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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됐던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2001년 9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TC)를 강타한 아랍 테러집단 하마스의 9.11테러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보여주는 영화다. 미국은 테러의 주역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매년 수천만달러를 쏟아부으며 그를 추격한 끝에 10년만인 2011년 5월11일 파키스탄의 은거지인 아보타가드 자택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사살 장면은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중계됐다. 지금도 뉴욕 맨하탄에는 테러의 현장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보존돼 미국인들에게 당시의 참상을 상기시키고 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것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도 뒷받침됐지만 적성국의 공격과 테러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함으로써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천안함 피격 3주기다. 서해의 최전선에서 나라를 지키던 꽃같은 청춘 46명이 목숨을 잃고 그들을 수색하러 바다에 뛰어든 한주호 준위와 수색을 돕던 금양호 선원등 56명의 인명이 희생된지 3년째 되는 날이다. 9.11테러와 천안함 피격사태를 단순비교할수는 없다. 피해규모도 천지차이다. 뉴욕의 심장부인 110층짜리 맨하탄의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민간인 3천21명이 희생당한 것을 군인과 선원 56명이 산화한것과 동일한 시각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받았던 충격의 강도가 약한것은 아니다. 어떤면에서는 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수도 있었다. 9.11테러로 인해 미국 본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한 정규군이 무력충돌로 이어진다면 한반도는 자칫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한국경제발전의 장애되는 요소로 늘 '코리아리스크'를 거론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대치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전쟁위기에 대한 긴장감을 찾아보긴 쉽지않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식료품사재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고 주가(株價)가 요동치지도 않았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안정돼 있다는 의미하기도 하지만 외국에선 '안보불감증'을 더 우려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것은 진실을 부정하는 여론이 만만치않다는 점이다. 미국, 호주, 스웨덴등 선진국 전문가를 포함한 민군합동조사단이 과학적인 조사결과와 탈북자들의 증언, 심지어는 러시아가 사실상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에 의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도 이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다.
북한 관영 보도 기관은 얼마전 대규모 육,해,공군 합동 군사훈련 장면을 보도하면서 잠수정이 어뢰를 발사해 가상의 적 함정을 격침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보도다.
물론 천안함 사태 당시 우리 군은 천안함 피폭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미확인 물체에 대한 대응사격 외에 이렇다 할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고 후 부표를 제때 설치하지 않아 구조작업을 더디게 한 과실도 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팩트가 바뀌진 않는다. 이 사건에 대한 각종 음모설은 아직도 인터넷에 떠있고 심지어 20대 여성과 30대 남성 절반만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걱정스러울 정도다.
우리 국민들끼리 분열하고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북한의 간교한 계책에 우리가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음모론을 유포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을 도와주는 셈이다.
9.11테러에도 음모론에 난무했다. '미국 정부가 테러를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다', 'WTC가 항공기와 충돌하기전에 폭발했다'는등 별의별 루머가 판을 쳤다. 하지만 진실이 묻혀지진 않는다. 미국정부는 국가수호를 위해 테러범의 수괴를 추적하는데 역량을 집결시켰다. 미국은 9.11테러이후 무려 10년간 천문학적인 예산과 최정예 정보요원들을 희생시키면서도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가혹하게 응징했다. 대한민국은 과연 북한의 도발을 응징할 각오가 있는가.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 이리에 아키라는 "의도하지 않은 전쟁이나 우발적인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것이야 말로 전쟁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맨토로의 명언이 진중하게 들린다.
/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