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할아버지와 월남전(越南戰)
(2011.11.16 송고)
‘어? 앵무새네.’
며칠전 터미널 앞에서 얼룩달룩 화려한 깃털의 앵무새를 장애우용 전동차에
앉아 파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쉽게 접하는 애완견과는 달리 애완조는 총총
거리며 뛰는 날개짓 하나에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신기해 했던 어릴적 기억이
난다. 하늘을 나는 새이지만 사람 손에 길들여 지다보니, 새장에서 나와도 제대로
날지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 앵무새를 파는 할아버지는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터미널 앞에서 묵묵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의도를 밝히고 성함이며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그건
왜 묻냐는 퉁명스런 대답만이 돌아온다. 하는 수 없이 새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으며 조금씩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하였다.
“할아버지. 이 새들 말 할 수 있나요?”
“교육시키기 나름이지. 처음부터 말하면서 태어나는 앵무새는 없어. 인내를
가지고 애들이랑 교감해야 말문이 터지는 게야.“
역시 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이 있는 듯 대답에 힘이 실린다.
“그럼, 아버지께서 직접 키우시는 거예요?”
“암. 집에서 직접 부화시키고 교육을 시켜서 데리고 나오지. 애들은 감정도
있고, 지능도 높아서 끝까지 책임 못질 바에야 섣불리 키울 생각 하면 안돼.“
앵무새 할아버지는 ‘앵무새는 앵무새일 뿐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다. 앵무새는
매우 감정적이라 어떤 일로 인하여 슬퍼할 줄도 알고, 낙조도 하며, 심지어
자해까지도 한다고 한다. 모란앵무처럼 소형은 5~7년정도 살지만 중형, 대형으로
갈수록 수명이 길어져 사람 평균수명까지 사는 종도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평생을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키워야지 호기심으로 시작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란다.
“본래부터 새를 키우셨나요?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
“내가 몸이 성할때는 창경원에서 사육하는 곳 계장까지 지냈어. 그때 앵무새를
알게 되었는데, 입질(주인을 무는 행위)이 심한 놈이 하나 있었지. 당시에는 성질
고약한 놈이라 생각하고 심하게 혼냈어. 근데 다음날 이 놈이 자해를 하더니
결국 죽는거야... 앵무새의 입질도 사실 다 주인의 잘못인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지.“
입질은 부리를 가진 새들이 자연에서 자라면서 하는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애완조의 심한 입질은 주인의 분양사유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사랑으로
감싸주고 노력을 한다면 없앨 수는 없어도 줄일 수는 있다고 한다. 그 앵무새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외면에 결국 죽음을 택한 듯 하다.
“근데 할아버지 몸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어디서 다치신 건가요?”
전동차에서도 불편하게 앉아 계신 이유가 자뭇 궁금하기도 했지만, 괜한 오해를
살까봐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월남전에 파병됐다가 월맹(베트민)에게 총을 맞아서 그래. 오른쪽 이마에 맞았
는데 왼쪽 몸이 거의 다 마비됐어.“
눌러 쓴 모자를 들추자 손가락 마디만한 상흔이 이마에 선명히 남아 있는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줄기세포로 한참 나라를 뒤흔들었던 황우석사태때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국가유공자로서 연금과 수당을 수혜 받고 있지만, 젊은 나이에 반신불구의
몸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던 고충은 그의 남루한 옷차림이 가히 짐작케 한다.
“예전에는 보리밥도 못 먹었어. 요즘 젊은 사람들 보릿고개가 뭔지나 알아?
그나마 월남전이 있어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이만큼 사는 게야. 내 처후야
어떻든 나라 형편대로 해주는 거겠지. 지금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불평
불만 많은 사람들이 이리 많으니 원...“
6.25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얻은 경제적 이득은 최소
50억 달러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물론 국군의 목숨을 담보로 한 미국의 용병
일 뿐이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까지 희생한 수많은 국가유공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하며, 사회가 작은 앵무새가
되어 할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외롭지 않도록 반려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