산'이라 불렀고 갈립산, 금오동에 있어 금오산이라고도 한다 1,500년전 고구려 군이 주둔했던 유적으로 인근 보루들과 함께 남하하는 아군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북상하는 적군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금오동은 조선 선조의 일곱째 왕자 인성군이 이곳에 낙향하여 삶의 터전으로 삼았는데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번창했다고 한다
수락산까지...
불곡산과 도락산...오늘 마루금을 다 사라지게 하여 마루금 찾는데 힘들었던 고읍택지지구을 앞에 두고
11:50 백석이 고개
백석이고개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 좌측으로 돌무더기 백석이고개는 차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옛날 이 고개에 호랑이가 극성을 부려서 낮에도 함부로 넘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를 넘으려면 백 명씩은 모여야 했기 때문에 백씩이고개로 불렸는데 나중에 백석이고개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 고개를 백석이현(白石伊峴), 축석령(祝石嶺)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축석령은 동쪽으로 포천시 소홀면에 있는 고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석이고개 [白石伊고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식후경후 성城처럼 생겨? 성바위도 조망하고 ** 찢어지게 어렵다는 말의 由來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서 찢어지게 어렵다는 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이었던 김병옥은 16일 동안 아주 적은 밥만 먹고 지냈는데 정월 초하루 이집 저집으로 동냥을 하러 다니다가 떡국 열 두 그릇을 얻어먹고 단술까지 얻어 마셨다. 당시 김병옥이 얻어먹은 떡국은 떡가루를 날반죽해서 끓인 것이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 열 두 그릇을 얻어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다. 그 날 김병옥은 대변을 보았는데, 이후 대변을 본 날은 정월 열여섯 날이었다. 12:21 좌측의 성바위에도 눈길을 주고
김병옥은 정월 열여섯 날 아침 사역을 한 뒤, 밥을 얻어먹었다. 그런데 밥의 양이 매우 적어 김병옥은 밥을 국에 말지 않고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보았는데, 대변이 딱딱하게 굳어 나오지 않았다. 한참 힘을 주니 그때서야 작은 양의 대변이 나왔는데, 항문이 매우 아팠다. 옛말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찢어지게 어렵다는 말의 유래」 [찢어지게 어렵다는 말의 由來]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2:36 천보산으로 가는길, 오랜만에 고속도로 같은 길이다...
12:38 원마루금 갈림길인데 골프장에서 출입금지라하고 철조망으로 틈을 주지 않는다
12:42 환기통이 보이면 바로 직전 우측으로
골프장을 보면서 철조망을 넘는다 - 의정부와 이별하고 양주시내로 들어간다
내림길에 본 골프장 - 가운데 우측 화담정사 건물 뒤로 해서 마루금은 이어지는데... 붉은선 가운데가 오리동고개이고 멀리 가운데 있는 산이 태미산 우측이 고장산, 그리고 좌측이 불곡산
골프장에서 본 천보산
불곡산 방향
동두천의 칠봉산까지
13:06 골프장을 가로질러 논이 있는 끝부분에서 5번홀을 따르다 화담정사가 좌측으로 보인다
13:22 바로 좌측 숲길로 이어지는데... 난? 5번 홀 끝까지 같다 다시 되돌아 오고 .. 숲길로 이어가면
13:24 바로 유래를 알 수 없는 오리동고개 (梧里洞) 바로 도로를 건너 진행하면 신설도로가 나온다
개념도 지도 한장에 의지해 마루금을 이어가다 보니 이렇게 마루금이 없어진 경우? 마루금찾기가... 다시 오리동 고개로 원위치 재충전
이제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의지해 다시 신설도로로 원위치해서 우측 아파트를 보면서 진행
고읍동古邑洞 고읍동의 옛이름은 고읍리였다. 고려 시대에는 견주(見州)라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의 치소가 있었으며, 1397년(태조 6)에는 양주의 부치(府治)가 동촌 대동리[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부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1506년(중종 1) 유양동으로 이전되기까지 양주의 행정을 총괄하였다. 오늘날 유양동을 근거로 한 양주시의 발전은 고려 시대의 견주, 즉 현 양주시 양주2동 관할 고읍동 일대의 변화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읍동 [古邑洞]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앞에 굴뚝있는 건물을 보고 무조건 진행
지금 한창 공원을 조성하는 듯... 나대지 도로를 횡단하여 굴뚝있는 공장앞에 오니 문이 열려 있다. 사거리 이정표에서 도라공원으로 직진
굴뚝있는 회사가 티피피라는 회사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놀이터가 보이고 계속 이어가면 정자가 있는 숲속으로
봉에 올라 좌측으로 내려오면 광사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우측 도로로 진행하여 정문앞으로 가면 정류장이 나온다
광사초등학교 앞 정류장을 지나면 좌측으로 다시 숲속으로 이어진다
숲길을 올라 넘어가면 앞에 보이는 한내들 아파트로 내려선다
한내들 아파트로 내려와 우측 사거리에 보이는 이정표에서 산내들마을 방향으로 좌틀
다시 사거리가 나오면 덕계동 방향으로 직진
사거리에서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 은빛마을 아파트 방향으로 직진
은빛마을 507동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덕현초등학교가 나온다 - 초보산꾼 이동경로
황단보도를 건너 초등학교 좌측으로 해서 끼고 돌아가도 되고 우측 담장을 끼고 돌면 초등학교 뒤에 중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뒤를 돌아 중학교를 지나면 결국 초등학교 좌측길과 만나게 된다
사거리에서 우측에 아남아파트를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 직진
