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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61) 2024. 4. 10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
사무엘하 22:32-41
우리는 다윗의 승전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를 우리가 자세히 살피는 이유는 오늘 우리의 영적 전쟁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승전가를 통해, 승리의 원인을 파악하면 우리도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승리의 비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습니다.
32~35절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7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어느 구절을 보아도 스스로의 힘을 내세운 구절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묵상해 보니, 한 구절 한 구절이 ‘당시의 병사가 전투할 때,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발밑이 튼튼해야 합니다. 발밑이 고르지 않으면 스스로 넘어집니다. 전투하다 넘어지면 지는 것입니다.(32절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7절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실족하지 않게, 미끄러지지 않게.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위기의 순간에 피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 궁지에 몰릴 때는 안전한 피난처가 필요합니다(33절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다윗은 피하는 곳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싸개’(삼상25:29) 속에 감싸주셨습니다(아비가일의 고백).
빠른 발이 필요합니다. 빠른 발이 있어야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34절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무기를 잘 다루어야 합니다. 활을 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35절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든든한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36절“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40~41절 “이는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를 내게 굴복하게 하셨사오며/ 41 주께서 또 내 원수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내게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전투에서 필요한 필수적인 승리의 요건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그의 구호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골리앗과 대결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저는 골리앗만 상대할 때 이 구호를 외쳤을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모든 전쟁에 나설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같은 구호를 외쳤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그 모든 위기의 순간에서 구원받은 비결입니다.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렇습니다.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오늘 우리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취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의 힘으로 싸워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상대, 곧 ‘악한 영’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첫째, 천사의 얼굴을 하고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한 유대인들을 책망하면서 그들 속에 악한 마귀가 역사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또, 산상수훈에서는 이런 악한 영에 속한 자들을 ‘양의 옷을 입고 나오는 이리’에 비유하셨습니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사도 바울 역시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후11:14~15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렇습니다. 사탄은 간교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로 알고 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붙어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상대가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다가올 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하와에게 다가오는 뱀).
그래서 영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기준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일 4:1~3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또 삶의 열매를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알 듯’, 그의 삶의 선한 열매를 통해 분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둘째, ‘악한 영’은 두려운 모습으로 압박해옵니다(초대교회의 로마 정부).
막강한 힘을 가진 어두움의 영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존재입니다(예수님을 십자가에 단 세력).
그래서 악한 영을 상대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엡6:13~18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라 함은 사람이 만든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무장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당시의 로마 군인이 무장한 모습을 연상하면서 그리스도의 군사에게도 이런 전신갑주가 있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주요 장비는 무엇입니까?
1. 진리의 허리띠 - 14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했습니다. 옷을 입을 때 허리띠를 매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편안함과 자유로움입니다.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그렇게 좋은 옷도 편안하지 않고, 행동이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허리띠는 힘의 중심이며 군복을 입고 몸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복장을 단정하게 해주는 장비입니다. 다시 말해, 완전무장을 위한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이 바로 ‘진리의 허리띠’를 차는 것입니다.
2. 의의 호심경 – 호심경(흉배)은 심장과 폐 등 중요한 부분이 있는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갑옷의 일부분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방탄조끼와 같은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방법은 우리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변화된 삶을 살고자 할 때, 그들은 “혼자 잘난 척, 의로운척하지 말라. 너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라”고 공경합니다. 그 비방하는 화살이 우리 마음에 절망적인 죄책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 역시 죄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축됩니다.
그때 필요한 무기가 ‘의의 호심경’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5: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8:33~34)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음을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의의 호심경’을 삼아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전투화입니다. 발목 위로 올라오는 군화를 신고 단단하게 끈을 조이면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고 어떤 거친 지역도 거침없이 달릴 수가 있습니다.
영적 싸움터에서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신’을 신고 있으면 어디든지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평안의 복음’이라는 부르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진정한 의미의 평안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열방이(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주안에서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어야 할 신은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신입니다. 곧 화해자의 신입니다. 우리들이 가는 곳에 불화가 물러가고 화해가 일어나야 합니다.
4. 믿음의 방패 - 성도들이 갖추어야 될 네 번째 무장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16절에 "모든 것 위에"라는 말은 앞에서 열거한 허리띠, 흉배와 신발에 더하여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수비형 무기입니다. 적군이 쏘아대는 독화살과 불화살이 날아오면 방패로 막아냅니다. 이 방패가 없이는 새까맣게 날아오는 돌들을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방패를 믿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 믿음이 이 세상의 악한 풍조와 사상을 이길 수 있고 세상에서 성도가 당하는 핍박과 오해와 누명과 조롱을 막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작은 핍박에도 넘어지고 맙니다. 조그마한 오해와 누명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는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조롱을 이기고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었고, 요셉 역시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타국에 종으로 팔려 가서도 꿈과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승리의 삶을 살았고,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 궁전에서 누리는 세상 쾌락보다 자기 백성을 위해서 고난 당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사탄이 의심과 낙심으로 공격해 올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하는 것이 이 믿음이며 유혹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도록 하는 것이 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방패를 굳게 붙들고 다가오는 사탄의 모든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기 바랍니다.
5. 구원의 투구 -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에게 필수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철모, 곧 투구입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머리에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싸움에 나서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팔이나 다리는 잘려도 머리가 남아 있으면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는 사고하는 부분입니다. 사단은 온갖 거짓된 이론과 사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지성을 공격합니다. 사단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심을 갖도록 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투구’로 비유되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원의 확신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하셨습니다. 이 구원을 확신하며, 죄 용서받은 믿음과 기쁨으로 살 때에 우리의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가 씌워져 있는 것이며, 성령께서 우리의 영생을 보장하십니다. 나의 머리에는 예수의 보혈을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투구가 있습니까? 맨머리로 지내면서도 투구가 씌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6. 성령의 검 - 방패가 수비형 무기라면 칼은 공격형 무기입니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7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이 말씀의 칼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고 성령께서 이 칼을 날카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승리의 필수적인 요건은 이 말씀의 칼이 예리하고 강력하도록 성령을 통해 날마다 갈고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신 것처럼(마4장)’ 말씀의 검을 즉시 빼 사용할 수 있도록 날마다 묵상하고, 암송하여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여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 포기는 없습니다>
한편, 오늘 본문 삼하22:38~39을 보겠습니다.
38~39절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39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
전투를 치르는 다윗의 태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는 중간에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웠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사탄과의 전쟁을 지속해야 할까요? 예, 최후 승리를 얻는 그날까지입니다.
최후 승리를 얻는 그 날까지 우리의 영적 전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맺는 말씀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의 승전가를 통해 영적 전쟁에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습니다.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지면 죽거나 노예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전쟁에 나간 이상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의 조건은 단 하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허리띠’로 여러분의 허리를 동여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의의 호심경’(방탄 조끼)를 입고 여러분의 가슴을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발’을 신고 어디에서든 화해자의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손에 ‘믿음의 방패’를 들고 사탄의 공격을 막내 내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투구’, 곧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각종 이단 사설과 정신을 혼미케하는 세상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예리한 ‘말씀의 검’을 들고 마귀를 궤계를 능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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