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을 하다.
1972년 10월 1일 복성초등학교를 시작으로 41년 8개월 오늘 그 마지막 출근을 하여 "얘들아, 나는 너희들을 참 사랑했는데 이제 집으로 간단다." "잘 커라!" 목행교육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50여명의 교직원과 악수하고 600여명이 잘 가시라고 손흔드는 가운데를 흐르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지나와 교문 앞에 도열하여 고사리 손 내미는 유치원생들에게 잘 있으라 하고
이상 얄궂한 기분으로 긴긴 진입로 나무 사이로 학교를 벗어났다.
30분도 안 되는 아침 시간 어느 조그만 아이 편지들고 들어오고 우루루 교장실에 모인 수십명의 아이들 일일이 악수나누는 사이 유치원 때부터 유난히 날 따르던 아이 하나, 멀리서 울먹이며 서있기만 한다. 부끄러 간신히 내민 손 잡아주니 뒤돌아 간다. 일부러 작별하러 찾아온 운영위원장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지말라고 매달리는 아이도 있고 빨리 조회대 아이들 기다린다고 날 데리러 온 선생님 눈물 흘리고 교문까지 나와 눈물 범벅된 이도 있으니 평생 직장 마지막 나가는 학교문에서 그래도 서운함만 있는 것도 아니렸다.
나를 그리도 좋아하던 영은이 눈물 잔뜩 머금고 층계에서 기다린 듯 조우하여, 잘 있어라 인사하였으니 못내 아쉬울뻔 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맑고 깊은 순수한 너의 눈, 그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었단다. 마음껏 놀아주지 못하여 못내 아쉽구나. 나는 아이를 진정 좋아하는 선생님일 뿐이란다. 그 깨끗한 영혼에 걸맞게 잘 크시게. 네가 있어 참 행복한 날들이었단다.
세번씩이나 근무했던 목행초와의 질긴 인연이었지만 무사무탈하게 살아서 돌아가는 그 길이 영광이고 자랑이다.
교문 옆에 저기 농구장엔 내년엔 다목적 강당이 들어설테고 무수히 많은 저 나무들은 내가 심고 가꾸어 저만큼 자랐고 짙은 녹색의 천연잔디 사육장 토끼, 닭들 두루두루 내 손길 간 교정 초롱초롱 저 빛나는 아이의 눈망울들 모두 두고 떠나기 참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그러나 나 나이들어 그만 집에 가라고 황조근정훈장 목에 걸어주니 터벅터벅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와 반기는 아내 "부인, 무사무탈하게 42년 교직생활 그 임무 마치고, 살아돌아 왔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나를 이렇게 살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큰절로 보답하여 복귀 신고하고자 합니다. 한사코 사양하여 절 올리지 못하였으나 백화점에서 제일 비싼 옷 사주겠노라는 35년전 약속 지키고자 합니다. 30년 병구완하느라 맘고생, 몸고생 정말로 수고소. 여기 황조근정훈장 당신 목에 걸어드리오리다. "여보,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제자들 만나다.>
30일 저녁엔 제자들(목행초 34회) 당진에서 부산에서 서울에서 까지 달려와 30년전 이야기로 왁자지껄 어쩌면 그 당시 나보다 내 아내에게 더 정이 들었나보다. 그넘들 내 집에 매일 몰려와 들쌀을 놓아도 받아주고, 먹을 거 해주던.
이것들이 꽃바구니에도 사모님~
그래도 영중이는 나 때문에 선생님 되었다고 처자식에게도 내 얘기 해다며 서울에서 부산 갔다가 부랴부랴 달려 왔단다. 재성이는 지금의 자기가 되었다니 감사할 밖에...... 자칭 큰 아들 요즘 베트남에 병원 25개 짓는 사장 되었다니 축하할 일. 매일 업어달라 보채던 순근(사진에 얼굴이 가렸네)이는 몇 년전에 나타나 아버지 정을 느껴노라고 톡톡히 제자하겠다고, 자신만만한 여장부가 되었다. 순근이 일수와 짝 해달라고 맨날 떼쓰더니 일수야, 너는 나보러 온겨냐 순근이 보러 온거냐? 출판사 근무한다고 얼굴에 글쟁이 표가 난다.
명희는 나랑 인연이 만나 몇년째 같이 근무하며 예쁜 짓 다 하더니 직원들과의 퇴임식에서 감동깊은 사은사를 낭독해 눈물바다 만드네. 20140827-사은사-권명희.hwp
정구는 몇 년전에 제천까지 여럿이 놀러왔을 때 개울에서 고기 잡다가 바지를 버려
사모님 바지 입고 갔더니 왜 그냥 왔더냐? 그 멀리 당진에서 왔다고? 이제 장가 간다고 주례 해 달란다. 주경민이는 주은지, 은비 아버지란다. 그 엄마하고는 몇 년전부터 학교에 열심히 ?아와 오랜 지인이다만 이제사 내 제자라고, 용기가 없어 못 찾아뵈었노라 극구 미안해 한다. (노래방에선 노래 잘 하더라 )
금주는 자기는 3반이었다고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척 하지만 지가 제일 제자 노릇했으면서 내 무척 힘들 때, 바쁜 와중에도 기쁨조하느라 얼마나 애 썼는데....... 성미가 나타나니 반색을 한다. 성미는 9월말 제주도 한달살기 할 제 애월읍에 있는 제 집에서 묵으라고........
모두들 30여년 동안 정을 나누며 지내온 제자들과 퇴임을 즈음하여 회포를 풀었다. 얘들아, 고맙다. 내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이 있는 자네들이 사모님까지 잘 챙겼으니 더욱 고맙구나.
이제 나는 화백이 되었으니 자네들 주소록 내게 주시게 예전 '와룡선생' 처럼 팔도의 자네들 집집마다 찾아가 선생님 노릇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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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나는 삶 원문보기 글쓴이: 신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