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TV매체에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드라마의 상대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나 쇼가 아닌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다.' 라고 알고 있고 그게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를 지칭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빠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영어사전에서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찾아보면 '①문서의, 서류의 ②사실을 기록한'이라는 형용사의 뜻과 '기록한 것'이라는 뜻의 명사로 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록한 것"은 기록영화를 의미합니다. 영화사적으로 이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는 현실을 충실히 카메라에 담아 창조적 재구성을 한다라는 의미로 프랑스의 다큐망떼르(Documentaires)에서 출발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영향아래 루이(Louis)와 어거스트 뤼미에르(Auguste Lumiere)형제는 1895년에 인류 최초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895년 3월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산업진흥회의'에서 루이 뤼미에르는 <뤼미에르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Workers Leaving the Lumiere Factory )이라는 단편영화를 제작 ㆍ상영하였는데 이것이 영화의 태동이며 다큐멘터리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일상 세계를 카메라가 포착하는 형식의 영화는 비록 다큐멘터리의 시작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오랫동안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 이때까지의 영화들은 다큐멘터리로서의 정체성을 갖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빠져있다고 할 수 있던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이후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1922)를 통해 실제 삶을 다루면서도 드라마틱한 영화적 구조를 만족시키며 상업적으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플래허티는 에스키모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어 감성에 호소하는 강력한 힘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영국의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플래허티의 영화-<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 <모아나 Moana>(1926)-를 보고 진정한 의미의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때부터 다큐멘터리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많은 발전을 하게 되며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여러 장르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구체적으로 형성되면서 초기의 영화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요소들이 생겼는데 이를 바탕으로 초기의 영화들은 논픽션 영화들이라 명명하는게 적확할 것입니다.
카메라에 찍히는 모든 영상물들을 이렇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모든 영상은 '기록된 것'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의 필름 문서로서 광의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다시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뉩니다. 즉 극영화와 논픽션 영화가 그것인데, 다큐멘터리는 이 논픽션 영화중의 하나입니다.그럼 논픽션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얼핏 분간이 안가실 겁니다. 논픽션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구분하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공장에서 TV를 생산하는 방법에 관한 영화는 산업영화입니다. 그것은 제작공정을 단순히 기록하는데 그치는 TV제작공정에 관한 영상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생산공정을 보여 주더라도 반복적이고 정밀한 TV의 생산이 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활을 통해 사회의 한 단면을 읽어내는 코드를 제시하고 비판적인 결론을 유도하는게 다큐멘터리입니다.
즉 다큐멘터리는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의 표현대로 "현실의 창조적 처리"를 통해 삶의 풍부함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들을 드러내어 새로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현실 속에서 교육영화의 단순한 서술적 화법을 넘어서고 뉴스보다는 상상력과 표현력이 다채로우며 양식은 더욱 세련되고 기행이나 학술영화 같은 평범한 실사 위주의 영상물들에는 함축성과 시사성을 풍부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