막은고개? 다리를 건너
15:05 순복음 교회가 나오고... 또 다시 그나마 있던 마루금은 없어지고... 한참 공사중
교회에서 우틀하여 큰길로 나와 좌틀하여 계속 진행하면 119가 나온다. 건물 뒤 숲속으로 이어진다
철조망을 만나면서 우측으로 오르면 태미산
15:35 태미산 정상 - 우측으로
1. [더미]라는 뜻의 예전의 경기도 남부 사투리 2. 막은 데미는 산더미(뭉치)로 막혀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15:36 바로 다시 갈림길에서 샘내(산북동)이정표를 따른다
15:47 경원선 철도가 보이는 편도 도로로 내려와 우틀하면 환승아파트가 보인다
15:52 한승아파트 직전 경원선으로 내려가면 굴다리가 나온다
이렇게 통과를 했다
우측으로 철로를 끼고 함께 계속 이어간다
좌측 군부대와 우측 공장사이를 통과한다
이제 불곡산이 지척이지만.. 디카는 말썽이고... 그렇다고 유래없는 한파라고 하는데 맨손으로 헨드폰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큰길로 나오면 우측으로 샘내고개 정류장이 나오고... 나는 길을 건너 반대편에서 31번 버스로 의정부로 샘내고개라는 이름은 근처에 맑은 물이 솟는 샘내가 있어 유래되었다. 꽃바위우물, 즉 화암정(花岩井)이라고 하는 유명한 약수도 있었다. 옛날에 서평강(徐平康)이라는 평강군수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악정을 벌이다가 쫓겨나자 짚둥어리를 타고 이곳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서평강은 동네 복판에 큰 못을 팠으며 그 흙으로 못 옆에 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풍경을 아름답게 하였다고 한다. 그 옆에는 큰 뒤주처럼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었으며 이 바위를 대감바위라고 불렀고 바위 밑에서 옥수가 나와 이곳을 샘내라고 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샘내고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갑자기 더욱 추워진 날씨에... 담을 기약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여정을 마친다
큰 산을 앞에 두고 올망졸망한 봉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열지어 출렁 다리를 놓아준다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앉아 앞 다투어 하늘 길을 열어 맘꺽 대자연과 호흡할 기회를 열어주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려주려는 듯 휘돌아 가며 길을 주고 계곡을 곳곳에 만들어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할 기회를 주기위해 에둘러 돌아가게 하는 것이리라 나그네에게 목표를 향한 열정에 눈과 귀를 즐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화답은 하여 주되 자만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큰 뜻을 이루려면 그만큼의 수고와 노고는 감수하라 한다 더 큰 뜻을 품었다면 당연이 오름길에 만나는 수고와 노고는 더 길어지고 높아질 것이다 언제나 말없는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큰산의 장엄함이 주는 거역할 수 없는 큰 깨달음인 것이다 걸을 수 있는 인간은 스스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착각속에 살아가며 인간의 위대함을 얘기하지만 억겁의 세월을 견뎌내며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대작이며 걸작인 큰 산이 가진 무게를 생각하면 아무리 인간이 잘났어도 결국 자연 일부의 점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인간 스스로 만든 인간 세상속에서는 아무리 도토리 키제기를 해봐야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 산속에 들어 큰 산 앞에 놓여 있는 쉽게만 보였던 올망졸망한 봉들을 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또 거기에 숨겨져 있는 곳곳에 놓여 있는 수많은 샛길들의 유혹까지 감당해야 한다 때론 인간의 맘속에도 천길이 있듯 자연속에 숨겨진 천길의 시샘중 하나에 불과한 궂은 날씨까지.. 그렇게 힘들게 오른 정상에서 본 올망졸망한 봉들도 대자연 일부의 점에 불과하거늘... 점에 불과한 올망졸망한 봉을 그렇게 힘들게 올라와야 하는 과정을 넘고서야 정상에서 맛보는 쾌감 이런 큰 산이 주는 무언의 무게가 있어 우리가 산을 오를 때 힘들어 하면서도 다시 찾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인생사처럼 그렇게 한숨돌릴 시간도 없이 앞만보고 걷다 무심코 뒤돌아 본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 어느새 저 멀리 멀어저 가고 있는 봉우리를 보면서 잠시 달콤한 휴식으로 좀 더 편하겠지 생각하지만 그러나 우린 봉우리 정상에 오르고서야 또 다른 더 콘 산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힘들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게 큰산을 넘고 또 넘고 계속 달려온 한북정맥길 이제 잠시 숨을 고르라는 듯 잠시 산세를 낮춰 주어 오랜만에 힘들이지 않을 줄 알았건만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큰산인 삼각산을 만들기 위한 숨고르기인데 조물주의 그런 큰 뜻을 모르는 인간의 문외한으로 인해 소리없이 서서히 점령해 버리는 인간들의 욕심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마루금을 보면서 한번 파괴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슴이 너무 안타깝게 다가온다
어렵게 이어온 한북정맥길 이제 임꺽정의 놀이터에서는 어떤 숨은 사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시 돌아올 토요일에 가게될 불곡산이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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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초보산꾼의 발길 닫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